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55)
154화 – 201호, 저주의 방 – ‘□ □□’ (3)
– 김아리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승엽이가 자신 없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또 제가 다음 경로 고를까요? 한번 틀렸는데. 액티브 써볼까요? 쓸 수 있는 상태에요.”
“이제부터는 그 액티브는 ‘천운’이라고 하자. 천운은 쓰지 마. 쿨타임 엄청 길잖아.”
묵성도 같은 견해였다.
“천운? 네이밍 센스도 참…. 여하튼, 승엽이 네 천운은 말이 좋아 액티브 스킬이지, 자동으로 작동하는 스킬 아니냐? 꼭 필요한 순간엔 알아서 발동하잖아. 기묘한 가족 때는 저절로 쓰였고, 호텔고에선 쓰는 게 어떠냐는 알림이 떴지. 그냥 기다려라. 필요하면 알아서 써지겠지.”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이제부터 ‘천운’이라고 부르기로 한 행운의 액티브 스킬은 가만 보면 액티브 스킬이 아니다.
위기다 싶으면 저절로 써지고, 필요하다 싶으면 써보는 게 어떠냐고 소유자에게 권유까지 하는 희한한 스킬.
심지어 쿨타임도 제멋대로다. 굉장히 긴 건 확실한데,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승엽이 본인도 몰랐다.
내가 느끼기엔 매번 달라지는 듯했다.
새삼스럽지만 행운은 모두의 축복 중에서도 가장 알기 어려운 축복이다.
결국 승엽이가 다시 한번 다음 경로를 찍었다. 이번엔 후문.
엘리자베스를 불러서 함께 후문으로 이동했다.
네 번째 저택을 향해 출발했다.
지하 통로를 걷던 중, 송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뒤늦은 이야기지만, 페로는 어디 있을까요?”
바로 옆을 걷던 묵성이 대화창을 쓰라는 의미로 툭 치자, 그제야 송이는 입을 다물었다.
… 솔직히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저 여자, 엘리자베스가 저능아가 아니라면 지금쯤 우리가 무언가 숨기고 있고, 우리끼리만 소통할 수단이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잠깐 사이 드러낸 파티의 힘만 살펴봐도 묵성의 장갑, 진철의 별이 있다.
외부에서 보기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마음이라도 통한 듯이 행동 중인 것도 이상해 보이겠지.
그런데도 엘리자베스는 한 번도 추궁하지 않았다.
…
뒤에서 쏠까?
우리가 그렇듯이, 저 여자도 전신 방탄복에 헬멧까지 장착한 상태라 즉사시킬 수는 없다.
전투력이 있는 요원이니 저항하겠지. 하지만 이쪽엔 차진철이 있다.
진심으로 지금 저 여자를 죽이는 게 어떤가 생각이 들었다.
살짝 총구를 움직여서 엘리자베스 쪽으로 –
이은솔 : 아리, stop.
김아리 : 수상함.
이은솔 : 무슨 의미?
김묵성 : 진정!
조금 더 지켜보자. 저주의 방은 기본적으로 여러 차례 시도해서 깨는 구조 아니던가?
위험해 보인다고 바로 제거하기보다, 지켜보면서 비밀이 뭔지 알아낼 필요도 있다.
또 다른 걱정도 들었다.
우리도 이렇게 다채로운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설정’인데, 저 여자는 정말 평범한 인간일까?
관리국 요원인 이상 저 여자의 전투력에 대해서도 방심할 수 없다.
다소 긴장을 풀었다. 아까 송이가 언급한 주제가 대화창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다.
김묵성 : 처음부터 페로 x.
유송이 : 이런 일 처음임.
박승엽 : 가인 형처럼 다른 곳?
김아리 : 위치 자체가 떡밥?
— 털컥!
맨 앞에서 나아가던 엘리자베스가 네 번째 저택의 문을 열었다.
다시금 긴장감이 감돌고, 대화창도 멈췄다.
페로는 지금 어디 있는 걸까?
*
세 번째 저택까지 경험한 후, 우리는 이 시련에 관한 가설을 세웠다.
일종의 ‘틀린 그림 찾기’가 진행 중이라는 것.
반복되는 저택들은 각기 한 개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 차이점에는 반드시 괴물이 숨어 있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 공격해온다.
때문에, 네 번째 저택의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우린 그야말로 눈에 불을 켜고 샅샅이 뒤졌다.
앞에 세 번은 뭐가 뭔지 아예 몰라서 무력하게 당했지만, 이번엔 대응 전략이 있었기 때문에 상황이 바뀌었다.
강력한 눈의 소유자, 은솔은 순식간에 차이점을 발견했다.
“저쪽! 거실의 나무! 품종이 달라졌어.”
엘레나를 잃었을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지.
즉시 묵성과 진철이 나무에 총을 쐈다.
— 탕! 탕! 탕! 탕!
4, 5발이 연달아 박히자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나무가 마치 동물처럼 피를 흘리는가 싶더니, 나무가 바닥에 스며들며 사라졌다.
…
그 후, 네 번째 저택에선 더 이상 특별한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드디어 한 가지 올바른 대응법을 알아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은솔은 대화창으로 지시했다.
이은솔 : 승엽. 다음 방.
박승엽 : 고르는 방마다 괴물이 나와요. 그냥 저 말고 다른 분이 고르시면 안 될까요?
이은솔 : 활자 절약. 아무도 네 탓 안 함. 그냥 골라.
정말이다.
이 상황에서 승엽이가 고른 방에서 괴물이 나왔다고 원망할 만큼 모자란 사람은 우리 중 없다.
어차피 어떻게 골라야 할지 몰라서 찍어야 하는 판인데, 다른 사람이 찍는다고 더 나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자신이 고른 방에서 괴물이 연달아 나오자 승엽이는 멘탈이 굉장히 흔들리는 듯했다.
“자! 다들 이쪽으로!”
난데없이 엘리자베스의 여자 치고는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엘리자베스가 후문을 열고 있었다.
당황한 차진철이 가서 설득했다.
“팀장님, 잠시 기다려보시죠. 어디로 갈지는 좀 더 상의해보고 -”
“상의? 그동안 상의라는 걸 한 적은 있었나? 그냥 어린애가 계속 고르던데? 그리고 들어가는 방마다 괴물이 나오는 중이지.”
순간 모두가 말문이 막혔다.
우리끼리야 대화 창으로 의견을 나눴지만, 엘리자베스가 보기엔 다들 말없이 있다가 어린애가 고르는 방향으로 따라가는 기묘한 광경으로 보였겠지.
엘리자베스가 믿을 만한 사람이고, 상황이 평온했다면 저 여자의 말도 경청했겠지.
솔직히 지금 그럴 여유는 없다.
김아리 : 꺼림직함. 엘리자베스 여기서 죽이자.
차진철 : 갑자기?
김묵성 : 너답지 않게 충동적인 판단.
이은솔 : 아까부터 왜 그래?
유송이 : 캄 다운.
다들 반대하네. 송이 쟤는 잘 쓰지도 못하는 영어 쓰기는!
살짝 한숨이 나왔다. 다들 왜 반대하는지는 알겠다.
내가 저 여자를 수상하게 느끼는 근거는 자꾸 독자 행동을 한다, 우리의 초능력을 보고도 별 반응이 없다 정도다.
독자 행동이야 본인 나름대로 수색했을 따름이라고 볼 수 있고, 초능력을 보고 별 반응이 없는 건 관리국 요원임을 고려하면 딱히 특이한 것도 아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엘리자베스가 다른 의견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죽이겠다는 내가 이상해 보이는 게 당연하다.
내가 엘리자베스를 계속 의심하는 이유는….
내 직감이라고 직감!
이런 악마적인 이벤트에 대한 짬만 따지면 너희들 경험 다 합쳐도 나보다 적어!
경험 많은 경찰은 길가는 행인의 행동거지만 봐도 수상쩍음을 느끼곤 한다.
이와 같은 이치로 아까부터 내 본능은 저 여자의 수상함을 경고해왔다.
마침, 엘리자베스는 우리 사이의 미묘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타협의 여지를 주는 발언을 했다.
“다른 루트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의견을 내봐. 정상적으로 의견을 나눠보자고. 자꾸 어린애가 마음대로 고르게 하지 말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우리도 딱히 논리적인 추론으로 길을 정하고 있던 상황이 아니라 설득할만한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또, 어찌 됐든 승엽이가 고르는 방에서 연달아 괴물이 나온 건 사실이다.
다른 방식을 찾아보자는 생각을 다들 하는 듯하다.
조금 이상하다.
아무리 천운을 쓴 건 아니라 해도,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6이 나오는 묘기를 자랑스럽게 부리는 승엽이가 아닌가?
물론 그때도 매번 6이 나오진 않았다. 결국 확률의 문제니까.
하지만, 어찌 됐든 운이 좋은 것은 확실한데 두 번 연속 오답이 나오니까 좀 의아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미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라 축복이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어쩌면 승엽이는 정답을 찍고 있는 게 아닐까?
고르는 방마다 괴물이 있으니까 오답을 찍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틀린 건 아닐까?
다시금 머리가 복잡해졌다.
후문을 통해 이제는 익숙한 지하 통로를 걸어서 다음 저택으로 향했다.
통로의 끝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다음 저택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문을 열었고 –
“병신 새끼들.”
그 즉시, 엘리자베스가 투명해지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으아악! 대체 뭐죠?”
“뭐긴 뭐야! 내가 저년 죽이자고 했잖아아아아!”
욕을 더 할 틈도 없었다.
문 건너편엔 그간 봤던 저택이 아니라 그냥 엄청 넓은 하얀 공간이 있었고, 중앙엔 엄청난 크기의 고릴라가 있었다.
— 그라라라라라!
천지를 뒤흔드는 고성!
이 방은 ‘꽝’이다. 승엽이는 여태껏 ‘꽝’을 피하고 있었다!
고릴라가 엄청난 속도로 우릴 향해 달려왔다.
— 탕! 타타타타타타탕!
순식간에 모두가 사방으로 정신없이 뛰는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오고, 팔찌에선 섬광이 터졌다.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총알이 튕겨 나갔다!
“그만! 그만 쏴라! 총알이 튀어서 오히려 우리가 위험하다!”
잠깐 사이 수십 발 이상이 발사되었지만, 저 괴물의 피부조차 뚫지 못했다.
그나마 팔찌는 유효타.
고릴라는 우리 위치를 찾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가 싶더니 –
이번엔 그냥 마구잡이로 사방을 휘젓기 시작했다!
3초도 지나지 않아 사방을 휘젓던 고릴라의 주먹이 송이에게 날아들었다.
— 탕!
요란한 소음과 함께 몸을 던진 승엽이가 주먹을 받아낸 후 벽에 꽂혔다!
괜찮을까? 방호복이 있으니까 죽진 않았겠지? 나가면 껴안아 줄게!
혼란 속에서 송이가 경악했다.
“승, 승엽아! 어떡해? 저 고릴라 지능이 높아. 그냥 사방을 마구 -”
— 쿵!
차진철이 고릴라의 뒤쪽으로 달려들었다. 바닥을 어찌나 강하게 박찼는지 진동이 나에게 울릴 지경이었다.
동시에 피부를 누르는 듯한 감각과 함께 격렬한 파동이 진철의 앞에서 발생했다.
아무리 총알을 튕겨내는 괴물이라 해도 별을 버틸 수 있을까?
— 크아아아아아!
확연히 다른 반응!
순식간에 별이 고릴라의 등 쪽 피부를 뒤틀기 시작했다. 괴물의 등에서 광석이 솟아나고, 살점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나와 묵성은 동시에 사격했다.
다르다! 피부가 뒤틀리면서 특유의 강력한 방어력을 상실했다.
총알이 체내에 파고들자 고릴라가 고통의 신음을 토해냈다.
— 탕!
“아악!”
다음 순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총알이 날아들자 비명과 함께 송이가 쓰러졌다.
“엘리자베스!”
투명해진 채 어딘가 숨어 있는 엘리자베스가 송이를 공격했구나!
전신 방탄복 덕에 죽은 것 같지는 않지만, 애초에 방탄복이라 해도 총의 위력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 망치로 때리는 듯한 충격이 가해졌을 것이 분명하다.
송이는 고통으로 자지러지듯이 바닥을 기고, 팔찌의 통제에서 벗어난 고릴라는 즉시 방향을 바로잡고 차진철에게 달려들었다.
— 쾅! 쾅!
“크아악! 무슨 킹콩이냐 시이이바아아알 -”
2초? 3초? 별이 고릴라를 죽이는 속도보다 고릴라가 펀치로 차진철을 쳐 날리는 속도가 더 빨랐다.
한 번의 공방이지만 명확하다.
저 괴물의 물리력은 차진철조차 아득히 넘어섰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공룡과 힘겨루기를 하던 영화 속의 그 고릴라를 연상시켰다.
고릴라는 심지어 머리까지 좋았다. 차진철을 날렸다고 끝이 아니고, 즉시 하늘로 점프해서-
저 덩치로 저렇게 뛰어? 헐크야?
더는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천지를 울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차진철은 ‘차진철이었던 것’이 되었다.
성과가 없진 않았다.
고릴라가 거대한 주먹으로 차진철을 내리치는 동안 차진철은 제대로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소환된 별은 차진철의 사망 직전까지 착실하게 이계의 파동을 내뿜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몇 초 되지 않는 찰나의 시간, 그사이 고릴라의 강맹한 피부는 절반 이상 너덜거리는 살점이 되었다.
이 혼란 속에서 나는….
솔직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어떻게 해? 오래된 피는 다양한 능력이 있지만 저런 무식한 녀석에게 통할 능력이 없어.
다가가서 최면? 내가 최면을 거는 속도보다 고릴라가 날 젤리로 만드는 속도가 빠르겠는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고릴라가 감각을 되찾은 후 엘리자베스는 아예 쥐 죽은 듯 존재감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고릴라는 엘리자베스라고 봐주진 않는 듯했다.
장내가 공포로 물드는 순간, 허공에서 나비가 나타났다.
…
정말이지 살과 피와 뼈가 사방으로 튀는 이 끔찍한 공간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존재, 아름다운 푸른 나비.
나비는 장난이라도 치듯이 느릿느릿 팔랑거리며 고릴라에게 움직였다.
순간 어이가 없었는지 고릴라도 잠시 멈칫한 후, 손바닥을 가볍게 휘저어서 나비를 –
나비가 고릴라의 손바닥에 닿자마자 스며들었다!
은솔이가 어딘가 숨어 있구나! 엘리자베스처럼!
전투가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고릴라가 휘청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대화창이 울렸다.
김묵성 : 아리! 지금!
나는 즉시 총을 들고 고릴라의 뒤틀린 피부를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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