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29)
128화 – 107호, 관문의 방 – ‘에스퍼 호의 비밀’ (19)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46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7호(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정신없이 달리면서 자정이 되면서 갱신된 시나리오를 확인했다.
/시나리오 : 관문의 방 – ‘에스퍼 호의 비밀’
결국 결단을 내린 호텔 일행.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김묵성이 직접 심해의 악마, 마르카스를 위한 공양 의식에 참여하게 된다.
사악한 의식의 실체를 인지한 호텔 일행은 진행 중인 의식을 멈추기 위해 달려간다.
호텔 일행은 사악한 의식을 멈추고 동료를 구할 수 있을까?/
새로운 키워드가 다수 등장했다.
심해의 악마, 마르카스, 악마를 위한 공양 의식.
이게 이 배가 숨긴 비밀의 실체인가?
다음 시나리오가 언제 뜨는지에 관한 내용이 없다. 더 이상의 스토리가 없나?
그렇다면 다행이다. 지금 우리가 가서 엘레나와 날뛰고 나면 끝난다는 이야기니까.
달리던 도중, 아리가 갑자기 멈췄다.
“빨리 가지 않고 뭐해?”
“어차피 우리가 싸울 것 아니니까 너무 급하게 달릴 필요 없어. 배가 부서져서 위험하기도 하고. 밑을 봐.”
아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저건 대체 뭐지?
엘레나가 배를 관통하듯이 뚫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배가 말 그대로 박살이 났다.
덕분에 객실이 있던 층에서 한참 아래의 지하까지 통하는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에스퍼 호의 지하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소가 있었다.
“저건 대체 무슨 장소지?”
“멀리서 보기엔 지하감옥 같은 느낌이네. 배에 있을 만한 장소는 아닌데.”
“저쪽도 가봐야 하나?”
“언젠가는. 하지만 지금은 콜로세움으로 가자.”
일단은 할아버지를 구출하고, 적을 쓰러트리는 데 집중하자.
나와 아리, 송이가 정신없이 뛰어서 콜로세움 근처에 도착했을 때,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엘레나는 진작에 도착해서 싸우고 있었다.
정확히는 학살하고 있었다.
저 광경을 도저히 싸움이라고 표현하긴 힘들 것 같다.
적의 숫자가 수백이고, 엘레나는 1명이라 해서 달라질 건 없다.
병아리가 수백 마리가 모인다고 호랑이를 당해낼 수 있을까?
딱 그와 같은 양상으로 싸움이 진행 중이었다.
엘레나가 손짓 한번 할 때마다 대여섯 이상의 사람이 으깨졌고, 심지어 콜로세움 정문 쪽에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생겼는지 승무원과 승객들은 탈출도 하지 못했다.
승무원 중 누군가는 총을 쐈고, 승객들은 정체 모를 힘으로 벽에서 튀어나오거나 팔다리를 늘리거나 하며 덤벼들었다.
물론 별 의미는 없었다. 총알은 허공에서 멈췄고, 벽에서 튀어나온 승객은 곧 벽에 박혀서 곤죽이 됐다.
이윽고 선원과 승객들은 공포에 질려서 덤비지도 못한 채 쓸려나가기 시작했다.
절망으로 가득 찬 울음소리가 광장을 메우기 시작했다.
천상에서 내려온 천사가 죄인을 불사르는 듯한 광경에 압도당해있던 차, 아리가 내 팔을 붙잡았다.
“구경할 때가 아니야. 빨리 할아버지 구하러 가자.”
“아, 그렇지. 바로 가자.”
콜로세움 중앙으로 뛰어 들어가자 그 잠깐 사이에 기둥에 못 박힌 할아버지가 보였다.
…
정말로 ‘못 박혀’ 있었다. 십자가에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흉내 낸 걸까?
할아버지의 몸 여기저기에 거대한 대못이 박혀있었다.
못을 억지로 뽑아냈다간 출혈이 더 심해질 상황이라 어찌하기 힘들다.
나와 송이가 할아버지의 몸을 지탱하며 최소한 중력으로 인한 고통은 줄였지만, 그뿐이다.
쉬어가는 목소리가 할아버지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빨리 좀 오지 그랬냐?….”
“죄송합니다. 뛴다고 뛰었는데 그 잠깐 사이에 이 정도일 줄은….”
“크흐흐…. 개새끼들이지. 엘레나가 싹 조지는 걸 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
송이가 울먹거렸다.
“할아버지. 어떡하죠?”
정신없이 몸을 이리저리 살폈지만, 도저히 손쓸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지친 듯한 분위기로 아리를 불렀다.
“선배님. 부탁합니다.”
“… 편하게 해줘?”
“부탁이다.”
이미 할아버지가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입에서 하얀 거품이 흘러내렸다.
당장 응급실에 옮겨서 의사들이 달라붙어도 살릴까 말까인 상태인 것 같다.
살릴 방법이 없음을 깨달은 송이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아리가 조용히 할아버지의 얼굴을 끌어안은 후, 권총을 관자놀이에 겨눴다.
“먼저 가서 쉬고 있어. 이따가 보자.”
— 탕!
이제 4명 남았다.
… 그나저나 아리가 할아버지 선배였어? 할아버지가 고통이 너무 심해서 평소엔 숨겨왔던 사실을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것 같다.
할아버지가 숨을 거두는 순간, 장내에 이변이 발생했다.
— 철컹!
콜로세움 전체에 울릴 정도로 거대한 소리가 천장에서 들렸다.
모두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 있던 거대한 시계의 바늘이 움직였다.
0 -> 1
바늘은 이제 0이 아니라 1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시곗바늘이 돌아감과 동시에 콜로세움을 메우던 비명이 더 거칠고, 더 끔찍해졌다.
지금까지 남아서 엘레나에게 저항 중이던 선원과 승객들이 시계를 보며 비탄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아! 마르카스시여!”
“부디, 부디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 반응을 보고 깨달았다.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것은 저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일.
뒤집어서 보면, 우리는 시곗바늘을 돌려야 한다!
어떻게 해야 시곗바늘이 돌아가지? 지금은 왜 돌아갔지?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비통으로 가득 잔 공간에서 오직 황금의 물결을 휘두르는 천사만 멈춤 없는 학살을 이어 나갔다.
회전하는 저울이 공간을 날아다니고, 선원과 승객을 발견할 때마다 으깨고 또 으깼다.
그 모습은 흡사 선진국이 쓰는 드론들이 전장 전체를 쏘다니며 인간을 학살하는 광경 같았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정의의 전투 메커니즘을 모르겠다.
처음엔 중간 과정도 없이 사람들이 그냥 죽었던 것 같고, 또 어떤 때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사람들을 집어 던지는 것 같고, 지금은 또 비행하는 천칭들이 고성능 ai가 탑재된 전쟁 드론이 된 것 같다.
전투 방식에 일관성이 전혀 없다. 어떤 식으로든 ‘압도적으로 강하다.’ 말고는 공통점이 보이질 않았다.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옆에 서 있던 아리가 끼어들었다.
“그냥 엘레나가 생각하는 그럴듯한 힘을 구현하는 건가?”
“예전에 다른 정의 사용자를 본 적 있다고 하지 않았어? 많이 달라?”
“엄청나게 달라. 저 정도로….”
“저 정도로?”
“저렇게까지 신기하게 강하진 않았어. 또 저 수준으로 마음대로 싸우는 느낌도 아니었고.”
“…”
“축복 자체에 무슨 ai가 생긴 것 같아.”
“ai?”
“자세히 봐. 엘레나의 눈은 적이 어디 있는지 제대로 쫓지도 못하잖아. 그냥 가만히 서 있는데 저울이 알아서 적을 요격 중이야.”
“저기서 더 발전하면 저울이 엘레나에게 말이라도 거냐?”
나름대로 농담 비슷하게 한 건데 아리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지.”
어느샌가 콜로세움도 조용해졌다.
공간 전체를 채우던 빛나는 파동이 잔잔해지고 나선을 그리던 천칭이 허공에 가만히 멈추어 섰다.
“다 끝났습니까?”
“이 공간의 생존자는 우리뿐이에요.”
이제야 끝난 걸까? 다들 가만 서서 숨을 몰아쉬며 기다렸다.
…
송이가 의아한 듯 질문했다.
“왜 해결이라고 뜨질 않죠?”
아리도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생존자가 우리뿐이라면서 왜 집행이 끝나지 않은 거야?”
그 말대로 정의의 천칭은 단지 허공에 멈추어 섰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 덜컹!
갑자기 배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당황하며 주변의 기물을 붙잡은 채 버텼다.
— 고오오오오!
배 전체를 울리는 괴성이 울려 퍼진다.
다음 순간, 에스퍼 호의 시간이 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방에 흩어진 적들의 살과 피와 뼈가 허공에서 다시 뭉치며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다.
수백에 달하는 망자가 다시금 생을 얻고, 그들의 끝없는 악의에 불길이 붙었다.
엘레나의 천칭이 다시 회전하며 부활한 망자들을 찢어발기려 시도했다.
그러나 시간 역행이 우리에게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엘레나가 붕 떠서 뒤로 날아가고, 우리도 선실에서 콜로세움으로 달렸던 동작을 되감기 하듯이 거꾸로 반복했다.
객실부터 콜로세움까지 엘레나가 날아오며 박살 낸 배가 순식간에 원상복구 되기 시작했다.
압도적이다. 너무 초현실적인 기적 앞에서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 끼익!
무언가 거칠게 멈춰서는 소리.
이해할 수 없는 진동음과 함께 뒷걸음질 치던 우리의 몸이 멈췄다.
엄청난 속도로 뒤쪽으로 날아가던 엘레나가 다시금 우리 앞으로 나타났다.
회전하는 저울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의 파도가 우리를 감쌌다.
혼란 속에서 아리가 외쳤다.
“엘레나! 계속 버틸 수 있어?”
엘레나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수백 마리의 닭을 학살하는 호랑이라도 용 앞에서는 덩치 큰 고양이에 불과한 법!
시간을 돌리는 악마의 힘 앞에서 정의의 힘이 한계에 도달했다.
— 파직!
저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리가 절망 가득한 표정으로 외쳤다.
“기억!”
“뭐?”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어. 배에 도착한 후의 기억이!”
급히 배에 도착한 후의 기억을 떠올렸다.
어제 먹은 식사가 기억나지 않았다. 페로는 왜 우리 곁에 없지?
할아버지가 아리를 뭐라고 불렀더라?
즉시 조언을 구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을 알려줘!’
[현자의 조언 : 3 -> 2] [절대 지워지지 않을 장소에 기록하라.]절대 지워지지 않을 장소.
시간을 돌리는 악마조차 결코 개입할 수 없는 권능!
상태창을 확장했다. 펜을 꺼냈다.
나는 정신없이 쓰고, 또 썼다.
번쩍!
… 의식이 흐릿해졌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46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7호(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정신을 차렸을 때, 우리는 대단히 화려한 방 안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아주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각진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아리, 송이, 엘레나 등은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위에는 보드라운 털이 덮인 숄을 걸치고 있었다.
무슨 파티라도 나가는 분위기인가?
아리가 기묘한 반응을 보였다.
“이 드레스는 엄청 오래된 스타일인데….”
오래된 스타일? 잘 모르겠다. 애초에 서양식 정장 느낌이라 나로선 온통 혼란스러웠다.
주변을 돌아보자 묵성 할아버지가 없었다.
송이가 당황하며 말했다.
“할아버지는 어디 계신 걸까요?”
“다른 장소에서 시작했나? 예전에 공포의 저택에서 승엽이처럼?”
관문의 방을 진행하던 동안엔 동료들끼리 다른 장소에서 시작한 적이 없었는데, 네 번째 시련은 뭔가 달라진 걸까?
다들 의아해하던 중,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곧 호텔 직원 같은 복장을 한 사람이 들어와서 ‘배’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디너 파티에 대한 안내를 하고 나갔다.
엘레나가 신기하다는 듯 대답했다.
“이 장소는 배인가 봐요.”
“확실히 창가를 내다보니 바다가 보이긴 합니다. 일단 시나리오부터 확인해보고 진행하죠.”
자, 일단 상태창을 확대해서 시나리오를 –
???
이거 대체 뭐야? 시나리오 상태가 대체 왜 이렇지?
혼자 상태창을 보며 당황하고 있자 동료들이 말을 걸었다.
“뭔가 이상한가요?”
“네. 시나리오가 지금 시작한 느낌이 아니라 이미 꽤 진행된 느낌인데? 어?”
“또 뭐가 이상해요?”
“상태창 빈 곳에 뭐라 난잡한 글씨가 잔뜩 쓰여 있네요.”
빈 공간을 최대한 확대하는 순간, 나는 말문을 잃었다.
난잡한 글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지금 우리의 시간이 뒤로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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