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37)
136화 – 107호, 관문의 방 – ‘퍼펙트 라이프’ (27)
– 김아리
푸르게 빛나는 도시의 불빛 아래를 거닐며 생각한다.
대체 나는 누구인가.
어설프게 깨어나기 시작한 정신이 나에게 말해왔다.
이곳은 거짓된 세계, 내가 있어야 할 장소는 따로 있다. 나에겐 이루어야 할 목표가 있다.
하지만 각성은 아직도 완전치 못하다.
나는 왜 이런 거짓된 세계에 휘말렸을까? 휘말리기 전엔 무슨 일을 하고 있었지?
애초에 나는 누구지? 어설프게 떠오른 나의 정체는 혼돈재난관리국의 요원이라는 사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요원으로서 활동 중에 정체불명의 환상 속에 빠져든 걸까?
모르겠다. 단순히 환상으로 치부하기에 이 세계의 완성도가 너무 높다.
환상을 다루는 힘이란 단순하게 생각하면 거짓된 시각 정보를 두뇌에 입력하는 힘이다.
수단의 차이가 있을 뿐, 현대의 인류가 만들어낸 VR 기기는 근본적으로 환상을 다루는 힘과 다르지 않다.
지금 내가 보는 이 모든 광경처럼 그야말로 세상 전체를 완벽하게 시뮬레이팅한 정보를 사람의 머리에 집어넣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연산력이 필요할까?
이런 상념 속에서 ‘바름 출판사’에 도착했다.
출판사의 건물은 평범해 보였다. 이미 시간이 늦었다 보니 빌딩은 대부분 불도 꺼지고 출입문도 잠겨있었다.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하던 중, 탈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내부로 들어서자 경비원이 멀찍이서 내게 고개를 까딱 숙였다.
내부로 어떻게 진입하더라? 지부마다 접근법이 달라서 잘 모르겠다.
잠시 가만 서 있자, 경비원이 말을 걸어왔다.
“혹시 길을 모르십니까?”
“…”
“안내해드릴까요?”
“내가 요원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경비원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핸드폰의 요원 모드를 활성화하신 상태 아닙니까?”
“… 맞아.”
“내부에서 이미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보 같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경비원은 나를 엘리베이터로 안내한 후, 계기판 앞에 서서 몇 가지 조작을 했다.
곧, 엘리베이터가 ‘수평으로’ 움직였다.
— 철컹! 위이이잉!
… 이 정도면 엘리베이터가 건물 밖으로 나갔어야 하는 것 아닐까?
‘상식적인’ 의문이 전혀 의미가 없는 장소가 관리국임을 알면서도 막상 겪어보면 저절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대체 서울 한복판에 어떻게 이런 장소가 있을까!
한눈에 들어오기 힘들 정도로 광대한 공간, 최소 100명은 넘어 보이는 하얀 옷의 직원들이 여기저기 바삐 뛰어다니는 장면이 보였다.
어딘가에선 자동차만 한 개를 구속한 수레가 실려 가고 있었다.
어딘가에선 회전하면서 레이저를 뿜어내는 구체가 불투명한 상자에 담긴 채 실려 가고 있었다.
어딘가에선 ‘13번째 재림 예수’라는 명패가 달린 남자가 끌려가고 있었다.
대체 왜 다 재림 예수야? 재림 부처, 재림 알라는 없어?
어차피 저런 놈들의 99.9%는 딱히 초능력 따위가 없는 인간이겠지만, 0.1% 때문에 관리국은 매번 잡아 오는구나.
한숨을 쉬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점점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한없이 신비하고 초월적인 경이로운 조직.
가까이서 보면 동네 편의점만도 못한 허접한 운영에 뒷목 잡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닌 시장통!
멀리서 보면 구성원 대부분이 인류 최고의 인적 자원에 속한다는 천재들의 조직.
가까이서 보면 하버드는 포커 쳐서 입학했냐고 묻고 싶어지는 병신들이 넘쳐나는 블랙 기업.
평범한 관리국이다.
*
드넓은 복도를 걸어가면서 셀 수 없이 여러 번 인사를 받았다.
정작 나는 기억이 흐릿해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 사람들은 전부 날 알고 있었다.
결국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라서 그냥 가만히 서 있다가 주변 사람 아무나 붙들었다.
“야! 거기 너!”
“예? 김아리 요원님?”
“여기 최고 책임자 누구야?”
그 말에 연구원처럼 보이는 남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날 살폈다.
“임무 중에 약간 정신이 흔들리는 상태라서 그래.”
대충 얼버무리자 연구원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대답했다.
“최고 책임자라면 박 부장님 말씀하시는지요? 박 부장님 사무실은 복도 오른편 -”
“네가 안내해줘. 여기 지리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제가 지금 좀 바빠서 -”
“야! 재림 예수는 다른 놈이 데려가라고 해. 어차피 길가에 차이는 게 자칭 예수인데 왜 매번 데려오는 거야? 다음엔 자칭 부처님이나 자칭 알라도 잡아와.”
“수백 명 중의 한 명꼴로 진짜 괴물들이 있단 말입니다….”
연구원은 툴툴거리면서도 날 안내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복도를 이리저리 꺾으며 걷다 보니 역시 안내시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원은 나를 상당히 크고 화려한 집무실 문 앞에 데려다 놓고 사라졌다.
— 탈칵!
집무실은 꽤 황량한 공간이었다. 별다른 장식물도 없고, 그냥 구석에 난초 화분 하나 있는 게 끝이었다.
“거기 서 있지 말고 이쪽으로 오게.”
40대? 50대? 장년의 연배로 보이는 남자는 책상에서 일어선 채 창가에서 날 불렀다.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박 부장?”
남자는 고개를 돌리더니 한숨을 쉬었다.
“보고가 들어오긴 했는데 정말 기억을 잃었나?”
“그새 보고가 들어갔어요?”
“자네가 기억을 잃은 티를 너무 열심히 내고 다니니 보고가 들어오지 않을 수가 없지.”
“그런가요….”
“매우 불편하군. 그 ‘요’를 빼게. 대체 언제 존댓말을 썼다고?”
“그래. 그럼 뭐라고 부를까?”
“박현민이라고 부르게.”
“현민아. 지금 내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아.”
“…현민아는 좀 그렇고, 박현민 부장 정도로는 불러주면 좋겠군.”
“그냥 박 부장이라고 할게.”
그 후, 나는 내가 느낀 이상성을 전부 이야기했다.
아까부터 인지하기 시작한 이 세계의 비정상적인 점들. 넘쳐나는 술집, 드론이 없는 빌딩, 하늘에서 빛나는 달.
그리고 하나의 통찰. 이 세계는 전부 가짜다. 설명할 수 없는 확신이 든다.
내 말을 말없이 경청하던 부장이 입을 열었다.
“내 솔직한 답변을 들려주지. 자네는 미쳤네. 지금 자네가 말한 기괴한 요소들은 관리국 부장인 나로서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야기들이네.
비둘기가 사람을 잡아먹으려 드는 세상이라니…. 꿈에서도 생각해보지 못한 이야기네. 알코올성 진균 기생체니, 붉은 역병이니 하는 이야기들도 다 처음 듣는 말이야. 심지어 달이 없어? 상상조차 하기 힘든 변화야.
갑자기 세상 전체가 변했다기보다는 자네 한 명이 돌았을 가능성이 조금 더 크겠지. 마침 자신도 기억이 불완전하다고 대답 중이지 않나? 임무 중에 이상한 혼돈체와 만났을 가능성이 있어.”
“그 말을 들으니까 궁금해졌어. 이곳의 자료 기준으로 나는 무슨 일을 하던 중이었어?”
“좋은 질문이네. 자네가 들어오기 전에 나도 자네가 무슨 임무 중인지부터 살폈거든. 결과는 놀라웠네. 내 보안등급으론 접근 불가라고 나오더군.”
“당신의 보안등급으로도?”
“내 보안등급으로도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의 의미는 명확하네. 자네가 수행 중인 임무의 실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지구에 세계 의회 지휘부 뿐이라는 이야기지.”
난 특수한 비밀 임무를 수행하다가 정신이 이상해진 걸까?
… 고개를 저었다. 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까.
“내 말이 다 사실이라고 쳐봐. 이 세상은 싹 다 가짜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아까부터 이 세계 전체가 가짜라는 확신이 든다니까?”
“오늘 잡아 온 13번째 재림 예수도 자기가 부활한 예수라고 확신 중이던데?”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야. ‘엄마’의 반응도 기묘했어. 마치 내 길을 가라는 식으로 응원하고 보냈다고!”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어서 방황하기 시작하면 부모가 보일 만한 반응이지.”
“애초에 내 엄마가 관리국 기준으론 누군데? 외모부터 너무 특별하잖아! 게다가 당신의 반응과 내 어렴풋한 기억을 미뤄보면 내 나이가 엄청 많은데, 엄마는 몇 살이야? 이상하지 않아?”
“자네 어머니는 관리국 전직 요원이시네. 지금은 휴식기를 가지고 계시지만, 연배로 치면 나와 자네 나이를 합친 것보다 많지.”
잠깐의 대화만으로 기가 다 빨려 나갔다.
생각보다 논리적으로 이 세계의 모순을 찾아내기란 어려웠다.
불가사의함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한 엄마조차도 이 세계는 이미 모순 없이 구현한 상태.
이외에도 이 세계엔 이상한 점들이 많았지만, 이 잠깐의 대화로 느꼈다.
그것들 모두 나름의 논리가 있으리라. 무엇을 지적해도 박 부장은 이 세계가 진짜임을 증명하는 설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정말 그냥 내가 미친 걸까? 나는 어떤 비밀 임무 중에 이상한 혼돈체를 만나서 정신이 뒤틀린 게 아닐까?
혼란에 빠진 듯한 나를 바라보던 부장이 입을 열었다.
“다른 관점에서 보도록 하지.”
“다른 관점?”
“자네 말대로 이 세계 전체가 전부 가짜라고 일단 가정해보겠네. 통상적으로 환각을 다루는 힘은 환각에 빠진 사람이 그걸 의심하기 시작하면 급속도로 흔들린다. 어째서일까?”
“모르겠어. 원래는 알았을 것 같지만.”
“환각이라는 건 단순하게 보면 세계를 시뮬레이팅한 정보를 사람의 뇌에 입력하는 일련의 과정이지.”
어딘가 익숙한 설명. 나는 이 설명을 예전에 한 번 들었다.
“문제는 세상을 시뮬레이팅한 정보를 지속해서 주입하는 일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워. 어마어마한 연산력을 소모하지. 결국 환각 시전자의 연산력만으론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환각을 ‘당하는’ 사람의 상상력을 빌려서 구현하는 게 보통이네.
쉽게 말해 시전자는 ‘너는 이제부터 학교에 간다’라는 메시지만 피해자에게 주입하고, 그 후로는 피해자의 머리가 스스로 학교에 가는 자신을 상상하는 게 환각을 다루는 힘의 실체지. 이해했나?”
“이해하고 있어. 사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 같아.”
“말하자면 환각이란 사람이 맑은 정신으로 꿈을 꾸게 하는 힘과 유사해. 그러니까 환각에 빠진 사람이 의심하기 시작하면 곧 깨어지기 마련이지. 애초에 그 환각 자체를 만들어낸 존재가 환각에 빠진 사람 본인이니까.”
“그 말대로면 나는 이미 의심 중인데, 왜 이 환각이 깨어지지 않는 걸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네. 첫째, 내가 앞서 말한 이론은 환각 시전자가 연산력이 부족한 사람일 때나 적용되는 이론일세. 애초에 시전자의 역량이 너무나 초월적이어서 피해자의 상상력과 상관없이 진짜 세상을 시뮬레이팅한 정보를 끝없이 주입 중이라면, 피해자가 환각을 인지하든 말든 깨어날 방법이 없지.
이와 유사한 사례는 VR 기기를 떠올려보게. 아직은 미숙한 기술이지만 VR 기기가 보여주는 시각 정보는 전부 기기 자체 연산을 통해 만들어낸 정보고 사용자의 상상과는 아무 상관 없어. VR 기기를 착용한 채 이 모든 광경은 거짓이야! 라고 외친다고 뭐가 바뀌던가?”
“그런 경우라면 난 아예 깨어날 방법이 없는 것 같은데….”
“솔직히 답이 없는 경우라고 봐야지. 애초에 이런 초월적인 존재가 시전자라면 환각에서 깨어나 봐야 자네를 손톱 하나로 눌러 죽일 수 있을 테고.”
“그쪽 가능성은 답이 없으니까 배제하자. 두 번째 가정은 뭐야?”
“자네 스스로 아직 확신이 부족한 경우지. 사람의 정신은 복잡하기 마련. 자네 마음 일부는 깨어나서 현실을 의심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마음 깊숙한 곳에선 여전히 이곳이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 아닌가?
아니면 현실이길 바라고 있을 수도 있지. 자네 설명대로라면 진짜 현실은 그야말로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절망적인 상황인 모양인데, 깨어나기 싫을 만한 이유는 넘치는군.”
스스로는 깨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은 온전히 깨어나지 못한 걸까?
그게 아니라면 아직도 마음 한편에선 이 장소에 머무르고 싶은 갈망이 남았을까?
결국 자신을 설득해야 할 문제인 것 같았다.
조용히 일어서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나를 관찰하던 부장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이디어?”
“정말로 이 세계가 자네가 상상한 행복한 이상이 구현된 장소라면, 자네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은 제대로 구현하지 못할 것이다. 그 상상이 끔찍하고 불행할수록 더더욱 구현하기 어렵겠지.”
끔찍하고 불행한 상상이라. 어렵지 않게 한 가지 답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무섭지도 않아? 내 말대로 이 세계 전체가 가짜라면 당신도 그저 가짜에 불과한데.”
“대체 무엇이 두렵다는 말인가?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자네가 미쳐있을 가능성과 세계가 정말 당신의 꿈이나 환상일 가능성. 자네가 미쳤다면 내가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 세계가 당신의 꿈이라면 나 역시 당신의 일부일 터.
데카르트가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세계 전체가 가짜라 한들 생각하는 당신만은 진짜. 그리고 그 진짜의 상상이 만들어낸 나 역시 당신의 일부일 테니, 두려워할 까닭이 없네.”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다. 막연하게 느꼈다.
이 세계가 전부 나의 마음이 빚어낸 환상이라면, 바깥엔 저 박 부장에 대한 상상의 원본이 된 진짜가 있겠지.
진짜 박 부장 역시도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었을 것 같다.
성과가 있었다. 나는 이 장소에서의 긴 대화를 통해 깨어나기 위한 진짜 방법을 알아냈으니까.
내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하고 불행한 무언가는 이 세계에서 제대로 구현할 수 없다.
나는 그 ‘무언가’의 답을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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