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63)
162화 – 201호, 저주의 방 – ‘더 큐브’ (11)
– 김아리
— 쨍그랑!
뒤로 물러섬과 동시에 칼날처럼 뻗은 손이 내 목이 있던 위치를 휘젓고 지나갔다.
“어? 피했네? 제법 -”
베아트릭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이 팔목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이게 무슨 -”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또 눈을 사방에 만들어내겠지.
그럴 여유를 줄 생각은 없다.
좁은 저택이 눈이 부실 정도의 광휘로 가득 찼다.
순식간에 콘크리트 벽을 관통하며 날아든 저울이 베아트릭스의 몸을 내리찍었다.
동시에, 나와 차진철은 소총 사격으로 베아트릭스가 사방에 만들어내기 시작한 눈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이게 우리의 첫 번째 작전!
송이가 베아트릭스의 감각을 뒤틀고, 나와 차진철은 소총 사격으로 눈알을 계속 부순다.
그렇게 베아트릭스가 허우적거리는 사이 엘레나가 공격을 담당한다.
총알을 시원한 샤워처럼 여기던 베아트릭스의 강인한 신체도 건물을 으스러트릴 정도의 위력이 담긴 정의의 천칭을 계속해서 받아내지는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아트릭스의 상반신이 완전히 으스러졌다.
경악스럽게도 그 상태에서조차 괴물 같은 육체는 끊임없이 재생했다!
정의의 힘 만으론 부족하다.
여태까진 저택의 애매한 크기로 인한 아군 피해를 염려해서 별을 아꼈던 차진철이 어쩔 수 없이 별을 소환할 듯한 제스쳐를 취하는 찰나 –
— 쿠르릉!
저택 전체가 뒤흔들렸다. 단순히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저택이 360도로 뱅뱅 회전했다!
대체 이놈의 큐브는 무슨 구조길래 이딴 일이 가능한 거야?
균형을 잡지 못한 채 우리가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는 사이, 베아트릭스는 상반신이 반 이상 사라진 상태에서도 태연하게 ‘날아서’ 창밖으로 사라졌다.
“비행도 가능해?”
차진철은 어이가 없다는 듯 외쳤다.
“콘크리트보다 단단한 내구성, 플라나리아도 울고 갈 재생력, 사방에 눈을 만드는 능력에 이젠 비행 능력. 심지어 괴물을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대체 저건 못 하는 게 뭐냐? 저런 걸 관리국이 만들었어? 아리야, 지구에도 저런 놈들이 있는 거냐?”
딱히 해줄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잠시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송이가 당황한 듯 말했다.
“이게 끝이야? 이렇게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는데?”
“당연히 아니지. 엘레나를 봐.”
엘레나의 정의는 여전히 사방에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승엽아.”
“네?”
말없이 손으로 거울을 가리키자, 승엽이는 헐레벌떡 거울 쪽으로 뛰었다.
느낌상 조만간 2차전이 시작하겠지? 탈출은 확보해야겠지.
— 으적!
거울 밖으로 나가려던 승엽이가 무언가에 붙들리더니, 허공으로 날아갔다.
저택의 지붕, 아니 ‘뚜껑’이 벗겨졌다.
나는 큐브의 구조를 깨달았다.
*
엘레나가 두 개의 천칭으로 우릴 덮치던 손을 막아내는 광경을 보며 바깥을 내다보았다.
신비한 공간이네.
베아트릭스와 싸워야 하는 상황만 아니면 하염없이 주변을 구경하고 싶어질 정도다.
검푸른 안개로 뒤덮인 기묘한 공간 속에서 사방에서 떠다니는 셀 수 없이 많은 반투명한 상자들.
멀찍이 보이는 바닥은 붉은 황무지 같았다.
상자들은 우리가 ‘지하 통로’라고 칭했던 케이블로 연결되어있었다.
대부분의 상자 내부는 ‘저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게 아마도 의태 방 또는 탈출 방일까?
몇몇 상자는 저택은 없고, 엄청난 덩치의 괴물만 흐릿하게 보인다. 저 상자들이 아마도 ‘꽝 방’?
차진철이 방호복을 휘둘러서 벽을 부순 틈새로 어설프게 내다봤던 광경과는 차원이 다르다.
큐브의 ‘진짜 구조’는 직접 눈으로 보자 넋이 나갈 정도로 신비하기 그지없었다.
우리가 있는 상자의 뚜껑은 벗겨졌고, 위에서는 박살났던 상체를 재생한 베아트릭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하하! 다들 고마워~! 이렇게 재미있는 싸움은 오랜만이거든.”
그 사이에도 엘레나와 베아트릭스의 싸움은 쉴새 없이 이어졌다.
베아트릭스가 허공에 있었기 때문에 비행 능력이 없는 진철이나 송이는 어찌할 바 몰랐다.
팔찌의 힘이 닿는 범위도 아니고, 소총은 원래부터 BB탄 취급이니 의미가 없다.
엘레나는 사실상 혼자서 베아트릭스와 공방을 이어 나갔다.
소닉붐을 일으키며 날아간 천칭을 거의 버스만 한 크기의 곰이 몸으로 막았다.
천칭의 힘이 괴물 앞에서 위력이 줄어듦이 느껴진다.
그나마 베아트릭스는 인간이고, 괴물들은 베아트릭스의 도구이므로 정의의 힘이 무력해지지는 않은 것 같지만….
베아트릭스 자체를 상대할 때와 같은 위력은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베아트릭스의 웃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 쩌어억!
모든 상자의 외벽이 하나하나 열리기 시작했다.
다른 방에 있던 괴물들이 케이블 위를 걸어서 우리가 있는 상자로 움직이는 광경이 보였다.
하! 이제 다른 상자의 괴물까지 싹 부르는 거야? 정말이지 쉽지 않겠구나.
이 와중에도 천칭은 쉴 새 없이 베아트릭스를 향해 날아들기도 하고, 황금의 파동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이런 식으로는 패배를 피할 수 없어.
탈출하려던 승엽이는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겠고, 큐브의 구조가 뒤틀려서 어떻게 탈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엘레나! 내 말 들려?”
“응.”
“정의는 괴물 상대로는 힘이 빠지니까 이 상태로는 불리해.”
“아리야….”
“싸움 자체는 정의가 강제하지만, 싸움 장소나 방식은 네가 고를 수 있지? 그냥 날아가서 베아트릭스랑 1-1로 붙어. 여기서 버티지 말고!”
“내가 떠나면 -”
“우리가 죽을까 봐 네가 여기서 버틴다고 달라질 것 하나도 없어. 그냥 네가 베아트릭스를 죽이는 게 우릴 위한 길이라고!”
엘레나는 어딘가 슬픈 표정으로 우릴 한번 돌아본 후, 표정을 굳히고 베아트릭스를 향해 날아갔다.
— 콰아앙!
그 사이, 무너진 벽 틈새로 날붙이가 들어와서 송이를 후려쳤다.
어디선가 주운 듯한 금속 봉으로 날붙이를 쳐낸 진철이 말했다.
“방금 이야기는 네게도 해당하는 것 아니냐? 넌 우리랑 달리 날 수 있잖아. 그냥 날아가서 엘레나를 도와줘라.”
“엘레나가 혼자서 이기지 못할 상대라면, 나 하나 돕는 정도로는 부족하지.”
“그렇다고 해도 없는 것 보다는 -”
“너랑 같이 가야지. 네 별은 분명히 통할 테니까.”
“날 데리고 비행할 수도 있어? 예전에 말하기로 다른 사람을 들고 비행하긴 어렵다고 하지 않았냐?”
“잠깐은 가능해. 살 생각을 버린다면. 그러니까 날 잡고 위로 뛰어! 전력으로!”
차진철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옆에서 저택이 붕괴하며 나타난 철근 중 하나를 잡은 후, 다른 손으로 날 붙들었다.
뛰기 직전, 바닥에 널브러진 송이가 난 괜찮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옆의 벽이 무너지며 집채만 한 말벌이 송이를 덮쳤다.
— 쾅!
바닥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나와 진철은 허공으로 거의 10M 이상 떠올랐다!
“장대 높이 뛰기도 배웠어?”
“날기나 해라!”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로 피가 소모된다. 역시 이번 회차에서 내가 살기는 글렀네.
나와 차진철은 기이한 공간의 저편, 엘레나와 베아트릭스가 벌이는 천사와 악마의 전투 현장 같은 장소로 날아갔다.
*
엘레나에게 날아가서 싸우라고 지시한 판단은 옳았다.
괴물들도 대부분은 비행 능력 따위는 없었다. 1-1 대결에선 분명히 엘레나가 우세를 점하는 중이었다.
베아트릭스는 천칭을 이리저리 피하고 막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보이지?”
“보여. 가만둬도 엘레나가 이길 것 같은데?”
“단기전만 생각하면 안 돼. 저 녀석은 엘레나와 달리 재생력이 뛰어나니까.”
반면, 엘레나의 몸에 깃든 광휘는 점차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엘레나가 우리 쪽을 돌아봤다.
다음 순간, 천칭이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베아트릭스가 상자 하나에 처박혔다.
“지금!”
베아트릭스가 처박힌 상자 쪽으로 차진철을 놨다.
관성의 법칙으로 한참 더 앞으로 날아간 차진철이 상자 쪽으로 떨어졌다.
이 정도면 됐겠지?
진짜 너무 힘들다. 애초에 내 비행 능력의 연비는 개판이야….
진철아, 다음엔 후원자에게 날개 좀 달아달라고 해.
너무 많은 피를 소모했다. 더는 부유하는 것조차 힘들다.
긴장이 풀리자 하염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멀찍이서 보였던 붉은 황무지 같은 바닥이 다가왔다.
…
…
…
???
이게 대체 뭐야?
바닥에 있던 건 황무지도 아니고 흙도 아니었다.
광대한 공간, 지평선을 가득 채워버린 끝없는 이형의 시체들의 산.
불가에서 말하는 무간지옥이 실현된 세상의 끝.
이것이 내게 남은 마지막 기억이었다.
*
– 엘레나
정말 터무니없이 튼튼한 것 아니야?
저 괴물은 단백질로 만들어진 생물이라기보다는 콘크리트 건물, 아니 그 이상의 내구력을 가진 터무니 없는 존재다.
그런 주제에 심지어 양분 가득한 배양접시 속에서 자라나는 곰팡이처럼 끝없이 자신을 재생하기까지 했다!
천칭의 파괴력만으로는 도저히 끝을 낼 수 없어.
정의의 힘이 9할 이상 소진되는 순간까지도 여전히 베아트릭스는 버텨냈다.
그나마 다행히도 내구력이나 재생력만큼 공격력이 강한 느낌은 아니었다.
아마도 본인은 단단한 몸도 있겠다, 하늘을 날며 거리 유지만 하고 있으면 공격은 자신이 만들어낸 괴물들을 시킬 생각 아니었을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공중전은 베아트릭스의 패착이다!
나도 날 수 있고 아리도 날아와서 진철 씨를 합류시켰지만, 정작 베아트릭스의 강력한 무기인 괴물들 대다수는 비행 능력이 없었다.
슬슬 정의의 힘이 거의 소진되어 이대로는 지겠다 싶은 순간, 아리가 진철 씨를 데리고 합류했다.
마지막 남은 힘을 전부 써서 베아트릭스를 속박!
도착한 진철 씨가 별을 소환해서 베아트릭스의 입에 밀어 넣었다.
과연, 천칭의 힘으로도 쉽게 죽일 수 없던 베아트릭스의 신체가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내구력과 재생력을 잃었다.
남은 것은 그저 기괴하게 뒤틀린 살덩이들 뿐!
그때 즈음 천칭은 빛을 잃고 사라졌지만, 진철 씨는 그냥 주먹으로 내리쳐서 살덩이를 다 부숴버렸다.
남은 사람들의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감돌았다.
이번엔 나와 진철 씨 둘 중 한 명이 유산을 얻을 차례일까?
“하하하! 저와 엘레나 양의 조합은 무적 아닙니까?”
“수고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유산을 하나 더 얻을 -”
진철 씨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 휙!
정신을 차렸을 때는 진철 씨가 이미 날 잡아채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피했네? 하긴 너희 진짜 세니까~! 이렇게 강한 사람들은 처음 봐. 너희 정체가 뭐야?”
허공에서 베아트릭스의 몸이 ‘창조’되기 시작한다.
처음엔 팔만 나타나서 내 급소를 노렸고, 다음엔 몸통, 다음엔 다리, 마지막엔 머리가 나타났다.
아아…. 이제야 알았다.
베아트릭스의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다채롭던 능력들.
그녀에겐 수많은 초능력이 있던 것이 아니다.
모든 능력은 단 하나의 힘에서 비롯되었으니까.
그녀는 괴물을 빚어내는 힘으로 ‘베아트릭스’라는 괴물을 창조했다.
온몸에 힘이 빠진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진철 씨가 다시금 별을 소환해서 달려드는 장면이 보였다.
별의 힘이라면 베아트릭스를 파괴하는 데 5초도 걸리지 않겠지만….
5초는 베아트릭스가 진철 씨의 목을 10번 정도 떼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진철 씨의 목이 내 옆으로 굴러왔다.
… 이렇게 끝이야? 정말? 이렇게?
형언할 수 없는 절망이 깃든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내 배를 꿰뚫었다.
의식을 잃기 직전, 베아트릭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야? 너! 본부에 대체 무슨 짓을 했지?”
미안하지만 그런 질문은 내 배에 구멍을 내기 전에 했어야지.
조금은, 아주 조금은 희망을 품은 채 의식을 잃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