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49)
148화 – 휴식과 재정비 (4)
– 이은솔
— 띠리링! 띠리링!
…탁!
아침이구나.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서서 가볍게 씻었다.
가볍게 세안하고 머리를 감다 보니 머리카락이 몇 가닥 떨어졌다.
세 가닥의 머리카락이 천천히 나선으로 회전하며 대기의 와류에 흐느적대며 욕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슬로우 모션처럼 뇌리에 박혔다.
세면대에서 안면에 로션을 바르자, 이번엔 피부에 올올히 박혀있는 모공에 로션이 스며드는 –
“아! 좀 적당히 하자. 이런 것까지 봐야 해?”
말해봐야 소용없다. 누가 강제로 내게 보여주는 게 아니니까. 지나치게 성능이 올라간 내 눈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상은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거울을 돌아봤다.
평생 나를 위해 일해왔던 왼쪽의 평범한 눈.
그 눈과 너무나 대비되는, 최소 30%는 더 커 보이는 우측의 흉안.
동공이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위, 왼쪽 아래, 오른쪽 아래에 박힌 3개의 점이 마치 작은 렌즈처럼 쉴새 없이 초점을 바꿔가며 세상의 정보를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샤워하면서 욕실에 찬 수증기가 한 방울의 물로 변하며 거울에 맺히는 장면이 천천히 시야에 잡혔다.
떨어지는 물방울의 요동을 보다가 욕실 밖으로 나섰다.
벌써 휴식 5일째네. 상인으로부터 이 눈을 얻은 지도 이틀이 지났다.
처음에는 7일이나 휴식을 준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는데, 이제는 며칠 더 줬으면 좋겠다 싶다.
내 방 밖으로 나오자 이미 나와 있던 동료 몇몇이 있었다.
“은솔 누나! 안녕히 주무셨어요?”
“좋은 아침!”
가볍게 인사를 하며 고개를 돌렸다.
승엽이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흠칫거리는 게 느껴졌다.
새삼스레 섭섭하거나 하진 않았다.
나도 아직 거울을 보고 내 눈을 볼 때마다 놀라는데, 동료들이라 한들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애초에 평범한 눈보다 30%는 큰 눈이다.
평범한 사람의 두개골엔 이런 눈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따라서 눈을 얻은 다음 날 아침, 나는 호텔의 의사(아마도)가 머리에 아주 엄청난 대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식사 시간이 다가오자 다른 동료들도 하나둘 105호 식탁 인근으로 모였다.
다들 잠시 흠칫거리면서도 곧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밝게 웃는 가인이의 뺨에 mm 단위의 실 같은 상처가 보인다. 뭔가에 긁혔을까?
페로의 부리를 잡아당기는 송이의 모공 하나하나가 보였다. 아침에 너무 뜨거운 물로 씻었구나.
식사를 기대하는 엘레나가 계속 가인이와의 사이에 투명한 벽이 있는 것처럼 행동함이 느껴졌다. 관문의 방에서 나온 이후로는 계속 저런 느낌. 나름대로 서로 재미난 일이 있었나 보다.
옆에서 하품하는 묵성 할아버지의 신비한 오른팔에서 비늘이 하나 떨어졌다.
그리고 어제부터 느낀 진철이의 기이한 행동.
… 너무 많이 봤구나. 슬슬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내 오른쪽 눈은 초월적인 성능을 가지고 있지만, 뇌는 평범한 인간의 것이다.
사람의 뇌는 이렇게 과도한 시각 정보를 끝없이 해석해낼 능력이 없다.
결국 잠시 안대로 눈을 가린 채로 벽에 기대어 생각했다.
나쁘지 않네.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진짜 눈을 잃었고, 외견은 다소 흉측해졌고, 만성적인 두통을 얻었다.
하지만, 나는 초인의 시야를 얻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이 내 마음을 가득 메웠다.
*
– 이은솔
식사가 끝나고 최근 항상 그랬듯이 다들 각자 놀고 싶은 장소로 떠났다.
나는 그놈의 사파리로 또 가려는 것 같은 진철이를 붙잡았다.
“진철아.”
“어? 누님?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잠깐 나 좀 따라와. 물어볼 게 있어.”
잠시 후, 칵테일바에서 간단한 마실 거리를 준비했다.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있던 진철이는 또 이상행동을 시작했다.
허공의 무언가에 초점을 맞춘 듯한 눈동자.
무언가 본인에게만 보이는 것을 좇는 안구의 움직임.
두려움이라도 느끼는지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피부.
불과 얼마 전까지 눈치채지 못했던 변화들이다. 진철이는 본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엄살 부리는 성격이 아니라 그냥 숨긴 듯하지만, 어리석은 태도.
이 장소에서 본인에게 생긴 이변을 숨기는 건 상남자다운 행동이 아니라 멍청한 행동이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 허공에 유령이라도 떠다녀?”
“아…. 눈치채셨습니까?”
“새로운 눈을 얻은 다음에 알았어.”
진철은 잠시 숨을 고르며 칵테일을 마시기 시작했다.
짐작이 가는 바는 있다. 관문의 방, 마녀의 처리 과정에서 생겼던 문제.
가인이가 경고했었지. 본인의 모종의 수단으로 마녀를 처리했지만, 차진철이 죽지 않는 한 마녀는 결코 완벽히 소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진철이에게도 전달했다.
침묵이 잠시 지나간 후, 진철이가 결국 입을 열었다.
“처음 느낀 건 관문의 방에서 나왔을 때였습니다. 유령인지, 그림자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여기저기 휙휙 날아다녔죠. 호텔에 무슨 이상이 생겼나? 했는데, 그 이상한 존재는 제 눈에만 보이더군요.”
“그런 것 같아. 지금 내 눈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마도 마녀의 영혼 같은 게 아닐까요?”
“아니라고 봐. 지금 내 눈은 호텔 설명에 따르면 불가시의 존재도 볼 수 있다고 하니까. 설령 유령이라 해도 어설프게 볼 수 있을 거야. 그런데도 내 눈이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유령조차도 아니고 순수하게 진철이 네가 보는 환상이라는 의미 아닐까?”
“아무래도 좋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 환상이 점점 뚜렷해진다는 거죠.”
“뚜렷해진다?”
“네. 최근에 의식한 건 이틀 전, 스키장에서였습니다. 순간이동 연습하던 가인이를 낚아채려고 허공으로 크게 뛰었는데, 땅으로 내려오다가 사람의 얼굴 비슷한 형상을 봤죠. 그 전엔 흐느적거리는 그림자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어때?”
“비슷합니다. 슬슬 사람의 형상처럼 보입니다. 아직 누구라고 알아볼 정도는 아니고.”
“마녀의 흔적이 환상으로 남은 건가….”
“어떤 묘안이 있으십니까?”
“미안. 이런 초자연적인 일에 대해선 잘 몰라. 관리국 팀에 물어보는 게 어때?”
“이미 물어봤습니다. 할배는 이런 때는 도움이 되지 않더군요. 자기도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
“그냥 기다려볼 셈입니다. 점점 형상이 명확해지다 보면 언젠가 저와 대화할 수 있는 시기도 오겠죠. 그때가 되면 대체 바라는 게 뭐냐고 물어봐야겠습니다.”
실체도 아니고, 유령도 아니고, 오직 차진철의 뇌에 남은 흔적으로 인해 차진철의 눈에만 보이는 흐릿한 환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진철이 말대로 기다리는 것 말고 다른 대응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따가 가인이가 오면 조언 한번 써달라고 부탁은 해봐.”
“별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여태 느끼기로 그 조언이라는 건 저주의 방 밖으로 나오면 그냥 도와주는 시늉만 하는 느낌이라.”
“애초에 가인이 말에 따르면, 올빼미는 우리를 도와주길 바라지 않는다며? 관심이 있는 건 한가인뿐. 그러니까 가인이가 ‘우리를 위한’ 조언을 구하면 시큰둥한 답을 줄 수밖에 없지.”
“그렇죠.”
“당장 도와줄 방법은 없지만, 앞으로도 이상 현상이 생기면 꼭 이야기해. 너는 직접 만나본 적이 없겠지만, 그 마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광기로 가득 차 있던 존재였지.”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슬슬 다른 사람들 불러오자. 슬슬 휴가도 끝나가는데, ‘그 주제’를 말해볼 때가 됐잖아?”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바에서 일어선 진철이는 돌아서려다가 한 가지를 질문했다.
“애들은 불러올 필요 없죠?”
나는 살짝 웃음으로 답했다. 역시, 이 녀석도 눈치가 나쁘진 않아.
내가 장소를 칵테일바로 정한 의미를 바로 이해했다.
*
– 한가인
오라는 말을 듣고 칵테일 바에 도착했다.
승엽이와 아리를 제외한 동료들 전원이 모였다.
바로 묵직한 대화로 넘어가기 부담스럽기 때문일까?
은솔 누나는 다양한 종류의 칵테일을 여러 잔 만들어 우리에게 한 잔씩 나눠줬다.
내게 넘어온 잔의 칵테일은 깔루아와 럼과 콜라를 섞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
아직 술맛은 잘 모르겠다. 소신 발언을 해봤다.
“누나.”
“응? 맛있어?”
“콜라에 이것 저것 섞어서 어설프게 콜라를 흉내 낸 칵테일을 만들기보다 그냥 콜라를 마시는 쪽이 더 좋지 않을까요? 그냥 짝퉁 콜라 같은 맛이 나는 -”
— 탁!
한 대 맞았다. 누나는 너에겐 다시는 칵테일 만들어주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떠났다.
하지만 솔직히 콜라에 뭔가 잡스러운 술을 섞은 것보다 그냥 콜라가 맛있다는 게 내 소신이다.
여하튼, 모인 구성원을 보자마자 우리는 오늘의 대화 주제가 뭔지 즉시 이해했다.
반드시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부활’에 대해 의견을 나눠 볼 시간이다.
슬슬 분위기가 풀렸다고 생각했는지 누나가 먼저 말문을 텄다.
“짐작했겠지만, 오늘은 누굴 부활시킬지 한번 이야기해보자고 모았어. 오늘 딱 정하려는 건 아니야. 애초에 티켓만으로는 부활시킬 수 없잖아? 부활의 방이라는 장소를 찾아야 하지. 그 장소를 찾은 후에 다시 한번 의견을 모아볼 거야. 다만, 사전에 한번 생각을 정리해보자는 취지로 모였어.”
엘레나가 질문했다.
“아리를 빼고 모인 건 아리의 답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겠죠?”
“그렇지.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이 토론을 합리적으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은 뺐어. 아리는 본인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라 합리성을 유지할 수 없고, 승엽이는 어리기도 하지만 무조건 아리 편을 들려고 할 것 같아서.”
듣다 보니 한숨이 나왔다. 승엽아….
“우선 지금껏 모인 부활 후보를 정리해보자. 1. 아리의 어머님이신 미로 2. 가인이를 치료해줬던 의사 김상현 3. 송이를 도와줬던 외계인 에스타비오 4. 관문의 방에서 승엽이를 도와준 특수부대 군인 차승진.”
“그동안 제법 많은 사람을 만난 것 같은데, 막상 부활 후보라 할만한 사람은 아직 많지 않네요.”
“아직은 그렇지. 하지만 이후에 더 만날 수도 있고, 우리가 이미 만난 사람 중 부활 후보가 사실 더 있었을지도 몰라. 명확한 사람들부터 골랐어.”
듣고 있던 진철 형이 입을 열었다.
“내 의견부터 말해보겠습니다. 난 애초에 한 장뿐인 티켓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쓰자는 전제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중 누군가가 영구적으로 사망했을 때도 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맞아.”
“그러니까 난 애초에 누님이 언급한 후보 그 누구에게도 쓰고 싶지 않습니다. 아리에겐 미안하지만, 내게는 지금 호텔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 중요합니다.”
“그냥 아껴두고 우리 중 탈락자가 나왔을 때 쓰자. 이해해. 한 가지 중요한 의견으로 고려하도록 하자.”
누나는 진철 형의 의견을 화이트보드에 적은 후, 다른 사람들을 돌아봤다.
“너희 생각은 어때?”
나도 가만 생각을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티켓을 누군가에게 쓴다면 누굴 살려야 할까? 부활의 대상을 고를 때 고려해야 할 요소가 어떤 것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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