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36)
135화 – 107호, 관문의 방 – ‘퍼펙트 라이프’ (26)
– 김아리
— 띠리리링! 띠리리링!
요란한 알람을 들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한참 하품하면서 침대에서 미적거렸지만, 결국 더 미룰 수 없어서 방을 나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고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학교로 출발!
영원히 계속될 수 있을 것 같은 평온한 일상이 반복된다.
집 문을 나서자 당연하다는 듯이 다슬이가 나타났다.
“아리야!”
“응. 하아아암~ 하품 엄청 나오네.”
“많이 졸려?”
“많이는 아니고 약간. 아~ 학교 그만 가고 싶다.”
“요새는 머리 아프지 않아?”
“머리?”
“요 며칠간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 붙잡았잖아. 뭔가 이상해~ 뭔가 이상해~ 하면서.”
“그랬나? 오늘은 괜찮은 것 같은데?”
“약이라도 먹어.”
다행히 학교엔 지각하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신발장을 열고 –
— 와르륵!
“…”
열자마자 편지가 쏟아졌다. 그걸 보고 다슬이가 어이없어했다.
“이거, 혹시 나한테 자랑하려고 내 앞에서 연 거야?”
“좀 자물쇠로 잠가놔야겠어. 이상한 것 넣지 못하게 해야지.”
“그러면 남자 애들이 네가 자리 비울 때마다 서랍에 쑤셔 넣지 않을까?”
“…”
다슬이랑 같이 신발장의 쓰레기들을 대충 다 버렸다.
한참 쓰레기를 털어 넣던 중, 건너편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 아리라고 했지?”
저번 주에 만났던 2학년 선배다. 이름이 유송이였나? 한 손에 새장을 든 여학생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앵무새랑 같이 오셨네요?”
조금 신기하다. 학교에 동물을 저렇게 데려와도 되나?
“응! 선생님이 허락해주셨거든. 완전 귀엽지?”
심지어 선생님이 허락해줘? 여기 대체 무슨 학교야?
황당함을 참으며 선배가 들고 있는 새장을 바라보았다.
뭐지? 잘못 본 걸까?
새장 내의 앵무새는 흡사 작은 구속복처럼 보이는 기이한 옷을 입고 있었다.
이름이 페로라고 했었나? 페로는 새장 바깥쪽으로 와서 날 바라보며 어딘가 구슬프게 울었다.
“이 옷은 뭐에요?”
“아, 페로가 자꾸 사고를 쳐서 교육용으로 입혔어. 이젠 안전해.”
선배의 손이 새장 내로 들어가자 페로는 그냥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이젠 안전해.’라고 말하는 선배에게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평소와는 다른 – 어딘가 독선적인 분위기.
앵무새는 마치 주인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
이상한 생각이다.
애초에 ‘평소와는 다른’ 어쩌고를 말할 수 있을 만큼 잘 아는 사람도 아니다.
내가 앵무새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
오늘도 재미없는 수업을 반복하며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하아암! 이놈의 학교, 확 불태워버리면 좋을 텐데!
책상 위에 엎드려서 뒹굴뒹굴하다 보니 친구들이 다가와서 조잘대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대화의 주제는 화제의 그 드라마, ‘하늘에서 떨어진 그대’였다.
방영 시작한 지 2주 정도 됐을까?
드라마는 그야말로 국민 드라마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대 흥행 중이었다.
화재의 중심에 있는 배우, 엘레나는 이제 여러 광고에도 매일 나왔다.
저런 연예계 스타를 내가 알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 볼 때마다 친근함이 느껴지곤 해서 신기했다.
아~ 지루하다.
분명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를 바라왔던 것 같은데, 막상 평온이 찾아오자 삶은 지루하구나.
…
이상한 생각이네. 내가 언제는 뭐 대단한 모험이라도 겪은 것처럼.
한숨을 쉬다 보니 요란한 소리가 들려와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밖에선 왁자지껄한 분위기의 남학생들이 다수 보였다.
중앙에 선 학생은 다리에 깁스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병원에서 퇴원이라도 한 것 같았다.
자기들끼리 낄낄거리고 깁스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꽤 사이가 좋아 보였다.
!
순간적으로 중앙에 선 학생과 시선이 마주쳤다.
마주치는 순간, 그간 여러 번 경험한 기묘한 익숙함과 친근감을 느꼈다. 상대방도 뭔가 이상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 띵 동 댕 동!
점심시간의 끝을 알리는 벨 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돌렸다.
*
오늘의 학교 일과가 전부 끝날 때쯤, 다슬이를 비롯한 친구들이 다가왔다.
“너, 요새 영화 본 적 있어?”
“영화? 잘 기억 안 나. 엄청 오래된 것 같은데?”
“그러면 우리 저녁에 영화나 보자!”
그 말과 함께 애들이 다들 재잘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무슨 영화인데?”
“‘에스퍼 호의 비밀’! 들어봤지?”
… 이상하게 제목을 듣자마자 심히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제목만 들어도 느낌이 엄청 이상해. 배가 무조건 침몰할 것 같은데?”
“역시 들어봤구나? 요즘 1,000만 관객 페이스라고 난리니깐.”
“아니 지금 처음 들어봐. 유명한 영화야?”
“응! 하그대 여주인공이 찍었대.”
“하그대는 또 뭐야?”
“하늘에서 떨어진 그대!”
“아니…. 이상한 줄임말 좀 쓰지 마. 못 알아들었잖아.”
“틀딱인줄~”
그 말을 듣자마자 왠지 기분이 팍 나빠져서 다슬이의 의자를 찼다.
다슬이도 바로 내 의자를 차고, 둘 다 바닥에 한 번씩 나뒹군 후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드라마 여주인공이 영화는 또 언제 찍은 거야?”
다슬이는 고개만 갸웃거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
히트작 드라마를 찍으면서 1,000만 영화도 찍었어? 시간상 영화를 더 먼저 찍었나?
하지만 애초에 드라마로 유명해진 배우인데, 어떻게 드라마 전에 찍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여주인공이 될 수 있지? 논리적으로 뭔가 이상한 –
생각을 그만뒀다.
연예인들 삶이야 내가 어떻게 알겠어? 외국인이니까 한국에서 뜨기 전에도 이미 외국에선 유명했을지도 모르지.
오늘의 학교도 별일 없이 재미 없이 끝났다. 저녁의 영화는 좀 재밌었으면!
*
‘에스퍼 호의 비밀’은 실망스럽게도 그냥 평범한 멜로 영화였다.
솔직히 스토리는 뻔하고 별것 없는데, 주연들이 잘생기고 예뻐서 성공한 것 아닐까?
예전에 봤던 타이타닉하고 전체적인 스토리가 너무 비슷하다.
중간에 좀비를 부리는 선장이 더해진 정도?
생각해보니 그 점은 너무 큰 변화긴 하네.
거의 반은 조는 사이에 영화가 거의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 클라이막스가 나왔다.
…
“와~ 재밌었다!”
“진짜 너어어무 여신! 엘레나는 진짜 예뻤어.”
“아리도 나중에 저런 영화 나오는 것 아닐까?”
“아리는 어떻게 생각해?”
장난치듯이 떠들던 아이들이 날 쿡쿡 찌른다.
“…”
“아리야?”
“아리는 우는데?”
“울 정도였어? 후반이 멋지긴 했는데.”
“여주인공 엄마가 여주인공만 탈출시키고 익사할 때는 나도 울 뻔했어.”
“아리야?”
정신이 든다.
오랜 꿈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일어서서 주변을 돌아보자 의아한 기색의 친구들이 보였다.
이제는 익숙해진 가쿠란 느낌의 교복과 제빵 모자 같은 학생모를 입은 아이들.
비정상적이다.
저런 교복이 사라진 지 40년도 넘었다.
영화관을 달려 나왔다. 뒤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친구들과 더 대화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럴 가치가 없으니까.
주변을 돌아보자, 삼삼오오 모여서 떠드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가득했다.
비정상적이다.
조기 격리에 실패한 붉은 역병 사태는 세계적으로 3,000만 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그 후, 저런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지 않은 채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길거리를 천천히 걷자 점점 더 많은 비정상성을 발견했다.
먹자골목엔 구역마다 호프집이나 이자카야 등이 가득했다.
알코올을 매개로 번식하는 진균 기생체가 대한민국에서만 40만이 넘는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그 후, 전국 술집의 7할이 사라졌다. 이제 술은 제조, 유통 과정 내내 엄격한 통제가 이뤄지는 환경에서만 유통된다.
시선을 돌리자 사방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외치는 종교인들이 보였다.
반도에서만 7명의 자칭 재림 예수가 관악구에서 ‘하늘을 향해 고하는 자’를 불러냈다.
그 후, 길거리 전도, 특히 금품을 제공하며 사람을 모으는 형식의 전도는 경찰이 강력히 통제한다.
영화관이 있던 빌딩을 바라보자 빌딩 외벽이 깔끔하고 그 어떤 로봇도 보이지 않았다.
중국에서 발생한 포식형 비둘기가 한국 전체에 번식하게 된 후, 비둘기가 둥지를 틀만한 장소는 모두 요주의 장소가 되었다.
그 후, 일정 규모 이상의 빌딩은 대부분 외부에 감시형 자율 드론을 사용해서 포식형 비둘기의 둥지가 형성되는 걸 방지한다.
이 기묘한 세계의 비정상적인 점들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오래전의 세계에선 자연스러운 풍경들.
하지만 통제에 실패한 혼돈 재해들로 인해 생겨난 요즈음의 사회적 변화가 반영되지 않은 풍경들!
집으로 걸어가며 마지막으로 밤하늘을 보았다.
새하얗게 빛나는 보름달이 밤하늘을 밝히며 내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었다.
진짜 세상엔 더 이상 달이 없으니까.
*
멍하니 걷고 또 걷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
…
들어가면 된다.
그냥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면, 엄마랑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오늘의 이상한 기억도 다 잊히겠지.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이 문을 열면,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왜 종일 이상한 생각만 하는 걸까?
집에는 꿈에서 그려왔던 ‘좋은 엄마’가 있고, 학교엔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친구들이 있다.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난 예쁘니까! 어쩌면 연예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언젠가 잘생기고 멋진 사람을 만나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이곳에 머무르면 분명히 전부 이룰 수 있다.
이곳은 나의 완벽한 삶, 내 삶의 이데아.
혼란 속에서 주저앉았다. 문 건너편에서 너무나 그리운 목소리를 들었다.
“들어오지 않고 뭐하니?”
“엄마….”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선택지가 여럿 있는 거야? 그럴 때는 항상 기본으로 돌아가 봐.”
“기본?”
“네가 반드시 이뤄야 하는 것. 그 한 가지 목표만 남기고, 나머지는 잊어버리렴.”
반드시 이뤄야 하는 것.
점점 불투명한 정보들이 내 마음속에서 들끓기 시작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들고 일어섰다.
열리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저는 ‘진짜’ 당신을 구하러 돌아왔어요.”
벽 너머의 여인은 대답 대신 우유가 들어오는 장소로 물건 하나를 던져주었다.
그 물건, 묵빛의 스마트폰을 붙들고 일어서는 순간 엄마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사랑해.”
대답은 하지 않았다.
내 대답을 들을 사람은 지금도 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
자정이 되어가는 늦은 시간, 한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인증했더라? 곧 떠올랐다.
왼손 새끼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스마트폰이 렉이라도 걸린 것처럼 화면이 흔들렸다. 바로 이번엔 오른손 엄지손가락.
그와 동시에 화면이 펼쳐지며 ‘관리국 애플리케이션’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김아리 요원 환영합니다. 원하시는 서비스를 클릭 -/
바로 스킵하고, 1 3 2 순서대로 눌렀다.
/근처의 관리국 본부를 안내하겠습니다./
‘바름 출판사’.
그리 멀지 않구나. 다시금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현실에 없는 달의 광휘가 지상을 자애롭게 덮었다.
나는 저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워했던 걸까?
한숨을 쉬며 길가로 나아갔다.
오늘 밤, 나는 거짓된 세계에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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