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59)
158화 – 201호, 저주의 방 – ‘더 큐브’ (7)
– 한가인
저녁 회의를 끝마친 우리는 1층 테라스로 이동했다.
엘레나는 여전히 반 광인 같은 상태로 벽에 기대어 있었다.
일부러 시선을 바닥에 둔 채 물었다.
“엘레나, 괜찮아요?”
“…”
“엘레나 언니. 저녁도 굶었잖아요? 너무 힘들면 주무시는 게 어때요?”
“…”
“그냥 내버려 두자. 어차피 가인이 조언대로라면 내일이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아까 엘레나의 회복에 관한 질문을 하자 조언은 이렇게 답했다.
[너희를 배려해서 오늘 밤 치료가 진행될 것이다.]아까도 듣자마자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도 무언가 이상한 조언이다.
비슷한 이질감을 느낌 아리가 날 툭 쳤다.
“생각해 보니까 이상한데? 왜 엘레나만 내일 치료해 준다는 거야?”
“그리고 그게 왜 배려지?”
그쯤 되자 다른 동료들도 이상함을 느꼈다.
“그러게? 왜 우리는 나오자마자 정신적인 치료도 해줬으면서 엘레나만 그냥 생으로 내보낸 후 다음 날 치료해 준다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런 짓이 왜 우릴 위한 배려인지도 모르겠네.”
치료를 늦추는 일이 우리를 위한 배려인 이유.
치료 과정에서 우리에게 어떤 손해가 있다?
!!!
머리에 번개가 내리치는 듯한 번쩍이는 깨달음이 왔다!
같은 깨달음을 얻은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기억을 잃기 전에 당장 엘레나를 심문해야 한다!”
이 할아버지는 그 와중에 표현이 ‘심문’이네.
“무슨 심문은 심문입니까? 하지만 뭔가 알아내야 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엘레나는 인간의 지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무언가를 보고 미친 상황이죠? 치료하는 과정에서 본 것에 관한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 겁니다.”
누나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우린 알아내야 해!”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엘레나 주변에 몰려들었다.
여러 사람이 반복해서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어깨를 흔들어 보기도 했다.
…
엘레나는 여전히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소리 지르면서 우릴 밀치기도 하고,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있기도 했다.
결국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한숨이 나온다. 처음부터 내가 마도서를 쓰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타인의 몸에 빙의한 상태에선 상태창을 쓸 수 없다.
내가 빙의해서 엘레나의 기억을 읽어내다가 나까지 미쳐버리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이젠 다른 방법도 없다.
그리고 어차피 봉인 당하는 상황인데, 내가 좀 돌아버려도 뭔 문제인가 싶기도 했다.
호텔에서 치료해 주겠지.
나는 마도서의 힘으로 엘레나의 몸에 빙의했다.
*
– 한가인
…
가라앉는다.
나는 하염없이 떨어지는 깃털처럼 느릿하게 엘레나의 정신 속에 침잠했다.
여러 차례 빙의해봤지만, 빙의한다고 해서 상대의 모든 기억을 한순간에 읽어낼 수는 없다.
애초에 그게 가능했다면 빙의할 때마다 내 뇌가 타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보통은 대략적인 정보, 당장 필요한 정보만 적절히 요약된 느낌으로 내게 들어왔다.
아마도 마도서가 알아서 처리해주는 게 아닐까?
이럴 때마다 송이가 했던 말을 되새긴다.
우리는 초월적인 힘을 진실로 이해하고 쓰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 힘이 깃든 도구를 쓰고 있을 뿐.
현대 사회의 시민들 대부분이 텔레비전과 컴퓨터의 근본적인 원리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 사용법만 터득해서 쓰는 것과 같다.
…
의식이 깊게 파고들었다. 마도서가 엘레나의 혼탁한 정신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냈다.
나는 어느 순간 엘레나로 변한 내 자신을 발견했다.
‘선 서’하는 기괴한 문장들이 들리는가 싶더니, TV에서 튀어나온 손들이 엘레나를 붙들고 끌어들였다.
TV 안쪽엔 새하얀 공간이 있었다.
거대한 가마솥. 끓는 기름이 튀는 장면이 보인다.
묵성 할아버지가 제때 TV를 터트리지 못했다면 엘레나는 저 안에 끌려갔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니 확실히 무섭긴 하다. 하지만 그뿐이다.
끓는 기름 가마솥 정도가 인지하는 것만으로 사람을 광인으로 만들진 못할 것 같다.
주변에 뭐 없나? 가마솥 말고도 뭔가가 더 있을 텐데?
보인다. 무언가 꼬물거리는 존재들이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장소의 정체를 알았다.
이상하다. 이들 말고도 무언가 다른 존재가 이 공간에 있-
천지에 눈이 있도다.
나는 바닥을 기는 개미만도 못한 버러지와 같나니.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미물조차 나보다 위대하다.
적어도, 그들은 실체가 –
“지 랄 하 지 마! 눈 깔 병 신 새 끼 야!”
나오자마자 고함지르는 내 모습을 보고 놀라서 나를 바라보는 동료들이 보인다.
내가 본 장면도 곧 잊히겠지.
모든 지성이 녹아내리기 직전, 정신없이 세 글자를 외치고 기절했다.
“연구소!”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8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3]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었다.
엘레나에게 빙의하던 순간까지는 기억나는데 그다음이 없다.
기억이 다 날아갔나?
조금 더 생각해보니, 빙의하고 있던 동안의 기억은 없지만 나와서 외치던 기억은 아주 흐릿하게 남았다.
‘연구소’.
뭔가 알아내긴 했구나.
약간의 보람을 느끼며 동료들을 만나기 위해 나갔다.
*
“오빠! 괜찮아요?”
“너 이제 괜찮은 것 맞냐?”
나오자마자 동료들이 날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명 한명에게 이제 괜찮다고 말한 후, 엘레나는 나왔는지 확인했다.
테이블 건너편의 엘레나는 눈이 마주치자 비명을 지르는 대신 흐릿하게 웃었다.
확실히 치료해 주긴 했구나!
내가 테이블에 도착한 후, 우리는 엘레나의 기억에서 얻어낸 정보를 논하기 시작했다.
“제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연구소’라고 외쳤을까요?”
아리가 픽 웃었다.
“그거 무슨 선문답 같네. 말한 본인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우리에게 묻다니.”
“난 그 시점의 기억이 거의 날아갔어.”
“해석이야 뻔하지 않아? 엘레나의 기억은 TV 안쪽에서 무엇을 보았는지와 관련된 내용이야. 그걸 확인한 넌 연구소라고 외쳤지. 즉 TV 디스플레이를 넘어가면 연구소가 나오는 것 아닐까?”
아리의 해석 자체엔 모두가 동의했다. 내가 봐도 딱히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없었다.
이제야 내가 갇힌 장소, 연구소의 위치에 대한 의문이 풀려가는 느낌이다.
또, 이 정도 중대한 정보이기에 호텔에선 기억을 일부러 느리게 지우는 배려를 해줬으리라.
진철 형이 당연한 말을 했다.
“연구소는 당연히 가 봐야겠지?”
“당연하죠. 거기에 제가 있는 상황 아닙니까.”
“아니 내 말은…. 어떻게 들어가냐는 거지. TV가 켜지면 우린 움직이지 못한다. 힘으로 풀 수도 없어. 나도 손가락 하나 까딱 못했거든.”
오랜만에 엘레나가 입을 열었다.
“가만히 있으면 TV가 알아서 한 명 골라서 끌고 가긴 해요. 제가 경험했으니 확실하죠.”
“정확히는 끌고 가서 가마솥에 넣으려고 하죠. 그런 식으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네요. TV로 인한 마비 현상을 풀어야 합니다.”
마비 현상을 풀었던 장본인, 묵성 할아버지가 답했다.
“뭐, 푸는 방법도 확인하지 않았냐. 마비된 상태로도 내 장갑은 움직일 수 있다. 내가 총으로 TV를 쏘면 풀리던데?”
은솔 누나가 허점을 지적했다.
“총으로 쏴서 TV를 망가트리면 연구소로 넘어가는 통로도 사라지잖아요. 우린 TV를 부수지 않으면서 마비를 푸는 방법을 찾아야죠.”
… 그리고 테이블에 침묵이 감돌았다.
목표는 TV 디스플레이를 넘어가서 그 너머에 있을 연구소에 도착하는 것이다.
문제는 TV가 켜지는 순간 모두가 마비되고, TV는 우리를 끌고 가서 잔인하게 죽이려 든다.
TV의 살인 시도를 막기 위해 총으로 부숴버리면 넘어갈 통로도 사라진다.
이 정도면 TV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획득했다.
다만 정보를 잘 꿰지 못해 해답이 뭔지 헷갈리는 상황.
[조언 : 3 -> 2]‘TV를 망가트리지 않고 마비 현상을 풀 방법이 있을까?’
[마비의 원인은 무엇인가?]“음…. 제가 지금 조언을 썼는데, ‘마비의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답변이 나왔습니다.”
진철 형이 황당해했다.
“당연히 TV 아니냐? 설마 TV 말고 뭔가 다른 원인이 있다는 말인가?”
한참 동안 고민하는 듯하던 아리가 대답했다.
“그런 의미의 조언이 아니야. 지금 생각났는데, 우리가 마비된 시점은 TV가 켜진 시점이 아니었어. 막 켜졌을 땐 다들 놀라면서 저거 뭐냐고 말했었잖아. TV에서 ‘선 서’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마비됐지.”
묵성 할아버지가 한숨 쉬었다.
“내 기억도 비슷하긴 한데, 차이가 있냐? TV가 켜지고 얼마 안 가서 ‘선 서’라는 말이 나오던데.”
다시금 테이블에 침묵이 감돌았다.
정말 오랜만에 승엽이가 입을 열었다.
“저기….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요. TV가 켜지고 소리가 나오면서 문제가 생긴다면 그냥 소리를 끄면 어떨까요?”
…
은솔 누나가 무릎을 ‘탁’ 쳤다.
“아니! 그 생각을 왜 못했지? 진짜 그게 답인 것 같은데?”
“햐! 요 꼬맹이가 회의 땐 보통 한 마디도 하지 않더니,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딱 맞는구나. 다음번엔 TV를 음소거 해보자.”
오랜만에 좋은 아이디어를 낸 승엽이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졌다.
하지만, 다시금 엘레나가 찬물을 끼얹었다.
“다들 즐거워하시는 듯해서 죄송한데,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았어요. 전 TV 안쪽을 보자마자 미쳤거든요. 가인 씨도 제 기억을 읽은 후 미치셨고. 다른 분이라고 다를까요? 팔찌를 쓴 송이 정도 제외하면 TV 디스플레이를 넘어가자마자 다들 미치실 것 같은데.”
정확한 지적이다.
대체 ‘무엇이’ 엘레나를 미치게 했고, 그 기억을 읽은 나도 미치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존재에 대한 대응법 없이 넘어가는 행위는 자살행위다.
광기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만 넘어가야 하나?
봉인 당한 나를 제외하고 광기에 저항할 수 있는 멤버. 엘레나가 언급한 송이가 대표적이다. 아리도 어느 정도 가능한 것 같다.
두 사람 말고는 더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하던 아리가 나를 바라보았다.
“조언 아직 두 개 남았지? 또 물어봐. 어차피 넌 봉인 상태라 조언 쓸 일 없을 테니까 아침에 다 쓰자.”
[조언 : 2 -> 1]‘TV 내부에 존재하는 광기에 저항할 방법이 있을까?’
[그 장소가 ‘연구소’라는 사실을 깨달은 근거가 뭘까?]선문답 같은 대답. 우선 대답의 내용부터 전했다.
“TV 내부와 연결된 장소가 연구소라는 사실을 깨달은 근거가 뭐냐고 되묻네.”
“뭘 봤는데?”
“모르지. 이미 그때의 기억이 다 날아갔는데.”
“아, 그렇지. 그러면 답은 뭘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금방 떠올랐다.
“애초에 난 살면서 연구소 같은 장소를 가본 적이 없어. 무슨 장비나 인테리어를 보고 연구소라고 판단하진 못했을 거야. 또, 방에서 처음 시작하고 잠들기 직전에 주변을 얼핏 훑어보고 연구원 같은 하얀 복장을 한 사람들을 봤거든. 아마 그 사람들을 TV 내부에서 다시 봤겠지.”
“TV 내부에서 연구소 직원들을 봤을 것이다?”
아리에게 대답하다보니 조언의 의미는 자연스레 깨달았다.
“이거 그 소리네. 광기를 불러일으키는 근원 근처에 연구소 직원이 있다는 게 무슨 말이냐? 연구소 직원이 하나같이 광기에 저항할 수 있는 이능력자일 리는 없으니, 평범한 인간도 저항할 방법이 있다. 이런 의미 아니야?”
한참 듣고 있던 은솔 누나는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광기에 저항할 방법이 뭐냐고 물었더니, ‘분명 그 방법은 존재한다.’ 뭐 이딴 개 같은 대답을 해줬다는 거야?”
“네.”
“너, 다음에 후원자 만날 일 생기면 욕이라도 좀 하고 와.”
그렇지 않아도 할 생각이다. 오랜 시간 쌓인 감정이 적지 않다.
진철 형이 한숨을 쉬었다.
“한 번 더 물어보는 건 어떻냐? 횟수 남았지?”
묵성 할아버지는 반대했다.
“제대로 대답해줄 생각이면 처음 물었을 때 그리 해줬겠지. 좆 같은 대답을 줬다는 건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소리 아니겠냐? 또 물어봐야 또 무의미한 퀴즈나 던질 거다. 마지막 남은 조언은 다른 질문에 써라.”
나도 조언을 같은 질문에 또 쓰는 건 포기했다. 대신, 나름대로 답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어찌 됐든 ‘답이 존재하긴 한다.’ 정도의 대답은 들려준 셈이니까.
TV 내부의 광기에 저항할 방법은 대체 뭐가 있을까?
“TV 내부에 있는 거창한 존재가 뭔지부터 생각해봅시다. ‘무언가’와 접촉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을 언급하긴 했죠.”
은솔 누나도 동의했다.
“엘레나가 처음에 시선 어쩌고 했고, 마지막에 탈출한 승엽이도 훨씬 짧게 경험했지만 비슷한 걸 느꼈대. 너도 나오자마자 눈깔에 대해 욕했어.”
눈. 시선. 시선을 피하면 되는 건가?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송이가 의견을 냈다.
“쳐다보지 않기?”
오랜만에 말문이 트여있던 승엽이가 바로 부정했다.
“탈출 당시의 기억은 아마도 호텔의 ‘치료’때문에 흐릿하지만, 세상 전체에 깃든 시선! 이런 식으로 기억해요. 단순히 특정 물체를 쳐다보지 않는 정도로는 방어하기 힘들 것 같아요.”
아리도 입을 열었다.
“눈 감고 지나가기?”
그것도 뭔가 아닐 것 같다. 연구소를 안전하게 진입하기 위해선 무슨 방법을 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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