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31)
130화 – 107호, 관문의 방 – ‘에스퍼 호의 비밀’ (21)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46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7호(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에스퍼 호의 1층까지 이동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기저기 걸려 있는 선박의 구조도를 참고해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것만으로 충분했고, 딱히 승무원들이 우리를 제지하지도 않았다.
한참 걷다가 멈췄다. 메모로 남긴 지하감옥의 대략적인 위치에 따르면 대충 이 장소.
1층의 커피숍과 수영장 사이에 도착했다. 여기서 수직으로 내려가면 지하감옥이 나온다.
그런데 지하감옥으로 향하는 길을 알아낸 것도 아니고, 특정 위치에서 수직으로 내려가면 지하감옥이라는 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누가 배에 구멍이라도 뚫었나?
아리가 입을 열었다.
“요 근처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같은 게 있을 텐데….”
“비밀 통로라도 있을까?”
“의외로 그냥 평범한 통로일 것 같은데?”
“평범한 통로?”
“배의 내부 구조를 건조 후에 마음대로 뜯어고치긴 어려우니 비밀 통로 같은 걸 만들려면 배를 설계할 때부터 만들어야 해. 그런데 이 배의 규모를 봐. 도저히 비밀리에 건조할만한 크기가 아니야. 아마 실제 역사에선 세계적인 규모의 조선소에서 만들었겠지. 복잡한 기관이 적용된 비밀 통로를 만들기는 어려웠다고 봐.”
“생각해보니 비밀 통로 따위를 굳이 만들 필요도 없긴 하네. 우리처럼 이상한 승객이 아니고서야 배를 뒤지고 다닐 리가 없지. 그냥 관계자 외 출입 금지 정도로만 해놔도 일반인은 근처도 안 갈 테니까.”
그 말을 하며 손을 뻗어서 왼쪽 벽에 붙은 문을 가리켰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
저것 아닐까?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성동격서 작전을 시작할 때가 됐다.
— 피요오오오!
송이의 지시에 따라 페로가 즉시 그로테스크로 변해서 주변을 부수기 시작했다!
직원 상당수가 불을 끄러 위로 올라가 1층엔 직원이 몇 명 없었고, 그 몇 안 되는 사람들까지 그로테스크를 보고 경악하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틈을 타서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갔다.
*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예전 생각이 났다.
슬슬 코끝을 찌르는 독한 냄새.
죽어가는 사람의 몸에서 온갖 분비물과 피고름이 뒤섞인 채 썩어갈 때나 나는 냄새.
상식개변 미디어에서 경비실에 들어갔을 때 경험한 그런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어쩌다 이런 냄새를 구분할 수 있게 된 걸까….
그 냄새를 인지한 또 한 사람, 아리가 긴장한 표정으로 총을 강하게 쥐었다.
지하에 도착한 후, 송이가 들고 있던 손전등으로 주변을 비췄다.
“으악! 이건 대체 뭐죠?”
공간 전체에서 음울한 신음만 들려온다.
도무지 사람의 몰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참혹한 형태였지만, 8명이나 되는 사람이 아직도 살아있었다.
그들은 썩어가는 쇠창살 안쪽에서 아무렇게나 굴러가며 죽어가고 있었다. 대체 이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짐작하기 힘들 정도였다.
송이가 역겨워하며 움직이지 못하길래 손전등을 내가 챙겼다.
아마도 이들이 ‘예비 제물’이겠지.
한명 한명 불을 비추며 확인했지만, 아예 정신이 나갔는지 침만 질질 흘리고 제대로 된 반응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아리가 좀 크게 외쳤다.
“우리 말 알아들으실 수 있는 분?”
“이쪽이네.”
거칠고 쉬었지만 분명한 의지가 느껴지는 사람의 목소리.
말소리가 나온 쪽엔 백발의 노인이 있었다. 노인의 하반신은 배와 합쳐져 있었다.
사람의 몸과 배가 합쳐진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방치되었는지 그의 머리카락과 턱수염은 바닥에 닿을 지경이었다.
다가갈수록 극심한 악취에 머리가 아파질 지경이다.
역설적으로 주변에 남은 배설물의 흔적들이 한 가지 사실을 증명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법.
배설물이 있다는 건 꾸준한 음식의 제공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신분이 어떻게 되십니까?”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군. 자네들은 대체 누군가?”
옆에 다가온 아리가 답했다.
“우리도 이 배에 초청된 손님이에요. 평범한 크루즈인 줄 알고 탔는데, 무언가 이상한 일이 생겨서 도망치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다 보니 이런 장소까지 왔네요.”
“거짓말이군.”
“…”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하게. 평범한 손님이 배의 불길함을 느끼고 탐색해서 이런 장소까지 찾아왔다고?”
“그건….”
“뭐, 됐네. 사실 별 상관없는 문제지. 궁금한 게 많겠지?”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에스퍼 호의 비밀을 천천히 설명했다.
“언제였나….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군. 에스퍼 호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12만 톤 호화 유람선이었네! 이 배가 출발했을 때 파리의 모든 일간지가 일제히 에스퍼 호의 출항에 관한 기사를 냈지. 영광의 순간이었다.
두 번째였나? 세 번째였나? 기억이 헷갈리는 점을 이해하게. 거의 40년은 된 이야기니까. 북해의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던 에스퍼 호는 알 수 없는 엄청난 충격으로 침몰하기 시작했지. 빙하에 부딪힌 걸까? 아니면 모든 절망의 근원인 악마의 수작이었을까? 모를 일이네.
배는 천천히 가라앉았어. 우린 살 방법이 없었네. 모두가 절망 속에서 죽음만을 기다렸지….
그때 악마의 손길이 찾아왔네. 아니, 악마의 도움을 우리가 갈망했다는 말이 옳겠지. 선장은 악마 숭배자였으니까! 어쩌면 처음부터 모든 비극을 계획하고 선장이 배를 침몰시켰을지도 모르지.
선장이 10명을 넘게 공양해서 불러낸 마르카스는 우리에게 제안했다. 우리는 그에게 영원히 연회와 제물을 바치고, 마르카스는 우리에게 불멸을 하사하는 계약이었지.
배에 있던 모든 사람이 찬성하진 않았어. 아무렴 에스퍼 호가 어떤 배였는가? 12만 톤! 프랑스가 자랑하는 최대의 호화 유람선! 당대의 저명한 지식인과 부유층, 나라를 지탱하던 기둥과도 같던 사람들이 잔뜩 올라탄 배였지. 그런 이들이 쉽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겠는가?
…
인정하지. 그런데도 영혼을 판 자가 훨씬 많았네. 죽음은 그토록 두려운 법일세. 내 기억으론 9할에 달하는 사람이 악마의 손을 잡았고, 1할 미만의 사람만이 차라리 죽겠다고 했네. 그리고 그들은 이 지하에서 끝없이 고통받으며 죽어갔지…. 그 채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악마와 계약한 이들은 늙지도 죽지도 않으며 배와 함께 영원히 대양을 떠돌았고, 마법적인 힘을 휘두르는 선장은 어디에선가 끝없이 제물을 조달해왔지.”
긴 설명을 마친 후, 자신을 ‘부선장 해리슨’이라고 소개한 노인은 지친 채로 고개를 숙였다.
아리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사실을 빼먹은 것 같은데?”
“무슨 말인가.”
“이봐, 해리슨. 대단한 에스퍼 호의 부선장님. 당신도 영혼을 팔아넘긴 9할이잖아? 맞지?”
“…”
“수염과 머리카락이 관리가 안 돼서 헷갈리긴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아직 환갑도 안된 것 같네. 에스퍼 호가 악마와 계약한 게 40년 전이라고 했나? 당신이 무고한 사람이라면 정상적으로 나이를 먹었을 테니, 악마와 계약하던 시점에선 20살 정도였을 것 같은데 이렇게 거대한 배의 부선장씩이나 될 리가 없지. 너도 악마와 계약한 거지?”
“으흐흐….”
“게다가 다른 제물은 다 미쳐서 죽어가는데 당신만 멀쩡한 것도 이상하잖아. 사실은 멀쩡할 수밖에 없는 거지? 미치고 싶어도 미치지 못하는 것 아니야?”
“…”
“그런데 왜 이 꼴이 됐어? 선장을 배신이라도 했어?”
“너는 모른다. 너는 모른다! 그때 우리가 얼마나 절망에 사로잡혔는지 전혀 몰라. 겨울의 북해 바다에 손이라도 넣어봤느냐? 손이 수면에 닿기 전부터 바다에서 느껴지는 서릿한 냉기가 뼛속을 찌르지. 우린 그 안에 처박힐 운명이었다. 나는 성실하게 살았다. 세상에 헌신하며 살았다. 결코 그런 곳에서 죽을 운명이 -”
“됐으니까 좀 닥쳐봐. 왜 이 꼴이냐고.”
“… 네 말이 정확하다. 난 이쯤 하고 싶었다. 육지를 밟지도 못하고 이 얼어붙은 바다만 수십 년을 떠돌았다. 육지 한번 밟지도 못하고 얼어붙은 바다를 영원히 떠돌면서 악마에게 밥을 주는 삶에 가치가 있을까? 이만 쉬자고 했다. 마르카스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이만 쉬자고 했다.”
거기까지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계약의 파기’
듣자마자 바로 깨달았다. 이거다.
죽여도 죽지 않는 불멸의 선원들, 시간까지 돌려가며 영원히 바다를 떠도는 이 배의 해결!
바로 질문했다.
“악마와의 계약을 파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나도 정확히 모른다. 정확히 아는 건 선장뿐이겠지. 다만 이 배를 다시 침몰시키면 되는 문제 아니겠는가?”
아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배를 침몰시켜?”
“그래. 이 배를 빙하에 처박든지 해서 다시 침몰시키면 이 모든 악몽이 끝나겠지.”
배를 빙하에 처박아서 침몰시킨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걸까?
냄새 때문인지 한참 멀리 있던 송이가 다가와서 물었다.
“에스퍼 호의 사람들은 디너 파티에 집착하던데, 그것도 계약 때문인가요? 제물과 연회를 바치기로 했으니까?”
“잘 아시는군. 이상한 것 없네. 본디 머나먼 고대로부터 제례 의식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춤과 노래였지.”
“파티는 그렇다 치고, 나이나 출신 지역 같은 건 왜 물어보는 건가요?”
“심해의 악마, 마르카스는 지상의 모든 것을 증오한다. 그는 우리가 지상의 인간들을 잔혹하게 죽여서 바치는 걸 즐기지. 고대의 인류가 숭배했던 신들이 어린 양을 선호했듯이 마르카스 또한 어린 인간을 선호한다.
하지만 사실 별 의미는 없다. 늙어 죽기 직전만 아니라면 나이에는 관대한 편이고, 어차피 모든 인간은 지상에서 태어났으니까. 이제 와선 제물의 나이나 출신 지역을 알아내는 건 단순한 주술적인 절차 이상의 의미는 없다.”
나도 한 가지 더 질문했다.
“제물을 바치는 장소에 있는 시계의 의미는 뭡니까?”
해리슨의 눈이 커졌다.
“그런 것까지 알아냈나? 사실 나도 잘 모르네. 그 의미를 정확히 아는 건 선장 뿐이지. 다만 시곗바늘이 3이 되면 우리는 영원히 지옥에 떨어진다고 들었네.”
배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는 대부분 알게 되었다.
다음 목표도 큰 틀은 잡혔다. 오랜 세월 사악한 제의에 참여했던 부선장, 해리슨이 생각한 아이디어. 배를 빙하에 부딪혀서 침몰시키자는 것.
우리끼리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잠시 후, 아리가 주변을 돌아다니며 고통받던 희생자들을 ‘편하게’ 만들어줬다.
마지막으로 아리는 해리슨의 앞에 나타났다.
“당신은 죽여도 죽지 않을 것 같은데. 바라는 것이라도 있어?”
“날 데려가다오.”
“하반신이 배랑 합쳐졌는데? 어떻게 꺼내달라는 거야?”
“상반신을 잘라내면 된다. 부탁이다.”
“흠. 역시 무리네. 미안한데 -”
아리가 뒤로 돌아서려던 차, 해리슨이 급히 말했다.
“배를 조종하는 법은 아나? 이 배는 무슨 조각배가 아니야. 12만 톤 크루즈다. 설마 전문 지식 없이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나도 멈춰야 했다. 해리슨의 지적은 타당하다.
10만 톤이 넘는다는 엄청난 배를 관련 지식도 없는 우리가 조종해서 빙하에 부딪히는 게 과연 가능할까?
옆에서 듣고 있던 송이가 손짓하자 페로가 날아왔다.
“언제 들어온 거야?”
“한참 됐어요.”
송이는 페로에게 무언가 속삭이는 듯했고, 페로는 곧 그로테스크로 변신했다.
변신한 것과 별개로 페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송이가 다시 지시했다.
“페로!”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저 거대한 새의 마음이 읽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해리슨의 몸을 뜯어내라는 지시를 한 것 같고, 페로는 해리슨에게 나는 끔찍한 악취 때문에 가까이 가기도 싫은 것 같다.
결국 송이가 거의 5분을 설득한 후에야 페로는 견디기 힘들다는 듯이 부리를 틱틱거리며 해리슨의 몸을 뜯어냈다.
…
그의 몸을 뜯어내고 5분쯤 지나자 마치 ‘시간이 돌아가듯이’ 하반신이 다시 나타났다.
슬슬 이번 시련도 끝이 다가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부선장의 도움을 받아서 이 빌어먹을 배를 빙하에 갖다 박으면 해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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