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66)
165화 – 201호, 저주의 방 – ‘더 큐브’ (14)
– 한가인
‘탓!’하는 느낌으로 눈이 뜨였다.
동시에 피부를 찢을 듯한 얼어붙은 바람이 스며들었다.
“으~! 진짜 호텔아! 이 날씨는 진짜 아니잖아!”
날씨 이야기를 꺼내며 곁눈질로 동료들의 상황을 살폈다.
이번엔 분위기가 어떨까?
…
비슷한가? 대부분은 넋이 반쯤 나간 채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다.
201호, 이거 너무한 것 아니야?
이러다 난 잠만 자다가 끝나겠는데? 최소한 풀어는 달라고!
“자~ 자~ 기운 내자! 해줄 말이 많으니까 빨리 출발~!”
최소한 한 명은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은솔 누나의 활기찬 표정을 보자 다들 오오! 하는 기분이 들었는지 표정이 확 펴지며 출발했다.
기대되는데?
동료들은 엘리베이터에 들어와서 추위를 피하자마자 시끌시끌 떠들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베아트릭스와 싸우러 간 쪽은 된통 당한 것 같다.
본체는 어디엔가 따로 있는 것 같다느니, 죽일 방법이 없다느니 하는 피곤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따뜻한 105호로 돌아온 후에야 누나의 본격적인 설명이 시작됐다.
*
누나는 한참 동안 자신과 할아버지가 어떻게 본부에서 활약했는지 무용담을 늘어놨다. 감탄이 나오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 잠깐 사이에 떠올린 할아버지의 자백제 대응법이나 누나가 관리국 세력을 끌어들이는 대목에선 모두가 박수가 절로 나왔다.
마지막 부분, 페로의 봉인 해제와 페로의 희생으로 탈출했던 기억을 떠올릴 때는 나도 긴장해서 땀이 날 정도였다.
누나도 감정이 북받쳤는지 갑자기 옆에 있던 페로를 껴안고 볼을 비볐고, 결국 부리에 귀를 물어뜯긴 후에야 떨어졌다.
무용담이 끝난 후에야 수집한 정보에 관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어디부터 설명하면 좋을까? 그래, 시간 순서대로 말해볼게. 1980년대, ‘0차원의 눈’이라는 존재가 갑자기 나타났어. 그 존재가 어디서 왔고, 목적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몰라. 그 존재는 등장과 동시에 세상 전체를 자신의 시야에 넣었고, ‘눈’을 인식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순식간에 광기에 물들었다고 해. 차트에 따르면 세상이 반년도 지나지 않아 붕괴했다고 하더라고.”
시작부터 황당한 이야기에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이 붕괴했다고요?”
“내가 본 자료에 따르면 그래. 물론 201호 내부에서 우리가 썼던 무기의 품질이나 마지막 순간에 봤던 관리국의 군대를 보면 붕괴한 느낌은 아니긴 했는데…. 뭐, 원체 대단한 조직이니 세상을 어찌어찌 잘 수습했나 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0차원의 눈’이라. 엘레나와 가인이 녀석이 본 개눈깔이 그놈이겠지?”
“그렇겠죠? 계속 설명하겠습니다. 당시 관리국은 어떻게든 0차원의 눈을 봉인하는 데 성공했어. 바로 그 대목에서 우리의 한가인 수석연구원님이 나오지!”
순간적으로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나는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수석연구원이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는 제대로 적혀있지 않아. 정황상 ‘부등변다면체’라는 도구를 썼다는 것 같아. 사실…. 여러 기록에서 어렴풋이 묘사된 수석연구원은 사람 같지 않더라.”
들을수록 너무 궁금했다.
“대체 제가 맡은 배역은 뭐 하는 사람이었습니까?”
“‘수석연구원’이라는 직책 명칭 때문에 깔끔하고 세련된 지식인 이미지를 떠올렸지? 아니었어. 패트릭이 남긴 일지에 따르면 악마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괴인이라고 하더라.”
아리는 그 표현이 웃겼나 보다.
“가인아~! 악마적인 짓은 앞으로 그만하도록 해.”
“…”
“그래. 여하튼, 수석연구원은 부등변다면체라는 도구로 0차원의 눈을 평범한 방식으론 접근할 수 없는 이상한 공간에 봉인했고, 그 공로로 크게 승진했어. 그리고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지. 1990년대, 문제의 베아트릭스가 뉴욕에 나타났어.”
이제 시작이다. 베아트릭스.
“베아트릭스는 발견 당시부터 괴물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었다고 해. 그 힘 때문에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었지. 관리국에선 처음엔 베아트릭스를 제거하려고 했어. 능력 자체는 유용하다 여겼지만, 괴물을 통제할 수 없으므로 그냥 자연 재해나 다름없다고 판단했지.”
아는 이야기다.
“거기서 제가 또 활약했군요. 베아트릭스가 힘을 통제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했죠?”
“맞아.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더라. 수석연구원의 실험 과정에서 베아트릭스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괴물을 만들어냈지만, 그 괴물들 대다수는 실패작이었어. 그 셀 수 없이 만들어지는 실패작이 큰 문제였지. 여기서 실패작은 약한 괴물이라는 의미가 아니었거든.”
“통제할 수 없는 괴물이라는 의미였군요. 베아트릭스도 통제할 수 없는데, 힘은 무지하게 강한 괴물들.”
“정확해. 그리고, 우리의 한가인 수석연구원이 또 활약했지. 자신이 과거에 봉인한 0차원의 눈의 봉인지를 떠올린 거야.”
거기까지 들은 아리가 설마 하며 입을 열었다.
“설마, 악신이 봉인된 장소 내부에 연구소를 만든 거야? 거기서 베아트릭스는 괴물을 쉴 새 없이 만들고, 실패작들은 악신에게 던져주고?”
“바로 알아듣다니 아리 네가 확실히 관리국 출신이긴 하구나.”
할아버지는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말이지 선을 넘었다고밖에 할 수 없군….”
진철 형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할배, 우리 세상 관리국도 저런 짓을 했습니까?”
“저 정도 막 나가는 짓은 드물지.”
송이는 한숨을 쉬었다.
“드물다는 건 없지는 않다는 말이네요.”
“…”
아리가 변명하듯이 덧붙였다.
“아무리 관리국이 일반인 상식에서 벗어난 면이 있다고 해도, 저 정도는 선을 넘었어. 괴물을 만들어내서 이용할 생각까지 했다니…. 저건 결코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야. 분명 한가인 그놈이 문제지.”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 이야기 같아서 숨이 턱턱 막힌다.
은솔 누나는 무언가 감이 온 듯했다.
“내가 앞에 해줬던 이야기를 떠올려봐. 기록대로면 사악한 신에 의해 무대 내의 세상은 망하기 직전까지 갔어. 그걸 막아낸 게 한가인 수석연구원이었지. 좀 과장하면 세상을 구원한 구세주 같은 업적을 쌓았는데, 그 사람의 입지가 얼마나 높아졌겠어? 관리국도 결국 사람이 운영하는 조직이지. 지구를 구원한 사람이 하겠다는 일에 반박할 사람이 있을까?”
여기까지 들은 후, 201호의 진상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해봤다.
첫째, 1980년대에 ‘0차원의 눈’이라는 압도적인 존재가 나타나 세상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세웠다. 수석연구원은 ‘부등변다면체’라는 도구로 사악한 신을 봉인해 세상을 구했다.
둘째, 1990년대, 괴물을 만들어내는 베아트릭스라는 소녀가 나타났다. 초기엔 괴물을 통제하지 못했지만, 수석연구원은 베아트릭스의 능력을 통제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실패작 괴물들이 양산되었다.
셋째, 수석연구원은 사악한 신이 봉인된 장소 내부에 연구소를 건설했다. 봉인지 내부에서 베아트릭스의 실험을 진행하며 실패작들은 모조리 악신이 죽이도록 했다.
큰 틀을 깨닫고 나니 일행이 모아왔던 정보들이 하나하나 해석되기 시작했다.
아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죽기 직전에 터무니없는 장소를 봤거든. 처음엔 붉은 황무지인 줄 알았는데, 다가가 보니 그냥 초대형 호수를 가득 메울 정도로 한없이 많은 괴물의 시체였어. 그 장소가 바로 쓰레기통이었네.”
송이도 끄덕였다.
“큐브는 괴물의 배양실 같은 장소였네요. 수십 개의 상자 내부에서 괴물을 만들어내고, 괜찮다 싶으면 꺼내서 쓰고, 별로 다 싶으면 상자를 열어서 뒤집으면 괴물이 밑으로 떨어졌을 테니까요.”
“시설을 날려버릴 수 없다고 패트릭이 자신 있게 말했던 건, 그 장소가 0차원의 눈을 봉인한 장소였기 때문인가?”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아마 그렇겠지. 실제로, 은솔이 말에 따르면 헬기와 기갑 부대를 준비하고도 시설을 물리적으로 파괴하지 않고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베아트릭스가 나오길 기다렸겠지.”
“그렇다면 패트릭이 관리국을 얕봤군요. 시설을 물리적으로 부술 수 없으니 안전하다고 착각하다가 생화학 병기에 당했으니까요.”
“뭐, 좆만한 놈들이 운 좋게 초자연적인 힘을 얻고 나면 대단한 존재라도 된 줄 알고 관리국을 우습게 보다가 당하는 건 흔한 일이다.”
승엽이가 질문했다.
“실패작들은 큐브 하단의 쓰레기통에 버렸다 치면, 성공작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요?”
“큐브에 남아있던 놈들이 성공작들 아니겠어? 베아트릭스는 실제로 그 괴물들은 통제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가?”
나도 궁금한 점이 생겼다.
“여러분이 진입한 시점에서 설정상 이미 세자리수의 사람이 저택에서 희생됐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애초에 왜 일반인을 끌어들여서 죽여대는 걸까요? 그런 짓을 하면 관리국에 들키기 딱 좋을텐데.”
아리가 고민하는 듯하다가 가설을 세웠다.
“베아트릭스가 만들어내는 괴물들은 사람을 잡아먹어야 하는 유형일지도 모르지.”
그 말을 듣자 정말이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관리국은 사람을 반드시 잡아먹어야 하는 괴물을 만드는 소녀를 ‘유용한 무기’라면서 쓰려고 했다?”
“… 왜 나한테 그래. 난 아무것도 모르는 15살 소녀인걸.”
그 웃기지도 않은 말에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여전히 의문점은 많이 남았다.
예컨대 수석연구원은 대체 어쩌다가 수조 속에 갇혔을까?
그런 장소에 가둘 수 있다면 죽이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죽이지 않은 이유는 또 뭘까?
은솔 누나도 그 부분의 자료는 찾지 못한 듯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저주의 방에 얽힌 모든 비밀을 다 알아낼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
해결할 수 있을 만큼만 알아내면 된다.
다음 대화 주제는 ‘한가인의 봉인을 어떻게 풀 것인가’였다.
은솔 누나는 내가 갇힌 장소의 위치와 봉인을 풀기 위한 조건을 알렸다.
듣다 보니 절대 쉽지 않았다.
“단순히 본부로 쳐들어가서 초토화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군요?”
“아니야. 내가 찾은 정보대로라면 네 봉인은 패트릭과 베아트릭스만 풀 수 있어.”
“어렵네요. 베아트릭스에게 안내해달라고 할 수야 없는 일이니, 패트릭을 어떻게 세뇌라도 해야 하나요?”
궁금해서 아리 쪽을 바라보았다. 아리는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보통 사람이라면야 눈만 마주쳐도 잠시 조종할 수 있어. 심지가 강한 사람도 내 피를 강제로 먹이면 저항하지 못하지. 문제는 패트릭 정도면 보통 사람은 아니란 말이지. 나름대로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을 거야. 애초에 패트릭을 산 채로 잡는 것부터 난관이고.”
진철 형은 고민하는 듯했다.
“여차하면 내 별로 억지로 부숴서라도 접근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왜 위험한지 내가 다시 설명해야 해?”
“저도 이해했습니다. 다만, 일종의 플랜 D 정도로 생각하자는 거죠.”
송이는 다른 관점의 문제를 제기했다.
“아무래도 다음 회차에선 다 함께 본부로 넘어갈 것 같은데, 베아트릭스는 어떻게 하죠? 우리가 본부에서 날뛰기 시작하면 베아트릭스도 본부 쪽으로 넘어올 텐데.”
엘레나가 간단히 대답했다.
“그때까지 정의를 아끼다가 베아트릭스가 오면 쓸게. 그 후로 내가 막는 동안 여러분이 가인 씨를 풀면 되겠죠?”
3번째 시도를 어떻게 진행할지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다 함께 TV를 통해 본부로 이동한 후, 본부를 박살 내며 날 봉인으로부터 해방한다.
도중에 베아트릭스가 덮치면 엘레나가 베아트릭스를 상대로 시간을 끈다.
이후, 부활한 나와 함께 베아트릭스를 처단하면 해결!
다들 이제야 201호의 해결이 눈앞에 다가왔다며 기뻐하기 시작했다.
그 기쁨 속에서 나는….
솔직히 매우 불안했다.
동료들이 짜낸 계획엔 한 가지 제일 중요한 문제가 빠져 있었다.
다 좋은데, 그래서 그놈의 베아트릭스는 어떻게 죽인다는 거야?
다들 그냥 ‘위대한 수석연구원 한가인만 봉인 해제하면 베아트릭스는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계획을 짰잖아!
이거 진짜인가요? 믿을 만한 전략 맞나요?
나는 정작 베아트릭스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는데, 동료들은 나만 해방하면 베아트릭스는 위대한 수석연구원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느낌이라 너무 불안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 제가 분위기를 망치는 듯해서 죄송스러운데, 진짜 제가 봉인에서 풀린다고 베아트릭스를 때려잡을 수 있을까요? 차라리 관리국을 다시 한번 소환해보는 게 어때요?”
은솔 누나가 다소 우울한 반응을 보였다.
“… 내가 너희에게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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