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40)
139화 – 107호, 관문의 방 – ‘퍼펙트 라이프’ (30)
– 김아리
가인이를 어떻게 깨울지에 관한 고민을 시작한 후, 송이가 의견을 냈다.
“한번 가인 오빠도 빌딩에서 밀어보자!”
“나도 죽이는 방향부터 생각하긴 했는데,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어.”
“어떤 점이 위험해?”
“아까 널 깨웠던 상황을 돌이켜봐. 이 시련에서 우리는 소원을 이루기 위한 초능력이 생기잖아. 가인이도 비슷하겠지.”
“으음. 초능력이라고 말하니까 이상하네. 써본 입장에선 내가 능력을 쓴다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무슨 말인지 나도 알아. 우리가 직접 무슨 능력을 쓴다기보다는 그냥 간절히 소원을 비니까 우주가 이루어줬다! 같은 느낌이지. 가인이도 그런 식의 힘이 생겼을 거야. 그리고 너와 달리 힘 조절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
“힘 조절?”
“네가 날 날려 보낼 때는 이미 반쯤 깨어난 상태였잖아? 그러니까 본능적으로 힘 조절을 했을 거야. 날 던지면서도 죽진 않길 바랐겠지.”
“딱히 그런 생각 하지 않았는데.”
“…”
“무의식적으로는 했을지도 몰라.”
“한 것 맞지?”
“…”
“했다고 치자. 여하튼 넌 날 알아보고 죽지 않을 정도로 힘 조절했지만, 가인이는 아니잖아? 우리가 가인이를 해치려고 하면 아예 우리가 죽기를 바랄 수도 있어.”
“그건 진짜 무섭네. 조금 더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보자.”
“아무래도 우리가 직접 드러나지 않는 방향으로 계획을 짜는 게 좋아 보여.”
이후, 우리는 심사숙고해서 한가인 암살 계획을 짰다.
계획은 점심 무렵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
– 한가인
— 딩 동 댕 동!
“으으으~ 졸려 뒤지겠네.”
“야, 수업 시간에 공부라도 한 줄 알겠다. 어차피 졸았으면서 뭘 또 졸아?”
“병신들아!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오늘 점심 뭐냐? 탕수육인가?”
“그건 내일이고 오늘은 코다리 튀김.”
“아 씨 -”
귀가 아플 지경이다.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교실 전체가 소란스러워졌다.
반면 나는 별생각 없었다. 다리의 깁스가 남은 상태라 식당까지 움직이기도 힘들고, 한동안 식단 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병원에서 들었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 왔기 때문이다.
도시락을 주섬주섬 꺼내자 친구들 몇몇이 다가왔다.
“넌 아직도 그런 것만 먹냐?”
“앞으로도 한 달은 도시락 먹을걸?”
“진심 존나 맛없겠다.”
“시비거냐? 장이 다쳐서 이런 것밖에 못 먹는다니까?”
그때쯤, 교실 문 쪽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와아아! 야 한가인 저 씨발 놈 불러와라!”
“와 저 개새끼, 다리 깁스한 것만 아니면 내가 바로 걍 개패는 건데!”
갑자기 뭐야? 뭘 먹기도 전에 주변 사람들이 끌고 가서 문 쪽으로 갔다.
문 쪽에는 엄청 귀여운 인상의 2학년 후배가 있었다.
…
하! 이거이거, 이 몸의 인기란!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서 주체할 수 없는 스스로의 매력에 감탄 –
— 탁!
“이 시발 놈 또 지랄이네?”
“아 미친놈아! 내 다리 좀 보고 밀라고.”
주변의 요란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을 ‘송이’라고 소개한 여학생이 조그마한 쪽지를 건네고 부끄럽다는 듯이 사라졌다.
쪽지를 같이 열어보려는 무식한 놈들을 밀어낸 후, 혼자 확인했다.
수업이 끝나고 식당이 있는 새로 지어진 건물 옥상에서 보자는 말이 적혀있었다.
그 후로는 수업 따위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
– 한가인
수업이 끝나자마자 날 매의 눈으로 감시하던 친구들을 떼어내고 신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나 지금 고3인데 여자친구 생겨도 되나? 여친은 역시 대학 가서 사귀는 게 맞지 않을까! 하지만 귀엽던데! 하, 역시 상처를 줄 수는! 왜 하필 옥상에서 보자고 했지? 다리 아프게. 그 정도는 괜찮겠지. 한번 튕겨야 하나? 에이 그런 이상한 짓 하지 말고 바로 OK가 맞음. 사귀다가 싸우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이 충분하다면 작은 갈등은 이겨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오늘 만난 애가 성격이 생각보다 이상하면 큰 문제 아닐까?
…
잠깐 사이에 내 머리는 태어난 이래 그 어떤 순간보다도 빠르게 회전하며 엄청난 망상을 쏟아냈다.
이대로 가다간 혼자 둘째 딸 이름까지 생각할 것 같아서 억지로 생각을 끊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
뭐지? 올라왔지만 옥상엔 아무도 없었다.
옥상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찾아봤지만, 송이는 역시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너무 빨리 왔나? 다리가 불편한 상태라 딱히 빨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하지만 곧 이해했다.
고백을 하는 쪽에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입꼬리가 벌어지는 걸 숨기기 힘들었다.
혼자 킥킥대면서 난간 쪽에 기대려 다가가려는 순간.
— 팅!
갑자기 무언가가 확 댕겨지며 내 몸을 옥상 난간 쪽으로 밀쳤다!
바닥에 깔려 있어 확인하지 못한 하얀 철사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내 몸을 밀어냈다.
“으아악!”
순식간에 난간 외벽에 부딪히며 넘어졌다.
가뜩이나 깁스 때문에 불편하던 몸은 그 충격으로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더 충격적인 일은 다음에 시작됐다.
— 우르릉! 쾅!
갑자기 난간 외벽이 붕괴했다!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외벽이 갑자기 무너진다고?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이유를 생각할 틈이 없었다.
지금도 내 몸을 외벽 바깥으로 밀치는 철사, 이유를 알 수 없는 힘으로 무너진 난간 외벽.
그 결과는 명확했다.
나는 순식간에 건물 바깥으로 밀려나서 추락 위기에 놓였다.
그야말로 젖 먹던 힘을 다해 양손으로 난간의 잔해를 붙들고 매달렸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온 힘을 다해 매달렸다. 밑을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통과 공포로 가득한 시간이 흘러가고, 어딘가에서 이상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왜 저렇게 잘 버텨?”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시간을 오래 주면 이상한 방식으로 살아날걸?”
“왜 저렇게 안 죽는 거야?”
“가인아. 제발 좀 죽어!”
대체 뭐지? 왜 내가 죽길 바라는 목소리가 들려올까?
심지어 목소리 중 하나는 분명 아까 낮에 날 불러낸 소녀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혼란 속에서 내 정신이 마구잡이로 헝클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을 가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피요오오오!
우렁찬 소리와 함께 마치 대단한 맹금류라도 되는 듯한 분위기로 귀여운 앵무새가 나타났다.
앵무새는 내가 매달려있는 난간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아니지? 설마 아니지?”
— 팅! 팅!
“아 시발 미친놈아! 부리 안 치워?”
— 뽀각! 삐직!
“으아아악! 미친 새가 사람 잡는다! 손가락 물지 말라고!”
— 키리릭!
“너? 너 지금 웃었지? 웃은 것 맞지?”
— 찌이이익!
“악! 진짜 제발 부리 치우라고! 아! 눈, 눈!”
내가 오래 버틴다 싶었는지, 앵무새는 아예 내 얼굴 위로 올라와서 부리와 발톱으로 얼굴 여기저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끓어오른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무궁한 분노가 샘솟았다.
지금, 내 마음속에선 죽음에 대한 공포는 물론 난간에 매달리면서 생긴 고통마저도 사라졌다.
단지 저 빌어먹을 새 새끼를 튀겨버릴 수 있다면!
잡스러운 상념이 전부 사라지고 단 하나의 소망이 마음에 남는 순간.
세상이 내 기도에 부응했다.
그리고 난 정신을 차렸다.
*
– 한가인
— 끼이잉!
“으~ 페로 많이 다쳤네. 괜찮아?”
“이럴까 봐 우리는 가인 오빠 시선을 피했던 건데! 페로야! 함부로 나서면 안 된다고 했잖아.”
“아무리 그래도 가인이가 갑자기 허공에서 끓는 기름을 소환할 줄은…. 페로는 괜찮아?”
“평범한 앵무새라면 즉사했겠지. 하지만 페로는 특별하니까! 괜찮을 거야.”
아리와 송이의 대화를 한참 듣다 보니 어이가 없어서 참지 못했다.
“너넨 이 와중에 앵무새만 그렇게 걱정되냐? 앵무새가 분지를 뻔한 내 손가락과 얼굴은 걱정 안 되고?”
“뭐 어때? 어차피 호텔에서 나가면 다 치료해줄 텐데. 그나저나 너도 참 웃기게 깼다. 허공에 끓는 기름을 소환해서 기름이 자신까지 덮치려고 하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어?”
“…”
“이야~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니야? 페로는 다~ 널 깨우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기름을 부으려고 하다니.”
“거짓말하지 마! 저거 분명히 날 비웃으면서 손가락 물었다고.”
“오빠! 페로가 지금 아픈데 꼭 그런 말 해야 해요?”
“…”
“이야~ 송이야 너무 그러지 마. 가인이는 오늘, 네 고백을 듣는 줄 알고 큰 기대 하면서 왔단 말이야.”
아리의 그 말은 나와 송이 모두에게 치명타였다.
아까 엄청난 망상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자 견디기 힘들어서 바닥만 바라봤다.
“가인이 너, 확실히 깨어난 것 맞지? 애매하면 역시 빌딩에서 한번 날아보는 게 어때?”
“… 이미 홀로그램도 떴으니까 그만 좀 해.”
그냥 아리도 한번 빌딩 밖으로 밀어 보고 싶어졌다.
이런 요란한 과정을 거쳐서 결국 나도 ‘동료 깨우기 파티’에 합류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엘레나 한 명이다.
이 길었던 관문의 방이 정말로 끝나간다는 사실에 상당한 감회가 느껴졌다.
“이제 엘레나 한 명 남았나?”
송이가 바로 의견을 냈다.
“네. 그런데 엘레나 언니는 우리보다 깨우는 난이도가 높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꿈에 가장 깊게 심취한 느낌이라.”
“또 다른 문제도 있지. 이미 이 무대의 엄청난 스타가 된 상태잖아? 엘레나는 주변에 경호원도 많을 거야. 내게 한 것처럼 어딘가로 불러내서 빌딩 옥상에서 밀어버리는 악독한 방식은 어렵다는 이야기지.”
“…악독한 방식을 써서 죄송해요.”
송이가 열심히 페로에게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축생이 이 와중에도 삑삑거리며 날 노려봤다.
만물의 영장이 앵무새에게 질 수 있겠는가? 나도 눈을 최대한 크게 뜨고 페로를 노려봤다.
그걸 지켜보던 아리가 한마디 했다.
“야! 동물이랑 신경전 좀 그만해.”
결국 아리가 불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화의 주제는 역시 아리와 송이는 어떻게 깨어났는가였다.
아리가 세상의 위화감을 느끼는 과정을 듣다 보니 이상한 내용이 너무 많았다.
“뭐라고?”
“응? 내가 관리국 본부로 들어가서 박 부장과 -”
“아니, 그 부분 말고. 이상함을 느꼈다는 부분 말이야. 비둘기가 어쩌고, 진균 기생체가 어쩌고 했잖아.”
“그랬지.”
“… 난 그런 단어들 생전 처음 들어. 진균 기생체? 비둘기? 그런 게 있다는 말은 뉴스에서도 못 봤는데. 술집이야 내가 미성년자라서 잘 몰랐을 수도 있지만, 포식형 비둘기? 그런 이상한 생물이 나라 전체에 퍼졌다면 몰랐을 수가 없잖아.”
“…”
내 대답을 들은 아리는 처음엔 눈이 확 커졌고, 잠시 후 무언가 혼자 이해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혼자 이해하지 말고 내게도 설명 좀 해줘.”
“별것 아니야. 너도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을걸?”
대놓고 답변을 피하는 듯한 분위기.
하지만 실제로 나도 금방 이해가 갔다. 그동안 이 호텔에서 여러 번 경험한 일이다.
분명히 지구같이 생긴 무대인데, 실제 역사에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황당한 일로 가득했지.
처음엔 단순히 호텔이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103호를 해결한 송이가 ‘삼키는 자’에게 듣기로는 호텔의 시나리오는 이 우주 어딘가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재현 중이라고 한다.
내가 아는 역사에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인데,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걸 설명하는 개념은 영화로 수십 번은 봤다!
바로 평행세계 아닐까? 아마도 나와 아리는 서로 다른 평행세계에서 왔나 보다.
그렇다면 언젠가 호텔 밖으로 나가서 각자의 세계로 돌아가면 우린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될까? 그렇게 생각하자 아쉬워졌다.
휴우우….
이런 생각은 이쯤 하자. 당장은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하는 것만으로 매우 바쁘니까.
*
– 김아리
조금 전의 대화가 끝난 후, 가인이는 더 질문하지 않고 혼자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한 모양이다. 어떤 식으로 이해했을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평행세계 어쩌고 식이겠지.
영화관을 미국의 xx 코믹스에서 만든 히어로물이 점령한 이래, 평행세계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상식의 영역에 들어섰다.
한숨이 나왔다.
이번만큼은 도저히 가인이에게 진실을 말해줄 수 없었다. 이번만큼은 철저히 그를 위해 진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호텔 바깥으로 나가면 엄청난 충격을 받겠지.
하지만 그 충격을 호텔의 시련을 진행 중인 지금 받게 할 수는 없다.
나와 그는 하나의 세상에서 서로 다른 국면을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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