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73)
172화 – 행복한 저녁시간, 201호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1)
– 한가인
엘레나가 얻은 초능력, 불길한 상상이 이렇게 피곤한 능력이었다니!
더 이상 이상한 소리를 하지 못하게끔 엘레나의 입을 막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늑대의 울음은 누가 들어도 심상치 않은 상황이었기에 앞서가던 사람들도 이상함을 느끼고 뒤처진 우리에게 돌아왔다.
“가인아! 이거 대체 무슨 상황이냐? 예전엔 늑대 같은 놈은 없었는데?”
“엘레나가 만들어낸 모양이에요!”
“뭐?”
“내려가서 설명해 드릴게요. 일단 내려갑시다!”
빠르게 역할이 정해졌다.
방호복을 입고 있던 은솔 누나가 엘레나를 한 손으로 들고 제일 먼저 뛰어갔고, 진철 형은 뒤쪽에서 늑대의 습격을 경계하는 위치를 잡았다.
…
늑대의 습격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제로는 보다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 띵! 동!
“다들 들어와! 일단 엘리베이터로 – 아니, 송이야? 그거 뭐야?”
“언니, 얘 귀엽지 않아요? 스노우라고 이름 붙여봤어요.”
“아니 송이야! 미친 스노우고 자시고 괴물 늑대잖아!”
“누님, 일단 들어갑시다.”
다행히 호텔 엘리베이터는 우리 전원은 물론이고 괴물 늑대까지 태우고도 멀쩡히 작동했다.
창조주인 엘레나는 무시하고 친화를 가진 송이의 손을 열심히 핥는 거대한 늑대.
늑대의 몸은 단백질로 된 육체가 아니라 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층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이 들렸다.
…
“에? 에에에에? 스노우? 대체 왜 이래?”
“…왜 이렇다기보다, 눈으로 만들어진 늑대니까 녹고 있을 뿐이야.”
“엘레나 언니? 어떻게 할 수 없어요?”
엘레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곧 늑대는 사라졌고, 송이는 급격히 우울해졌다.
페로가 열심히 부리를 비벼봤지만 사라진 스노우의 공백은 메꿀 수 없었다.
새삼 하는 생각이지만 송이는 진짜 특이한 여고생 같다.
그 와중에 아리가 엘레나에게 물었다.
“다른 괴물도 만들 수 있어? 예컨대 스노우 2라던가!”
“스노우를 마음대로 대체하려고 하지 마!”
“어차피 엘레나가 눈으로 만들었을 뿐인데? 스노우 3 스노우 4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걸?”
“에잇!”
“앗! 발로 차지 마~!”
그동안 말없이 있던 엘레나가 한숨 쉬었다.
“실시간으로 ‘불길한 상상’을 이해중인데, 큐브에서 베아트릭스가 썼던 힘과 좀 다르긴 하네요. 예컨대 베아트릭스가 만든 괴물은 하염없이 존재했지만, 제가 만드는 괴물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라져요.”
“그건 단점이라기보다 장점인데?”
“그래요?”
표정이 조금 밝아진 엘레나가 복도의 액자 같은 것을 지긋이 쳐다보며 –
“에잇!”
“에엑! 가, 가인 씨?”
유사 방한복을 만들 때 쓴 이불 한 장을 뜯어서 엘레나 눈을 가려버렸다.
그걸 보고 은솔 누나도 센스있게 엘레나 손을 붙잡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잘했어. 엘레나는 이제 이상한 생각 그만하고 105호 가서 코 자든지 하자.”
직전까지 액자에서 ‘튀어나오려고’ 하던 무언가는 다시금 사그라들었다.
나와 아리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한동안 진짜 피곤하겠네….”
“한동안 진짜 재밌겠다!”
아리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나도 발로 한 대 차고 싶어졌다.
*
언제나 그랬듯이 기가 막힌 음식들로 가득 찬 식탁을 보자 모두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졌다.
“언니? 엘레나는요?”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자겠대.”
즐거운 식사 시간, 모두가 궁금해한 대화 주제는 단연 201호였다.
마늘빵 한입을 베어 문 은솔 누나가 제일 먼저 질문했다.
“가인아, 이제 슬슬 설명 좀 해줘. 대체 뭐 어떤 식으로 해결한 거야? 오면서 대충은 들었지만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어렵던데.”
“음…. 간략하게 사실관계를 말씀드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의견 나눠보는 쪽으로 하죠.”
“좋아.”
“1980년대, 0차원의 눈이 세계에 나타나 큰 피해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관리국은 이 존재를 힘으로 이길 수 없다고 봤죠. 이때, 수석연구원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0차원의 눈은 인간이 잔혹하게 고통받는 일을 즐기는 존재였으니, 그 잔혹한 고통이 끝없이 반복되는 작은 지옥을 만들어서 선물하자는 것이었죠.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실행되었고, 놀랍게도 통했습니다.”
“통했다?”
“기억에 따르면 0차원의 눈이 작은 지옥, 즉 큐브 내부에 틀어박혔다고 하네요.”
아리가 쿡쿡 찔렀다.
“멈추지 말고 다음. 다음.”
“다만 그 지옥의 운영에 점차 한계가 왔습니다. 내부적으로는 당연히 ‘이건 선 넘은 것 아니냐?’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그 대표가 패트릭이고. 외부적으론 0차원의 눈이 슬슬 바깥쪽에 나가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걸 수석은 ‘0차원의 눈이 질렸다’라고 판단했죠.”
질린 듯한 표정을 짓던 진철 형이 물었다.
“거기서 그놈의 베아트릭스가 나온 거냐?”
“그렇죠. 베아트릭스 자체는 0차원의 눈이나 큐브와 관계없이 별개로 생긴 존재 같긴 한데, 하여튼 수석연구원은 베아트릭스를 큐브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앞서서 큐브의 문제가 뭐라고 했죠?”
아리가 답했다.
“두 개였지. 첫째, 운영진 측에서 이건 선 넘었다는 회의론자들이 나왔다. 둘째, 관객 측에서 이것만으로는 이제 지루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수석연구원은 두 문제 모두 베아트릭스가 해답이라고 보았습니다. 첫째, 베아트릭스가 만들어내는 괴물들이 큐브 내부의 살인 시설 등을 대체하면, 큐브를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사람의 수가 현저히 적어집니다. 둘째, 어지간해선 상상도 못 할 다채로운 방식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으니, 0차원의 눈이 느낄 만족도가 올라간다. 뭐 이런 개념이죠.”
멍하니 듣던 동료들이 넋이 나간 듯했다. 견디지 못한 진철 형이 말했다.
“평생 이렇게 정신 나간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저도 그렇습니다.”
“아니, 할배. 말 좀 해보쇼. 진짜 관리국이 이런 짓을 벌여왔습니까?”
묵성 할아버지는 한참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후, 대답했다.
“내 이름을 걸고, 아니 뭐 내 이름이 별거는 아니긴 하다만, 이 정도로 극단적인 사례는 들은 적이 없다.”
아리는 어딘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다시 누나가 날 툭툭 쳤다.
“자, 설령 있었다고 한들 지금 여기서 따질 문제는 아니지. 가인아, 더 이야기해봐.”
“수석의 큰 그림엔 한 가지 중대한 미스가 있었습니다. 수석 특유의 ‘모든 인간을 도구처럼 여기는’ 사고방식이 놓친 점인데, 베아트릭스는 괴물만 만들어내는 악마가 아니라 나름대로 자유와 행복을 바라는 소녀였다는 거죠.”
“… 그런 평범한 소녀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는데.”
“그런 면도 있었다는 이야깁니다. 잔혹한 면도 물론 있었을 테고. 하여튼, 베아트릭스는 큐브에서 하염없이 괴물만 만드는 노예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걸 인지한 수석은 베아트릭스를 뇌만 남겨서 봉인구역에 처박았습니다.”
거기쯤에서 송이가 먹던 고기를 뱉었다.
“점점 토할 것 같은 이야기만 계속 나오네요. 밥 먹으면서 할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은솔 누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듣다가 물었다.
“그래도 결국 반란은 성공했나 봐?”
“그랬습니다. 베아트릭스의 단독 반란은 불가능했지만, 패트릭이 협조하면서 문제가 커졌죠. 수석도 베아트릭스의 반란까진 예상해서 대응을 세웠지만, 패트릭은 오랜 심복. 반란을 일으킬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0차원의 눈의 봉인구역이 베아트릭스와 패트릭의 손에 넘어갔고, 그 시점으로부터 어느 정도 지난 후 201호에 우리가 들어간 셈입니다.”
“중간 진행은 알겠어. 애초에 우리가 했으니까.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큐브를 헤집고 다니다가 본부의 연구소와 연결된 TV를 찾았고, 연구소로 넘어가서 깽판을 쳐서 수석을 도로 깨웠지. 그 후엔 무슨 일이 있었어?”
“별것 아닙니다. 일종의 반란 진압이죠. 반란군이야 우리가 대부분 날렸고, 잔당도 0차원의 눈이 강림할 때 대부분 죽었습니다. 다시 깨어난 수석이 이번엔 베아트릭스가 반란을 일으킬 엄두도 내지 못하게 뇌를 아예 큐브 내부, 아예 외부로 통하는 문이 없는 상자에 가뒀습니다.”
“그 상자에서 베아트릭스는 하염없이 괴물을 만들고? 관리국은 사람을 붓고?”
“비슷합니다.”
한참 조용히 듣던 아리가 입을 열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자극적인 부분을 떼어내면 비교적 쉬운 스토리네.”
이번엔 동료들의 눈이 아리에게 쏠렸다.
“무슨 살인 트랩이니, 인간을 괴물 밥으로 주니, 이런 자극적인 요소를 빼고 담백하게 생각해봐. 악신을 가둔 봉인 시설이 반란군 손에 넘어간 상태였는데, 이게 관리국 손에 다시 들어오면서 해결된 거야.”
아주 거친 요약이지만 일리 있는 시각이다.
진작 식사를 멈춘 송이는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그러니까…. 201호의 ‘저주’는 대체 뭐였나요? 처음엔 큐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큐브는 오히려 봉인 시설이라 큐브를 다시 완벽하게 만들면서 해결이 됐잖아요?”
아리는 간단하게 답했다.
“저주의 근원은 0차원의 눈이고, 0차원의 눈을 봉인한 큐브가 반군 손에 넘어간 상황이 우리가 해결해야 했던 문제 아닐까?”
그런 식으로 해석해야 하나? 드러난 정황만 보면 딱히 틀린 해석 같지는 않은데, 무언가 와닿지 않는 면이 있었다.
모두가 고민하던 사이, 한참 생각하던 은솔 누나가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너무 ‘수석연구원’ 입장에서 201호를 해석 중인 것 같아. 말 나온 김에 아예 다른 포인트를 생각해봐. 수석연구원은 본인의 정답은 호텔 기준으로 불완전한 해결이라고 스스로 인정했지?”
그 부분은 내가 부연해 설명했다.
“네. 호텔 기준으론 100점 만점에 30점 수준의 해결이라고 생각했죠. 제가 했던 생각이긴 한데, 그 시점의 전 수석과 반 이상 섞였으니 수석의 생각이라고 봐도 됩니다.”
“왜 그렇게 낮은 점수일까?”
진철 형이 어이없다는 투로 답했다.
“누님은 그걸 질문이라고 하십니까? 사람을 악마 밥으로 하염없이 던져주는 해결책이 점수가 높으면 더 이상하지 않아요? 전 그따위 방식이 ‘해결’이라는 평가가 나왔다는 게 더 신기합니다.”
“아니, 조금 찬찬히 생각해봐. 평가 주체가 호텔이잖아. 너희 생각엔 이놈의 호텔이 그렇게 사람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장소 같니?”
…
뒤통수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면서 모두가 조용해졌다.
“내가 살면서 이 호텔만큼 사람 목숨 우습게 여기는 장소를 본 적이 없어. 그런데 ‘겨우 인간’ 수십 수백 명 정도 악마 밥으로 주는 게 호텔이 뭐 대단히 심각히 여길 문제일까?”
…
“또, 아까부터 이상한 부분도 있었어. 수석 말대로면 0차원의 눈은 사람이 고통스럽게 죽는 걸 즐기는 존재라던데, 정말 그런 존재라면 왜 큐브 따위에 스스로 들어가서 만족한 거야? 내가 그런 싸이코 신의 심리를 이해하긴 어렵지만, 좁디좁은 큐브에서 겨우 수백 명이 죽는 것 보다는 지구 전체에서 80억 인간이 고통스러워 하는 게 더 재밌지 않을까?”
…
“이런 점이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어. 어쩌면 내가 관리국식의 ‘오컬트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하지 않고, 너무 ‘비즈니스적’으로 생각 중인지 모르겠는데….”
아리가 요약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이거네. 첫째. 호텔처럼 사람 목숨 우습게 보는 곳이 없다. 수석이 지구를 구하다 보면 사람 좀 갈아버릴 수도 있지, 겨우 그런 것 가지고 왜 이렇게 점수를 낮게 매기냐? 둘째, 인류의 고통을 즐긴다는 악신이 왜 지구 전체를 가지고 놀 생각은 하지 않고 고작 큐브 하나를 구경하냐? 뭐 이런 거야?”
“그래.”
송이가 고개를 숙였다.
“저 이 대화…. 따라가기 어려워요.”
반면, 은솔 누나와 아리는 점점 대화에 심취하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의문들을 해결할 수 있는 논리가 하나 떠올랐어.”
아리가 너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 뭐야? 아까부터 느낀 건데, 너도 호텔 나가면 대양 그룹 이런 재미없는 일은 집어치우고 우리 쪽에 오면 좋겠다.”
“…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나는 0차원의 눈의 기묘한 행동 방식을 ‘비즈니스적’으로 이해하면 의외로 간단하게 해석된다고 봐. 오히려 너무 ‘오컬트적’으로 해석하니까 수석부터가 함정에 빠진 거지. 그래서 호텔도 점수를 짜게 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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