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60)
159화 – 201호, 저주의 방 – ‘더 큐브’ (8)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8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한참 동안 ‘연구소 루트’로 안전하게 진입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아이디어를 모아봤다.
은솔 누나는 배지의 힘으로 투명해진 채 가보겠다는 의견을 냈고, 진철 형은 눈을 감고 미친 듯이 달려보겠다는 의견을 냈다.
이외에도 팔찌의 정신 보호는 통하리라 확신하는 송이, 피의 대량 소모는 있겠지만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아리 등의 의견이 있었다.
다소 특이한 아이디어로는 연구원들처럼 하얀 가운을 입어보자는 의견이나 극단적으로 내부에서 안구를 적출 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결국 우리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실제로 써보기 전엔 통할지 말지 알 방법이 없다.
애초에 광기의 근원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화가 여기까지 흘렀을 때, 은솔 누나가 아예 다른 관점의 견해를 냈다.
“그냥 파티를 나누자.”
“네? 그게 무슨 -”
“예전에 이런 이야기 했었잖아.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자. 실패하면 죽음이 기다리는 극도로 위험한 일을 할 때는 분산투자가 기본이야. 다 같이 TV 안으로 들어갔다가 우리가 생각한 방법이 전부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 그 순간 몰살이지.”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사실상 ‘실패 시 즉사’ 수준의 위험이 대기 중인 루트에 전원이 다 갈 필요는 없다.
“그러면 일부는 TV의 연구소 루트를 진행하고, 나머진 원래 계획대로 가는 겁니까?”
맹한 표정으로 송이가 물었다.
“우리, 원래 계획 같은 게 있었나요?”
“딱히 정한 건 아니었지만, 탈출 루트부터 확보하는 게 보통 우리의 계획이잖아. 지금까지 내가 들은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런 느낌이지. 큐브 내부의 방을 여러 개 진행하다가 탈출할 수 있는 방이 나오면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정지. 정지해서 대기하다 보면 ‘Move!’라는 알림이 어딘가의 거울에서 뜬다. 그 거울 뒤가 탈출 루트인 동시에 악마 소녀가 대기 중인 장소이다.”
듣고 있던 할아버지가 결론 내렸다.
“전력을 최대한 보존해서 그 위치까지 간 다음에 악마와 한판 붙어보자. 붙는 동안 한 명은 탈출하고.”
진철 형이 불안한 듯 대답했다.
“탈출 루트를 확보하려면 결국 그 악마와 싸워야 하지 않습니까? 싸워야 한다면서 전력을 분산해서 누구는 연구소 루트로 가는 건 불안하지 않아요?”
은솔 누나가 다소 씁쓸한 투로 답했다.
“그거야 뭐, 연구소 쪽엔 전투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가면 되는 문제네. 솔직히 거울에서 나오는 악마 여자애 앞에서 내가 큰 도움 되긴 할까? 나비도 별 의미 없을 것 같아. 애초에 약점이 뚜렷한 무기고.”
송이가 궁금해했다.
“나비에 약점이 있었어요? 고릴라를 한 번에 녹다운시키는 장면을 보고 감탄했는데.”
누나는 피식 웃더니 브로치를 열어서 나비를 소환했다.
“후우우우!”
누나가 입으로 바람을 불자, 나비는 마치 태풍에 휘말리기라도 한 것처럼 균형을 잡지 못했다.
“봤지? 결국 그냥 곤충이야. 그냥 입으로 바람만 불어도 가까이도 못가. 그때 고릴라가 어울리지도 않게 감수성이라도 솟아났는지 손을 느릿하게 뻗으니까 당한 거지.”
묵성 할아버지도 비슷한 느낌으로 말했다.
“동의한다. 애초에 총을 비비탄 취급하는 시점에서 나도 그 여자애 상대로는 가봐야 할 게 없다.”
별이 있는 진철 형, 오래된 피를 쓰는 아리, 팔찌가 있는 송이, 정의가 있는 엘레나 이렇게 넷은 악마와 붙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승엽이는 전투에 참여하긴 어려울 것 같지만, 위의 넷이 싸우는 사이 탈출을 확보하는 역할로 제격일 듯했다.
우리는 파티를 중간에 TV로 진입하는 ‘연구소 파티(이은솔, 김묵성)’와 큐브에서 더 진행해서 악마 소녀와 싸우는 동시에 탈출을 확보하는 ‘탈출 파티(김아리, 박승엽, 엘레나, 유송이, 차진철)’로 분류했다.
내 봉인 해제와 연관이 있는 연구소 쪽으로 가는 파티가 너무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기에 대한 저항력이 있는 송이, 아리 등이 없는 점도 아쉬웠다.
하지만 별수 없었다. 목숨이 달린 문제이니만큼, 동료들은 탈출을 확보하는 쪽에 훨씬 무게를 뒀다. 그 마음을 나도 이해했다.
결국 두 번째 시도를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에 관한 대략적인 의논이 끝났다.
“무언가 더 말할 사람 있어?”
… 사실 있다.
어제부터 동료들이 어떻게 진행했는지 제삼자 관점으로 들었다.
한 발 떨어져서 들었기 때문일까? 듣다 보니 계속 ‘이건 아니다.’ 싶은 포인트가 있었다.
호텔의 봉인 때문이긴 하지만, 나는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죽어라 싸우고 돌아온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지적을 하기도 불편해서 어제는 그냥 넘겼다.
하지만 이 일은 목숨이 달린 일 아닌가?
결국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예전에 아리가 해줬던 충고는 고려해야겠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 전에…. 승엽아?”
“네?”
“미안한데 잠깐 바깥으로 나가줄래? 네 축복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생각이야.”
행운에 관한 이야기는 가능하면 승엽이 본인은 모를 필요가 있다.
승엽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두말하지 않고 나갔다.
모두의 궁금한 듯한 시선이 내게 모였다.
“아마 진행하던 여러분은 느끼시지 못한 것 같은데, 전 아예 참여하지 않고 있다가 여러분의 보고를 듣다 보니 느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은솔 누나는 벌써 재밌어하는 듯했다.
“이 느낌 좋네. 원래 한 발자국 떨어져야 보이는 문제도 있거든.”
“감사합니다. 다들 너무 ‘행운’에만 의존해서 진행하신 게 아닌가요? 예컨대, 우리가 현재까지 파악한 방은 ‘의태 방’, ‘꽝’, ‘탈출 방’ 정도죠? 이 방들을 구분하는 방법이 뭘까요? 분명 있습니다.”
“분명 있겠지. 있으니까 엘리자베스가 우릴 꽝 방으로 유도했지.”
“그런데, 여러분은 방을 구분하는 방법을 찾기보다 그냥 승엽이보고 찍으라고 하신 것 같더군요. 그러니까 엘리자베스의 낚시에 쉽게 속은 것 아닙니까?”
진철 형이 변명하듯 답했다.
“그게, 방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Move! 가 뜨면서 재촉하다 보니 뭘 제대로 찾아볼 시간이 없었다.”
아리도 입을 열었다.
“잠깐 살펴보긴 했어. 그런데 차이점이 안보이더라. 하지만 네 말대로 분명 구분할 방법이 있긴 하겠지. 있으니까 엘리자베스가 우릴 속일 수 있었겠지.”
나는 조금 더 적극적인 의견을 냈다.
“그것 외에도 의아한 점이 적지 않습니다. 예컨대, 탈출할 수 있는 방과 탈출할 수 없는 방이 확실히 나뉘는 건 사실입니까? ‘Move!’라는 단어는 첫 번째 방에서도 뜬다고 하지 않았나요? 어쩌면 첫 번째 방에서도 그 글자가 뜬 거울을 부수면 뒤에 탈출 루트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도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탈출할 수 있는 방은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
“승엽이가 한참 안내하다가 기절했기 때문이지.”
“그렇죠. 승엽이는 여섯 번째인가? 일곱 번째인가? 거기까지 가서 기절했고, 그 기절조차 일종의 선택이라고 믿고 아리가 거울을 살펴보다가 탈출 루트를 발견했죠. 그런데, 이런 식의 해석은 너무 결과론적이지 않습니까? 어쩌면 첫 번째 방에서부터 거울 뒤에 탈출 루트가 있었을지도 몰라요.”
다들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나는 조금 더 입을 열었다.
“행운에 관한 해석이 너무 결과론적입니다. 기절한 것조차 행운의 선택이라면, 그 이전에 엘리자베스가 멋대로 방을 고르기 전에 승엽이가 더 빨리 고르지 않은 것도 얼마든지 선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아무도 행운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죠.”
여기까지 듣던 아리가 대답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말하자면, 결과가 좋았던 일만 전부 ‘행운의 선택’이라고 포장하고, 결과가 나빴던 일은 ‘행운과 무관한 선택’이라고 해석 중이라는 말이지?”
“맞아. 그렇게 결과가 좋은 일만 전부 행운의 설계였다는 식으로 해석하니까 행운을 지나치게 전능한 능력처럼 여기게 되고, 점점 행운에 의존하는 바가 심해졌어.”
한참 듣던 묵성 할아버지도 끄덕였다.
“듣다 보니 나도 한 가지 떠올랐다. 우리는 탈출 후에야 엘레나의 기억을 통해 TV 뒤에 연구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행운이 정말 전능에 가까운 능력이라면, 승엽이는 다음에 어디로 갈지 정할 때 ‘TV 내부’에 뭔가 있다는 식의 행동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송이는 머리 아파하는 표정으로 답했다.
“하지만 승엽이가 고를 때는 고릴라 같은 터무니없는 괴물이 있는 ‘꽝 방’을 피한 건 사실인걸요.”
“물론 그 부분은 분명 행운의 기여가 있었겠지. 난 행운이 의미 없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야.”
“조금 쉽게 말해주세요.”
“말하자면 이런 이야기지. 주사위를 던지면 6이 나올 확률은 보통 1/6이지? 그런데 승엽이는 우리 앞에서 자랑할 때 10번 던져서 거의 7번은 6이 나왔어. 이건 분명히 초자연적인 현상이고, 대단한 능력이야. 하지만 결코 100%는 아니지. 3번 이상 다른 숫자가 나왔으니까.”
“무조건 믿고 따르기엔 행운이 오작동할 때도 적지 않다?”
“오작동일 수도 있고, 작동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여기까지 들은 아리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정리했다.
“큐브 내에서도 했던 생각인데, 행운의 해석은 참 피곤하네. 관점에 따라선 그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현실 조작 능력 같기도 하고, 너처럼 회의적인 사람이 보기엔 수시로 오작동하는 고장 난 기계 같겠지.”
“…”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왜 행운이 가인이 너에게 주어지지 않았는지 알겠어…. 분석적인 사람에겐 정말 어울리지 않는 능력이네. 이번 회의 내용도 승엽이에겐 절대 전달하지 마. 너처럼 회의적인 사람의 분석은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승엽이에게 유해해.”
“내가 무슨 방사능이냐?”
미묘하게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듯한 아리와 달리 은솔 누나는 내 편을 들어줬다.
“가인이 말도 일리 있어. 두 번째 시도 때는 승엽이 찍기에만 의존해서 다음 방을 고르지 말고, 방을 구분할 방법도 찾아보자. 내 생각엔 결국 엘리자베스를 각 잡고 두들겨 패다 보면 뭐가 나올 거야. 최소한 그 여자는 방을 구분할 수 있는 것 같았으니까.”
행운에 관한 긴 회의의 결론은 은솔 누나가 간단히 내렸다.
‘엘리자베스를 각 잡고 제대로 패보자.’
누나는 고릴라에게 받은 충격이 엄청나게 컸고, 모두를 고릴라 방으로 유도한 엘리자베스에 대한 분노도 큰 것 같다.
아침 회의가 끝난 후, 은솔 누나는 화이트보드에 계획을 정리했다.
1. 큐브로 진입한 후, 엘리자베스를 심문해서 알아낼 정보 알아내기.
2. TV 방이 나올 때까지 진행. TV 방에서 연구소 파티는 TV 내부로 진입해서 연구소 탐색.
3. 탈출 파티는 탈출 방까지 진행. 탈출 방에서 승엽이는 탈출하고, 나머지는 악마 소녀와 싸워보기.
“이제 더 할 말 없지?”
오늘의 마지막 조언으로 뭘 물어볼지 고민해봤다.
큐브 내에서 꽝 방을 구분해내는 방법? 내 봉인 해제를 위한 팁? 물어보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고르기 힘들다.
궁금한 것이 많은 나와 달리 내 동료들이 궁금해하는 점은 분명했다.
“가인 씨.”
“아, 엘레나?”
“조언 남았죠? 악마를 상대할 팁이 있냐고 물어봐 주세요.”
모두가 끄덕거리며 날 바라보았다.
새삼스럽지만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말로 전해 듣기만 한 나와 확실히 다르다.
어제부터 동료들의 태도에서 고릴라와 악마 소녀에 대한 두려움, 경계심이 가득 느껴졌다.
나는 막연히 인간 형상인 이상 엘레나가 정의를 쓰면 문제없으리라 안심 중이었는데….
설마 정의를 쓰고도 밀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 중인가?
“물론이죠.”
[조언 : 1 -> 0]‘거울 뒤의 악마 소녀를 상대하기 위한 조언을 부탁한다.’
[견지망월]“…”
“뭐에요?”
“아까 말해준 고사성어를 또 들려주네요. ‘견지망월’.”
“일부를 보지 말고 본질을 봐라?”
“대충 그런 뜻이죠.”
마지막 조언에 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다시 한번 201호를 향해 출발했다.
모두가 긴장하는 모습을 보자 나까지 긴장된다.
괜찮을까? 이렇게 응원만 하는 일은 처음이다.
마치 수능 시험장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가 된 듯한 기묘한 기분으로 모두를 마음으로 배웅한 후, 두 번째 시도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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