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69)
168화 – 201호, 저주의 방 – ‘더 큐브’ (17)
– 김아리
패트릭을 확보한 후 3층까지는 탄탄대로였다.
이미 본부 내 대부분의 군부대는 우리가 부숴버린 이후였고, 유일한 장벽이라 할만한 베아트릭스는 생각보다 도착이 늦어졌다.
베아트릭스는 우리가 사용한 TV 통로가 아닌 다른 통로를 써서 오고 있는 게 아닐까? 모를 일이다.
패트릭의 상태는 점점 이상해졌다. 단순히 정신이 흐려진 느낌이라기보다는….
“아아…. 수석님. 여기까지도 당신의 안배였습니까? 대체 어디까지가 당신의 계획입니까?”
“…”
“항상 궁금했습니다. 대체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정말 인류를 위하시긴 하는 건가요?”
“…”
너무 이상해.
이런 넋 나간 듯한 헛소리를 떠들어대는 건 내 암시와 아무 상관 없다.
일행들도 점차 불안해하는 듯했다.
송이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리야아….”
“왜?”
“이 아저씨 왜 이래?”
나도 몰라.
마침내 3층에 도착했다. 은솔이가 잠시 기억을 되새기며 어디로 가야 할지 안내하려 했지만, 필요하지 않았다.
패트릭이 스스로 앞장서서 우리를 이끌고 안내하기 시작했으니까!
불길함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막기도 이상하다. 우리가 시키는 일을 알아서 잘하는데 막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10분 정도 흐른 후,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기계장치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마치 핵융합 발전소에서 에너지를 한 점으로 응축하는 데 쓰이는 듯한 거대한 설비.
설비의 중앙, 유리관 내부에선 기이한 형상의 불그스레한 다면체 하나가 신비롭게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에 –
모두가 그토록 찾아다닌 수조가 보였다.
보자마자 일행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달려갔다!
— 쿵!
서너 걸음 만에 수조 쪽으로 날아가던 차진철이 무언가에 부딪혔다.
“이건 또 뭐야?”
엘레나가 손을 허공에 뻗은 채 말했다.
“허공에 무슨 벽 같은 게 있네요?”
한없이 지친 목소리가 대답했다.
“부등변다면체로 만들어낸 공간 단절이다.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론 아예 다르지. 주먹을 휘둘려봐야 소용없으니 싸움을 대비해서 힘이나 아껴라.”
…
모두의 당황한 시선이 패트릭에게 쏠림과 동시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 기계들은 부등변다면체를 다루기 위한 장치인 모양이지?”
“그래. 사실상 이 본부의 존재 이유나 다름없지.”
“패트릭, 너 아까부터 제정신 같은데 -”
— 우르릉!
바닥이 진동하는 트램펄린처럼 요동치며 날카로운 형상이 튀어 올라왔다!
“으악! 아악!”
“어어! 이거 무슨 -”
마침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던 존재가 나타났다!
베아트릭스가 도착함과 동시에 타이밍을 맞춘 듯이 사방에서 남아있던 군부대와 연구원들까지 여기저기 나타나서 우릴 포위했다.
순식간에 날카로운 긴장이 장내를 가득 메웠다.
기이하게도, 바닥을 젤리처럼 꿰뚫으며 나타난 소녀는 우리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눈빛에 의지를 담을 수 있다면 진작에 사람을 다섯 토막으로 쪼갰을 듯한 광기 어린 시야가 주시한 대상은 패트릭이었다.
“패트리이익! 이게 무슨 짓이지? 세뇌에 당했다는 우스운 핑계는 대지도 마!”
“베아트릭스….”
“무슨 짓이냐고!!!”
“그냥 이런 생각이 들더군. 저들은 시설에 관해 모든 정보를 다 아는 사람처럼 본부를 제집 안방처럼 들어왔다. 이미 우리 정보는 관리국에 다 샜다는 이야기지.”
“…”
“얼마나 버틸 수 있겠나? 네가 이놈들을 다 죽이면 뭐가 달라지나? 다음엔 5배 정도 많은 군대가 오겠지.”
“흥! 5배 정도 보내봐야! -”
“그걸 네가 다 죽이면 그다음엔 25배겠군.”
“…”
“이제 한계가 왔어. 들킨 시점에서 끝난 승부다.”
“하! 그래서, 수석을 다시 깨워서 조아리며 빌기라도 하려고? 다시 관리국에 받아달라고 요청할 셈이야? 그래봐야 널 용서할 것 같아?”
“…너는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뭐?”
“네가 실험실에서 해방된 지도 10년은 넘지 않았나? 그 정도 시간이면 수석이 뭐 하는 사람인지, 왜 그가 세상의 구세주였으면서도 천고의 악마인지 스스로 알아내고도 남을 시간이었는데.”
“대체…. 대체 무슨 소리를 -”
“수석이 널 왜 키워냈는지는 알고 있나? 설마 정말 네가 만들어내는 괴물을 무기로 쓰려고 만들어냈다는 웃기는 핑계를 여태 믿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핑계였어? 베아트릭스가 만들어내는 괴물을 무기로 쓰려고 키운 것 아니야?
갑작스러운 폭로전에 놀란 우리는 물론이거니와 베아트릭스까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광경을 보고 패트릭은 좀 다른 의미로 지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어떤 병신 집단이 95% 확률로 통제도 불가능한 괴물을 찍어내는 힘을 무기로 쓴단 말이냐? 그걸 연구할 돈과 인력을 그냥 전차와 헬기, 드론, 보행 병기에 갈아 넣으면 나라를 세 번은 지키겠다!”
그는 그대로 뒤로 돌아서서 부유하는 다면체를 조작하는 설비 쪽으로 다가갔다.
다음 순간, 복잡한 상황이 발생했다.
베아트릭스는 잘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패트릭에게 날아들며 손을 뻗어 ‘무언가’를 했다.
엘레나의 몸에서 터져 나온 황금의 물결과 진동하는 저울이 베아트릭스를 튕겨냈고, 둘은 마구잡이로 뒤엉키며 연구소를 뚫고 날아갔다.
패트릭의 목에서 혓바닥이, 등에서 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경악한 이은솔과 나는 패트릭을 향해 달려갔다.
군부대가 우리에게 소총을 겨누고, 차진철은 별을 소환하며 맞서려 했다.
동시에 군부대 옆의 연구원들이 경악해서 소리 질렀다.
“제발! 제발 다들 진정하십시오! 세상을 위해서라도 제발!”
정신을 차렸을 때, 엘레나와 베아트릭스는 건물을 박살 내며 어디론가 사라졌고, 군부대와 차진철은 다소 어색한 분위기로 대치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패트릭 옆에서 어찌할 바 몰랐다.
“아리야! 아리야! 아리야! 아리야!”
“은솔아, 제발 조용히 좀 해.”
“어떻게 해야 해? 이 사람 도움 없이는 가인이 본인 못 풀어!”
“뭐, 못 풀 건 없지. 플랜 D는 있잖아.”
“그건 위험하다고 했잖아!”
그 잠깐 사이에 패트릭은 목에서 혓바닥이 돋아나고 등에선 손이 솟아난 끝에 도무지 호모 사피엔스라고 볼 수 없는 기괴한 형상으로 변모했다.
결국 옆에 온 김묵성이 뒤틀려가는 패트릭의 머리통에 총을 겨눴다.
“이걸 어찌하냐? 이놈을 죽여야 하냐?”
모두가 당황하던 순간, 패트릭은 아마도 유언으로 추정되는 말을 남겼다.
“베아트릭스…. 수석에 관해서도, 본인에 관해서도 알아낼 생각도 하지 않은 주제에 눈앞의 내 몸에만 수작을 부렸구나. 시야 한번 짧다 짧아…. 어째서 사고방식이 이렇게 유아적인지….”
그 말을 끝으로 패트릭의 이목구비가 붕괴하며 괴물이 튀어나오는 순간, 총성이 울리며 패트릭의 몸이 늘어졌다.
“이놈을 시켜서 봉인을 푸는 건 결국 망했다. 이럴 것 같긴 했다.”
“묵성, 어려울 것 같았나 봐?”
“아리 너도 같은 생각 아니었냐? 은솔이가 패트릭을 세뇌하자고 할 때부터 안 될 것 같다, 안 될 것 같다 소리만 다섯 번은 했잖아.”
“…”
“은솔이는 똑똑한 듯하면서 일반인틱하단 말이지. 계획을 짤 때 초자연적인 변수에 대한 고려가 너무 없다고나 할까?”
“… 묵성, 은솔이가 옆에 있어.”
“일반인 감각이라 미안하게 됐네요. 그리고 그렇게 계획이 이상해 보이면 미리 말씀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사람이 나이를 먹어도 애 같은 건 똑같다.
나도 모르게 한숨 한번 쉰 후 주변을 돌아봤다.
패트릭은 죽었고, 베아트릭스와 엘레나는 사라졌고, 차진철은 여전히 어색한 분위기로 대치 중이고. 바닥에선 덜덜거리는 진동이 느껴지고.
…
덜덜거리는 진동???
“은, 은솔아!”
“아리야?”
“이 진동 뭐야?”
그제야 정신 차린 은솔이는 바닥의 진동을 느끼더니 표정이 해쓱해졌다!
“이거 그거지? 시설 지하에 있다는 괴물들 올라오는 것 맞지?”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진동이 점차 커지자 우리는 물론이고 장내의 군인들과 연구원들까지 죄다 표정이 썩었으니까!
차진철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결국 내가 말한 플랜 D로 갑시다. 별의 힘으로 이 기계, 부등변다면체인가 뭔가를 통제하는 설비를 망가트리면 가인이도 풀릴 거라면서요?”
“…”
우리가 조용해진 와중, 건너편에서 우리 말을 들은 연구원이 거의 울듯이 외쳤다.
“제발! 제발! 진정하십시오. 부탁입니다. 나 하나 살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바깥세상을 생각하십시오. 저 바깥에는 오늘 하루 동안 성실히 일한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과 저녁을 즐기는 평화로운 세상이 있습니다.”
… 와! 우리 완전 악당 그 자체 같아!
그러거나 말거나 바닥의 진동은 점차 거세졌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전원 죽는다.
차진철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미 마음을 정했다.
“뭐, 이곳이 어딥니까? 201호. 무려 그 힘겨웠던 1층보다 한 차원 더 어려워진 장소란 말이죠. 위험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 됐든 수석연구원이 한번은 봉인했다던 존재 아닙니까? 뭔가 수를 쓰겠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연구원이 울부짖었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사랑하는 호텔 동료 여러분, 각자 마음의 준비와 할 수 있는 모든 대비를 하시길. 특히 송이야?”
수틀릴 경우, 우리 중 유일하게 버틸 수 있는 사람.
송이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손에는 어느샌가 탈출 버튼이 들려있었다.
차진철의 손에서 불길한 파동이 터져 나오며 연구소 전체를 메웠다.
그리고, 세상이 망했다.
*
무너진다.
연구소가 무너진다.
도시가 무너진다.
국가가 무너진다.
이윽고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만물을 굽어보는 위대한 눈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한 호흡에 별을 담고, 두 호흡에 우주를 담았노라.
아아 –
감히 내 미천한 눈으로 마주치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시야가 나를 내려다봤다.
‘한번 봐줬는데, 기어이 한 번 더 죽으러 왔니?’
그럼 어떻게 해요? 가만히 있으면 밑에서 올라오는 괴물에 죽을 판인데!
압도적인 시야 앞에서 내 몸이, 정신이, 영혼이 마치 백사장의 모래성이 파도에 부딪힌 것처럼 흩어진다.
오래된 피가 순식간에 말라붙으며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도래했음을 받아들인 순간에야 –
눈 뒤의 ‘그것’이 보였다.
이제야 알았다. 삼라만상에 깃든 눈의 실체, 0차원의 눈의 정체를 알았다.
슬픔, 기쁨, 공포, 환희, 열락, 절망, 분노 –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자극적인 깨달음이 내 뇌리를 강타했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생각한다. 한 가지 너무나 안타까운 사실.
지금 깨달은 이 지식은 기억하지 못하겠구나. 너무 선을 많이 넘은 지식이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생각했다.
갈 때 가더라도 인사는 한번 하고 가기로!
“여러분, 우리 이야기가 재미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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