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58)
157화 – 201호, 저주의 방 – ‘더 큐브’ (6)
– 한가인
“자! 다들 한잔하시죠! 짠~!”
…
억지로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짠! 하면서 음료수 잔을 들어 올렸지만, 호응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 은솔 누나가 나름대로 맞춰주고는 있지만 한계가 있다.
201호의 첫 번째 시도를 끝내고 돌아온 동료들은 그로기 상태가 되어 돌아왔다.
각자 탈락한 시점이 달랐기에 지친 이유도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이유는 간단했다.
적이 너무 강하다. 정말 너무 심하게 강하다.
고릴라에게 맞아 죽었다는 진철 형은 고릴라를 생각만 해도 두려워하는 듯했다.
대적자로 추정되는 거울에서 나왔다는 소녀 역시 듣기만 해도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총 따위는 BB탄으로 여기고, 팔찌나 오래된 피도 그저 시간벌기 이상은 불가능하다.
이래서야 별이라 한들 확실히 통할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으며 결국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1층과 명백히 다르네요. 요구하는 스펙이 높아졌습니다.”
아리가 동의하며 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1층은 기본적으로 유산 없이도 깰 수 있게 되어있던 것 같아. 머리만 잘 굴리면 축복만으로 해결할 수 있게끔 설계된 느낌이었어. 2층은….”
“애초에 유산을 다수 갖췄다는 전제하에 설계됐어.”
“맞아. 당연히 유산도 여러 개 갖췄고, 축복도 여러 차례 강화했고, 방호복 같은 보물도 얻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어서 적이 무식하게 강하네.”
2층에 진입하자마자 모두가 절감한 엄청난 난이도.
자연스럽게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또 다른 방을 떠올렸다.
“2층의 다른 방이야 ‘수리 이벤트’를 진행한 후에 접근할 수 있는 모양입니다만,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방이 하나 더 있죠. 104호, 호텔고를 마저 진행할까요?”
내 말을 들은 아리가 한숨 쉬었다.
“이젠 어느 정도 짐작하잖아? 강림의 정체. 104호의 위험성. 이미 올빼미가 경고해주기도 했어. 강림은 아마도 ‘주’가 자신의 일부를 쪼갰거나 복사해서 네 안에 붙여넣은 힘이겠지. 그러니까 유산조차도 장난감으로 여겨질 만큼 초현실적인 힘을 쓰는 거고.”
“그러니까 그 ‘주’의 파편 때문에 104호에 들어가자마자 내가 배신할 것 같다?”
“네가 직접 생각해봐. 배신했다 치고, 넌 시작하자마자 뭘 할래?”
동료들을 배신했다 치고 내가 시작하자마자 할 행동. 바로 떠올랐다.
“강림해서 전부 다 죽이지 않을까?”
“잘 아네. 난 하늘의 아들하고 싸우느니 그냥 거울에서 나온 여자애랑 싸울래.”
그걸로 대화가 끝났다.
다들 ‘하늘의 아들’과 싸울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으로도 104호는 거의 핵폐기물 처리장 취급 중이었다.
고심 끝에 조언이나 한번 써봤다.
‘104호에 다시 가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이 질문은 3개의 횟수를 전부 소모해야 합니다. 질문하시겠습니까?]놀라서 바로 포기했다. 예전 관문의 방에서 있던 일의 반복이다.
정말 104호는 이대로 놔야 하나?
막연한 생각은 들었다.
일행이 염려하는 시나리오, 즉 104호에 진입하자마자 내가 강림해서 모두를 1초 만에 죽이는 것.
이런 식의 시나리오는 호텔이 좋아하는 시나리오가 아니라고 믿는다.
하지만 결국 내 믿음 또는 추측에 불과하다. 호텔은 이해할 수 없는 장소니까.
— 끼릭!
대화 도중, 송이가 접시에 샌드위치 등을 담아서 식탁에서 일어섰다.
아마도 엘레나에게 음식을 전해주려는 것 같다.
자연스럽게 엘레나에 관한 이야기가 화두에 올랐다.
“다들 반쯤 맛이 가서 나오시긴 했습니다만, 엘레나는 특히 심하네요. 아예 대화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은솔 누나가 걱정스러워했다.
“이상할 정도야. 우리가 그동안 호텔에서 끔찍한 경험을 좀 많이 했니? 바깥세상이었다면 한 번만 겪어도 평생 PTSD에 시달릴 정도의 경험을 수도 없이 했지. 그런데도 후유증은 나름대로 견딜 만했어.”
“신체적인 부상 이외에 정신적인 상해도 호텔에서 관리해준 느낌이죠.”
“그런데, 왜 엘레나만 이번엔 유독 심하지?”
듣다 보니 궁금해졌다. 차라리 모두가 엘레나처럼 맛이 갔다면 2층부턴 치료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 건가? 하고 절망에 빠졌겠지만, 엘레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능력이 있지.
[조언 : 3 -> 2]‘엘레나는 왜 치료해 주지 않는 거지?’
[너희를 배려해서 오늘 밤 치료가 진행될 것이다.]간략하면서도 안심이 되는 대답이 나왔다.
“조언을 써서 답변을 들었습니다. 우릴 배려해서 내일 치료해 준다네요.”
다들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스러워했다.
… 뭔가 이상한데? 대체 무슨 ‘배려’를 해준다는 말이지?
고민하던 사이, 은솔 누나가 다음 주제에 관해 말하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순서대로 각자 말해봐! 난 일단 엘리자베스부터 생각나네.”
‘엘리자베스’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동료들이 격한 반응을 보였다.
“들어가자마자 총 빼앗고 팔다리를 다 꺾어버려.”
아리의 격한 표현에 놀라기도 잠시.
“다짜고짜 팔다리를 꺾기 전에 알아낼 건 알아내야지. 우선 손가락부터 분질러라.”
바로 고문 계획을 털어놓는 할아버지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알아낼 사실은 알아내고, 다음엔 괴물 밥으로 던져줍시다.”
평소엔 성격 좋은 진철 형도 살벌한 이야기를 꺼냈다.
대충 이야기는 들은 상태라 이해했다.
엘리자베스가 갑자기 뒤통수를 쳐서 모두가 초강력 킹콩 앞에 던져져서 엄청난 고생을 했다고 한다. 덕분에 다들 원한이 크게 생긴 모양이다.
어차피 심문해서 뭔가를 알아내야 할 것 같긴 해서 딱히 할 말은 없었다.
다만, 다음 시도 때의 엘리자베스로선 황당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본인은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본인에 대한 원한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나타나다니!
은솔 누나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보탰다.
“올리버는 문제없는 것 같지? 따지고 보면, 엘리자베스가 탐색을 강권해서 제일 먼저 죽은 사람이 올리버인데.”
다음으로 다들 이야기 시작한 주제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 ‘탈출’이다.
탈출 루트를 제일 먼저 알아낸 송이가 열변을 토했다.
“창문! 창문이 탈출 루트였어요. 괴물 여자애랑 싸우다가 깨달았거든요. 그 여자애는 창문을 통해 우리를 한참 관찰했어요.”
보통 회의 땐 말없이 과자만 먹던 승엽이도 자신 있게 끼었다.
“하하! 맞죠. 근데 누나, 창문이라고 말해주셔서 못 알아들을 뻔했어요. 원래 우리끼린 저택에 창문 같은 건 없다고 생각 중이었잖아요? 거울이라고 말해주시면 더 쉽지 않았을까요?”
“그렇네? 그 순간엔 그런 생각을 못 했어.”
탈출 루트를 찾아낸 송이, 그 루트를 통해 실제 탈출한 승엽이의 말을 요약해서 정리했다.
“확인한 탈출 루트가 이거 맞지? 저택에서 이동하지 않고 버티다 보면 세면대, TV, 옷장 옆 등 저택 여기저기 있는 거울 중 어딘가에서 ‘Move!’라는 글자가 나온다. 그 글자가 나오는 유리를 깨트리면 바깥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
“맞아요.”
“네.”
묵성 할아버지가 끼어들었다.
“중요한 것 빼먹지 마라. 그 유리 뒤엔 지옥에서 지금 막 튀어나온 것처럼 팔딱거리는 신선한 악마가 있다.”
은솔 누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동하지 말고 첫 번째 저택에서 바로 유리를 깨도 탈출 루트가 나올까?”
승엽이는 회의적이었다.
“그랬다면 ‘행운’이 그토록 오랜 시간 일곱 번째 저택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를 이동시키지 않았을걸요? 아무 장소에서 유리를 깨는 건 의미 없다고 봐요. 탈출할 수 있는 저택은 한정되어 있고, 그 방의 유리를 깨야 탈출 루트가 나온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승엽이 네 말이 일리 있는 것 같아. 탈출할 수 있는 저택은 정해져 있다. 그러면 다른 저택에서 Move! 가 뜬 창문을 깨면 무슨 일이 생길까?”
새로운 화두가 던져진 느낌이다. 쉽게 이렇다 저렇다 결론 내릴 수 없었다.
특정한 방에선 Move!가 뜨는 거울을 깨면 악마적인 소녀가 나타나고, 그 소녀 뒤엔 탈출 루트가 있다.
그렇다면 다른 방에서 Move!가 뜨는 거울을 깨면 어떤 장소로 연결될까?
탈출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 자연스레 ‘그 소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송이는 거의 질려버린 투로 중얼거렸다.
“진짜. 진짜 괴물이었어요. 가인 오빠는 상상도 못 할걸요?”
아리도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바깥이었다면 그 정도 괴물은 요원 몇 명 보내서 잡으라고 하지도 않아. 바로 헬기와 전투기가 뜨고 미사일을 준비할 레벨이라고.”
아무래도 거의 전쟁에 쓰일법한 무력을 동원해야 하는 괴물이었나보다.
“우리 힘으로 절대 이기지 못할 것 같았어?”
괴물을 본 사람은 여럿이지만, 실제로 유의미한 전투를 해본 사람은 송이, 아리 둘이다. 두 사람이 잠시 고민한 후 대답했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 사실, 그 여자애를 만났을 때 우리 전력이 이미 망한 상태였거든. 엘레나는 TV 때문에 죽었고, 진철이는 고릴라에 죽었고, 나랑 송이도 많이 지쳤었어.”
“다들 풀 컨디션으로 전원이 가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총알을 튕겨내는 피부라 해도 진철 오빠의 별이라면 무너트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인간형 적이니까 엘레나의 정의도 무조건 활성화 가능하고!”
적이 강하긴 하지만 결국 인간형이다. 적이 사악한 인간이라는 전제만 깔리면 진철 형보다도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하는 엘레나가 활약할 수 있다.
그 점 때문에 다들 미묘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한참 이야기하다 보니, 제법 오랜만에 듣는 새 소리가 들려왔다.
— 삐이익! 삐이익!
날 너무 오래 잊고 있는 게 아니냐는 듯한 소리.
페로는 어딘가 불만 가득한 분위기로 주변의 접시를 뒤집은 후 송이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아리는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얘는 대체 어디 있던 걸까?”
송이도 잘 모르는 듯했다.
“아까부터 한참 페로 생각을 읽어봤는데, 잘 모르겠어. 페로는 3살 먹은 아이 같아서 무슨 생각인지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어. 아주 답답한 새하얀 장소에 있었다는 느낌만 읽어냈어.”
“아주 답답한 새하얀 장소라….”
듣다 보니 좀 알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내 근처에 있는 모양인데? 나처럼 시험관에 갇혀있던 것 아니냐?”
“그래서 넌 어디 있는데?”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그야 나도 모르지.
‘봉인 해제’.
현재로선 이 부분에 관해선 전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다소 답답한 투로 진철 형이 물었다.
“네가 시작하자마자 ‘봉인 알림’이 뜨기 전에 강림을 쓴다거나, 아니면 다른 연구원의 몸에 빙의해서 나갈 수는 없냐?”
“마도서는 불가능했습니다. 강림도 당연히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조언 써서 확인해봐.”
아직 횟수가 두 개 남았으니 확인해볼 가치는 있겠지.
[조언 : 2 -> 1]‘강림을 통해 탈출할 수 있을까?’
[견지망월]이 새끼 또 시작이네. 헛웃음을 터트리며 답을 전했다.
“뭔 소리야? 견지망월? 무슨 사자성어냐?”
진철 형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차, 옆에 있던 묵성 할아버지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하! 이래서 무식한 놈하고는 상종하면 안 된다. 하여튼 요즘 애들은 한자 교육을 제대로 안 받아서 문제야.”
“아따! 잘난 척은 알겠는데, 그래서 뜻이 뭡니까.”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본다. 본질을 보라고 했더니 일부분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고사성어다.”
본질을 보지 않고 일부분에만 집착한다.
그 의미를 듣자마자 조언의 의미는 바로 이해했다.
사실, 조언을 쓰기 전에도 이미 짐작했던 사실을 조언으로 재확인한 느낌이다.
“애초에 봉인의 취지가 뭡니까? 특정 구성원이나 특정 힘에 과하게 의존하는 파티를 저격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봉인의 파훼를 무슨 ‘알림이 뜨기 전에 행동한다.’, ‘더 강한 힘인 강림으로 뚫어본다.’ 식으로 해보려는 판단은 본질을 보지 않고 일부분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음이다. 그런 의미의 조언인 것 같습니다.”
“네 올빼미는 불가능하다 한마디면 될 말을 참 알아먹기 힘들게도 한다.”
잠시 식탁 위에 침묵이 감돌았다.
은솔 누나가 대화의 주제를 모두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탈출로 다시 돌렸다.
“자! 자! 일단 탈출에 집중해봐. 어차피 탈출만 확보하고 세 번 네 번 들이받다 보면 깨지겠지.”
“탈출 방법 자체는 확인했죠? 행운에 의존해서 움직이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여기다! 싶은 탈출할 수 있는 저택이 나타난다. 그 방에서 대기하다 보면 어딘가의 거울에서 Move! 가 뜨고, 그 거울 뒤에는 악마가 있다. 악마가 나온 거울 뒤편으로 뛰어내리면 탈출.”
“맞는 것 같아. 사실, 그 루트의 제일 큰 문제는 바로 그 악마네.”
묵성 할아버지가 툴툴거렸다.
“탈출 루트 바로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악마라니. 이거 무슨 수문장이냐? 그놈하곤 반드시 싸워야 할 모양인데?”
“정황상 그 여자애가 대적자 아닙니까? 어차피 결국 죽이긴 해야 할 겁니다. 모두가 힘을 모아서 그 여자애랑 싸우는 사이에 승엽이랑 은솔 누나 중 한 명이 몰래 뛰어내리는 게 어떨까요?”
아무래도 전투력이 있는 사람들은 악마와 싸우면서 해결을 시도해보고, 전투력이 부족한 사람은 탈출을 확보하는 쪽이 좋아 보였다.
은솔 누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 가지 강조했다.
“엘리자베스 주리 틀기도 잊지 말고. 어차피 면상 보는 순간 잊을 수가 없겠지만.”
본인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모를 텐데, 본인에게 원한을 가진 7명의 호텔 파티를 만나게 될 엘리자베스에게 애도를 표했다.
첫 번째 시도가 끝난 당일 저녁 회의는 이 정도로 마무리 지었다. 내일 아침에 다시 한번 구체적인 계획에 관해 말해보기로 했다.
이제 엘레나를 살펴보러 가자.
아까 전, 엘레나를 위해 쓴 조언의 답을 다시 떠올렸다.
[너희를 배려해서 오늘 밤 치료가 진행될 것이다.]이 대답은 다시 생각해도 어딘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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