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74)
173화 – 행복한 저녁 시간, 201호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2) Fin
– 한가인
“비즈니스적인 관점이요?”
세상에서 ‘비즈니스’랑 거리가 제일 먼 상황에서 비즈니스가 튀어나온 느낌이다.
토할 것 같다던 송이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누나의 설명이 다시 시작됐다.
“나는 0차원의 눈의 행동 방식이 ‘양식업자’와 굉장히 유사하다고 봐. 바다는 거의 무한하게 느껴질 만큼 넓고, 그 안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고기가 있지. 하지만, 무척 많은 물고기조차 인간이 끝없이 잡아먹다 보면 어느 순간 새끼부터 성체까지 남아나는 게 없어. 결국 인간은 ‘어족자원관리’를 시작했지.”
“어족자원관리….”
“0차원의 눈 관점에서 봐. 지구에 강림해서 80억 인간을 농락할 수도 있겠지만, 악신의 광기와 끝없는 마력으로 미뤄볼 때 그런 짓을 벌였다면 지구가 얼마나 버틸까? 1년은 갈까? 그걸 알기 때문에 0차원의 눈도 오히려 자제한 거지. 100년이고 1000년이고 지구를 빨아먹기 위한 장기 계획이랄까?”
아리가 한숨 쉬며 대답했다.
“네 말대로면 수석연구원은 말하는 고등어로서 양식업자에게 제안한 셈이네. 우리가 직접 양식장을 만들어서 수백 년 수천 년을 빨아먹게 해줄 테니 어족자원관리 좀 해달라고.”
“그거지. 0차원의 눈도 그 제안을 받아들인 거야. 얼마나 좋아? 고등어를 다 죽이면 멸종당할까 봐 문제, 그렇다고 멸종하지 않게끔 신경 써가면서 관리하려면 이것저것 귀찮았겠지? 그런데 말하는 고등어가 직접 온 거야. 우리가 직접 양식장을 만들어서 관리까지 해주겠다. 인간 양식업자 악신으로선 함박웃음이 나왔을 거라고 봐.”
“0차원의 눈이 ‘자제’한 이유는 그 때문이라고 칩시다. 그렇다면 어족자원관리 덕에 인류의 존속이 이루어졌는데 고작 30점인 이유는 뭘까요?”
은솔 누나는 갑자기 약간은 아련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내 아버님은 인간적으로 좋은 분은 아니야.”
갑자기 아버지?
“하지만, 사업가로선 부정할 수 없는 통찰력이 있는 분이기도 하지. 그분이 종종 하는 말버릇이 있어. ‘정체란 곧 퇴보다.’ 뭐, 흔한 말이지.”
“정체란 곧 퇴보다.”
“사업가들은 현재 사업을 유지만 하는 상황을 탐탁지 않아 해. 언제나 확장을 꿈꾸지. 0차원의 눈 역시 확장을 꿈꿨겠지. 관리국에 한 번 압박을 줬더니 알아서 양식장을 바쳤어. 이걸 한 번으로 멈췄을까?”
모두가 말문을 잃었다.
“한 번은 두 번이, 두 번은 세 번이 되었겠지. 그러다 결국은 지구 전체가 악신을 봉양하기 위한 거대한 ‘고통의 농장’같은 장소가 되지 않았을까? 이러니까 아무리 인명 경시의 첨단을 달리는 호텔이라 해도 30점 이상은 줄 수 없는 해결책이야.”
차갑게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은솔 누나는 가설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 모든 건 결국 내 나름의 해석에 불과하다는 점 잊지 마. 수석에게 수석의 해석이 있었듯이, 나에겐 나의 해석이 있을 뿐이니까.”
그럴듯하다. 100% 완벽한 해석까진 아니겠지만, 적어도 수석의 해석보다는 더 진실에 가까우리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이는 누나가 수석보다 천재라서가 아니라, 제로 베이스에서 해법을 찾아야만 했던 수석과 달리 우리는 일종의 미래 시점에서 내리는 판단이기 때문이리라.
마지막으로 한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이미 201호는 해결 판정이라 다시 시도할 일은 없겠지만, 미래를 위한 복습이라 생각하고 한번 가볍게 고민해보죠. 더 나은 해결책은 뭐가 있었을까요?”
누나가 다시 골똘히 생각한 후 답했다.
“나도 그 생각하긴 했는데…. 두 가지 정도 떠올랐어.”
아리가 바로 물었다.
“두 개나? 난 한 개도 안 떠올랐는데! 말해봐.”
“1번. ‘악의 종복’ 작전.”
“예?”
“102호, 103호를 경험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아무래도 이 우주엔 우리를 제외한 지적생명체가 제법 많은 느낌이야. 관리국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고.”
그건 확실하다. 아리나 할아버지도 부정하지 않았다.
“0차원의 눈에 제안하는 거지. 우리 인간이 당신의 종복이 되겠다. 외계종족들을 대신 바치겠다.”
… 머리가 띵 했다.
아리는 다소 실망한 투로 대답했다.
“그건 뭔가 좀 아닌 것 같아…. 다음 작전 말해봐.”
“2번. ‘이이제이’ 작전. 역시 호텔을 경험하다 느꼈는데, 사악한 존재들이 끝도 없이 많더라고.”
“그렇긴 하죠. 솔직히 지구가 여태 어떻게 버티고 있나 신기할 정도네요.”
“다른 악마를 끌어들여서 싸움 붙이는 건 어떨까? 악마 중에선 ‘아니! 내가 인간을 발라먹을 생각인데 네가 뭔데 다 처먹냐?’ 하는 놈이 있지 않을까?”
아리는 이번엔 큰 한숨을 쉬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로 반박되는 작전이네…. 그런 짓은 관리국에서 절대 시도하지 않아. 네 말대로 사악한 존재들끼리 싸움 붙이는 게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별을 우습게 보는 악마들이 지구에서 지지고 볶고 싸우면 그 와중에 살아남는 인간이 있겠어?”
“에잇! 나도 잠깐 사이에 떠올렸을 뿐이야! 자꾸 이리저리 트집 잡지 말고 네 생각을 말해보던가.”
그 말엔 아리가 또 조용해졌다.
이번엔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나도 하나 떠올려봤다. ‘속이기’ 작전 어떠냐?”
“0차원의 눈을 속여요? 뭔 짓을 해서 속입니까?”
“아니, 0차원의 눈을 속이는 게 아니라 인류를 속이는 거지.”
“예?”
“0차원의 눈에 대한 대응법 기억하냐? ‘인지하지 않는 것’이 의외로 통하는 존재였지.”
“그렇죠.”
“지구 전체에 기억 소거제를 살포해서 0차원의 눈에 관한 기억을 지워버리자.”
“…아니, 마지막 순간엔 0차원의 눈 자체가 하늘을 뒤덮을 기세로 커지던데요. 하늘을 통째로 가린다면 모를까, 눈에 뻔히 보이는데 인지하는 걸 막을 수 있습니까?”
“아 그래? 난 그 장면까진 못 보고 죽었다. 아예 전 인류를 몇 년 동안 시각 장애인으로 – 애미, 이건 내가 생각해도 지랄이네.”
“아예 지구를 장벽으로 덮어서 0차원의 눈이 안 보이게 하는 건 어떨까요!”
“송이야, 차라리 지구를 태양계 밖으로 옮기자고 해.”
“악마의 노예로 비참하게 사느니 전 인류의 자살이 옳습니다.”
“그건 확실히 0점짜리 해법 같아.”
… 이후로도 동료들은 점점 더 정신 나간 이야기만 꺼냈다.
뭔가 대부분 근본적으로 엇나간 해법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지? 어째서 저런 식의 해법들은 듣자마자 아니다 싶은 걸까?
…
— 탕! 탕!
“잠깐 제 말 좀 들어보세요.”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제 생각에 우리에겐 일종의 시험문제가 주어졌다고 보거든요.”
“수험생 같은 말이네.”
“제 말은, 시험문제라는 건 항상 출제자의 의도를 생각해야 하고, 출제자의 의도는 보통 지문에 근거가 있어요.”
“지문에 근거가 있다…. 우리가 진행한 201호 내부에 근거가 있었다?”
“그렇죠. 그러니까 갑자기 아무 근거도 없던 다른 악마를 끌어들이기나 전 인류를 시각 장애인으로 만들기 같은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가능하면 ‘우리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식의 방법이어야죠.”
“201호 내부에 더 나은 해법과 관련된 근거가 있었나?”
“그냥 여기부턴 제 생각입니다. 0차원의 눈이 바라는 게 정확히 뭔지 알긴 어려운데, 인간의 죽음 보다는 고통에 가까워 보입니다. 여기에 관한 근거들은 제법 있죠. 수석이 직접 내린 판단이기도 하고. 또, 누나 말대로 ‘비즈니스’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존재라면, 단순히 재미를 위해 행동한다기보다 필멸자의 고통으로부터 어떤 이득을 얻는 존재일 테고.”
은솔 누나가 바로 동의했다.
“나는 그렇게 봐. 정말 ‘재미’만을 추구하는 존재였다면…. 뭐랄까, 좀 더 즉흥적으로 행동했겠지. 본디 ‘재미’라는 건 지루함의 반대항, 예측 불가능이 실현될 때 느낄 수 있으니까.”
“더해서 201호 내부의 관리국이 가진 기술력은 이미 사람을 뇌만 남기고 생존시킬 수 있는 상태였죠.”
슬슬 송이가 또 뭔가 뱉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굳이 사람을 괴물에 노출해서 실제로 죽여야 한다는 게 수석의 편견 아니었을까요? 0차원의 눈이 바라는 게 고통이라면, 그냥 사람을 뇌만 남겨서 하염없이 고통만 주는 수조를 잔뜩 만드는 게…. 일종의 ‘고통 생산’차원에서 훨씬 효율적이면서 실제 사람의 죽음은 줄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고통의 과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네 입으로 ‘우리가’ 뭔가 할 수 있는 형태여야 한다고 했잖아? 방금 말하는 건 전적으로 관리국에 의존하는 형태 같은데. 물론 당시의 넌 관리국의 수장 격 위치였으니 네가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도 그럴듯하긴 했겠지만.”
“사실 그 부분은 저쪽에서 송이가 자꾸 토하려고 해서 말을 아꼈는데.”
송이가 바로 끼어들었다.
“저, 이미 이해했으니까 그냥 말하지 말아 주세요.”
“우리가 일종의 완성품을 하나 만들어서 보여줄 수 있었겠죠. 마침, 이미 베아트릭스의 둥둥 뇌는 있었으니까. 송이가 둥둥 뇌에 지옥보다 더한 환상을 주입하면서 이런 방식은 어떠냐고 제안해본다던가.”
아리가 냉소적으로 중얼거렸다.
“그 악마가 정말 ‘지속 가능한 고통 발전’을 목표로 하는 친환경적인 사업가라면 받아들일 법한 제안이네. 인간의 죽음을 피할 수 있으니 훨씬 쉽게 양식장 규모도 늘릴 수 있고, 어찌 됐든 양식장을 물고기가 직접 만들어 바치는 상황은 똑같고.”
누나는 무언가 되짚어보는 듯하다가 말했다.
“가능한 방식 맞아? 내 말은, 봉인구역에 들어가려면 송이가 목숨을 건 버프를 가인이에게 줘야 했잖아.”
“그건 패트릭을 살리지 못해서 생긴 문제죠. 진철 형이 별을 써서 우악스럽게 부등변다면체를 통제하던 기기를 박살 내야만 했으니까요. 패트릭을 살렸다면 더욱 안전하게 봉인구역에 들어갈 방법이 있었을 겁니다.”
아리가 끄덕거렸다.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네. 봉인구역에 베아트릭스의 뇌가 있었다며? 당연히 둥둥 뇌를 유지하기 위한 설비도 있었을 테지. 설마하니 수석연구원이 그 모든 것을 손으로 직접 들어서 옮겼을 리는 없으니까.”
“패트릭을 살려서 기기를 조작했다면, 더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다. 안전하게 들어가서 송이가 둥둥 뇌를 영원히 고문하는 환상을 보여주며 -”
“아! 나 그런 거 안 한다니까!”
송이의 거센 짜증과 함께 대화가 잠시 멈췄다.
정말 이런 식의 방법뿐이었을까?
결국 어떤 식으로든 악마가 바라는 것을 제공해주는 식의 해법임은 다르지 않다. 그 과정에서 그나마 인간이 덜 죽는 방식이 무엇인가를 고민했을 뿐.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의 방법도 잘 쳐줘야 60점 이상은 받기 힘들 것 같았다.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나아가서 인류에게 힘이 부족하다.
결국 양식업자 앞에서 고등어가 낼 수 있는 해답이라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처음으로 ‘관리국’에서 사람 목숨을 희생해가며 호텔에 도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2층에서 앞으로 진행하면서 오늘처럼 극단적인 해법을 쓸 일이 또 생긴다면….
우리 중 몇 사람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다. 조금 전 송이가 보인 격한 반발.
단순히 if 스토리를 나열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냥 불평 정도로 끝났지만, 실제로 해야 하는 상황에선 어떤 일이 생겼을까?
식사 시간이 끝난 후, 호텔에서 알림을 띄웠다.
/사랑하는 고객 여러분! 축하합니다.
마침내 2층의 첫 번째 시련을 이겨내고 또 하나의 보물을 얻어낸 성과!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내일부터 3일간의 휴식! 사용이 쉽지 않은 능력인 만큼 열심히 연습하는 게 좋겠지요?
오늘의 깜짝 이벤트 : 파티타임! 이 시작됩니다.
추가 안내 사항이 있습니다.
1. 티켓을 바로 꺼내서 알림을 확인해주세요.
2. 2층의 혹한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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