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33)
132화 – 107호, 관문의 방 – ‘에스퍼 호의 비밀’ (23)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46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7호(관문의 방)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 쾅!
마치 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문이 뒤흔들렸다.
아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페로! 아까의 그 울부짖음은 바로 쓸 수 있어?”
자연스럽게 페로의 대변인이 된 송이가 답했다.
“지금은 무리고 10분 정도 더 기다리면 -”
— 콰직!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송곳 같은 것이 선장실 문 상단의 유리를 깨고 들어왔다.
“이건 또 뭐야!”
— 탕!
아리가 바로 송곳을 잡은 손을 쏴버렸지만, 싸움은 이제 시작됐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어디선가 산소통 같은 물건을 가져와서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곧 문이 버티지 못하고 뚫릴 게 분명한 상황!
별수 없이 뒤쪽을 바라보았다.
“해리슨! 우리끼리 저 사람들을 다 막길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나? 나도 나름의 수를 준비 중이니, 잠깐만 버텨보게.”
그 말마따나 해리슨도 기기판을 만지작거리고 벽면에 무언가를 새기며 열심히 하는 건 보였다.
반대편에서 송곳으로 선장실 문 유리창을 깨트린 광경을 보니 생각이 떠올랐다.
“둘 다 나한테 캡사이신 통 다 줘봐.”
우리 일행이 각자 가지고 있던 스프레이를 전부 챙겼다.
— 치이익! 치이익!
“으어억! 퉤, 퉤! 뭐냐 이건?”
“겨자 가스인가? 시뻘건데? 이런 건 또 어디서 구한 거야?”
경첩이 슬슬 버티지 못하려 하는 문의 유리창 너머로 스프레이를 열심히 뿌렸다.
누굴 노린다기보다 그냥 문 건너편 공간 전체에 대고 미친 듯이 쏘아대자 잠시 주변이 잠잠해졌다.
— 탕! 탕!
“으악!”
“가인 오빠! 맞았어요?”
“아니, 방금은 스쳤어.”
선원들이 거리를 벌린 채 유리창 쪽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결국 유리창 근처로 갈 수 없어서 거리를 벌렸다.
또다시 산소통 같은 물건으로 문을 후려치는 굉음이 울려 퍼지며 결국 문의 경첩이 뜯어졌다.
문이 뜯어지는 순간, 뒤에서 귀를 간지럽히는 듯한 혼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며 바닥에서 무언가 솟아나서 다시 문을 막았다. 해리슨이 무언가 했나?
불투명한 촉수와 살점을 뒤섞은 듯한 징그러운 살덩이가 문을 막았다.
건너편에서 흉흉한 눈빛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적게 잡아도 수십 명이 보였다.
문이 있을 때와 달리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다.
긴장감과 전운이 감돌며 살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이 자식! 산채로 얼굴의 피부를 벗겨주마! 이따위 살덩이가 오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도 대응해서 욕이라도 해줘야 하나 고민하던 차, 갑자기 뒤쪽에 있던 그로테스크가 튀어나오며 부리를 벌렸다!
페로가 미리 신호도 없이 울부짖음을 쓰려해서 화들짝 놀랐다.
즉시 필터를 확대함과 동시에 귀를 막았다.
아까 페로의 울부짖음을 경험한 적들도 놀라서 전부 귀를 막고 엎드렸다.
…
…
…
???
뭐야?
페로는 그냥 부리만 벌리고 있었다.
…
“아니 저 새 새끼가 사기를 쳐!”
와! 페로 똑똑해! 블러핑이야 방금?
감탄도 잠시, 적진에서 각진 베레모를 쓴 남자 한 명이 지팡이를 들고 나타났다.
그가 지팡이로 벽을 건드리며 무언가 중얼거리자 문을 막고 있던 살덩이가 천천히 녹기 시작했다.
저놈이 해리슨이 말한 ‘수십 년을 해리슨과 떠돌며 사악한 비의의 일부를 터득했다’라는 놈인가?
지켜보던 아리가 바로 총을 쏴봤지만, 상대의 총으로부터 우릴 보호하는 살덩이가 우리의 총도 막아서 제지할 방법이 없었다.
마침내 살덩이가 반 이상 녹아내리며 구멍이 뚫리는 순간 –
그로테스크가 다시 한번, 이번엔 그 구멍 근처에 부리를 가져다 댔다.
구멍 너머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속을 것 같냐? 튀겨질 준비나 -”
— 피요오오오오!
이번엔 진짜였다.
적들 상당수가 권총을 이미 뽑아서 들고 있었기 때문에 효과는 아까보다도 더 격렬하게 나타났다.
— 탕! 탕! 탕!
순식간에 벽 너머에서 총소리가 연달아 들리는 듯하더니, 자기들끼리 싸우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쯤, 뒤에서도 말소리가 들렸다.
“거의 끝나간다! 잘 버텼다. 조금만 더 버티면 놈들을 한번에 묶어버릴 수 있다.”
해리슨이 긴 시간 준비하던 흉악한 마법의 준비가 끝난 건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해리슨의 근처로 움직이며 아리에게 총을 넘겨받았다.
— 탕!
“아! 이 개새끼가 진짜!”
“해리슨 선장님, 왜 욕을 하고 그러십니까?”
“너는 시발 대가리에 총알이 꽂히는데 욕이 안 나오냐?”
“대가리에 총알이 꽂히는데 욕이 어떻게 나옵니까? 머리가 터졌는데도 입이 움직이는 네가 비정상이지, 미친놈아!”
그 와중에도 해리슨의 터진 머리는 다시 달라붙기 시작했다.
“송이야! 페로에게 시켜서 이 살덩이를 삼키든지 하라고 해봐!”
“야 야 야! 잠깐! 진짜 잠깐! 아니 미친놈들아, 우리끼리는 문밖의 놈들을 다 끝내고 싸우기로 했잖아!”
아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가인! 일단 그냥 놔둬! 울부짖음의 효과가 끝나면서 슬슬 정신 차리고 있어. 해리슨! 준비하고 있다는 의식은?”
“이 미친 새끼가 내 머리에 총만 쏘지 않았으면 지금 끝났다.”
내 핑계를 대길래 어이없었지만, 시간을 줘야 할 모양이다.
“아, 알았으니까 이제 방해하지 않을 테니 빨리 해.”
우리끼리 이런 느낌으로 정신 사나운 대화를 하던 중, 문 바깥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참, 해리슨 선장님의 리더쉽은 항상 감탄을 금할 수 없군요. 어떻게 이런 놈들하고만 귀신같이 손을 잡으시는지? 반란을 한번 겪으면 반란을 일으키는 놈들이 문제겠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 뒤통수를 치면 당신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스티븐슨! 닥치지 못해?”
나도 입을 열었다.
“선장님, 말싸움할 시간에 마법이나 빨리 준비하시죠.”
“넌 진짜 산채로 튀겨질 준비 해라!”
“넌 반드시 상체는 튀기고, 하체는 구워주마.”
날 굽네 반 후라이드 반으로 만들겠다는 욕이 앞뒤로 동시에 들려오니까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각자의 준비는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반대편에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승객과 선원들이 모종의 힘으로 문을 가로막은 살덩이를 녹이기 시작했고, 뒤편에선 해리슨이 덜렁거리는 머리를 붙잡은 채 반전을 위한 마법을 준비 중이었다.
그 와중에 아리가 내게 다가왔다.
“해리슨 쪽으로 붙어서 떨어지지 마.”
“갑자기 왜?”
“그냥 감이니까 시키는 대로 해.”
의아해하면서도 여태 깨어나지 못한 엘레나를 업고 해리슨 쪽으로 바짝 다가갔다.
페로와 송이도 지시를 들었는지 이동했다.
그 순간, 해리슨의 덜렁거리는 머리가 우리에게 향했다.
“제법 눈치가 빠른데?”
—우우우우우웅!
배 전체를 울리는 진동이 퍼져나간다.
“아아아악!”
선장실 바깥에서 세상을 가득 채울듯한 통곡이 들려왔다.
아까 전, 우리가 파티장을 탈출했을 때 해리슨은 모종의 힘으로 선원과 승객들을 배와 달라붙게 했다.
그 힘의 강화판인가? 선원과 승객들이 배에 달라붙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몸이 배와 섞이기 시작했다.
배에서 튀어나온 전선, 콘크리트, 철판이 그들의 몸 위로 흉하게 뒤덮이고, 반대로 그들의 살점이 배로 스며들었다. 끔찍한 꼴이 되고도 그들은 죽지 못한 채 신음만 내었다.
사람이 배가 되고, 배가 사람이 된다. 대체 무슨 힘이길래 이런 끔찍한 형상을 빚어내는지 내 부족한 지식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웠다.
진동은 선장실 바깥 전체를 덮었고, 곧 선장실 내부로 들어와서 좀 전에 우리가 서 있던 장소까지 울리기 시작했다!
딱 해리슨이 존재하는 장소 근처만 진동이 미치지 않았다.
어이가 없어서 바로 해리슨의 대가리를 한 번 더 터트렸다.
— 탕!
“우리도 저 꼴로 만들 생각이었냐?”
해리슨은 어이가 없다는 듯 대꾸했다.
“내 머리를 두 번이나 터트리는 주제에 그게 억울하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고개를 돌려서 아리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안거야?”
“그냥 느낌. 무슨 마법을 준비 중인지 몰라도 우리까지 같이 쓸어버릴 것 같았어. 하지만 최소한 본인은 영향받지 않게끔 쓰겠지.”
— 콰직!
돌아온 그로테스크가 분노의 부리 찍기 한방으로 해리슨의 덜렁거리던 살점들을 으스러트렸다.
… 이걸로 끝일 것 같진 않다.
당연하다는 듯이 배 전체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늦었다! 나는 이미 12만 톤 에스퍼 호와 합일을 이뤘음이야. 단백질로 구성된 육체는 찰흙과도 같은 것. 나는 유약한 찰흙의 몸을 벗어던지고 강철의 몸을 얻었다.”
[현자의 조언 : 1 -> 0] [당장 옆으로 뛰세요!]—퍼어엉!
반응하기도 전에 내 몸이 허공을 날아가서 선장실 벽면에 부딪혔다.
저 희한한 건 또 뭘까?
마치 배에 근육이 생긴 것 같다. 수많은 살점이 섞여 만들어진 거대한 근육이 선장실 바닥의 철판을 들어 올리며 날 거칠게 내던졌다.
저게 해리슨이 꿈꾸던 배와 사람의 합일 비슷한 건가.
…
그나저나 조언 이 새끼, 또 시작이네.
좀 미리미리 미래를 읽고 10초쯤 전에 알려줘라.
0.3초쯤 전에 알려주면 나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데?
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떨 때는 충분히 대처할만한 시간적 여유를 주고 경고해주기도 하는데, 어떨 때는 위기가 덮치기 직전에 경고해줘서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차이에도 분명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 같다.
벽에 너무 세게 부딪혀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예전에 수영장 바닥에서 튀어나온 혓바닥에 얻어맞았을 때와 비슷한 감각.
통증이 너무 심해서 오히려 전신의 감각이 흐릿해지고, 생각은 또렷해졌다.
이 정도 충격이면 곧 의식을 잃을 것 같다.
흐릿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계약의 시계’에 대해 생각했다.
시계의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의 의미는 뭘까?
가장 먼저 세웠던 가설은 시간 역행 횟수였다.
하지만 선장의 말에 따르면 에스퍼 호는 처음 악마와 계약했을 때 이미 침몰하던 상황이다.
그때 이미 한번 시간을 돌렸을 테니, 바늘의 기준이 시간 역행 횟수라면 시곗바늘은 처음부터 0이 아니라 1이어야 했다.
또 다른 가설은 제물을 바친 횟수였다.
그러나 이것도 아니다. 에스퍼 호가 바다를 떠돌던 40년 동안 이미 수많은 사람을 제물로 바쳤을 텐데 바늘이 0인 것이 이상하다.
이젠 사라진 과거의 진짜 첫날밤에도 이미 예비 제물이 바쳐졌다고 하니 역시 0일 수는 없다.
물론 이 무대는 엄밀히 말해 ‘우리가 진입하면서 생성된 공간’이니, 우리가 진입한 이후만 카운트 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해도 위의 두 가설 모두 파티가 망쳐지자 바늘이 2로 움직인 점을 설명할 수 없다.
그때는 시간이 돌아가지도 않았고, 제물이 바쳐지지도 않은 상태였으니까.
이렇게 다른 가설들을 하나하나 쳐내다 보니 떠오른 하나의 가설.
‘계약 위반 횟수’.
현재까지 밝혀진 에스퍼 호와 마르카스의 계약의 내용은 에스퍼 호가 연회와 제물을 바치고 마르카스는 불멸을 주는 것이다.
첫 번째 바늘이 돌아갔던 순간, 우리는 할아버지가 바쳐지던 제의의 순간에 난입했다.
그때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엘레나에 의해 의식은 박살 났을 가능성이 크다.
정상적으로 제물이 바쳐지지 못했으므로 바늘이 한 칸 움직였다.
두 번째 바늘이 돌아간 아까 전 상황. 페로가 울부짖음을 통해 파티장을 광기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파티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으므로 바늘이 또 한 칸 움직였다.
이제 3까지는 한 칸 남았다.
… 이 모든 추측과 해리슨에게 얻은 정보를 토대로 우리가 세운 계획이 바로 플랜 Z.
이제는 슬슬 의식이 흐릿해진다.
아리 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플랜 Z, 잘해줄 거지? 아리 너만 믿고 한숨 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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