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41)
140화 – 107호, 관문의 방 – ‘퍼펙트 라이프’ (31)
– 한가인
어떻게 해야 엘레나를 깨울 수 있을까?
가장 큰 문제는 엘레나가 이 무대에서 지나치게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미 각종 드라마와 영화 주연으로 섭외될 정도의 스타가 된 상태였다.
일반인은 접근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고, 설령 접근한다 해도 주변엔 반드시 경호원이 있다.
이래서야 나를 깨웠던 것처럼 강제적인 수단을 쓸 수는 없다.
그런 짓을 하다간 경호원에게 총을 맞아 죽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유리한 요소도 있었다.
가장 먼저 깨어나서 우리를 깨우기 시작한 아리가 의견을 냈다.
“우리가 이용할만한 점은 크게 두 가지야. 첫째, 엘레나가 우리를 보는 순간 느낄 감정. 이미 우리끼리 경험했지? ‘퍼펙트 라이프’에 휩쓸려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우리끼리는 만나는 순간 강렬한 감정을 느껴. 엘레나도 마찬가지겠지.”
“어떻게든 엘레나의 시야에 한 번 들기는 해야 할 텐데.”
“그것도 꽤 어렵긴 해. 하지만 방법을 연구해보면 분명 있겠지. 둘째, 엘레나는 우리를 잊었지만 우리는 엘레나를 알고 있다는 점. 어떻게든 엘레나와 대화라도 해볼 수 있다면, 우리가 이미 엘레나에게 들었던 과거 이야기들을 꺼내서 흥미를 자극할 수 있지.”
“몇 가지 떠오르긴 하는데, 대부분 엘레나가 지나가듯이 말한 단편적인 이야기들이네.”
“그 정도만으로도 엘레나가 신기하다고 느낄 수 있어. 본인으로선 본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들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까.”
“결국 요지는 간단하네. 어떻게든지 엘레나의 시야에 한 번 들어서 엘레나가 우릴 의식하게 만들고, 대화할 기회를 얻는 것.”
말없이 듣고 있던 송이가 입을 열었다.
“잠깐 제 말 들어봐요. 엘레나랑 평소에 대화를 많이 했던 사람은 나 뿐이에요. 엘레나의 관심을 어떻게 끌고, 대화를 어떻게 할지 나름대로 떠오르는 게 있어요.”
송이의 의견을 참고한 후, 우리는 어떻게 엘레나에게 접근해서 깨울 수 있을지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
– 엘레나
…
…
깊은 꿈을 꿨다. 알 수 없는 이상한 장소.
한없이 두렵고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기괴한 호텔.
그 장소에서 나와 함께하는 동료들.
기나긴 회상 속에서 단 한 장면이 뇌리에 새겨졌다.
빛나는 후광을 드리운 천사를 닮은 청년.
이 꿈은 대체 뭘까?
“엘레나! 엘레나!”
“아.”
“아. 가 아니야. 이제 슬슬 깨어나야 해.”
“매니저, 고마워요. 촬영장까진 얼마나 남았죠?”
“30분 정도? 오늘 일정 다시 한번 보여줄게.”
옆에 있던 매니저가 태블릿을 꺼내서 저녁의 촬영 일정과 야간 방송 일정을 다시 보여줬다.
아~ 분명 오랜 꿈을 이룬 느낌이긴 한데, 막상 이루고 나니까 무지하게 힘들구나.
하지만 이게 스타의 삶이니까! 이겨내야지.
슬슬 어둑해지기 시작한 초저녁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창가를 내다보았다.
오늘의 드라마 촬영은 풍광 좋은 장소에서 이뤄지기 때문인지, 이미 주변 풍광엔 푸르른 나무와 산들거리는 바람, 코를 간지럽히는 향기로운 솔향이 가득했다.
차가 달려가는 도로 한편엔 품종이 궁금해질 정도로 거대한 나무가 풍채를 자랑하고 있었고, 그 가지 위엔 세상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불가해한 아름다움을 가진 새가 –
???
저거 뭐야?
“저거 뭐죠?”
갑자기 차 속도가 느려지고 차에 타 있던 사람들이 다들 놀라서 나무 위를 바라보았다.
부들거리는 연보랏빛 깃털, 호선을 그으며 굽은 부리, 꽁지깃은 흡사 공작의 꼬리처럼 화려함이 깃들었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요정을 연상케 하는 초현실적인 새는 몸 전체에서 밤하늘을 은은히 밝히는 광휘를 드러내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날 포함해서 다들 카메라에 익숙한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다들 홀린 듯이 카메라를 꺼내 들어서 정신없이 새를 찍었다.
어딘가 앵무새를 닮은 듯한 새는 신비한 자태로 가만히 있는가 싶더니, 갑자기 ‘나’를 바라보았다.
“에 – 레 – 나.”
갑자기 튀어나온 내 이름에 그야말로 혼이 나갔다.
입만 벌리고 있던 사이, 새는 날아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다들 놀라서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심장이 떨릴 듯한 신비함!
믿을 수 없는 경험으로 인해 충만하게 차오르는 이상한 도취감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이 흥분 때문에 오늘의 촬영은 제법 잔소리를 많이 들어야 했다.
*
“송이야. 진짜 이런 뻘짓이 통할까? 페로 등에 미니 led 램프를 달면 엘레나를 홀릴 수 있다니….”
“오빠! 그냥 제가 시키는 대로 좀 해봐요.”
“아니, 내가 아까부터 램프를 등에 묶으려고 하니까 아주 발광이라 그래.”
“제가 엘레나랑 많이 이야기해봐서 알아요. 엘레나가 은근히 오컬트 같은 것에 심취한 성향이 있다니까요? 예쁘고 신비한 것에 엄청나게 약해요. 그리고 페로만큼 예쁘고 신비한 생물은 없어요.”
“가인아. 좀 불평하지 말고 묶어봐. 송이는 날 꾸미느라 바쁘니까. 페로가 좀 신기하게 생기긴 했지. 그런데 얘는 앵무새면서 왜 이렇게 말을 못 해? ‘날 떠올려요. 엘레나’ 이 한 문장이 그렇게 어렵니?”
“여차하면 그냥 엘레나만 말하라고 해야겠네요. 페로는 생각보다 멍청한가 봐.”
— 삐이이익!
“아, 진짜! 그만 물라고! 너 등에 램프를 묶자는 아이디어는 송이가 냈다고!”
*
– 엘레나
간신히 촬영을 끝냈다.
평소엔 나를 항상 칭찬하시던 촬영 감독님이나 선배 배우분들도 오늘은 내게 조금 잔소리하셨다.
나도 여러 차례 사과드려야 했다.
아~! 원래 이렇게 연기하면서 실수를 많이 하는 스타일 아니었는데.
하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었어.
촬영장에 오면서 봤던 신비한 생물!
다른 사람들은 그냥 앵무새의 일종이 아니겠느냐 하는 말도 있었지만,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세상에 그렇게 신비하게 생긴 앵무새가 어디 있어?
게다가 몸에선 빛까지 뿜어냈고, 무엇보다 내 이름을 불렀다.
분명히 어떤 신비한 운명이 점지한 요정 비슷한 생물이 틀림없었다.
내 삶에 다시 한번 신비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전에 이미 비슷한 일이 있었나?
잠시 고개를 갸우뚱한 후, 다시금 의자에 기대어서 졸기 시작했다.
야간 방송 일정까지 남았으니 이럴 때 쪽잠을 자두지 않으면 충분히 잘 시간이 없다.
…
“엘레나! 엘레나~!”
“에?”
“빨리 일어나요! 앞을 봐요.”
매니저의 황급한 외침에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차가 또 멈춰 있었다.
이제는 슬슬 앞이 잘 안 보일 정도로 어두운 저녁 시간이다.
창밖을 내다보자 촬영장에 올 때 봤던 새가 한층 더 신비한 모습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또 사람들이 차 밖으로 나가서 찰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저런 새가 있을까? 신기해서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엘 – 레 – 나.”
아까보다 한층 더 선명한 ‘날 부르는’ 소리.
새는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느릿하게 숲 쪽으로 이동했다.
나는 무슨 최면에 걸린 느낌으로 멍하니 새를 따라갔다.
“엘레나! 야간 산행은 위험합니다! 오세요!”
뒤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항상 우리 경호를 신경 써주시는 고마운 분들의 목소리.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어쩔 수 없지.
다행히 산 깊숙이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살짝만 들어가자 작은 공터가 나타났고, 새는 나무 위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신비로운 공터에 나와 새 둘만 남는 순간!
요정이 그 진정한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앵무새의 몸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다.
천국의 솜털 같던 부드러운 연보랏빛 깃털이 강철처럼 단단한 검은빛 비늘로 변했다.
어린아이의 앙증맞은 주먹처럼 굽어있던 부리는 한입에 사람 머리통을 으깰듯한 힘이 담긴 부리로 변했다.
아기 천사의 등에나 달려있을 것 같던 앙증맞은 날개는 마치 외계 생물의 촉수 덩어리 같은 불가사의한 이형으로 변모했다.
한순간에 내 앞에 나타난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내는 이형의 괴물 앞에서 난 그저 넋이 나가서 주저앉았다.
…
…
의외로 괴물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날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 숲 한편에서 새에 뒤지지 않는 신비함을 품은 존재가 나타났다.
폭포수처럼 흩날리는 머리칼에 아스라한 새벽녘의 밤하늘이 담겨있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가디건 사이 사이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신비학적 상징물들이 눈에 띄었다.
조그마한 향수 통에선 피처럼 붉은 액체가 넘실거렸고, 흔들리는 촛대, 반짝이는 단검이 눈가를 사로잡았다.
왼쪽 가슴팍에 붙어있는 천칭에선 기묘한 기시감이 느껴져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불가사의한 것은 그 눈이었다.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흘리셨을 듯한 붉은 핏방울이 올올히 담긴 그 붉은 눈동자가 날 꿰뚫어 보는 순간, 나는 완전히 압도당해서 멈추어 섰다.
마치 별세계에서 넘어온 마녀와 같은 소녀는 가볍게 괴물이 된 새를 쓰다듬은 후, 내게 다가왔다.
“날 모르겠어?”
숨이 막혀온다. 나는, 나는 이 소녀를….
안다!
그냥 내 심장이 외쳤다. 나는 이 소녀를 안다!
처음 보는 순간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친근감을 느꼈다.
그녀는 내 앞에서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했다.
다음 순간, 내 뒤편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엘레나 씨! 야간 산행은 위험하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누군가 거칠게 나무를 꺾고, 잔디를 밟으며 다가오는 소리.
한순간에 숲의 평온이 깨지고, 무정한 구두 발굽이 초현실을 짓밟고 현실을 불러냈다.
“아….”
“역시 오늘 더 말하긴 무리네.”
소녀는 어딘가 아쉬운 표정을 지은 후, 내게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야. 다음엔 너 혼자 찾아오길 바래.”
그 말과 함께 그녀는 새와 함께 바람처럼 사라졌다.
— 또각!
“아~ 여기는 왜 이렇게 나뭇가지가 많아? 엘레나 씨? 괜찮으십니까? 왜 혼자 거기 앉아계시는-”
“왜 이리 빨리 오셨어요?”
“예?”
나도 모르게 날카롭게 말했다.
무언가 내 인생에 다시 없을 듯한 믿기 힘든 경험이 진행 중이었는데, 그걸 방해받았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경호원 분들은 그냥 날 지키러 왔을 뿐이다.
“죄송해요. 잠깐 복잡한 생각을 했거든요.”
“괜찮습니다. 차로 돌아가시죠.”
차로 돌아가며 한 손에 잡은 사진을 바라보았다. 바닷가의 풍광을 담은 카페의 사진.
‘혼자 찾아오라’라고 했지?
*
“방금 아까운데? 엘레나가 분명히 뭔가 깨어나는 느낌이었어. 조금 더 해보는 게 어땠을까?”
“조금 더 하다가 경호원들이 들이닥쳤으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몰라요. 앞으로는 아예 엘레나 근처도 가지 못하게 되었을지도?”
“그냥 페로가 부리로 엘레나를 한번 찍어보면 어땠을까?”
“… 가인 오빠가 그런 의견을 낸 걸 알면 엘레나는 분명 상처 받을 것 같네요.”
“그랬다가 네가 기름을 소환했듯이 엘레나가 갑자기 돌격소총을 가진 경호원을 소환했으면 어쩌게?”
“그런가?”
“우리 중 그 누구보다도 이 무대를 많이 바꾼 사람이 엘레나야. 가장 꿈에 깊게 심취한 상태고, 소원을 이루는 힘도 가장 강력하게 쓰고 있지. 이런 엘레나를 상대로 강압적인 수단을 쓰는 건 너무 위험해. 극단적으로 가면 엘레나의 머리를 터트려도 본인은 이 모든 일은 그냥 안 좋은 꿈이겠거니 하고 잊고, 우리만 죽을지도 몰라.”
“그래. 엘레나는 어떻게든 스스로 깨어나게 유도하는 방향으로 하자.”
“자, 이제 카페 쪽에서 마지막 준비나 하죠. 가인 오빠는 준비됐죠?”
“내가 할 게 뭐 있나 싶네. 준비라면 대충 다 했어. 이제 거의 끝나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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