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76)
175화 – 파티 타임 – 야간 특별회의, 축복의 성소 (2)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89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지금부터 호텔 파티 제1회 야간 특별회의를 개최합니다!”
“…”
“…”
장내에 침묵이 감돈다. 지금은 새벽 3시. 보통 우리가 깨어있는 시간은 아니다.
“모두를 모으느라 수고하신 김묵성 할아버님께 박수…. 할 시간은 아니고, 수고하셨습니다.”
“무슨 회의길래 굳이 이 시간에 전원을 모은 거냐? 심지어 전체 대화창은 쓰지 말라고 난리를 쳐서 한명 한명 개인 대화창으로 부르느라 힘들었다.”
그 대답은 아리가 해줬다.
“어쩔 수 없었어. 내용 일부는 엘레나가 듣지 않게 할 필요가 있었거든. 엘레나는 지금은 깊게 잠들었어.”
엘레나 말고도 두 명은 보이지 않았다. 승엽이와 진철 형은 아주 깊이 잠들었는지 할아버지의 개인 대화창에 반응하지 않았다. 105호의 특성상 대화창으로도 깨어나지 않으면 부를 방법이 없다.
“짐작하는 분도 있겠지만, 엘레나가 이번에 얻은 능력 ‘불길한 상상’에 모두가 적절히 대응하기 위한 회의입니다. 사실 낮에 할까 생각도 했는데, 호텔에서 낮에 회의하면서 엘레나만 모르게 하기가 힘들어서요.”
“흐음. 너랑 아리가 나름대로 대응 중인 것 같긴 하던데? 불안함을 자극하지 말자는 이야기 아니냐?”
과연, 할아버지는 이미 아리와 나의 특이 행동을 보고 목적을 알아낸 듯했다.
물론 그 말을 듣고서야 눈을 크게 뜨는 송이도 보였다.
“맞습니다. 엘레나가 능력에 숙련되기까지 엘레나 주변의 기현상을 보고 비명 지르거나, 놀라서 도망가는 등 행위는 금지입니다. 엘레나의 부정적인 심리를 자극할 위험이 있으니까요.”
“네에에…. 꼭 조심할게요.”
송이가 바로 대답하는 걸 보니 이미 한번 그런 행동을 한 것 같다.
“좋습니다. 사실, 겨우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새벽에 모두를 부른 건 아닙니다. 몇 시간 동안 수석연구원의 기억을 뒤져봤거든요.”
할아버지가 눈을 크게 떴다.
“오! 그러고 보니, 그놈이 베아트릭스를 키웠지? 뭐 좋은 방법 있었냐?”
“그야말로 온갖 방법을 다 시험해본 기억이 어렴풋이 남았습니다. 아주 명확한 기억은 아니긴 한데, 크게 보면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야말로 ‘수석다운’ 방식이라 우리가 그대로 쓰긴 쉽지 않아 보여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묻고 싶습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능력 사용법에 관한 이야기인데 엘레나 없이 해도 되나? 뭐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빼고 불렀겠지만.”
“맞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자존감 키우기’입니다.”
“뭐?”
“별것 아닙니다. 능력의 메커니즘 상 불안함이나 두려움을 느낄 때 이상한 일이 생기죠. 이런 현상은 당사자의 자아가 나약할수록 심해집니다.”
“그러니까 ‘내가 엄청 강한 존재다’라는 믿음을 주입해서 불안함을 느낄 일 자체를 없게 한다?”
“비슷해요.”
“수석은 어떻게 했는데?”
“다양합니다. 모든 사람이 베아트릭스에게 존칭을 쓰게 한다거나, 몇몇 체격 좋은 군인이 베아트릭스를 볼 때마다 두려워하며 물러서는 연기를 하게 만든다거나.”
“… 그건 진짜 어렸던 10살배기 베아트릭스를 교육했을 때나 통했을 방법 아니냐? 우리가 다 큰 처자에게 쓸 방법은 아닌 것 같다만.”
할아버지는 다른 문제도 지적했다.
“애초에 교육 대상의 지능이 낮아야 통하는 방법 아닌가 싶다. 10살 미만의 꼬맹이야 그런 경험만 해도 황제의 자식이라도 된 듯한 도취감에 빠지겠지만, 엘레나는 이게 대체 뭔 지랄일까 생각하겠지.”
“더 적극적으로는 압도적으로 강력한 분신을 만들어서 의식을 그쪽으로 옮기는 방법이 있죠. 손짓 한 번에 벽을 부수고 머리를 으깨도 재생할 수 있게 되면 두려움을 느낄 일이 거의 사라질 테니까요.”
“그건 괜찮은데?”
“문제는 능력의 원주인인 베아트릭스도 창조한 괴물에 의식을 옮기는 단계에 도달하기까지 15년 넘게 걸렸습니다.”
“…”
“두 번째 방법은 이미 저랑 아리가 쓰는 방법과 유사합니다. 말하자면 ‘두려움을 웃음으로 바꾸기’ 정도죠.”
“괴물을 보면서도 다 같이 별일 아니라는 듯 웃어넘기면서 엘레나도 이런 일을 가볍게 여기게 만든다?”
“그렇죠. 실제로 여러분이 베아트릭스와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을 떠올려보세요. 나랑 놀자! 이런 식이었죠? 베아트릭스의 잔인하면서도 장난스러운 성품이 이런 교육과정에서 형성된 겁니다.”
이 방법을 우리 중 먼저 시작한 사람은 아리다.
그 아리가 먼저 한숨 쉬며 대답했다.
“하루 이틀 해보니까 한계가 있는 것 같아. 솔직히 홍차에 독이 생겼을 때는 좀 놀랐어. 이 정도의 일을 겪으면서 웃으면 그게 더 부자연스러워. 물론 다들 적절한 연기로 엘레나에게 두려움을 전염시킬 필요까진 없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야.”
“맞아. 사실 손쉬운 해결책 같은 건 없다는 게 내 결론이야. 애초에 위험을 손쉽게 지울 수 있다면 ‘불길한 상상’은 터무니없는 능력이니까. 펀치 한 번으로 진철 형을 찍어누르던 고릴라, 그 고릴라가 벌벌 떨게 만든 베아트릭스 본인의 육체. 전부 불길한 상상의 결과물이지. 어쨌든 수석은 세 번째 방법도 찾아냈어.”
모두가 침묵하며 내 말을 듣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말한 방식들은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운 채 다니면서 한 방울도 흘리지 않길 바라는 해결책에 불과해. 불길한 상상이라는 거대한 항아리는 언제든지 기기묘묘한 이상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물’이 한가득 차 있고, 이걸 엘레나가 들고 있어. 엘레나가 아무리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한들 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항아리가 진동하고, 물은 조금씩 샐 수밖에 없지.”
“그렇게 샌 물이 평소에 만들어내는 시답지 않은 괴물들?”
“그래. 앞의 두 가지 방법이 ‘어떻게 능력을 쓰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이라면 세 번째 방법은 반대야. 그냥 능력을 전부 써버리는 거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할아버지가 답했다.
“호텔 전체를 뭐, 괴물로 덮어버리고 우리가 하나하나 쳐 죽이자는 소리냐?”
“그렇게 많은 괴물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 죽일 거면 의미가 없죠. ‘불길한 상상’은 저주가 아니라 엘레나에게 주어진 보상인데, 잘 쓸 방법을 찾아야죠.”
“그러면 무슨 말이지?”
“지금처럼 잡스럽고 하찮은 괴물 수십 또는 수백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아주 강력한 존재 하나를 빚어내는 겁니다. 불길한 상상의 모든 힘을 담아서.”
그 말에 아리가 심히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큐브 내부에서 봤던 ‘고릴라’가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든 건가?”
“맞아. 고릴라가 다른 괴물과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강했던 비결은 베아트릭스가 항아리가 텅 빌 정도로 힘을 들이부어서 만들었기 때문이지.”
“만들었다 치고, 그런 괴물을 대체 어떻게 통제해? 송이의 친화? 예전부터 보면 송이 친화는 일정 이상 미쳐 날뛰는 애들에게 통하진 않는 것 같던데.”
“오히려 강력한 괴물이어야 통제할 수 있는 존재가 나올 확률이 높아. 잡스러운 놈들은 제대로 된 지성도 없이 잔인함과 흉포함만 가진 놈들이지만, 진짜 강력한 놈은 고도의 지성까지 갖출 수 있으니까.”
“그래서 고도의 지성을 가진 악마를 만들어서 잘 설득해보자? 능력 이름부터가 ‘불길한’ 상상이고, 그 불길한 상상력의 극한을 써서 만든 괴물이 네 말대로 잘 되겠어?”
“그 문제를 수석은 아주 쉽게 해결했지.”
“어떻게?”
“설득이 안 되면 죽였어. 통제할 수 있는 놈이 나올 때까지 100번이고 1000번이고 하염없이 만들었지.”
“…”
“할 수만 있으면 불길한 상상의 완벽한 활용법이야. 항아리를 텅 비웠으니 일상에서 능력이 새어 나가는 일도 사라지고, 소통 방법이 없는 저능아 괴물 수백 마리와 달리 소통 가능한 한 마리의 무지막지한 괴물이니 전술적으로 이용하기도 좋고.”
“생각해보니까 수석은 쓸 수 없었지만, 우리에게만 가능한 방법도 있네.”
아리는 그 말과 함께 날 가리켰다.
“맞아. 저능아 괴물 수백 마리와 달리, 강력한 괴물 한 마리라면…. 여차하면 내가 빙의해서 직접 통제하면 그만이지!”
바로 이 점 때문에 나는 이 방법이 가장 괜찮다고 봤다.
엘레나가 만든 괴물이라 해서 꼭 엘레나가 통제할 필요가 있을까? 가능하면 그게 제일 좋겠지만, 어렵다면 내가 통제하면 그만이다.
잠시 주변이 조용해졌다.
애초에 이런 초자연적인 능력 통제에 관해선 문외한인 누나나 송이는 둘 다 입을 다물었고, 심지어 묵성 할아버지조차 입을 다물었다.
우리 중 이 분야 최대 전문가, 아리가 입을 열었다.
“결국 거칠게 요약하면 세 가지 방법은 이런 식이네. 첫째, 자존감을 키운다. 아예 괴물의 몸에 의식을 옮길 수 있으면 더욱 좋다. 둘째, 주변에서 호들갑 떨지 말고 웃어넘기려고 노력하면서 본인을 자극하지 말자. 셋째, 강력한 괴물 하나를 만들어서 잘 통제한다. 통제가 어려우면 가인이 네가 빙의하겠다.”
“그렇지.”
“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한 것 같아. 실제 성공사례도 201호 내부에서 우리가 봤으니까. 결국 뭘 할 수 있냐의 문제겠지. 원래 다 그렇잖아? 네가 좋아하는 대학 입시 식으로 말하면, 서울대 나온 과외 선생님이 본인 공부 방식을 완벽히 전해줘도 배우는 학생이 따라 할 수 없으면 의미 없어.”
“오늘 한 이야기 중 엘레나에게 전해도 될 이야기는 전해줘야겠네. 최종적으론 본인이 어떤 방식을 할 수 있냐의 문제겠지.”
결국은 엘레나의 능력인 만큼 본인이 택할 문제다.
초능력의 통제라는 주제 덕에 회의 내내 조용히 있던 은솔 누나가 질문했다.
“가인이 너, 조언 또 찼지?”
“네.”
“뭐에 쓸 셈이야? 요번엔 좀 빡빡하게 써야 할 것 같은데….”
“사실, 원래는 104호에 관한 질문을 좀 해보고 싶었습니다. 평소엔 저주의 방을 해결하는 데 조언을 써야 하니, 파티타임인 지금이 적절한 시기 같아서.”
“호텔고? 흐음. 104호 관련 질문은 하나에 3개씩 소모된다고 했지?”
“네. 왜 그런지도 궁금하네요.”
“조언을 쓰는 건 결국 네 선택이긴 한데, 104호 쪽에 너무 많이 쓰면 곤란할 것 같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104호에 관해 잔뜩 질문해보고 싶었다는 건 예전에 하던 생각이고…. 당장은 호텔이 우릴 얼려 죽일 생각으로 가득 찬 모양이니 그 부분 관련 정보부터 얻어야겠네요. 104호 쪽으로는 한 개 정도만 쓸까 합니다. 한 개라고는 해도 3개짜리 비싼 질문인 게 흠이지만.”
“잘 생각했어. 사실, 지금도 미묘하게 추워진 느낌이라. 당장 오늘 내일부턴 2층에 관한 정보도 모으고, 뭘 해야 할지 이야기도 해보자.”
누나만의 느낌이 아니다. 몇 시간 전부터 1층인데도 불구하고 호텔의 평균 온도가 내려갔음을 느꼈다.
*
다음 날 아침, 축복의 성소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한 동료들의 분위기는 심히 싸늘했다.
진철 형이 불안한 분위기로 입을 열었다.
“슬슬 불안하다.”
“인마, 넌 이제 불안하냐?”
“아무리 그래도 제육볶음이 차가운 건 좀….”
“아침부터 제육볶음 같은 걸 처먹으니까 그런 일을 당하는 거지.”
“아니, 영감님. 아침에 고기 시킨 것하고 음식이 차가운 게 대체 무슨 상관이라고 지랄입니까?”
언제나 그랬듯이 형과 할아버지가 티격태격했지만, 내용은 심상치 않다.
내가 먹은 육개장도 냉장고에 있다가 튀어나온 온도였다.
대기의 온도도 명백히 더 내려갔다. 본래는 선선한 봄날 같은 온도였던 호텔인데, 지금은 찬바람이 들이치는 가을.
이 와중에 엘레나는 서늘함을 견디기 위해 둘러쓴 모포가 갑자기 스스로 움직이면서 멍석말이 당하다가 아리의 도움으로 탈출 중이었다.
대체 2층에서 우린 뭘 해야 하는 걸까? 모두의 시름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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