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32)
131화 – 107호, 관문의 방 – ‘에스퍼 호의 비밀’ (22)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46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7호(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다리가 나타난 것과 별개로 해리슨은 여전히 몸을 잘 가누지 못했다.
우리는 그를 부축하며 지상으로 올라왔다. 올라옴과 동시에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관리자 외 출입 금지’ 문을 열고 나오자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혹시 누군가 덮치지 않을지 의심하자, 해리슨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 시간엔 긴장할 필요 없네.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파티가 시작됐네. 마르카스와 계약한 이들은 제물과 더불어 ‘연회’를 항상 바쳐야 하지.”
“혹시나 했을 뿐입니다.”
그를 데리고 올라와 객실로 돌아왔다. 우선은 해리슨 보고 몸을 추스르라고 내버려 둔 후, 우리는 객실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아리가 입을 열었다.
“저놈을 믿어?”
“해리슨 자체? 아니면 배를 침몰시키자는 그의 계획?”
“둘 다.”
“전자는 전혀 믿지 않고, 후자는 절반 정도.”
“후자를 절반이나 믿는다고? 듣자마자 이상하던데? 무엇보다 배가 침몰하면 우리도 죽잖아.”
“내가 생각 중인 해결 시나리오에 대해 말해볼게. 에스퍼 호의 해결은 궁극적으로 콜로세움의 시곗바늘을 3까지 돌려야 한다고 봐. 시곗바늘이 1이 되자마자 보인 적들의 반응이나 시나리오의 언급 등은 꾸준히 저 ‘계약의 시계’를 중요시하잖아?”
“시계가 중요한 존재라는 점은 나도 동의해.”
“시간이 돌아가면서 기억이 잊히긴 했지만, 상태창의 기록에 따르면 적들이 몰살당하자 바늘이 1이 되면서 시간이 돌아갔다고 했어. 그걸 보고 과거의 나는 시곗바늘의 의미는 ‘시간 역행 횟수’가 아닐까 짐작했지.”
“이제 네 의도를 알겠네. 넌 배가 침몰 위기에 처하면 시곗바늘이 또 돌아갈 것 같다고 생각하는구나?”
“맞아. 사실 그냥 침몰하고 끝나면 우리도 바다에 빠져 죽을 텐데 심각한 문제지. 하지만 배가 침몰하려고 하면 또 시간이 뒤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고, 그 순간 바늘이 한 칸 더 움직일 것 같아.”
현재까지 내가 생각한 해결 시나리오는 간단하다.
어떻게든 콜로세움의 시계를 3까지 돌려보자는 것.
힘으로 적들을 몰살시키자 0에서 1이 되면서 시간이 돌아간 것처럼, 배를 침몰시키면 또 한 칸 움직이고 시간이 돌아가지 않을까? 따라서 배가 침몰한 후 우리도 죽을 걱정 따위는 할 필요 없다.
내 의견을 전달받은 후, 아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 하나가 생각나긴 했는데….”
나는 즉시 입을 열었다.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자.”
“무슨 말인지는 알고?”
“알아서 하는 말이야. 나도 부선장 말 듣다가 저절로 떠오른 생각이니까 뻔하지.”
손을 뻗어서 아리 본인을 가리킨 후, 손으로 쓱싹 했다.
아리는 그 제스쳐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그래. 최후의 수단, 플랜 Z로 남겨둘게. 실패하면 난 무조건 죽음이니까.”
한참 동안 말없이 우리 말을 듣기만 하던 송이가 결국 입을 열었다.
“대체 둘이서 아까부터 무슨 이야기 중인 건가요? 뭐가 최후의 수단인데요?”
우리는 가볍게 웃고 엘레나가 있을 파티장을 향해 움직였다.
파티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예측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엘레나는 상당한 위기에 처해있었다.
*
– 한가인
우리가 파티장에 들어서는 순간, 파티의 중앙에 선 이상한 복장의 남자가 즐겁다는 듯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파티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 도착했습니다! 박수로 환영해주시죠.”
— 짝 짝 짝!
요란한 박수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흉험한 눈길이 우리를 찌르듯이 다가왔다.
파티장의 중심엔 이상한 기둥이 솟아 있었고, 기둥엔 엘레나가 묶여있었다.
엘레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매달려있었다.
“언니!”
송이가 놀라서 고함을 외치자마자 아리가 팔을 잡고 뒤로 끌었다.
“진정해. 아직 살아있으니까. 파티 시간이라 해치진 못할 것 같아서 안심했는데, 기둥에 묶어두는 정도는 가능한가?”
“애초에 파티를 망치려 들면 총을 꺼낸다는 기록도 있었어. 아마 우리 쪽에서 선을 넘으면 저쪽에서도 대응은 가능한 모양이야. 엘레나는 이미 파티장을 불 질렀으니 선을 확실히 넘었지.”
결국 들켰구나. 성동격서니, 뭐니 해도 한계가 있었다.
파티장을 불 지르고, 배 지하의 감옥에 잠입하는 미친 짓을 벌이면서 들키지 않긴 어려웠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한 가지 확신이 섰다.
적들이 우리의 행각을 인지했으면서도 대놓고 막지 못한 이유.
이 순간까지도 우리를 즉시 해치거나 하지 못하고 노려보기만 하고 있으며, 심지어 누군가는 곡을 연주하고 누군가는 춤을 춰야만 하는 이유는 명쾌하다.
이들에게 파티는 재미로 하는 일이 아니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의식 일부임이 틀림없다!
이윽고 파티장의 사람들이 우리 주변으로 몰려왔다.
은은한 클래식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파티장의 사람들은 각자 춤을 추며 우리 주변을 감쌌다.
이제는 피차 알건 다 아는 상황. 아리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파티가 끝나자마자 한바탕하겠는데? 아주 우릴 산 채로 잡아먹을 기세네?”
적들도 그 말에 입을 찢어지라 벌리더니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어머, 산 채로 잡아먹다니 그런 야만적인 일을 하겠어요? 사람도 익혀 먹어야 맛있답니다.”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엘레나가 불을 제대로 질렀었는지, 확실히 파티장의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불로 그을린 흔적들.
엘레나는 잘 있을까? 멀리서 보기엔 아직 험한 일을 당한 것 같진 않았다.
아리가 긴장해서 권총을 붙잡는 게 보였다. 의미 없는 행동이다.
이 파티장에만 허리에 총을 찬 사람이 수십 명은 될 텐데, 총싸움으로 상대가 되겠는가?
물론, 우리도 겨우 권총 하나 믿고 이 장소로 들어오진 않았지.
송이의 어깨에 앉아서 얌전한 앵무새로 코스프레 중이던 페로가 땅에 내려왔다.
순식간에 공간이 미어터질 정도로 거대한 괴물이 나타났다.
우리를 비웃으며 춤을 추던 사람들도 그 순간만큼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멈추어 서던 순간.
—끼아아아아아악!
장내를 꿰뚫는 끔찍한 외침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
호텔에서 페로가 태어난 첫날 밤 사용했던 힘.
사람의 정신을 아비규환으로 몰아넣는 울부짖음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파티장은 난장판이 되었다.
미리 인지하고 마음의 준비를 한 후, 귀를 막거나 필터를 쓴 우리는 금세 정신을 차렸지만,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페로의 외침에 노출된 사람들은 그냥 미쳐 날뛰며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예전보다 위력이 더 강해졌는데? 그새 성장했나?
송이가 다급히 외쳤다.
“다들 나가세요! 페로랑 엘레나 언니 데리고 합류할게요.”
나와 아리는 정신없이 뛰어서 파티장을 나왔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해리슨하고 합류라도 해야 하나?
정신없이 객실로 뛰던 도중, 엘레나와 송이가 페로를 타고 우리를 따라잡았다.
엘레나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아리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얘는 무슨 말이야? 이젠 사람을 태우고 뛰기도 하네?”
“당장 뛰어요! 사람들이 쫓아와요!”
—탕! —탕!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쪽에서 쫓아온 사람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제 파티가 끝나서 공격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정신없이 벽과 장애물 뒤로 숨었고, 아리도 대응 사격을 몇 차례 하던 중, 배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 철컹!
배 전체에 울리는 엄청난 소리!
대체 뭐지? 이 소리는 무슨 변화지?
혼란에 빠진 순간, 우리에게 총을 쏘던 승무원이나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악!”
“개 씨이이이발 새끼들! 너희를 산채로 토막 내서 -”
격렬한 환영의 소리를 들으며 깨달았다.
시곗바늘이 또 움직였다!
즉시 아리도 입을 열었다.
“뭐지? 딱히 적들이 몰살당한 상황도 아닌데 갑자기 시계가 왜 -”
…
번개가 내리치는 감각과 함께 한 줄기 깨달음이 다가왔다.
시계의 의미. 바늘이 움직인 이유.
동시에 같은 깨달음을 얻은 아리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우린 같이 확신을 얻었다.
플랜 Z는 가능하다!
배 전체가 다시금 진동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배 전체의 불이 꺼지고, 우리에게 달려들던 사람들이 몸에 자석이라도 달린 것처럼 배에 쩍 하고 달라붙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당황하던 순간, 선박 전체에서 알림이 울렸다.
/어험. 이걸 또 쓸 일이 오니 감개무량하군. 다들 내 쪽으로 오시게./
해리슨의 말엔 ‘어디로’ 오라는 말이 없었지만, 말해주지 않아도 이미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페로가 엘레나를 등에 업고, 나머지는 뛰면서 달려갔다.
바닥에 달라붙은 선원과 승객들이 증오 서린 외침을 토하며 우리를 저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
– 한가인
— 탈칵!
선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선장실의 광경은 내 상상을 뛰어넘었다.
해리슨은 이미 인간의 형상을 잃은 지 오래였다.
나와 송이가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토하려는 입을 막는 사이, 아리는 태연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이야~ 이거 멋있는데? 머리는 천장에 붙어있고, 손은 배 조종하고? 다리는 안 보이네? 와! 배랑 하나라도 된 거야?”
“멋있다는 말을 들으니 기쁘군. 아가씨도 미적 감수성이 풍부하신데?”
“이래 봬도 현대미술에 조예가 좀 있어서. 원래 괴상하면 괴상할수록 예술적이거든. 그래서 우릴 부른 이유가 뭐야? 해리슨 ‘선장님’?”
해리슨 선장은 금속을 긁는 듯한 웃음을 잠시 내더니 답했다.
“그새 내가 선장인 것도 알아내셨나?”
“지금 꼬라지를 보고 알았어. 당신이 바로 악마 숭배자라는 선장이었구나. 지하감옥엔 뭐 하다가 갇힌 거야?”
“이 배의 머저리들은 용기가 부족하더군. 이 불멸의 배와 하나가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영생의 길이거늘….”
저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선장이라는 악마 숭배자가 배와 하나가 된 흉측한 형상을 보고 있으니 왜 선원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선장을 가뒀는지 짐작이 갔다.
“배를 침몰시킨다는 계획은 그냥 헛소리?”
“침몰이라니. 미쳤는가? 12만 톤 에스퍼 호는 최고의 배네. 어찌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하나?”
“아쉬운데? 우린 침몰 계획도 괜찮다고 생각했거든. 사실 아직도 이 배는 침몰시켜볼 생각이야.”
“자네들의 뜻은 잘 알겠네. 그 부분은 나중에 한 번 이야기해봄이 어떠한가?”
슬슬 역한 기운도 가라앉았다. 나도 비위가 꽤 좋아졌구나.
“그래서 우릴 부른 이유는 뭡니까?”
“별것 아니네. 대승적으로 서로 힘을 모으자는 것이지.”
“…”
“당장은 선원과 승객들을 멈춰두긴 했지만 얼마 못 간다네. 저놈들도 이 배와 함께 수십 년을 떠돌면서 나름대로 지고한 비의의 일부를 터득했거든. 곧 자네들을 죽이고, 나를 다시 가두려고 쳐들어올 거야. 나 혼자서는 솔직히 자신이 없군.”
송이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무슨 ‘협력 제안’을 할만한 모습은 아니시지 않나요?”
“이 모습이 어때서?”
“…배의 선원과 승객을 제압하자마자 선장님이 우릴 죽일 것 같다는 사실에 제 전 재산도 걸 수 있을 것 같네요.”
“하하! 그럼 자네들은 날 안 죽일 생각이었어?”
그 말을 듣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서 입을 열었다.
“당연히 널 죽여야지! 이 새끼야.”
“거, 젊은 친구가 말이 험하네. 내 말은 간단하네. 우리 사이의 분쟁은 잠시 뒤로 미뤄두고, 곧 쳐들어올 놈들에 맞서는 동안은 힘을 합치자는 거지. 적의 적은 동료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는가? 마침 진동이 들려오는군.”
이제는 우리까지 진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엄청난 수의 사람이 뛰어오는 소리.
등 뒤에는 뒤통수 칠 가능성이 100%인 악마 숭배자, 앞에는 우리 살을 발라 먹으려 달려드는 마귀들.
오늘 저녁은 꽤 험난하겠구나.
에스퍼 호에서의 마지막 밤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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