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43)
142화 – 107호, 관문의 방 – ‘퍼펙트 라이프’ (33)
– 한가인
수업. 또 수업, 또 수업.
이래저래 천지개벽이 몇 번이나 일어나는데도 어째 난 학교에서 벗어나질 못하는구나.
한숨을 쉬며 결국 새로운 학교의 수업도 대충 때운 후, 우리는 빈 교실 한편에 모였다.
“…”
“…”
“…”
결국 아리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꽤 귀여워졌네.”
“지금은 오빠가 저 보다도 어려 보이지 않아요?”
“너나 나나. 그나저나 우리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
“…”
역시 아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한 가지 사실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어. 엘레나는 우리 생각보다도 훨씬 꿈에 깊이 빠져든 상태야.”
“왜 엘레나 언니만 이렇게 심하게 빠져든 거죠? 우리 셋은 생각보다 금방 깼잖아요?”
“뭐, 마지막 시련인데 사실 그동안은 너무 쉽긴 했어.”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엘레나는 나나 송이에 비하면 훨씬 이루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소망이 강한 것 같아. 그래서 그 소망을 이루려는 심리적 기제가 훨씬 강하게 나타난 것 아닐까? 아리에 비하면….”
“나보다 훈련이 부족하지. 난 관리국 출신이라 이런 부분에 대한 멘탈은 강한 편이고.”
요약하자면 엘레나의 멘탈이 아리보다 약하고, 나와 송이보다 삶에 후회가 많은 것이 원인인 것 같았다.
송이가 한숨을 내쉰 후, 아리와 대화를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죠? 따지고 보면 우리가 쓴 방법은 ‘위화감’을 강하게 자극해서 잊고 있던 호텔의 기억을 스스로 떠올리게 유도하는 식이었잖아요? 엘레나는 호텔의 기억을 떠올리고도 다시 꿈으로 돌아간 느낌이에요.”
“클리셰적인 상황이야. 불행한 현실보다 행복한 꿈에 파묻히기를 선택했다고나 할까? 우리의 첫 번째 계획은 엘레나를 깨운 게 아니라, 새로운 꿈을 꾸도록 만들었어.”
“이래서는 엘레나에게 다시 과거를 상기시켜도 소용없을 것 같아요. 뭐라고 말해도 깨어나기보단 그냥 꿈의 내용만 바꿀 것 같은데.”
“자꾸 자극하면 우리를 ‘불편하게’ 여겨서 아예 어딘가에 가둬버릴지도 모르지.”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내 기억은 과거를 향해 움직였다.
이미 깨어난 사람들이 정신을 차린 과정, 우리가 엘레나에게 적용한 방법.
우리가 택한 방법에는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었다.
*
적어도 두 번째로 만들어진 꿈에서 엘레나의 소원이 뭔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전의 대화에서 드러났듯이 행복한 어린 시절을 만드는 것.
엘레나는 평화로운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주변엔 친구들로 가득했다.
나와 송이, 아리도 이 장소에선 엘레나의 친한 친구들이었다.
첫 번째 꿈이 끝나갈 때, 엘레나가 어설프게 되찾은 것 같던 기억은 다시 사라진 듯했다.
어쩌면 그 기억을 지우는 것조차 소원의 내용 일부였을 지도 모르겠다.
…
“에잇!”
— 텅!
가만히 고민하던 중, 강렬한 스매시 때문에 빛살같이 날아온 테니스공이 내 머리를 후려쳤다.
“으억!”
“어? 어어! 가인아! 괜찮아?”
체육 시간, 테니스공을 나에게 맞춘 엘레나가 당황해서 내게 다가와서 날 일으켰다.
헛웃음을 터트린 후 내가 일어서자 엘레나는 금세 배시시 웃었다.
우리는 다시 테니스공을 주고받으며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 나쁘지 않네.
솔직히 지금의 엘레나는 정말 믿기 어려울 만큼 귀여웠고 행복해 보였다.
*
점심시간이 되었다.
“엘레나.”
“응?”
“지금 즐거워?”
“으응? 갑자기 무슨 이야기야? 당연히 즐겁지! 앗, 그러고 보니 저녁에 바흐탄고프 극장에서 공연하는 것 알아?”
“처음 들어.”
엘레나는 어딘가 수줍은 표정으로 내게 표를 내밀었다.
“아빠가 친구들을 불러오라고 했어! 같이 보러 가자.”
표를 받아든 후 질문했다.
“나한테만 주는 거야?”
“무, 무슨 말이야! 다른 친구들에게도 예전에 줬어! 이상한 생각 하지 마.”
내 자리는 엘레나 옆자리였다.
*
저녁이 가까워지자 대체 무슨 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물과 산책하는 시간도 있었다.
역시나 주변 아이들은 대체 어디서 데려왔는지 알 수 없는 새하얀 사모예드나 노르웨이 숲 같은 동물들을 끄집어내서 산책하기 시작했다.
천만다행히도 음악 시간과 달리 이 시간은 우리도 페로가 있어서 대충 낄 수는 있었다.
페로의 화려함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모자람이 없었다.
물론 페로의 난폭함은 이 자리의 모든 동물을 합친 정도를 능가했다.
“으아악! 페로야아아! 사모예드 털 뽑으면 안 돼!”
“그냥 내버려 둬. 페로도 둥지 재료를 모을 시간이 있어야지.”
“아리야! 사모예드 주인 애가 울잖아!”
“뭐 어때? 동물의 세계는 원래 약육강식이야. 사모예드가 페로보다 약한 게 잘못이지.”
듣던 내가 다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결국 내가 나서서 사모예드의 털 속을 헤엄치려고 하는 페로를 끌어내야 했다.
*
학교에서의 엘레나는 정말 행복한 아이였다.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이 던지는 질문에는 언제나 제일 먼저 손들어서 대답하고 칭찬받았고, 아이들은 모두가 엘레나를 좋아했다.
집에는 풍요롭고 따사로운 부모님이 계셨고, 삶에는 즐거운 공연, 행복한 여행, 친절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야말로 ‘퍼펙트 라이프’.
모든 이가 한번은 바라왔을 삶의 이데아.
지금의 엘레나에겐 커피숍에서 반쯤 깨어났을 때 느꼈던 어둠이 단 한 점도 느껴지지 않았다.
미묘하게 세상의 ‘장르’가 뒤바뀌는 느낌이 들었다.
아름다운 소녀, 빛나는 세계. 언제나 활기차고 즐거운 일상.
.
.
.
아니다.
의미 없는 착각일 뿐이다.
호텔로 떨어진 첫날 밤, 우리가 속한 세상의 장르는 결정되었다.
엘레나, 미안하지만 호텔의 장르는 아무리 봐도 로맨스 코미디는 아니야.
*
“야, 한가인! 아까 뭐야? 난 지금 이게 엘레나의 꿈이 아니라 네 꿈인 줄 알았네.”
“뭘?”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엘레나랑 테니스 잘 치던데?”
“그러는 너는 나랑 송이는 무시하고 혼자 바이올린 연주했잖아. 우리만 무슨 다른 세상 사람인 줄 알았네.”
“넌 몇 살인데 아직 악기 하나도 다룰 줄 모르는 거야?”
“나도 리코더는 불 줄 알아.”
“리코더는 페로도 불 수 있을걸?”
“…”
“아~ 농담은 이쯤 하자. 진짜 어떡하지? 대체 어떻게 해야 엘레나를 깨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설령 엘레나를 죽여도 소용없으리라는 확신이 들어. 그냥 죽여도 다음 꿈으로 넘어갈 것 같아.”
“난 이제 알 것 같아. 그리고 우리가 뭘 실수했는지도.”
송이와 아리가 동시에 날 바라보았다.
“미안한 이야긴데, 우리가 너무 엘레나에게 맞춰줬어. 우리가 겪은 과정을 돌이켜봐. 아리는 혼란스러워하다가 빌딩에서 투신자살 시도한 후에야 깼지? 송이는 아리랑 한바탕 싸울 뻔했다며? 나는 내가 소환하긴 했지만 끓는 기름에 튀겨질 뻔하면서 깨어났지.”
“그래서?”
“다들 딱히 평화로운 방식으로 깨어난 게 아니야. ‘위화감 자극’만으론 부족하다는 이야기지. 애초에 위화감만 자극한 상태에선 뭔가 이상하지만, 행복한 꿈일 뿐이잖아? 깨어나겠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지.”
송이가 어딘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 그 말은….”
“본인이 이 꿈을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게 해야 해. 그래야 스스로 깨어나겠지.”
무슨 말인가 하던 아리도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표정이 단호해졌다.
“네 말이 맞아. 애초에 우리도 그런 식으로 깨어났으니까. 단순히 이상하다, 정도를 넘어서 ‘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라고 느끼게 해야지. 이제야 우리 계획에서 뭐가 빠졌었는지 알았다. ‘매운맛’이 빠졌네.”
‘매운맛’.
이 단어에서 풍기는 불길함을 읽어낸 송이가 조금은 우울한 표정으로 답했다.
“의도는 알겠지만, 조금 더 맞춰주는 방향은 어떨까요? 엘레나 언니의 마음을 조금 풀어준다던가….”
“그렇게 할수록 엘레나는 점점 더 이 꿈에 파고들겠지.”
“알겠어요. 하지만 어설프게 괴롭히기라도 하면 우릴 어딘가로 날려버릴지도 몰라요.”
“뭐가 걱정이야? 이미 너희가 날 상대로 해봤잖아? 들키지 않으면서 진행해야지. 송이의 ‘평화로운’ 계획대로 했지만 잘 안 풀렸지? 이번엔 내 생각대로 해보자.”
처음 우리가 택했던 계획에는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었다.
‘매운맛’
엘레나의 달콤한 꿈에 알람 시계를 킬 시간이 되었다.
*
– 엘레나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코호트 광장의 시계탑 밑에서 기다렸다.
언제 올까? 언제 올까?
20분 정도 흘렀을까? 멀리서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났다.
가인이는 오자마자 날 보고 놀란 듯이 외쳤다.
“엘레나! 완전히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아!”
“으앗~! 그런 소리 하지 마. 극장표는 가져왔어?”
“응. 그런데 부모님은 안 계셔?”
“우리가 애도 아니고, 연극 좀 보는데 무슨 부모님이 필요해?”
기쁜 마음으로 돌아섰다.
뒤에서 가인이는 모호한 표정으로 ‘지금은 애가 맞긴 하지.’ 같은 소리를 중얼거렸다.
항상 느꼈지만 가인이는 멋지면서 괴상하고, 똑똑하면서 허술하고, 착하면서 독하다.
?
내가 가인이에 대해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할 일이 있었나?
잠깐 고개를 갸웃거린 후, 극장으로 들어갔다.
공연은 무척 즐거웠다.
고양이로 분장한 사람들의 노래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몇 차례 따라부르며 행복한 시간이 흘러갔다.
옆자리의 가인이는 조용했다. 공연이 끝나갈 때쯤, 가인이가 말을 걸었다.
“엘레나.”
“응?”
“즐거워?”
“응! 너무 재밌어.”
“그래…. 엘레나가 기쁘다니 나도 기뻐.”
뭔가 평소답지 않게 닭살 돋는 말투다. 그런 것 치고는 표정이 차가웠다.
이상하게도 가인이는 평소랑 달랐다.
앗! 설마…. 둘이서 극장에 와서 가인이도 기분이 이상한 걸까?
그 생각을 하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 쿵! 쿵!
대체 왜 이래! 별일도 아니고 공연 좀 본 것 가지고 –
— 쿵! 쿵!
…
— 쿵! 쿵!
뭐지? 가슴이 뛰는 게 아니라 실제로 바닥이 뭔가 울리는데?
당황해서 살짝 고개를 들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가인이가 내 손을 확 붙잡고 끌었다.
“가, 가인아?”
“나가자. 이상한 냄새가 나.”
“이상한 냄새? 나는 못 느끼겠는데….”
가인이는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날 끌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10초도 지나지 않아 우렁찬 소리가 극장을 가득 채웠다.
“불이야!!! 불이야!!!”
순식간에 극장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입구는 좁은데, 극장의 모든 사람이 동시에 일어서서 나가려고 하자 우리는 그사이에 껴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뭐야? 대체 뭐야? 왜 하필 오늘 이런 일이?
— 쿵! 쿵…! 쾅!
갑자기 극장 바닥이 터졌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악! 괴물이다!”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된 극장 한가운데서 시꺼먼 천을 두른 공룡 같은 새가 나타났다.
난 넋이 나간 채로 괴물 새가 사방을 부수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해? 애초에 저런 괴물이 왜 극장에 나타났어?
왜 하필 오늘!
강한 원망이 마음을 채운다. 무언가, 무언가 저 새를 응징할 –
“앗!”
“엘레나, 뭘 가만 서서 보고 있는 거야? 빨리 나가자.”
뭔가 일어날 것 같았는데! 그 전에 가인이가 바로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도 별수 없이 가인이를 따라서 극장 바깥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슬슬 내 눈에도 극장을 가득 채운 매캐한 연기가 보이고, 코를 찌르는 연기가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오늘은 기나긴 밤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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