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5)
14화 – 의술의 신
14화
아득하다.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걸까.
앞이 보이지 않는다. 몸 전체에서 아무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몸은 사라졌는데, 허공에 의식만 붕붕 떠있으면 이런 느낌인가…
어딘가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들리십니까? 들리시길 바랍니다. 절반 정도는 고쳤거든요.
팔이 작살나긴 했는데, 사실 팔은 별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위, 소장, 간, 대장. 전부 다 파열됐거든요.”
탁 탁 탁
“사실, 바깥세상에서 이런 환자가 오면 보통 배 열었다가 그냥 닫습니다.
이런 것을 고칠 수 있으면 사람이 아니라 의학의 신인거죠.
그런 의미에서, 내가 반은 의술의 신이다. 그겁니다.”
“어릴 때부터 제가 공부 좀 기가 막히게 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집안의 자랑이었죠.
의대 탁 붙고, 그 안에서도 성적 탁 뽑고! 아버지는 누구 만날 때마다 제 자랑 하시느라 바빴고,
어머니는 제 이야기 할때마다 당당해지고 동네 아줌마들 부러움을 다 사셨죠.
아아… 두 분 다 잘 계셔야 할텐데”
“그래도, 뭐 다른 방향으로 꿈은 이뤘네요.
의사가 되기도 했고, 그 덕에 패배자이면서도 이런식으로나마 살고는 있고, 반은 의술의 신이 됬습니다.”
찌이이익, 쩌어어억,
“하하, 이 와중에 자기자랑이라니. 저도 참 어지간하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만난게 너무 오랜만이에요. 이해해 주시죠.”
“아프진 않으시죠? 아예 통각 정도가 아니라 신경계를 전부 차단했습니다.
이게… 사실 인간세상 의술로 고칠 상처가 아니라서 사실상 몸을 다시 만드는 수준이거든요.”
“제 말이 들리시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제가 마음대로 지껄이는데 별 제지가 없는걸 보면, 아마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시진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이제 8할은 끝나갑니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데, 제 말이 너무 잘 들리고, 기억에도 잘 남아서 나중에 일어난 후에 당황하실겁니다.
놀라지 마세요. 나름대로… 꼼수를 썼습니다. 헛, 이제 좀 제지가 걸리기 시작하는군요. 슬슬 정신이 깨어나시는가 봅니다.”
“이 호텔은… 아주 오랜 세월 운영해 왔습니다.
수많은 도전자들이 시련을 거쳤고, 극소수는 인세에서 얻을 수 없는 영광을 얻었으나…
거의 모든 이는 지옥에 떨어졌죠. 저는 그 말로중 하나입니다. 말하자면, NPC가 된거죠. 제물이나 마루타가 아닌 게 다행입니다.”
“딱 하나… 딱 하나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저도 꼼수까지 썼습니다.
언젠가… 부활의 방에서 기회를 얻으신다면, 혹은 부처님을 뵙게 된다면… 제발 잊지 말아 주십시오.
전 김상현입니다. 저는… 아주 쓸모가 많습니다. 치료에도 자신이 있고, 머리 쓰는데도 자신이 있습니다.
이 지옥에서 경험도 많이 쌓았습니다.”
“아아… 이제 더 이상 대화가 허용되지 않는군요… 곧 정신이 드실 모양입니다…
부디 영광을 얻으시길, 그리고 제 이름, ‘김상현’을 기억해주시길 간절히 빕니다.”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5일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3]
정신이 들었다.
눈을 뜸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상태창을 살폈다.
5일차. 분명, 수영장은 3일차에 갔었지… 말 그대로 4일차라는 시간이 훅 사라졌다.
하루 종일 기절해 있었구나.
하루가 날아가서 놀란게 아니고, ‘겨우 하루’만 날아간 것이 놀라웠다.
내가 의학은 모른다지만, 그냥 시체 직전까지 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런 상처를 입고 ‘겨우 하루만에’ 깨어난걸까.
심지어, 별 다른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몸에 그 어떤 붕대도 보이지 않고, 수술자국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화.
잠들어있는 중에 들었던 말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반은 의술의 신이 됐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구나. ‘김상현’ 그 이름도 기억했다.
어찌 됐든 생명의 은인이 아닌가.
‘부활의 방’, ‘부처님을 뵙다’, ‘NPC’
셋 다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본인 말대로라면 호텔에서의 ‘패배자’.
그런데도 나에게 그런 부탁을 했다는 건…
이 호텔은, 패배자에게도 일종의 ‘패자부활전’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당장은 아무 의미가 없다. 애초에 부활이고 부처고 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신기할 정도로 멀쩡한 몸의 상태를 느끼며 일어서서 시계를 보자, 7시 40분.
7시에 식사를 시작했을 테니, 아직 아침식사 시간이 끝나지 않았다.
모두를 만나기 위해 식당을 향했다.
“!!!”
“너 이자식!”
“가, 가, 가인 오빠!”
순간적으로 요란한 반응들.
다들 놀라서 표정관리가 안되는가 싶더니, 곧이어 걱정섞인 외침이 터진다.
“너너너 이 새끼 어떻게 벌써 일어난거냐? 아니 임마 아프면 그냥 더 누워있어!”
“진짜, 일어났다고 알리러 온거면 봤으니까 빨리 가서 도로 누워라.
무슨 절대안정 이런거 필요한거 아니야?”
침착하게, 몸상태는 신기할 정도로 완벽하다고 알렸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진짜로… 진짜로 괜찮아요. 이거 보세요?”
잠시, 뜬금없이 체조에 물구나무서기까지 하자(이 대목에서 다들 눈이 동그래졌다)
그제서야 다소 안심한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너… 진짜 괜찮은거냐.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내가… 니 팔이 고무줄처럼 펄렁거리던걸 다 봤는데 그 팔이 대체 어떻게 이렇게?”
“일단, 여러분이 보시기엔 제게 무슨 일이 있던건지부터 들려주시죠.”
“무슨 일이라 해봐야… 그냥 얻그제 널 업고 105호에 들어갔다. 사실 고민을 좀 했어.
식사시간 말고는 우리가 다 분리가 되니까, 다짜고짜 들어가면 다 죽어가는 너 혼자 남는거니까.
그래서 식사시간까지 기다렸다 들어가서 침대에 눕히자는 의견도 있었지.”
“내가 기각했어. 아무리 봐도, 식사시간까지 니가 살아있을 꼬라지가 아니었거든.
그런데 니가 기절하면서 105 105 하길래, 뭐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고 그냥 바로 다같이 들어갔다.
역시나, 들어가자마자 다 같이 다른 공간에 나눠져서 가인이 네가 보이지도 않게 됐지.”
“식사시간 되자마자 제가 침실에 들어갔는데, 오빠가 없었어요. 원래 식사시간 되면 다 서로 보여야 되는데.”
“그래서, 전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했답니다.
가인씨가 바닥에 누워있기라도 하면 그거야말로 최악이지만, 그게 아니고 어디론가 사라졌다는건,
호텔이 어떤식으로든 뭔가 하고있다는 의미로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오늘 아침 되서야 니가 침실에서 딱 나온거다.
좀전에 우리가 식당으로 올때만 해도 없었는데, 그 사이에 나타난 모양이지”
다들 자기 의견을 정신없이 말해서 혼란스러웠다.
내용은 간단했다. 3일차에 다 죽어가는 날 업고 105호에 진입하자마자 내가 사라졌다는것.
그리고 하루 꼬박 안보이다가 오늘 오전에 이렇게 갑자기 식당으로 들어왔다는것.
3일차 오후부터, 5일차 오전.
대략 40시간 정도 될까? 그 시간동안 ‘의사’가 날 고친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도 알게 된 사실을 전달했다.
기절 직전에 ‘현자의 조언’이 105호로 가라고 했다는 사실,
잠들어있는동안 ‘의사’가 정체불명의 방법으로 나에게 밀어넣은 정보들.
부활, 부처, npc 등.
“신기한… 이야기구만. 물론 여기서 신기하지 않은 건 한개도 없긴 하지만”
“부활이라니… 그런 말도 안되는게 진짜 가능한건가요? 하나님도 아니고.”
“엘레나도 참, 이제 와서 새삼 놀라? 저번에 101호, 아니 그 이야기 안하기로 했지만, 거기서도 이미 부활 비슷한 거 다들 겪지 않았어?”
“그러게요… 여기선, 정말이지 모든 게 다 가능 한가봐요.”
“‘김상현’ 이라. 다 같이 대충 기억해두자. 대체 언제 그 이름이 의미가 있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가인형. 형 잠들어있는 사이에, 사실 호텔 안내문이 좀 바뀌었어요.”
“응?”
/호텔 파이오니어에 모이신 고객분들 환영합니다!
몇 가지 안내사항이 있으니 참조해주세요. 안내사항은 추가될 수 있으며, 호텔의 디스플레이에서 언제든지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1. 호텔 파이온은 언제나 고객 분들을 사랑합니다.
– 호텔의 직원들은 부끄러움을 타기 때문에 고객님들이 보지 않으실 때 성실하게 일합니다.
2.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으니 유념 바랍니다.
3. 호텔은 언제나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지켜드립니다. 다만, 식사는 함께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식사시간은 꼭 지켜주세요.
4. 객실에는 종종 그다지 깔끔하지 못한 선객이 있곤 합니다. 가능하면 다 함께 들어가 주세요. 한분만 나오실 수 있다면 모두에게 큰 문제는 없습니다.
5. 고객 여러분이 지루해 보이실 때, 점점 특별한 이벤트가 늘어납니다. 아무래도, 지루함을 잊기에는 이벤트가 최고 아니겠습니까?/
“3번… 까지는 봤던 이야기네요.
1번은 우리가 안볼때 음식준비든 뭐든 이루어질거다,
2번은 엘리베이터 고장났다, 3번은 105호에선 식사시간 말고는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고…
4번도 알겠네요. ‘저주의 방’에선 단 한명만 탈출하더라도 전원이 살아나온다는 말이었죠.
5번은… 저거 설마?”
“뭐, 놀고먹지 말라는거지. 너네 일 안하고 놀고먹기 시작하면,
‘지루해 보이니까’ 얻그제처럼 여기저기서 괴물을 퍼부어주겠다. 이런 협박이다.”
“생각해보면, 괴물이 갑자기 튀어나온 건 1일차와 3일차였어요. 그 두 날의 공통점은…”
“‘저주의 방’에 들어가지 않은 날.”
“맞아요. ‘저주의 방’에 들어간 2일차는 괴물이 나오지 않았어요. 아 어제, 4일차 때도 아무것도 안 나오긴 했지만 그건 아마…”
“한명이 반 죽어서 회복중이니, 오늘은 봐 준다 느낌이었겠지”
“그러면, 이제 제가 회복을 했으니…”
“당장 오늘, 아니면 늦어도 내일은 다시 그놈의 ‘보물찾기’를 시작해야 된다. 안 그러면, 모르지. 이번엔 침대에서 자는 중에 괴물이 나와서 썰어댈지도”
“가인이 너 그 호텔 정보 나오는 것 확인 좀 해봐라”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5일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휴식의 방)
계층 정보(*)
101호(저주의 방 – 기묘한 가족)
102호(???)
103호(???)
104호(???)
105호(휴식의 방)
106호(???)
107호(???)
현자의 조언 : 3]
101호와 105호 말고는 여전히 ???로 차있음을 알렸다.
101호. 이제 와서 보니 방 이름부터가 ‘기묘한 가족’ 이었구나.
101호 들어가자마자 봤던것 같긴 하지만, 새삼 다시 봐도 헛웃음 나오는 이름이다.
이해를 위한 침묵이 감돌고, 이윽고 은솔누나의 입이 열렸다.
“그러면 뭐, 다음은 102호 가야겠네. 어차피 갈거라면 빨리 가는 게 나을 것 같긴 하다.
이 놈의 호텔은 우리가 쉬는 꼴을 못 보니까. 어제 가인이 없어서 하루 쉰 것도 호텔 기준으론 참아준 것일지도 모르지…
가인이 너는, 괜찮니?”
잠시 몸 상태를 확인했다.
몸 상태는, 정말이지 괜찮았다.
오히려 호텔에 막 도착한 첫날보다도 더 좋다고 느껴질 정도.
어차피 더 쉬어봤자 괴물이나 나올게 뻔 한 상황…
“괜찮습니다. 저는… 그냥 식사 하고, 오늘 바로 102호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식사 하자마자 대충 챙겨서 102호로 가기로 했다.
102호는… 제발 101호의 지옥보다는 견딜 만 한 게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