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39)
138화 – 107호, 관문의 방 – ‘퍼펙트 라이프’ (29)
– 김아리
혼자 통과한 내게 남은 일이란 아직 깨어나지 못한 동료들을 깨우는 것!
빌딩 외벽에 기대서 계획을 세우다 보니, 어깨 위로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아까 박치기로 날 민 주제에 내 어깨에 와서 앉아?”
페로는 무슨 일 있냐는 듯 갸웃거리며 날 바라보았다.
새삼스럽지만 그 모습이 제법 귀여워서 삐졌던 마음이 곧 풀렸다.
“페로, 나에게 오느라 꽤 고생했구나?”
페로의 몸 상태는 좋지 않았다. 예전에 봤던 기묘한 구속복을 부리로 일일이 뜯어낸 걸까?
그 과정에서 깃털이 많이 뽑혔는지 몸에 털이 숭숭 뽑힌 흔적이 여럿 보였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날 찾아온 이유가 짐작이 갔다.
“그래. 너랑 내 목표가 비슷한 모양이네. 나도 엄마를 구하고 싶어서 호텔로 왔거든. 이제 네 엄마를 구하러 가자.”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 하나 확인할 것이 있어서 한참 동안 도시를 쏘다녔다.
예상대로였다.
더 이상 출판사 건물에 관리국과 관련된 흔적은 없고 평범한 출판사만 남았다.
이 세계는 마지막 시련까지 도달한 네 사람의 꿈과 환상을 구현한 완벽한 세상.
그중 내가 꿈에서 깨어났으니, 이제 내 지분이 사라졌다.
오직 나에게만 의존해서 형성된 관리국 본부 같은 장소는 소멸했다.
같은 원리로 집으로 돌아가자 어른이 된 미로도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를 알아낸 후, 길었던 밤을 끝내고 집에서 잠들었다.
엄마가 사라진 집은 너무 넓고 조용했다.
*
아침이 밝은 후 학교로 갔다. 학교 내의 상황은 별반 변화는 없었다.
아마도 학교를 유지하는 꿈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당장 이놈의 학교에 다니는 사람만 나와 송이, 가인이까지 세 명이었으니까.
우선 그 둘부터 깨우고 엘레나를 깨우면 될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학교 창밖의 나무에 앉아있던 페로를 손짓해서 부른 후, 송이를 만나러 갔다.
송이를 찾는 건 너무 쉬웠다.
대체 송이가 생각하는 ‘퍼펙트 라이프’는 뭘까? 드루이드 라이프?
학교에 동물을 데리고 등교하는 게 꿈이었어?
애초에 앵무새를 데려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는 설정을 끼워 넣은 시점에서 저 애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챘어야 했는데!
2학년 교실 층으로 가자마자 멍멍거리는 소리가 요란스러워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송이가 끼워 넣은 ‘설정’ 덕에 2학년 층은 그냥 사람이 배우는 학교가 아니라 멍멍이가 공부하는 학교로 변한 지 오래.
그 와중에도 특출나게 동물들의 사랑을 받는 멍멍이의 성녀, 야옹이의 성자, 유송이를 찾기란 너무나 쉬웠다.
분위기에 자연스레 녹아들기 위해 페로를 어깨 위에 올리고 송이에게 다가갔다.
송이는 멀리서부터 날 알아보고 달려왔다.
“페로야아아아아아!”
페로를 알아봤구나.
“갑자기 사라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대체 어딜 간 거야? 또 아리를 괴롭혔어?”
송이는 시선을 내게 맞춘 후 말을 이어갔다.
“페로가 또 이상한 짓을 했다면 미안해!”
“아니, 페로는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았어. 이상한 짓은 네가 하고 있지.”
… 주변의 분위기가 서늘해짐을 느낀다.
슬쩍 주변을 돌아보자 수많은 개와 고양이들이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넌 이미 반은 깨어났다는 게 내 추측인데…. 어때? 페로의 구속복도 네가 채웠지? 오면서 생각해봤는데, 페로가 내게 오기 전에 이미 널 깨우려 했을 거야. 깨어나기 싫어서 페로를 -”
“조 용 히 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송이가 학교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심지어 그 말 한마디에 내 입이 강제로 다물어져서 더 이상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여 기 서 나 가!”
다시 한번 송이는 강하게 외쳤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튕겨 나갔다.
— 우당탕!
와!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송이를 깨우려고 하자 화를 냈다. 여기까진 예측한 반응인데….
화를 내면서 나가! 라고 하자 진짜로 내가 학교에서 튕겨졌다.
무슨 게임을 하다가 버그라도 걸린 것처럼 내 몸이 허공을 훨훨 날아서 벽을 관통하고 한참을 날아가더니 학교 운동장에 떨어졌다.
너무 황당해서 일어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운동장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누워서 생각했다.
일종의 현실 조작 능력을 쓴 걸까?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 장소는 우리의 소원을 구현해 만들어진 ‘퍼펙트 라이프’의 무대.
사실, 사람의 소원을 구현한 세계를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의 욕망은 끊임없이 변하고, 점점 강해지기 때문이다.
처음엔 괜찮은 집 하나로 만족하던 사람은 다음엔 대단한 저택을 원하고, 다음엔 빌딩을 바라기 마련.
이 모든 욕망을 끝없이 이뤄주는 ‘퍼펙트 라이프’를 구현하는 방법이 뭘까?
바로 우리 모두에게 소원을 이루는 힘을 주는 것!
생각해보면 나부터가 이미 썼던 힘이 아닌가?
빌딩에서 뛰어내렸을 때,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 속에서 세상이 멈추길 바랐다.
내 소원에 부응해 세상 전체가 멈췄다.
그 엄청난 기적에 비하면 날 학교 밖으로 날려 보낸 것 정도는 별것도 아니지.
생각해보면 가인이의 상황도 평범하지 않다.
네 번째 시련에서 내장부터 뼈까지 다 만신창이가 됐다.
현실이라면 최소 몇 달은 병원에서 나올 엄두를 낼 수 없고, 설령 나왔다 해도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려도 이상하지 않은 부상이다.
하지만 고작 일주일 정도 흐르자 다리에 깁스 하나 붙이고 나타나서 친구들과 활기차게 놀기 시작했다.
그 비정상적인 회복 역시 ‘낫고 싶다’라는 소원을 이 세계가 들어준 결과물이겠지.
덕분에 깨우는 일이 훨씬 어려워졌다.
여차하면 송이나 가인이를 죽여서라도 깨워야 하나? 하지만 이제 확신이 서지 않았다.
현실 조작 같은 엄청난 초능력을 얻은 시점에서 과연 죽일 수 있을까?
…
무의미한 고민이다. 다시 송이에게 가자.
적어도 송이를 깨우는 것까지는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달리 송이는 이미 페로에 의해 반은 깨어난 느낌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이번엔 네가 좀 활약해야 해. 네 엄마를 구하는 일이니까 최선을 다하라고.”
내 배 위에 올라와 있는 페로를 툭툭 건드린 후 다시 학교로 들어갔다.
송이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반영됐기 때문일까?
2학년 층은 그야말로 혼란의 도가니였다.
동물들은 제멋대로 날뛰었고, 학생들도 다들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녔다.
그 정신 사나운 장소를 한참을 지나쳐 다시 송이에게 다가갔다.
송이는 교실 한편에서 혼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말을 걸면 또 나를 날려 보내려나? 좀 위험한데? 그래도 말은 붙여봐야지.
“송이야?”
송이가 고개를 휙 들어서 날 바라보았다.
이래 봬도 관리국 요원! 신속 정확한 대응이라면 자신 있지.
바로 페로를 양손으로 붙들어서 내 앞에 세웠다.
“버드 쉴드!”
“…”
“…”
— 끼이익! 끼룩끼룩!
사람은 침묵하고, 앵무새는 분노해서 날 물어뜯으려 날뛰기 시작했다.
“앗! 아앗~! 그러지 마! 내 머리카락 뽑지 마!”
바라보던 송이가 한숨을 쉬며 페로를 데려갔다.
“방금 그건 뭐야? 70년대엔 그런 개그가 통했어?”
“너 역시 깨어났구나?”
“…”
“깨어났으면 홀로그램 창 같은 것 뜨지 않았어?”
“그런 게 떠? 아직 보지 못했어. 그냥 조금 더 있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봐.”
조금 더 있고 싶다.
확실히 이 ‘완벽한 세계’가 주는 유혹은 엄청나겠지.
송이 옆에 가서 앉았다. 송이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사과했다.
“아까 날려버려서 미안해. 사실 힘이 그런 식으로 쓰일 줄 몰랐어.”
“괜찮아. 어디 던져지고 날아가는 것 정도는 일상이니까.”
“그건 대체 어느 세상 일상?”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아? 호텔에서 나가면 너도 겪을 일상이야.”
“… 그러고 보면 묵성 할아버지가 맨날 가인 오빠에게 요원 어쩌고 했는데, 나도 나가면 그런 일을 해야 해?”
“그냥 해본 말이야. 나가 봐야 알지.”
잠시 우리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이제 슬슬 일어나는 게 좋지 않을까?”
송이는 조금 기다린 후 천천히 신세 한탄 같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행복했던 가정, 시간이 흐르며 아이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부모님의 사이는 나락으로 치닫고, 점차 둘 다 대놓고 다른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아이 때문에 이혼을 피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송이가 호텔에 들어올 때 즈음엔 이미 두 사람 다 변호사를 만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송이의 눈에서 점점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사실 페로가 깨우기 전부터 어렴풋이 알았어. 하지만 정말 나가기 싫었어. 집에서 사이좋게 지내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너무 기뻤어.”
할 말이 없어서 송이의 손을 잡아줬다.
“내가 어린애 같아? 아리 넌…. 관리국에서 일하니까. 고작 부모님이 이혼하는 것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끔찍하고 두려운 불행을 수없이 봤지? 내가 바보 같아?”
“전혀 그런 생각하지 않아. 애초에 불행을 그렇게 비교하는 게 의미 있겠어? 마치 기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불행에 비하면 한국 사람들의 불행은 전부 어린애 투정이라는 식의 논리잖아.”
“…”
“모두에겐 각자의 불행이 있지. 타인이 더 끔찍한 불행을 겪는다 해서 내 불행이 덜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런 비교가 의미 있을까. 네가 그 슬픔을 이겨내길 바랄 뿐이야.”
“호텔에서…. 호텔에서 나가면 해결될까? 부모님의 사이도 다시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
… 별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 솔직히 말해주기로 했다.
“아니. 네 부모님이 어쩌다 한번 싸우신 것도 아니고, 몇 년에 걸쳐서 갈등이 누적됐다면 이미 돌이키기 어렵겠지. 네가 호텔에서 수많은 보물과 초능력을 얻어서 나간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하지만 발전은 있겠지.”
“발전?”
“호텔에서 나갈 때쯤 네 세계는 들어오기 전보다 훨씬 커져 있을 거야. 무슨 초능력이니, 보물의 문제가 아니라 네 마음에 관한 이야기. 어린아이는 성장하면서 점차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그 과정이 끝날 때 부모님의 세계에서 독립하지. 그때가 되면 부모님에겐 부모님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마련이니까.”
“…”
“네가 호텔에서 나간다고 부모님의 사이가 좋아지진 않겠지만 부모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겠지.”
와! 방금 나 무슨 심리 상담 전문가 같지 않았어?
“…쿡!”
“응?”
“아니, 그런 말을 네 외모로 하니까 너무 이상하잖아. 너도 애 같이 생겼으면서!”
송이는 웃으면서 내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기껏 충고해줬는데 이런 반응이라니.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걸로 첫 번째 동료의 문제는 해결했으니까!
대화를 끝마친 후, 송이의 시선이 허공에 멈췄다.
“홀로그램이 나타났어?”
“응.”
“어떻게 할래?”
“너도 이 창을 봤으면서 나가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깨우는 중이지? 나도 그렇게 할래.”
송이가 깨어나면서 학교에 있던 동물들이 페로를 제외하고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송이는 나는 어떻게 깨어났는지 궁금해했고, 그 주제로 잠시 대화했다.
우리는 다음으로 누굴 깨울지 고르기 시작했다.
“역시 가인이지?”
“엘레나 언니는 가장 힘들 것 같아. 애초에 우리와 달리 학교에 다니지도 않고, 영화니, 드라마니 계속 나오는 걸 보면 우리 중 누구보다도 이 세계에 깊이 빠져든 느낌이야.”
“가인이는 어떻게 깨우는 게 좋으려나? 너랑 달리 제대로 잠든 느낌이라 설득하는 과정이 제법 힘들 것 같은데.”
한참 고민하던 송이는 의견을 냈다.
“한번 가인 오빠도 빌딩에서 밀어보자!”
페로는 그 말을 듣고 굉장히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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