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72)
171화 – 선택의 시간, 보상의 선택
– 한가인
보상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지만, 그다음 내용도 만만치 않았다.
유산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방이 해결되는 시점에서 생존해있고, 충분한 기여도를 쌓은 사람이다.
기여도도 기여도지만 결국 살아있는 게 중요한데, 0차원의 눈이 세상을 덮어버렸는데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곧, 내 의문을 풀어주기 위한 알림이 떴다.
/참가자 여러분! 다시금 201호의 해결을 축하드립니다!
현재까지 살아남았고, 최종 결전에 기여한 참가자들에게 유산을 얻을 자격이 있습니다.
자격이 있는 참가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엘레나 이바노바(정의)
2. 한가인(지혜)
그러나, 유산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곧 ‘선택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엘레나가 살아있었구나! 생존 사실 자체가 놀랍긴 하지만, 기여도 관점에서 봐도 그럴듯하다.
첫 번째 시도 이후로 두 번째 시도와 세 번째 시도 모두 가장 큰 장벽은 베아트릭스의 무력이었다. 매번 베아트릭스와 가장 치열하게 싸운 사람은 엘레나였다.
다만, 두 번째 시도에서 정보를 혼자 다 모은 은솔 누나가 선택받지 못한 점이 아쉽다. 아마도 0차원의 눈이 풀려나는 순간 죽은게 아닐까?
… 안타깝지만 나도 이미 겪어본 일이다.
선택의 시간, 여기에 관해서 진철 형이 예전에 뭐라고 했더라?
정신 차리면 콜로세움 같은 공간에서 싸우라고 판 깔아준다고 했었나? 물론 싸울 생각도 없고, 보상을 누가 받을지도 정해져 있 –
아찔한 감각과 함께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
*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내가 깨어난 장소는 최소한 콜로세움은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호텔 방 같은 장소. 테이블도 있고, 침대도 있고 디스플레이까지 있었다.
그리고 침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으아아앗!”
엘레나는 기절이라도 했는지 침대에 쓰러져있었다. 옷이 난리가 나서 절반은 알몸 같았는데, 엄한 생각을 하기엔 몸이 완전히 피칠갑하고 있었다.
…
의외로 엘레나의 피는 아닌 것 같다. 이불로 살살 닦아내자 옷이 찢어진 것과 별개로 본인 몸이 심하게 다친 것 같지 않았다. 숨도 고르게 쉬고 있다. 그냥 지쳐서 잠들었나?
잠시 후, 엘레나가 깨어났다.
자신의 상황을 보고 다소 당황하는 듯하던 엘레나는 옆에 있던 물 한 잔 마신 후 자신이 겪은 일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엘레나는 베아트릭스와 험하게 싸우던 중, 정의의 힘이 거의 소진되어서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다.
그 순간 베아트릭스가 황급히 어딘가로 날아갔다고 한다. 아마도 내 부활을 감지하고 황급히 막아보려 했던 것 같다.
즉시 날아서 베아트릭스를 추격하던 도중, 정의의 힘이 완전히 소진되며 더 이상 비행할 수 없어서 바닥에 떨어지면서 기절했고, 정신을 차린 것이 지금이다.
“기절해서 다행이었네요. 정신 멀쩡했으면 확실히 죽었을 텐데.”
“예?”
“아닙니다.”
나도 내가 겪은 일을 적당히 축약해서 들려주었다. 봉인이 풀리는 순간, 수석연구원이 내 안에서 깨어난 부분에선 엘레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 관문의 방을 나온 이후로 이렇게 둘이서만 대화한 적은 처음인 것 같다. 대화하다 보니 어딘가 어색해서 호텔에서 무언가 빨리 진행해줬으면 했다.
슬슬 우리 준비가 다 끝났다고 느꼈는지, 방의 디스플레이가 점멸하며 안내했다.
/어떤 보상을 받으실지, 두 분 중 어느 분이 받으실지 정해주세요./
누가 받아야 할지는 이미 답이 나온 문제다.
당황하는 엘레나에게 대놓고 말했다.
“이번 유산은 엘레나가 받으세요.”
“… 그, 굳이 양보하실 필요는 -”
“이미 제가 한번 봉인 당했는데 여기서 유산을 더 받아봐야 2층 내내 봉인 당할 뿐입니다. 나가서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봉인 시스템에 관한 설명도 제법 들었거든요? 한번 봉인 당한 사람은 두 번 당하지 않는다던가 그런 말은 없었어요. 제가 또 봉인 당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보상 자체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신기하네요. 하나는 ‘부등변다면체’일 것 같은데, 다른 하나는 뭐지?”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디스플레이가 깜빡였다.
/보상을 선택해주세요!
1. 유산, ‘빛나는 부등변다면체’
2. 능력, ‘불길한 상상’/
한 가지는 이미 짐작하던 물건이다.
수석연구원이 큐브를 만들어내는 데 사용한 기이한 도구, ‘빛나는 부등변다면체’.
또 한 가지는 다소 예상 밖이다. 명칭도 유산이 아니라 능력이었고, 애초에 실체가 있는 무언가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베아트릭스의 초능력, ‘불길한 상상’. 이것이 호텔이 제시한 두 번째 선택지였다.
“저기. 가인 씨?”
“네?”
“아까 수석연구원과 잠시 하나가 되셨다고 했었죠?”
“네. 지금은 분리되었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혹시 수석연구원의 기억도 계속 가지고 계시는가요?”
“애초에 합쳐졌을 때도 수석연구원이 한평생 쌓은 모든 지식이 제게 들어온 그런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빙의 능력을 쓸 때처럼 방의 해결을 위해 필요한 정보만 들어온 정도였죠. 그 정도는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조금 설명해주시겠어요?”
맞는 말이다. 부등변다면체와 불길한 상상에 관해 전혀 모를 엘레나와 달리, 난 둘 모두에 대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유산과 능력 모두 편리하고 쉽게 쓸 수 있는 물건이나 힘은 아니었다.
떠오르는 대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불길한 상상, 지금 정보를 검토하다가 알게 된 건데, 단순히 괴물을 만들어내는 힘은 아닙니다. 괴물을 만들어내는 건 나름대로 ‘고차원적인 활용법’에 속하고, 기본적으로는 이름 그대로 불길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이라고 하네요.”
“불길한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정확한 예시 같은 것까지 남아있지 않아서 더 설명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런가요.”
“다만…. 사용 과정에서 약간.”
“약간?”
“약간 사용자에게 정신병을 만들기 쉬운 종류의 초능력 같다는 정보가 있네요.”
“…부등변다면체 쪽은 어때요?”
“부등변다면체, 이게 바로 수석연구원이 ‘큐브’를 만들어내는데 사용한 도구입니다. 공간을 이리저리 뒤틀 수 있는 도구라고 하네요. 아공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벽을 설치할 수도 있죠. 이외에도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투명 상자를 만든다거나, 일종의 축지법 같은 활용도 가능합니다.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활용이 가능한 굉장히 신기한 유산입니다.”
그 말에 엘레나의 눈이 반짝거렸다!
솔직히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순간적으로 눈을 마주치기 힘들었다.
“그게 좋겠어요! 정신이 이상해지기 쉬운 초능력보다는!”
“그…. 부등변다면체 쪽도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뭔가요?”
“수석연구원의 평가에 따르면 사용하면서 매 순간 수학적인 계산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엄청나게 고도의 지성을 요구하는 도구라고 하네요.”
“…”
“수석연구원은 어지간한 사람은 벽 하나도 제대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 중이더군요. 참고로 그는 본인이 지구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놀라운 사람입니다.”
호텔 방이 조용해졌다. 나도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쓰기는 쉽지만 쓰다 보면 돌아버리기 딱 좋은 초능력과 지구에서 한 손에 꼽힐 천재 아니면 성능의 1%도 발휘하기 힘들다는 유산.
무슨 이런 것만 보상이라고 주는 거야?
…
엘레나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냥 가인 씨가 골라주세요.”
이런 부담스러운 결정을 내게 맡기다니….
“어디까지나 추천만 드릴게요. 제 생각에 ‘불길한 상상’의 부작용은 호텔 특성상 감당할 만합니다. 능력을 쓰는 게 어렵다기보다 쓰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 문제인 능력이잖아요? 그런데 능력을 쓸만한 장소라면 보통 저주의 방이죠. 저주의 방에서 능력을 쓰다가 설령 돌아버렸다 해도….”
“밖으로 나오면 고쳐져서 나오겠네요.”
“그렇죠. 그래서 리스크가 크면서도 감당은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부등변다면체는….”
“제가 갑자기 세기의 천재가 되는 게 아니라면 애초에 정상적으로 쓸 방법이 없다?”
“죄송합니다.”
“제가 솔직히 관리국 최상층 높으신 분들처럼 머리가 엄청나게 좋은 사람은 아니니까요. 공부도 그렇게까지 잘한 적 없고.”
반응을 보니 엘레나 자신도 뭘 골라야 할지 깨달은 듯했다.
엘레나는 불길한 상상을 얻어야 한다. 최소한, 정상적으로 쓸 수는 있는 능력을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엘레나가 일어서서 디스플레이로 –
“으아악!”
싸우다가 옷이 반은 헤져서 이불로 가리고 있었으면서 갑자기 일어서다니!
놀라서 뒤로 돌아서자 뒤에선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싶어서 다시 돌아서자 엘레나는 나와 대화하던 사이, 겉 이불 아래에 있던 속 이불을 가운처럼 걸쳐서 나온 상태였다.
바보가 된 기분으로 멍하니 있던 사이, 엘레나는 디스플레이를 몇 차례 조작했다.
“골랐네요.”
그 말과 함께 우리가 있던 방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201호의 기나긴 시련이 정말로 끝났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87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복도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 휘이잉! 우우웅!
“에취!”
201호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사정없이 몰아치는 칼바람에 피부가 찢어질 듯 아팠다!
멀찍이서 진철 형이 날 바라보며 무언가 소리쳤다.
“ㅁㅁㅁ! ㅁㅁ?”
“예?”
그 옆의 묵성 할아버지도 뭐라고 외쳤다.
“ㅁㅁㅁ!”
“예?”
뭐라는 거야? 눈보라가 너무 심해서 다들 뭐라는지 모르겠다.
대화창이 깜빡였다.
김묵성 : 깼냐?
한가인 : 네. 엘레나 유산 획득.
이은솔 : 축하축하
김아리 : ㅊㅋㅊㅋ
유송이 : ㅊㅋㅊㅋㅊㅋ
엘레나 : 고마워요.
차진철 : 축하합니다!
박승엽 : ㅊㅋㅊㅋ! 우리 일단 뛰죠.
그 말이 나오자마자 우리는 일단 엘리베이터를 향해 정신없이 뛰었다.
보아하니, 이미 끝난 방이긴 하지만 다들 201호에 관해 묻고 싶은 게 많은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상 날 제외하면 201호의 진상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없다.
0차원의 눈이 깨어남과 동시에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 죽거나 의식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 식사를 즐기며 201호에서 어떤 기상천외한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줄 필요가 있을 듯했다.
한참 내 옆에서 같이 뛰던 엘레나가 갑자기 멈췄다.
“엘레나? 눈보라가 심하니 뒤처지면 곤란 -”
“이런 능력이군요.”
“네?”
엘레나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날 돌아보았다.
“알 것 같아요. 유산을 얻으면 사용법을 저절로 알게 된다더니, 초능력도 똑같네요.”
“일단 엘리베이터로 가죠? 1층에서 밥 먹으면서 말해보는 게 -”
“죄송하지만 이미 썼어요. 저도 모르게.”
“예?”
— 아우우우! 아우우우!
가시거리 10M도 넘지 않는듯한 혹독한 눈보라, 어디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혹한의 장소.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멍한 표정의 엘레나는 중얼거렸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어릴 때 눈이 오면 어머니가 항상 말했거든요. 겨울밤, 집 밖에는 항상 늑대가 있으니 -”
“엘레나! Stop! Stop!”
아예 손으로 엘레나의 입을 막아버렸다.
아 진짜! 이제 나도 저놈의 ‘불길한 상상’이 어떤 능력인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얻으라고 추천했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무래도 엘레나가 이 능력에 숙련되기까지 파티타임 내내 상당히 피곤한 일이 생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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