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28)
127화 – 107호, 관문의 방 – ‘에스퍼 호의 비밀’ (18)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45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7호(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조언 : 1 -> 0] [즉시 동료의 난동을 멈추고 주변에 사과하세요.]바로 대화창부터 썼다.
한가인 : 조언 발동함. 당장 내려오세요.
테이블 위로 올라가서 할아버지의 팔을 붙잡았다.
대화창을 확인한 할아버지도 저항하지 않고 내려온 후, 인사불성이 된 연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할아버지의 술주정에 대해 주변에 사과하는 시늉을 했다.
할아버지를 부축하는 연기를 하던 도중, 뒤늦은 깨달음이 왔다.
의문에 대한 답변을 주는 ‘조언’과 달리 위기 시에 경고해주는 ‘위기 알림’은 어디까지나 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만 작동한다.
… 순간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졌다. 슬쩍 주변의 반응을 살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단순히 한심한 술주정뱅이를 보는 정도가 아니었다.
내가 무슨 초감각이 있는 게 아닌데도 피부가 따갑게 느껴질 정도의 살의가 느껴졌다.
특히 에스퍼 호의 승무원들 몇몇은 아예 리볼버를 꺼내든 상태였다.
위기 알림이 발동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할아버지의 난동이 지속됐으면 저들은 총을 쏠 생각이 아니었을까?
비정상적인 반응이다.
아무리 상류층의 파티에서 난동을 부린다 해도, 직원들이 술 취한 사람을 끌어내는 정도가 정상이다.
총을 쏠 준비를 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한참을 사과하며 주변 분위기를 진정시킨 후, 우리는 객실로 돌아왔다.
*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내 예측이 맞았다.”
“파티가 적들의 역린이라는 예측 말씀이죠? 저도 동의합니다.”
아리, 송이, 엘레나도 연달아 동의했다.
“할아버지가 미친 짓을 하긴 했지. 직원도 좀 팼고, 승객에게 음식물도 던졌고, 고성방가도 했고…. 아니 말하다 보니까 진짜 개지랄 다 했네? 하여튼 아무리 이런 짓을 했다고 해도 보통 총을 꺼내진 않아.”
“승무원들의 반응보다 승객들의 반응이 더 이상했어요. 승무원이야 난동을 부리는 사람을 제지할 책임이 있으니까 좀 위협적으로 나와도 그럴 수 있지만, 승객들이 다들 눈을 부릅뜨고 우릴 노려봤는걸요? 너무 무서워서 고개를 들기 힘들 정도였어요.”
“확실히 이상하죠. 보통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같은 느낌으로 승객들은 그냥 피하는 게 일반적인 반응일 것 같네요.”
한 가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파티를 망치는 게 어떤 트리거인 것 같긴 합니다. 기회가 되면 파티를 한 번 더 망쳐봅시다. 다만, 당장 우리의 위기는 내일모레의 파티가 아니고 오늘 자정입니다. 이제 끽해야 1시간 남았네요.”
할아버지는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답했다.
“그쪽도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다. 어찌 보면 오늘의 난동과 연결되는 계획이지.”
“계획이요?”
“오늘 자정에도 놈들이 찾아오겠지? 이번엔 페로도 없으니 우리 중 한 명을 데려가려 하겠지? 내가 끌려가마.”
순간적으로 다들 놀라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리는 이미 짐작한 분위기였다.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오늘 놈들의 심기를 거하게 긁었으니, 웬만하면 날 데려갈 것 아니냐? 마침 데려가기 좋게 내 개인정보도 아까 술술 불었다. 그래봐야 나이와 출신 지역 정도지만. 그 두 가지가 핵심인 것 같던데?”
송이가 더욱 놀라며 외쳤다.
“끌려가기 위한 준비를 차곡차곡 하셨다고요?”
“그거지.”
슬슬 할아버지의 의도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설마…. 끌려가시면서 ‘대화창’을 쓰실 생각입니까?”
“이제야 알아차렸구나. 맞다. 지금 우리의 제일 큰 문제가 뭐냐? 유사시에 놈들이 들이닥치면 제대로 싸울 방법이 없다. 페로는 어디론가 사라졌으니, 정의를 발동한 엘레나 말고는 대응할 힘이 없다. 문제는 엘레나는 증거가 없으니 정의를 쓸 수 없는 상태라는 점이지.”
아리가 덧붙였다.
“요전에 ‘소통’을 강화하면서 영상을 올릴 수 있게 됐죠. 그 기능을 쓰실 생각인가요?”
“맞다. 내가 끌려가면서 상황을 공유해주마. 보나 마나 사악한 짓을 할 게 아니냐? 증거를 확인하면 엘레나가 정의를 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네 번째 시련은 거의 해결이라고 본다.”
송이가 질문했다.
“예전 상식개변 미디어나 공포의 저택에서 거리가 멀어지니까 대화창 공유도 막혔던 것 같은데, 그 문제는 없을까요?”
“그때는 우리 사이의 거리가 킬로미터 단위로 벌어지니까 생겼던 문제지. 배가 크다곤 해도 대화창 공유가 막힐 정도는 아니다.”
의도는 이해했다. 아까의 난동부터 연결되는 계획이다.
일부러 상대를 자극해서 적이 묵성 할아버지를 끌고 가도록 유도한 후, 대화창의 영상 첨부 기능을 써서 악행의 증거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걸 통해 엘레나의 정의를 활성화하면 해결!
설득력 있게 들렸다. 다만, 한 가지 불안함을 엘레나가 지적했다.
“할아버님이 무사하실 수 있을까요?”
“엘레나 네가 정의를 써서 날 구하러 와야지.”
“정의를 쓴다고 하더라도 제가 무슨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아무리 빨리 가도 약간의 시간은 걸릴 거예요.”
“별 수 있냐? 이런 장소에서 위험부담 없는 작전이란 있을 수 없다. 여차하면 나 하나 쓰러지고 남은 너희가 다섯 번째 시련으로 가면 된다. 아무렴 네 명이나 가면 한 명은 통과하겠지.”
아리는 씁쓸한 분위기로 말했다.
“엘레나가 정의를 쓸 수 있게 되는 즉시 구하러 갈게요.”
할아버지는 피식 웃으면서 권총을 아리에게 건넸다.
…
자정이 될 때까지 우리는 더 나은 계획을 찾아내지 못했다.
*
– 엘레나
— 뻐꾹! 뻐꾹!
자정이 되자 뻐꾸기시계가 울렸다.
곧, 남겨둔 한 개의 위장용 오르골에서도 띠리링 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리가 붙들고 한참을 만지작거리더니, 이젠 마법적인 힘은 없어졌다고 말했던 위장용 오르골.
내심 불안했는데 사실이었다. 더 이상 오르골 소리를 들어도 졸음이 오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벽이나 바닥에 누운 채로 잠든 시늉을 했다.
…
흡!
가인 씨에게 미리 경고를 들었는데도 순간 비명이 나올 뻔했다. 벽에서 사람 얼굴이 갑자기 솟아나는 장면은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다.
불길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 잠들었나?”
“그런 것 같다. 오르골 소리가 좀 작길래 설마 했는데….”
“작동하는 오르골이 하나뿐인 모양인데? 어떻게 된 거지?”
“나머지가 고장 난 모양인데? 선장에게 말해야겠군. 어찌 됐든 하나는 작동해서 이놈들이 잠들었으니 문제없다. 이제 그 괴물 새도 없네.”
“누굴 데려갈까요?”
“하!”
“크흐흐! 고민할 필요가 있나?”
“답이 정해진 문제 아니었습니까? 저 찢어 죽일 늙은이를 데려갑시다. 오늘 지옥이 뭔지 보여줘야겠군요.”
그 말과 함께 벽의 얼굴들이 솟아나며 네 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모두 파티장에서 봤던 얼굴이다. 굵직한 체격의 남성 세 명과 조금 여린 체형의 여성 한 명이 나타났다.
남성들이 할아버지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무거워?”
“체격이 건장하긴 했는데, 이거 장난이 아닌데? 팔뚝이 뭐 이리 굵어?”
“그래봐야 마르카스의 한 끼 밥이 될 운명이지.”
‘마르카스’ 심상치 않은 단어가 들려온다.
… 또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할아버지와 선원, 승객들이 모두 방에서 나갔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대화창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김묵성 : 영상은 분량 제한이 있으므로 조금 후에 올릴 예정.
김묵성 : 복도 끝으로 쭉 따라감. 2층 계단 앞에서 올라가지 말고 우회전.
김묵성 : 오른쪽으로 가다 보면 정비실. 정비실 왼쪽으로-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 자신이 끌려가는 장소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생각보다 복잡하다. 15분? 20분?
그제야 대화창에 할아버지의 시청각 정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콜로세움 같은 장소였다. 중앙은 넓고 평평했고 거대한 기둥들이 솟아 있었으며, 계단식으로 배열된 좌석이 둘러싸고 있었다.
배 전체의 사람이 모인 걸까? 수백 개의 좌석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할아버지의 시각 능력에 한계가 있어 공간 전체가 보이진 않았지만, 흥분으로 가득한 열기는 영상으로도 느껴졌다.
공간 중앙은 거대한 기둥 몇 개가 있었고, 벨벳 천이 기둥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연단 중앙에 사각모자를 쓴 남성이 나타났다.
“사랑하는 에스퍼 호의 선원, 승객 여러분. 오늘도 모두가 기다리던 축제의 시간이 왔소이다. 이놈이 누구인지는 다들 알고 계실 거외다. 감히 우리의 연회를 망치려 들었던 버러지만도 못한 놈이지.”
김아리 : 저 모자 봐. 선장인가?
한가인 : 조용. 영상에 집중하자.
“위대한 마르카스의 손길이 에스퍼 호를 굽어살피니, 우리에게 영원불멸한 영광이 함께하리라! 부선장!”
선장의 외침이 있고 난 뒤, 옆에서 역시 그럴듯한 정복을 입고 있는 부선장이 나타났다.
부선장은 선원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선원들은 할아버지를 옆의 또 다른 기둥에 단단히 묶었다.
유송이 : 이제 곧 뭔가 할 것 같은데! 엘레나 언니?
아직 아니다. 슬슬 정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조금 더 봐야 확실할 것 같다.
할아버지가 기둥에 묶이자 선장이 다시 불길한 주언을 외기 시작했다.
“제물의 나이는 68세, 출생지는 대한민국 강원도 강릉시, 직업은 -”
선장은 한참 동안 할아버지의 나이, 출생지 등의 정보를 읊으며 할아버지가 묶은 기둥 주변에 뭔가를 적고 그렸다.
그 순간, 할아버지가 묶인 기둥 옆의 천으로 덮여 있던 기둥의 천이 벗겨졌다.
… 숨이 멎었다.
어둠으로 가득 찬 선실 내부에 빛이 쏟아졌다.
정의의 천칭이 나선을 그리며 나타났다.
*
– 한가인
아 미친! 기둥을 덮고 있던 천이 벗겨지는 순간, 우리 모두의 입에서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기둥에 매달린 남자, 아마도 어제 우리 대신 잡혀간 ‘예비’로 추측되는 남자의 ‘잔해’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피부가 벗겨지고 몸 여기저기는 불로 지진 듯한 악독한 고문의 흔적.
명백한 악행의 증거가 영상에 드러나는 순간, 지금까지의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흔들림 없던 대화창의 영상도 크게 흔들렸다.
우리에게 시각 정보를 보내주던 할아버지도 저 몰골 앞에서 냉정을 유지하긴 어려웠기 때문이겠지.
즉시 엘레나의 주변으로 황금의 물결이 파도처럼 퍼져 나왔다.
— 쾅! 퍼퍼펑!
회오리처럼 회전하는 천칭이 순식간에 선실을 말 그대로 으깨버렸다.
엘레나가 날아가기 시작했고, 나머지 사람들도 다급히 뛰기 시작했다.
콜로세움으로 향하는 길이 어떻게 되더라? 꽤 복잡했는데? 2층 계단 오른쪽으로 꺾어서 –
— 콰지직!
경로 따위는 상관없구나. 엘레나가 그냥 일직선으로 길을 뚫기 시작했다.
그냥 배를 뚫고 갈 기세로 선실을 다 부수고 바닥을 터트리면서 날아가서 우린 그냥 달리기만 하면 됐다.
오히려 바닥이 너무 심하게 부서져서 발을 디디는 게 위험했을 정도다.
유송이 : 할아버지! 조금만 기다리세요. 엘레나가 날아가기 시작했어요!
…
할아버지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대답 대신 사진 하나가 대화창에 공유되었다.
콜로세움의 천장인가? 거대한 시계 같은 물건이 매달려 있다.
숫자는 딱 0, 1, 2, 3만 표기되어있고 바늘은 하나뿐이다. 바늘은 0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 시계는 대체 뭐지? 뭔가 의미가 있을텐데.
그래도 다행이다. 대화창에 무언가 올라오고 있다는 말은 할아버지가 아직은 살아있다는 뜻이니까!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