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46)
145화 – 휴식과 재정비 (1)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74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지하, 스키장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내 몸이 스키장 슬로프를 고속으로 미끄러진다.
온 정신을 한 점으로 집중해서 전방을 주목했다. 순식간에 변하는 주변 풍광 속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바로 지금이다.
어깨춤의 깃털 문신이 살짝 달아오르며,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멱살을 잡고 집어던지기라도 한 것처럼 몸 전체가 땅기는 느낌과 함께 이동했다.
…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허공에 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으아아아아아악!”
— 쾅!
멀찍이서 눈으로 쌓인 바닥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키가 거의 2m는 되는 듯한 거한이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날 낚아챘다.
— 쿵! 풀썩!
지면에 충돌하는 충격의 상당 부분을 튼튼한 형이 받아준 덕에 나는 그다지 다치지 않고 착지할 수 있었다.
“아, 진짜 왜 이렇게 어렵지? 진철 형 고마워요. 형 아니면 이런 연습 -”
말하다가 약간 이상해서 형을 돌아봤다. 형은 어딘가 깊이 생각에 빠진 듯했다.
“형?”
“아, 별것 아니야. 그건 그렇고 그 ‘순간이동’이 제법 어려운 모양이지? 이틀 전부터 한 7, 8번은 본 것 같은데 거의 50% 확률로 이상한 장소로 움직이네.”
“죄송합니다.”
“합의하고 하는 연습인데 죄송할 건 없고, 그런데 꼭 스키 타면서 해야 하냐?”
“몇 번 해보니까 가만 서서 쓰는 건 쉬운데, 이동하면서 쓰면 어렵고, 빠르게 움직이면서 쓰면 더 어렵네요.”
“그러냐? 하기야 연습은 일부러 어렵게 할 필요는 있지.”
쉬이이익!
슬로프에서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유려한 동작으로 아리가 도착했다. 곧 송이와 엘레나도 도착했다.
아리는 오자마자 재밌다는 표정으로 지적했다.
“매번 실수가 나오는 장면을 보면 전후좌우는 대체로 정확한데, 자꾸 위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네?”
“그러게.”
“내 추측인데, 순간이동의 초점을 맞출 때 몸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걸 두려워해서 본능적으로 초점을 자꾸 위로 맞추는 것 아니야?”
“음….”
“말하자면 이런 느낌이야. 네가 최초 위치에서 이동하려는 방향을 정할 때, 땅속으로 들어갈까 봐 본능적으로 방향을 살짝 위로 올리는 것 같아. 너로선 잘 느끼지 못할 만큼 살짝 올렸지만, 그 비틀린 방향대로 10M 이상 움직이니까 도착지점 기준으론 오차가 엄청 커진 거지.”
“설득력 있는 분석이네.”
새삼스럽지만 이런 ‘초능력 사용’에 대한 경험이 나보다 많아서인지 아리는 꽤 그럴듯한 이론을 제시했다.
고민하던 중, 바닥에 떨어져서 구르며 눈으로 범벅이 된 내 머리카락과 옷을 털어내는 손길이 있었다.
뭔가 부드러운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뒤로 돌리자 자연스럽게 내 머리를 털던 엘레나가 보였다.
…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둘이 동시에 당황해서 한 걸음 물러섰다. 엘레나도 딱히 생각하고 한 행동은 아닌 것 같았다.
“앗, 눈이 너무 많이 묻어서 저도 모르게….”
“고, 고맙습니다.”
“…”
“…”
어색한 분위기. 다행히 아리가 침묵을 끊고 말을 이었다.
“매번 네 몸으로 순간이동 연습을 하는 건 꽤 위험해 보여. 매번 진철이가 네 근처에 있다가 구해줄 수도 없고. 페로의 몸을 빌려서 하는 건 어때? 하늘로 이동해도 그냥 퍼덕거리면서 내려오면 되잖아.”
그 말을 들은 송이는 입을 딱 벌리더니 페로에게 무언가 속삭였다.
— 삐이익!
“아아앗! 아아앗! 송이야~ 얘 좀 데려가!”
곧 매우 화난 앵무새가 아리의 머리카락을 뜯어내기 시작했고, 남은 사람들은 정신없이 웃으면서 스키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웃긴 것과 별개로 의미 없는 제안이었다.
순간이동 능력의 근원은 내 몸에 새겨진 문신이다.
빙의 상태로는 쓸 수 없다. 아리가 제안하기 전에 어제 이미 확인했다.
관문의 방을 통과하고 주어진 일주일의 휴식.
이미 1층에는 더 탐색할 장소도 없음이 아리의 축복으로 확인된 상태다 보니 우리는 그냥 여유롭게 쉬었다.
처음엔 2층이나 바로 열어주지 왜 일주일 후에 2층을 개방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했다.
2층을 미리 열어줬다면 우리는 쉬는 게 아니라 2층을 탐색하느라 시간을 쏟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호텔은 일부러 2층은 열어두지 않은 채 휴식 시간을 준 것 같다.
모두가 즐기고 싶은 시설로 이동했다.
‘퍼펙트 라이프’에서 엘레나의 마음에 숨겨져 있던 어둠을 알게 된 송이는 우리를 적극적으로 스키장으로 이끌었고, 첫날은 다 같이 스키장에서 보냈다.
물론 모두가 스키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절반 정도는 다음 날부터는 다른 시설로 떠났다.
이렇듯 모두가 원하는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2층을 대비했다.
하지만, 이 장소는 결국 호텔. 무수한 시련이 우리를 기다리는 장소.
결코 마음 편히 쉴 수는 없었다.
이 시기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과제가 있다.
*
“에취!”
“진철 오빠? 괜찮아요?”
“아, 괜찮다. 어떤 남자 놈을 구하느라 눈밭을 뒹굴었으니 기침이 나오는 거지.”
속으로 뜨끔했다.
“… 죄송합니다.”
“됐어! 밥이나 먹자. 그나저나 이 스키장은 처음 와보는데 특이하네. 구름이 산 전체를 감싼 느낌인데?”
송이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서 확인했다.
“구름 바깥엔 뭐가 있을까요?”
“의외로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지. ‘등산 방’처럼. 그 장소도 산에서 일정 범위 이상 멀어지면 시작 지점으로 돌아오던데 비슷할지도.”
그 정도 대화 후 스키장에 준비된 간단한 소시지나 핫바, 어묵 등을 먹기 시작했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됐다.
휴식이 시작된 이후 우리가 가장 자주 꺼내는 주제, ‘봉인’이다.
진철 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걱정되긴 한다. 가인이 이 녀석이 없으면 진행이 엄청나게 어렵겠는데.”
아리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맞아. 다른 능력도 아깝지만 제일 문제는 시나리오 이해야. 그 능력 없이 우리 진행할 수 있을까….”
다들 ‘나의 부재’를 걱정하는 모습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결국 나도 걱정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모두가 실패하기라도 하면, 나는 아무것도 못 한 채 죽는 것 아닌가!
“다들 힘내세요. 따지고 보면 저주의 방들은 시나리오 이해 없이 다 깨지 않았습니까.”
진철 형은 그 말에 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냥 무식하게 죽어가면서 깼지. 또 그런 식으로 해야겠구나.”
동료들과 나의 대화엔 한 가지 사실이 전제된 상태였다.
적어도 2층의 첫 번째 방에서 봉인 당할 사람은 무조건 나다.
유산 소유자이면서 유산을 제외하고도 강림이나 펜, 순간이동 등 각종 초능력과 도구를 얻은 상태. 심지어 축복도 가장 여러 차례 강화해서 ‘시나리오 이해’라는 강력한 힘을 얻었다.
아리의 1회차 호텔 파티처럼 유산만 2, 3개씩 얻었다는 사람과 비교할 바는 아니겠지만, 지금의 나 역시도 다른 사람에 비해선 과성장한 상태다.
아리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걱정만 하고 끝낼 문제는 아니야. 가인이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나름대로 성장을 도모해야 해.”
송이는 걱정스레 대답했다.
“일리는 있지만 방법이 있어? 2층은 앞으로도 5일 후에 열리잖아.”
“1층에 아직 남은 방이 있지.”
1층에 남아있는 마지막 저주의 방.
104호, ‘입시 명문 호텔고’.
그 방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호텔고를 꺼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주의 방이 여럿 남아있을 때야 가장 어려워서 피했지만, 지금에 와서 방 자체의 난이도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이미 호텔고보다 더 상위단계인 관문의 방까지 돌파하며 수많은 보상을 얻었다.
이미 밝혀진 호텔고의 위협 따위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구교사의 사교도들? 진철 형이 별을 쓰면 혼자서도 쓸어버릴 수 있다.
나도 마도서의 빙의를 잘 활용하면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대다수를 처치할 수 있다.
문제는 바로 ‘주’. 정확히는 ‘주’가 나에게 남긴 ‘강림’ 그 자체.
모두가 내심 걱정하던 부분을 솔직히 말해보기로 했다.
“다들 걱정하시는 부분은 ‘강림’ 때문에 제게 뭔가 이변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 아닙니까?”
아리는 바로 인정했다.
“맞아. 무슨 일이 생길지 정말 모르겠어. 최악의 경우, 네가 ‘하늘의 아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면서 아예 돌아설지도 모르지.”
“…”
“만약 빨간약이 남아있었다면 난 네게 빨간약을 먹이고 호텔고에 재진입하자고 제안했을 텐데…. 물론 페로가 이미 먹어버렸으니 의미 없어.”
송이가 약하게 항변했다.
“페로는 그걸 먹고 관문의 방에서 크게 활약했는걸.”
사실이라서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엘레나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답했다.
“정말 그런 일이 생긴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최악의 가능성을 이야기했을 뿐이야. 문제는 이 호텔은 가장 끔찍하고 불길한 가능성일수록 현실이 되곤 하는 장소라서. 혹시 조언으로 물어볼 수 있어?”
“이미 어제 물어봤어. 별 의미 없는 대답이 나왔어. 심사숙고해서 결정하래.”
“네 후원자 올빼미는 어떨 때 보면 페로보다도 도움이 안 되네.”
아리는 단지 막연한 감에 따른 추측이라는 투로 이야기했다.
…
하지만 나는 아리가 단순히 감으로 하는 말이 아님을 이해했다.
그냥 불확실한 이야기를 일일이 설명하기 싫어서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 역시 추론을 통해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강림의 정체. 이미 경험한 하늘의 아들이 가진 비인간적인 인격.
그리고 관문의 방을 진행하던 중, 올빼미가 무리수를 던지면서까지 전해준 조언.
호텔고에 진입하면 나는 ‘무언가 다른 존재’로 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어떻게 ‘주’만 다른 죄수들도 할 수 없던 이상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걸까?
그에겐 무언가 비밀이 있다.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답이 없는 고민을 머리 저편으로 치웠다.
비슷하게 답이 없는 대화라고 생각한 진철 형이 주제를 돌렸다.
“벌써 이 주제로 여러 번 토론하지 않았냐? 그리고 매번 포기했지. 아리 말대로 가인이가 ‘주’라는 놈 때문에 배신할 가능성이 문제라면, 지금처럼 가인이가 우리 중 가장 강한 상황에선 진입할 수 없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결국 원론으로 돌아왔다.
2층의 첫 번째 방에선 내가 봉인 당할 것임이 거의 확정적인 상황이다.
휴식 기간에 날 제외한 사람들이 성장할만한 수단이 무언가 있을까?
첫 번째 수단인 호텔고 진입은 다시 반려되었다.
일행 중 가장 강하게 성장한 내가 배신할 가능성이 있는 방이라는 추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게 사실일지는 진입해보기 전엔 장담할 수 없지만, 사실이라면 내가 봉인 당할 2층보다도 끔찍하다.
그렇다면 두 번째 수단은 무엇인가?
이미 어제저녁, 묵성 할아버지가 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같은 생각을 한 엘레나가 입을 열었다.
“역시 은솔 언니의 원숭이 손을 한 번 더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예전의 악몽 나비 이벤트 정도면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니까요.”
아리가 지적했다.
“엘레나, 원숭이 손이 아니고 ‘탐욕의 손’이야.”
“아차차!”
능력의 주인에겐 전혀 페널티 없이 보답만 가져다준다는 ‘탐욕의 손’.
정작 은솔 누나는 탐욕의 손의 그런 이기적인 특징 때문에 사용하기를 꺼렸지만, 탐욕의 손은 보기보다 대단히 유용하다는 게 모두의 판단이다.
호텔에서 성장 수단은 생각보다 제한되어있다.
노가다를 장려하는 게임들처럼 사냥터에서 하염없이 사냥한다고 끝없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파밍 가능한 장소는 사실상 저주의 방뿐이고, 저주의 방은 해결과 동시에 소멸한다.
이렇듯, 성장 수단 자체가 제한된 장소에서 ‘탐욕의 손’은 사실상 ‘미니 사냥터’를 주기적으로 만들어주는 능력이나 다름없다.
이 정도에서 스키장의 간략한 회의도 끝났다.
*
– 한가인
스키장을 나와 호텔 1층으로 돌아왔다.
저녁 시간이 되어서인지 다른 장소에서 쉬던 사람들도 하나둘 105호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볍게 재회를 반기며 105호로 진입하자마자 모두가 순간적으로 말문을 잃었다.
입구 근처에 놓인 거대한 방호복.
대체 저 물건을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방호복을 얻은 당일부터 세면 벌써 3일째다.
3일 동안 방호복은 우리를 눈뜬장님으로 만들었다.
거의 사람만 한 크기의 옷이 ‘날 좀 어떻게 해봐’라고 말하는 중인데도, 다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지나쳤다. 누가 실수로 건드리기라도 하면 전원이 움찔거렸다.
방호복의 문제는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도검불침(刀劍不侵), 수화불침(水火不侵)!
저 옷은 단순한 탈출 도구가 아니라 너무나 유용한 갑옷이다.
언제까지나 이런 식으로 회피할 수 없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잊지 않기 위해서 저 물건을 방 입구에 배치했다.
“잠깐! 주목!”
방호복을 얻은 지 3일 차.
마침내 아리가 총대를 메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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