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56)
155화 – 201호, 저주의 방 – ‘□ □□’ (4)
– 김아리
악몽 나비의 힘으로 고릴라가 강력한 졸음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나와 묵성은 헐레벌떡 달려가서 고릴라의 비틀어진 피부 내부에 총을 하염없이 쏟아부었다.
— 탕!
또 엘리자베스! 총소리와 함께 묵성이 어깨를 잡고 비틀거렸다.
나와 묵성은 황급히 고릴라의 신체를 방패 삼을 수 있는 위치로 옮겼다.
다행히, 지금은 고릴라가 반 무력화된 상태. 투명 인간은 이쪽에도 있다!
새하얀 공간의 한쪽에선 고릴라의 숨통을 끊기 위해 총탄을 퍼붓고, 다른 한쪽에선 투명 인간들이 싸우는 기묘한 혈전이 시작됐다.
“대체 이 새끼 맷집이 왜 이래? 우리 50발 넘게 부은 것 아니야? 아직도 꿈틀거리는데?”
묵성은 고통을 참으며 침중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아마 지금 상태로도 시간이 지나면 죽으리라 본다. 하지만 결정타는 역시 머리에 넣는 게 맞겠지.”
묵성은 아예 무너져 있는 고릴라의 머리 쪽으로 가서 총구를 눈알에 쑤셔 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제야 고릴라의 꿈틀거림이 완전히 멎었다. 실로 징그러운 생명력!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리자, 투명 인간들의 싸움은 생각보다 웃기게 진행 중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은솔의 위치를 찾지 못해서 허공에 연거푸 총알을 낭비했고, 은솔은 엘리자베스가 엉뚱한 각도를 바라볼 때만 숨을 크게 들이키며 버티고 있었다.
반대로 은솔은 눈의 힘으로 엘리자베스가 투명해졌는데도 위치를 잡아내는 듯했지만, 순수하게 총을 잘 쏘지 못해서 싸움이 길어졌다.
이런 애매한 균형은 결국 동료가 합류하면 끝나기 마련이다.
나와 묵성이 멀찍이서 엘리자베스를 포위하며 투명 인간의 이동 반경을 좁혀오자, 갑자기 엘리자베스는 모습을 드러내며 헬멧을 벗었고 –
— 탕!
한 발의 총성과 함께 혼란스럽던 전투가 끝났다.
“퉤! 이 썅 -”
“묵성. 애들도 있잖아.”
“크흠. 이 미친 것 때문에 오지게 고생했다. 진철이 녀석이 또 아쉬워하겠는데?”
은솔이는 쓰러져 있던 송이나 승엽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황급히 송이의 방탄복을 벗기자, 상반신에 성인 남자 손바닥만 한 시퍼런 피멍이 여러 개 생겨 있었다. 송이는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방호복을 벗기고 확인한 승엽이의 상태는 더 심각했다. 아무리 방호복을 입었다 해도, 고릴라의 압도적인 펀치의 충격을 완벽히 막아내진 못했다.
거의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채로 한참을 헐떡이다가 간신히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해결은 무리다. 그래도 탈출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나마 탈출 버튼을 생각하니 마음은 놓였다. 여차하면 탈출 버튼으로 한번은 살겠지.
은솔이 돌아왔다.
“아리, 네 말이 맞았네…. 미안.”
“뭐, 됐어. 다음 회차 때는 바로 엘리자베스의 주리를 틀든지 하자.”
“그때는 총부터 뺏자. 바로 자살해버리니까 뭘 알아내지도 못했네.”
주변을 돌아보자 이 기묘한 공간에도 들어온 문까지 합치면 출구가 3개나 있었다.
이번에도 승엽이가 고르는 게 좋겠지?
은솔이 궁금하다는 듯 말했다.
“이 방은 꽝이겠지?”
“그래. 반대로 말하면 그동안 지나친 방은 의외로 정답이었다는 말이지. 매번 괴물이 있으니까 오답이라고 착각했지만, 지금 이 방하고 비교하면 천국이었네.”
피로한 표정으로 송이가 다가왔다.
“아리야! 미안….”
“괜찮아. 헷갈릴만한 상황이었지.”
모두의 사과와는 별개로 잠시 생각해봤다. 일행은 기본적으로 ‘갈등 회피적 성향’이 있다.
이 성향은 분명히 이 파티가 분열하지 않는 데 크게 이바지했지만, 방금처럼 ‘독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엔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그래서 본인들이 생각하기엔 극단적으로 느껴졌을 내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았겠지.
애초에 나도 직감에 따른 판단이라,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기도 했다.
이해 가는 면이 있어서 다른 동료들에겐 딱히 별다른 불만은 생기지 않았다.
다만….
— 딱!
옆에서 서성거리던 묵성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개인 톡’을 보냈다.
김아리 : 넌 내 편 들었어야지!
이 자식은 바깥에서도 내 직감으로 살아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면서 내 말을 안 들어?
이 인간만 내 편 들었으면 다른 사람들도 그런가? 하면서 따랐을 텐데!
묵성은 다 늙은 주제에 헤헤거리며 웃어넘겼다.
“그런데, 좀 무서운 이야기가 있어.”
“이미 충분히 무서운 상황이지만 더 이야기해봐.”
“이 고릴라, 일종의 ‘주인’이 있었어.”
“…”
“친화가 강화된 후로 혼돈체의 마음을 약간은 읽게 됐다고 했지?”
“막상 고릴라가 네게 친하게 대하진 않던데.”
“말하잖아. 주인이 있었다고. 심지어 그 주인을 굉장히 무서워하는 것 같았어. 고릴라가 나비에 당해서 주저앉았을 때, ‘어떤 사람’을 강하게 떠올리면서 혼날 거라고 무서워했어. 그렇게 무서운 주인이 들어오는 사람은 전부 죽이라고 명령하기라도 했겠지.”
무섭기도 하고, 정말이지 피곤한 이야기였다.
이런 압도적인 괴물조차도 종복으로 부리는 존재.
필시 대적자겠지. 대체 어디 사는 뭐 하는 놈일까?
이쯤 되면 얼굴이라도 한번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야?
한숨 쉬면서 고개를 돌렸다.
송이보다도 훨씬 심하게 당한 승엽이는 여전히 숨만 헐떡이고 자력으론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했다.
조금 더 쉬면서 회복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 –
사방의 벽에서 글자가 나타났다.
MOVE!
저 말을 따라야 하나? 주변을 돌아보자 동료들도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송이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대체 저 글자는 누가 쓰고 있는 걸까요? 처음엔 뭔가 호텔의 알림 같은 느낌이라 다 같이 자연스럽게 따른 것 같지만, 사실 이런 장소에서 호텔이 알림을 띄울 것 같지 않은데.”
의외로 처음엔 적의 손에 놀아나는 게 싫다는 반응을 보였던 묵성은 순순히 일어섰다.
“뭐, 저 글자가 아니더라도 이젠 움직이는 게 좋을 거다. 우리의 길잡이가 완벽히 기절하기 전에, 적어도 안내해주실 수 있을 때 움직여야지.”
우리의 길잡이.
승엽이는 아무리 봐도 그냥 쉰다고 나아질 상태가 아니다.
제대로 된 치료 없이 그냥 있으면 나아지는 게 아니라 죽을지도 모른다.
죽는 게 아니라 의식만 잃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선 큰 문제다.
묵성 말마따나, 승엽이가 기절하면 우리에겐 길잡이가 없으니까.
승엽이는 잘 올라가지도 않는 손을 대충 허공에 휘적거린다 싶더니 동전을 던졌다.
— 팅! 땡그르르르르.
한참을 굴러간 동전이 한쪽 벽의 문에 부딪혔다.
묵성이 이번엔 자신이 방호복을 입고 승엽이를 업은 채로 우린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다섯 번째 저택, 여섯 번째 저택을 연달아 주파했다.
그 과정에서 살아있는 식빵을 토해내는 토스터, 살인마가 숨어 있는 벽장을 연달아 파괴했다.
괴물이 숨어 있는 의태 방은 일단 대응법을 확립하자 그리 어렵지 않게 깰 수 있었다.
하지만, 깨도 깨도 그저 또 다른 저택이 나타날 뿐이었다.
결국 어느 순간 지쳐서 우린 일곱 번째 저택에서 움직이는 시계를 부순 후 주저앉았다.
승엽이도 한계에 달한 듯,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죠?”
“이렇게 하염없이 진행해선 끝이 없는 것 같아. 벌써 일곱 번째야. 넘어가 봐야 여덟 번째고, 그다음은 아홉 번째겠지.”
지쳐버린 송이와 은솔의 대화.
그 가운데서 나는 ‘행운’에 대해 생각했다.
그 누구의 축복보다도 설명이 어려운 힘.
승엽이의 말에 따르면, 후원자가 어린아이 같은 신이라 했던가?
행운에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지만, 한 가지 중요한 키워드가 있다.
바로 ‘믿음’.
행운은 강렬한 자기 확신을 가진 자일수록 능동적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역설적으로 그 어떤 축복보다도 믿기 힘든 축복 또한 행운이다.
그 어떤 논리도 없이 그냥 감으로 고르는 식이기 때문이다.
승엽이 본인부터가 한두 번만 틀리기 시작하면 의심하기 시작하고, 의심하기 시작하면 행운도 무력해진다.
또 다른 문제점은 축복이 지금 작동했는지를 당사자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관문의 방, 지킬 앤 하이드 게임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려봤다.
두 번째였나? 세 번째였나? 승엽이는 어느 순간 부담스러워하며 하이드를 고르지 않았다.
본인부터가 ‘선택하지 않았다’라고 인지했고,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선택하지 않음’조차도 하나의 선택이었다.
승엽이 본인이 하이드였으니까 외부의 누군가를 택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선택을 그 당시의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결과를 다 아는 미래 시점에서 보면 아하! 행운의 선택이 이때도 맞았구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행운이 작동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예언자가 떠올랐다.
완벽한 예지능력을 얻었지만 그 누구도 예언을 믿지 못하는 저주에 걸렸던 예언자, 카산드라.
행운은 바로 이 힘과 기묘할 정도로 닮았다.
그 어떤 축복보다도 믿음을 강조하는 축복은 어처구니없게도 그 어떤 축복보다도 믿기 힘든 종류의 힘이다.
… 그런 식의 생각을 이어 나가다가, 문득 떠올렸다.
사실은 지금도.
지금도 행운의 힘이 만들어낸 상황이 아닐까?
지킬 앤 하이드 게임에서처럼 ‘기절해서 다음 방을 고를 수 없음’조차도 하나의 선택 아닐까?
아니면 이 모든 건 결과론적으로 갖다 붙이는 내 착각인가?
승엽이를 보살핀다, 송이를 보살핀다고 하며 붕대를 감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주변을 살피기 위해 일어섰다.
*
– 박승엽
아아…. 뜨겁다.
몸 전체가 불처럼 뜨겁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는 식의 생각조차도 들지 않은 지 오래다.
언젠가부터는 아프다기보다 힘들다, 졸리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묵성 할아버지가 방호복을 벗고 내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듯하더니, 결국 다시 방호복 안에 밀어 넣었다.
억지로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입 열지 말거라. 이거나 마셔.”
할아버지는 붉은 액체가 담긴 주사기를 건넸다.
“이게 바로 가인 형이 수없이 찾았다는 세기의 명약, 아리 누나의 피인가요.”
“… 말하는 꼬라지 보니까 아직 멀쩡하구먼.”
“그냥 절 내버려 두시고 방호복 도로 가져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움직이지도 못하는 내가 이런 강력한 도구를 입고 있는 건 낭비다.
“그러지 말고 좀 자신감을 가져라.”
“아니, 움직이지도 못하겠는데 무슨 -”
“아직도 네 천운이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지 않으냐? 심지어 고릴라 앞에서도 작동하지 않았지. 난 네가 활약할 일이 한 번은 더 남았다고 본다.”
“…”
할아버지는 그 말을 전한 후, 자신이 가지고 있던 ‘탈출 버튼’도 내 손에 쥐여주었다.
이 확고한 믿음의 근원은 대체 뭘까?
애초에 천운이 내가 위험할 때마다 매번 발동한 것도 아니지 않나?
솔직히 천운은 후원자가 발동시키고 싶을 때 발동시킨 느낌이다.
역시 세기의 명약을 마셨기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활력이 조금 돌아왔다.
아리 누나가 멀쩡할 때는 치유의 힘은 그리 강하지 않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효력이 없진 않은가보다.
아니면 플라시보 효과거나.
멍하니 누워있자니, 할아버지의 심리상태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사실 우리는 꽤 절망스러운 상황에 빠졌다.
전력의 태반을 상실했고, 모두가 지쳤는데 탈출 방법은 전혀 모르겠다.
이 상황에서 할아버지가 품은 마지막 희망이 내 천운인 것 같다.
말하자면 믿는다기보단 믿고 싶은 상태가 아닐까?
어디선가 무언가 깨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가 놀라서 화들짝 일어섰다.
아주 오랜만에 알림이 저절로 떴다.
[천운 발동! 우주의 기운이 당신을 가호합니다.]천운이라는 이름은 아리 누나가 마음대로 지은 거잖아….
할아버지도 천운이라고 부르더니, 후원자 너도 이제 천운이라고 부르기로 했어?
멘트도 매번 바뀌네. 예전엔 무슨 777! 이랬으면서 이번엔 우주의 기운.
아~ 모르겠다.
우주의 기운이 날 지켜준다는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냥 마음 편히 눈을 감아버렸다.
진작부터 자고 있었던 가인 형이 부러워졌다.
*
– 김아리
주변을 살피면서 아까의 상념을 이어갔다.
승엽이가 쓰러진 상태 자체가 일종의 선택이 이루어진 상태라고 치자.
행운이 다음 방을 고르지 않은 이유는 뭘까?
…
이 방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나는 혹시 모를 희망을 품고 주변을 살폈다.
주변의 물건을 하나하나 건드려보기도 하고, 벽이나 식탁도 살폈다.
딱히 특이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내 착각일까?
그렇게 시간을 끌자, 이번엔 세면대 쪽의 거울에 익숙한 문자가 또 떠올랐다.
Move!
대체 이걸 보내는 존재는 누구일까?
이미 일행은 정신적, 체력적으로 지쳤다. 무엇보다 길잡이 역할 승엽이가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어하고 있다.
더 이상 이 지시에 따를 수 없어. 오래된 피를 끌어올리며 적었다.
‘No!’
…
…
…
그래? 그럼 나랑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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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쨍그랑!
거울에서 칼날처럼 솟아오른 손이 단 한 순간에 내 몸을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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