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38)
137화 – 107호, 관문의 방 – ‘퍼펙트 라이프’ (28)
– 김아리
— 휘이잉!
후들거리는 다리를 양손으로 붙들었다.
빌딩 옥상이 이렇게 바람이 강하게 부는 줄은 몰랐네.
출판사로 위장한 관리국 빌딩의 옥상에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자정에 가까운 시간인데도 도시에 가득 찬 네온사인과 왁자지껄한 음식점, 술집 등에서 나오는 사람의 활기가 세상 가득히 느껴졌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계를 보았는가!
그런데 나는 옥상에서 뛰어내리기 위해 이 장소까지 올라왔구나.
더 나은 방법이 없나 생각해봤지만, 자살보다 확실한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다.
내가 결코 상상할 수 없고 끔찍하고 불행한 일.
‘나의 죽음’보다 확실한 답이 있을까?
수천 년 전 십자가에 못 박히고 3일 후에 일어나셨다는 그분 이래로 살아있는 사람이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당연히 어렴풋이 회복된 내 기억들 속에도 죽음에 대한 기억 따위는 전혀 없었다.
빌딩 옥상에 올라올 때만 해도 나름대로 각오를 다지고 올라왔는데, 막상 올라오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 어쩌면 세상이 거짓이라는 생각은 내 망상이 아닐까?
내가 기밀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정신이 헤까닥 해서 이 지랄 중인 게 아닐까?
침을 삼키며 옥상 난간 쪽으로 다가가서 땅을 내려다보자 숨이 턱 막혀왔다.
눈을 딱 감고 난간 위로 올라섰다.
한 발자국. 이제 한 발자국이면 된다. 밑은 보지 말자.
그냥 눈 감고 딱 한 걸음만 내디디면….
“헉!”
거친 숨소리와 함께 결국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빌딩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아찔한 풍광이 시선에 들어왔다.
이건 아니야! 분명히 더 나은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모든 생각이 내 착각일 수도 있는 것 아니야?
다시 생각해보자. 자살보다 조금 더 합리적인 방법이 있을 거야.
역시 사람은 충분히 고민한 후에 행동하는 쪽이 –
— 피요오오오오!
?
??
퍽!
무언가 나를 등 뒤에서 밀치는 감각과 함께 순식간에 허공에서 낙하하기 시작했다!
저 새 새끼는 내가 반드시 튀겨먹고 말겠어!
“야! 새 새끼 야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죽는 거야? 진짜 이렇게 죽어?
내가 스스로 뛰어내린 것도 아니고 앵무새의 박치기가 내 마지막이라고?
순식간에 땅이 솟아올랐다! 아니, 내가 땅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낙하했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압도적인 공포가 내 영혼을 잠식해간다.
찰나의 순간, 여태까지 내 마음을 메웠던 모든 혼란스러운 상념이 한순간에 쓸려나갔다.
모든 마음에 단 하나의 일념이 담겼다.
멈춰라!
세상이여 멈춰라! 제발 좀 멈춰!
그리고 세상이 멈췄다.
늦은 시간 한 잔의 술을 걸치며 하루의 피로를 쏟아내던 사람들이 멈췄다.
쉴 새 없이 깜빡이며 밤을 잊은 도시에 광원을 제공하던 네온사인이 멈췄다.
떨어지는 내내 내 피부를 강타하던 공기의 유동이 멈췄다.
저 하늘에서 지금도 날 내려다보는 건방진 앵무새도 멈췄다.
내 소원에 부응해 세상 전체가 멈춰선 그 순간에야 비로소 진실을 마음 깊숙이 받아들였다.
이 세계 전체가 내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목에 걸려있던 펜던트가 자연스럽게 내 시선 앞으로 다가오며 열렸다.
펜던트가 탈칵 하고 열리며 내부에 숨겨져 있던 사진이 나타났다.
내가 호텔에 들어온 이유.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내 소중한 기억.
사진에는 나와 머리카락 색을 제외한 모든 것이 너무나 닮은 소녀가 있었다.
오늘 아침까지 만났던 사람과 달리 불과 10대 중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나의 어머니.
만물이 멈춰선 순간, 내 정신은 과거를 향해 부유하듯 흘러갔다.
*
– 오래전의 기억
— 끼리리릭.
벽을 긁는 날카로운 소음을 들으며 잠에서 깨었다.
몸 전체에서 10개가 넘는 눈을 번들거리는 피에로가 보였다.
바로 헛구역질이 나왔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이제 게워낼 만한 음식이 위장에 없으니까.
“저리 꺼져 좀.”
— 끼리리릭.
피에로는 수십 개의 손톱으로 나를 보호하는 유리 상자를 긁어댔다.
“소용없어. 이 물건은 호텔 특제라고.”
졸린 눈을 비비면서 주변을 돌아봤다.
한때는 세상 그 어떤 호텔보다도 화려하다고 사람들이 감탄했던 아름다운 호텔은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마치 공사장 폐허라도 되는 것처럼 호텔은 여기저기가 붕괴했고, 사방에선 시선을 마주치기조차 두려운 괴물들로 가득했다.
… 미로? 어디 있어? 나만 유리 상자에 내버려 두고 어딜 간 거야?
시간이 흘러간다. 기억은 바람처럼 흔들리며 다음 장면으로 이동했다.
나는 또 유리 상자 안에 있었다. 미로가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나타났다.
“대체 뭘 하다가 이렇게 다쳤어? 또 이상한 괴물이 나타났어?”
“으응. 아니야. 이걸 구해오느라 좀 다쳤어.”
미로의 손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풍선 같은 물건이 있었다.
“그건 ‘공기 방울’? ‘저쪽 팀’이 가지고 있던 물건 아니야? 그걸 어떻게 – 설마!”
“어쩔 수 없었어. 이게 널 살려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인걸.”
그 말과 함께 미로는 나를 유리 상자 내부로 밀어넣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대체 왜 -”
“아리야, 가만히 있어.”
“미로!”
“아리,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똑똑한 내 딸. 나는 아리보다 바보지만 이제는 알아. 우린 이곳에서 더 버틸 수 없어. 그렇지?”
“…”
“이상해. 예전엔 항상 맛있는 음식이 식사 시간마다 나왔는데. 오늘도 밥이 나오지 않았어. 침대 밑에선 피에로가 튀어나오고, 벽에선 투명한 괴물들이 기어 다니기 시작했어.”
“… 저주의 방을 들어가지 않아서 그래.”
“그리고 앞으로도 들어갈 수 없겠지. 우린 더 이상 저주의 방을 진행할 수 없으니까. 그렇지?”
“엄마….”
“괜찮아.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미로의 오른손에 들린 풍선이 부풀어 오르며, 내가 들어간 상자 전체를 덮을 만큼 커졌다.
“공기 방울을 대체 어떻게 가져왔어? 뺏은 거야? 설마…. ‘저쪽 팀’ 사람들을 죽인 건 아니지?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
“어쩔 수 없었어.”
“제발. 차라리 같이 나가자. ‘공기 방울’을 조금 더 크게 만들면 되잖아.”
“안돼. 이 풍선을 얻을 때 설명서에 쓰여있었잖아. 이 물건은 1인용이야. 2명이 들어가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겠지.”
내 정신이 깨어난 이래로 항상 어린아이 같았던 미로는, 그날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똑똑하고 단호했다.
“그러면 차라리 엄마가 나가. 엄마는 바깥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 들었고 -”
— 쪽!
이마에 미로의 촉촉한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며 유리 상자가 닫혔다.
“사랑해.”
미로의 손길에 따라 의식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말라붙었다고 착각했던 눈가에서 눈물이 쉼 없이 솟아났다.
눈물을 잉크 삼고 영혼을 노트 삼아 불변의 맹세를 새겼다.
나는 이 순간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또한 언젠가 이 장소로 반드시 돌아오리라.
오늘 당신이 삶을 포기하고 날 구했듯이, 다음에는 내가 당신을 구하리라 맹세했다.
*
– 김아리
진짜로 정신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엄청난 정보의 홍수가 댐을 터트리며 머리를 가득 메웠다.
순간적으로 두통까지 느껴져서 별수 없이 머리를 감싸 쥐고 벽에 한참을 기대었다.
… 정신이 깨어나며 어이없는 사실도 한 가지 깨달았다.
난 이 호텔에서 이미 몇 차례 죽어봤구나.
호텔에서 겪은 일에 대한 기억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덕택에 ‘죽음’을 상상하지 못해서 자살 시도를 통해 깨어날 수 있었다.
만약 호텔에서 죽어본 기억이 떠올라서 죽음을 상상할 수 있었다면 대체 무슨 일이 생겼을까?
섬뜩해져서 그만뒀다. 다시 생각해보니 위험성이 상당히 큰 방법이 아닌가!
어찌 됐든 이걸로 해결이지? 이 길었던 관문의 방! 미소녀 아리 캐리로 끝~!
허공에서 홀로그램 창이 떴다.
/참가자 김아리 님, 최종 시련 ‘퍼펙트 라이프’의 통과를 축하드립니다!
동료 중 최종 통과자가 나왔습니다! 최종 통과자가 나왔으므로 구성원 전원이 무사 귀환합니다.
통과자는 즉시 관문의 방에서 탈출하실 수 있습니다. 탈출하시겠습니까? (Y/N)/
“으아아아~! 진짜 끝! 진짜 진짜 끝!”
마침 세상도 멈췄겠다, 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행복한 마음으로 빙글빙글 돌며 한참을 춤췄다!
홀로그램으로 다가가서 Y를 누르려는 순간, 이질감을 느꼈다.
대체 왜 ‘선택지’가 있지?
그동안 저주의 방을 해결하거나 탈출한 적은 많았다.
하지만 호텔은 한 번도 나갈 수 있다 없다 같은 선택지를 준 적이 없었다.
탈출하면 자동으로 나가졌고, 해결하면 즉시 방이 소멸했다.
심지어 해결을 목표로 하다 보면 ‘자동 탈출 판정’이 방해가 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왜 이번엔 선택지를 줬지?
이미 나는 통과했는데도 ‘탈출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이 주어진 것의 의미.
‘아직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았다.’
“질문 하나 하고 싶어.”
/무슨 질문이 있으십니까?/
“내가 나가고 나면 남은 동료들은 어떻게 되지?”
/당신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관문의 방은 결국 저주의 방의 강화판.
따라서 저주의 방에 존재하는 원칙의 상당수는 관문의 방에도 적용된다.
과거에 상식개변 미디어를 진행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가 해결을 위해 연거푸 시도하던 중, 승엽이는 매번 극 초반에 방에서 멀어지면서 탈출을 확보하는 탈출 팀이었다.
그런 시도가 가능했던 까닭은 승엽이의 탈출로 남은 사람들의 진행이 막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 내부의 세계 전체가 소멸하는 ‘해결’과 달리, ‘탈출’은 당사자만 무대에서 벗어나고 남은 사람들은 계속 진행하게 된다.
언제까지? 해결하거나, 탈출하거나, 죽을 때까지.
다시금 내게 뜬 알림을 살폈다.
‘통과자는 즉시 관문의 방에서 탈출하실 수 있습니다. 탈출하시겠습니까? (Y/N)’
해결이 아니다. 탈출이다.
내가 탈출한 후에도 관문의 방은 소멸하지 않으며, 동료들은 계속해서 진행하게 된다.
…
한 가지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다.
만일 내 동료들이 계속 진행하면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대체 무슨 일이 생길까?
저주의 방과 달리 동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적도 없는 평화롭고 따스한 세계.
이토록 완벽한 삶 속에서 언젠가 깨어나는 그 순간까지 수십 년,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을 살아간 끝에 우연한 계기로, 혹은 수명이 다한 후에야 깨어난다면….
불길한 상상이 내 숨을 틀어막았다.
그제야 내게 선택지가 주어진 이유를 깨달았다.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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