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78)
177화 – 파티 타임 – 104호에 관한 고민, 2층 탐사 (4)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89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알 듯 모를 듯한 조언 내용에 당황했다. 주변에선 내용을 묻기 시작했다.
“무슨 답변이 나왔어?”
“…”
“또 올빼미 특유의 선문답인가 보네.”
“‘가장 지혜로운 자는 모두가 이득 볼 수 있는 판을 짠다.’라는데?”
잠시 테이블 주변이 조용해졌다. 누나가 먼저 침묵을 깨트렸다.
“미묘하게 예전에 들어본 느낌이네. 아는 대로 간단히 설명해줄게. 원래 사업가가 판세를 짤 때 본인만 이득 보는 구도를 만드는 건 하수라고들 해. 나 혼자 이득 보는 구도에선 당연히 상대방이 격렬하게 반발하니까 구도 자체가 곧 깨지거든.”
“모든 사람이 이득 보는 구도를 짜야 안정적이라는 이야기죠?”
“그렇지. 그래야 모두가 만족하면서 구도가 깨지지 않고 다 함께 부자가 되는 거야. 이거 약간 게임이론하고 비슷하네. 들어봤지? 내시균형?”
내시균형, 게임이론에서 플레이어들이 모두 최선의 선택을 했을 때, 더 이상 대응책을 바꿀 필요가 없는 상태를 뜻한다. 거칠게 뭉뚱그리면 ‘모두가 이익 보는 상황은 누구도 깨트리려 하지 않는다’와 유사한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의미 자체는 저도 비슷하게 이해하긴 했는데, 헷갈리는 부분이 너무 많네요. 일단 ‘가장 지혜로운 자’가 대체 누구죠? 단순하게 생각하면 ‘지혜’라는 단어로 미뤄볼 때 저보고 지혜롭게 판을 짜라고 권고한 것 같긴 한데.”
“‘가장 지혜로운 자’, 나는 올빼미를 떠올렸는데? 지혜의 후원자잖아.”
아리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올빼미는 주어가 아니라고 봐. 뒤에 문구도 생각해야지. ‘판을 짜는 존재’가 문장의 주어지? 호텔에서 후원자가 판을 짜는 존재일 수는 없어. 난 오히려 ‘주’를 칭하는 표현 같은데? 필멸자를 초월한 신에 가까운 존재니까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수식어도 붙을 만하잖아.”
아리의 지적은 타당하다. 확실히 이 장소, 호텔에서 후원자는 어디까지나 한 발 떨어져 있는 존재들이며 ‘판을 짜는 존재’가 될 수는 없다.
다만, 주어를 ‘주’라고 보면 이번엔 왜 굳이 ‘지혜’라는 단어를 썼을까? 호텔에서 ‘지혜’란 곧 내 축복의 명칭. 단어 하나하나에 온갖 의미를 담는 올빼미가 저 단어를 의미 없이 썼을 리 없다.
201호에서 수석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올빼미가 선문답 같은 답변을 즐기는 이유는 결코 나를 놀리거나 괴롭히려는 목적이 아니다. 짧은 문장에 최대한 많은 의미를 담아내기 위해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표현을 쓰는 것.
201호 내내 우리를 괴롭혔던 수수께끼, ‘견지망월’. 무엇이 손가락이고, 무엇이 본질이었나?
처음에는 큐브가 손가락이고 본부가 본질인가 했다. 다음에는 눈앞에 분신을 보내고 본체인 두뇌는 다른 곳에 있는 베아트릭스에 관한 설명인가 했다. 다 끝나고 보면 ‘베아트릭스’ 자체가 손가락이고, 결국 ‘죄수’라는 본질에 집중하라는 의미였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이 모든 해석을 전부 4글자로 표현한 건 아니었을까?
그런 맥락에서 보면 올빼미의 말은 올바른 단 하나의 해석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애초에 여러 해석을 한꺼번에 전달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니까.
“그냥 둘 다 맞을 것 같습니다. 주어는 한가인일 수도 있고, ‘주’일 수도 있죠. 말하자면 올빼미의 조언은 이런 의미 아니었을까요?”
나름대로 해석본을 화이트보드에 썼다.
1. ‘주’는 이미 모두가 이득 볼 수 있는 판을 짰다.
2. 그 판을 깨려면 너 역시 모두가 이득 볼 수 있는 다른 판을 짜야 한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아리는 중얼거렸다.
“이것만 가지고는 결론 내리기 힘들 것 같은데….”
맞다. 최초의 조언보다는 명료한 의미의 두 문장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추상적이긴 마찬가지다. 쉽게 알 수 없다. 조금 더 많은 조언을 쓴 후에야 이 이상의 결론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호텔의 추위. 내일부터는 더 이상 104호에 대한 호기심 해결을 목적으로 조언을 쓸 수 없다.
갑자기 아리가 다소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104호 이야기, 전에도 했지?”
“그랬지.”
“너무 104호를 깨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 중인 것 아니야? 나는 왜 굳이 가야 한다고 생각 중인지 모르겠는데. 애초에 호텔은 모든 방을 다 해결해야 하는 구조가 아니잖아.”
“…”
“104호의 유산을 놓친 게 아까워서? 하지만 넌 이미 104호에서 유산과 별개로 보상을 얻었잖아.”
맞다. 나는 이미 104호에서 ‘강림’이라는 강력한 보상을 얻었다. 은솔 누나가 살짝 내 편을 들었다.
“나는 가인이 생각도 이해는 가. 기본적으로 1층은 2층보다 쉬울 테니까. 더 쉬운 층의 보상을 남겨둔 채로 더 어려운 층을 진행하다 보면 불안할 수 있지.”
“그런 맥락도 일리는 있는데, 104호는 어딘가 이상해.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서 어딘가 ‘썩은 방’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그건…. 확실히 그래. 좀 이상한 방이지. 섬뜩한 면이 있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나도 자주 하는 생각이니까.
1층의 모든 방, 심지어 가장 어려운 관문의 방조차 돌파했는데 마지막까지 미지로 남아있는 그 장소, 104호.
이상하게도 104호에선 해결하지도 않았는데 ‘강림’이라는 보상이 주어졌다.
이상하게도 104호의 죄수는 호텔의 알림조차 일그러트리며 ‘너는 실패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이상하게도 104호에 관련한 질문을 하려면 3개의 조언을 써야만 한다.
호텔에서 이상함이란 곧 불길함이며, 두려움이다. 이 모든 이상한 변화들은 동료들이 104호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있다.
…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아주 높은 장소에서 교활한 거미가 우리를 내려다보는 듯한 환상이 보인다. 끈적이는 거미줄에 걸린 사람들은 벗어나고 싶어도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주’는 대체 무슨 계획을 짜고 있는 걸까?
잠시 주변이 조용해진 차, 멀리서 누군가 걸어왔다.
“저 왔어요!”
“음? 승엽아?”
축복의 성소에서 나온 지 30분 정도밖에 흐르지 않았는데?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예전의 나처럼 기여도를 한번 아낀 후, 한꺼번에 강한 강화를 얻는 길을 택했다고 한다.
“아, 그리고 후원자님이 추위에 대해서도 말했어요.”
여태 녹차 얼음덩이와 씨름하던 할아버지가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뭐? 고놈이 괜찮은 힌트라도 줬냐?”
“… 추위 대비 열심히 해라?”
그따위 말을 충고랍시고 준 거야? 올빼미냐? 잠시 모두가 어이없어했다. 승엽이가 돌아오면서 대화 주제는 104호에서 추위 대비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누나부터 입을 열었다.
“일단은 뻔한 것부터 하자. 혹한기 대비 느낌으로 준비해야지. 이미 마켓에 주문할 건 다 했어. 혹시 몰라서 텐트도 주문했어.”
할아버지도 바로 대답했다.
“오늘부터 호텔 비품이나 긁어모아라. 지하 시설 내부 비품은 못 가져오나? ‘등산 방’엔 고성능 방한용품이 많았는데.”
“어려울걸요. 그 물건들은 방 밖으로 나오면 다 사라져버리니까.”
“그럼 저 앵무새 놈 변신시켜서 털이나 뽑아라.”
— 삐이익!
“삐이익은 지랄! 네가 뜯어간 내 머리카락만큼의 깃털만 모아도 모자 하나는 만들 거다!”
페로야? 할아버지 머리카락을 그렇게 많이 뜯어갔어?
“자~ 자~ 조용히들 하시고. 이제는 다들 척하면 척이지? 각자 알아서 호텔 돌아다니면서 추위 대비에 쓸만한 거 싹 긁어와.”
가져올 만한 게 뭐가 있으려나?
모든 게 다 있는 지하 시설은 안타깝게도 방 밖으로 물건을 챙겨 나올 수 없으니, 1층에서 찾아야 한다. 유사 방한복을 만들 때 썼던 커튼이나 식탁보 등 주변의 천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리가 질문했다.
“물건 구하는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탐욕의 손’은 혹시 쓸 수 있어? 혹한 대비에 적절한 물건을 구할 수 없을까?”
“나도 그 생각했는데, 저번에 눈알 얻은 후로 아직 쓸 수 없는 상태네. 쿨타임이 무지무지 긴 스킬 같아.”
“쓸 때마다 초자연적인 성능의 장비를 얻을 수 있는 스킬이니까 그럴 만하지. 지금은 아쉽네.”
모두가 추워지는 호텔에서 어떻게 버틸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단순히 추위에 버티기만 해서는 끝이 없다. 결국은 호텔의 때아닌 빙하기를 끝내야 하고, 이 문제의 답은 결국 2층에 있을 수밖에 없다.
2층을 가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추위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2층을 한번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다들 내심 하던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철 형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좋은 생각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하려던 말이었지. 2층이나 갑시다. 나랑 또 누가 가는 게 좋겠습니까?”
모두에게 제안하는 듯했지만, 사실 형의 눈은 한 사람을 향했다. 내가 봐도 탐색에 적절한 인원의 숫자와 적합한 사람은 정해져 있다.
‘용기’의 힘으로 추위에 저항할 수 있는 진철 형을 제외하면, 2층의 혹한을 버티고 탐색까지 가능케 하는 장비는 방호복뿐이다. 따라서 형을 제외하고 탐색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우리 중 눈보라를 뚫고 주변의 정경을 살필 수 있는 사람도 한 사람뿐이다.
누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으~ 이럴 것 같아서 난 2층 이야기 안 했던 건데. 뭐, 할 일은 해야지. 진철이랑 나 둘이서 가자.”
“좋습니다. 내가 얼음도 깨고 하면서 길을 열고, 누님이 눈으로 살피고 하면 뭐가 나와도 나오겠죠.”
두 사람이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는 듯했다.
“죄송한데 한 분 더 가야 합니다.”
“뭐? 까먹었나 본데 방호복이 한 개뿐이라 -”
“또 한 분은 탐색에 참여하진 말고 구석에 이불 둘러쓰고 버티든지 하세요. 어찌 됐든 한 명 더 가야죠. 할아버지?”
2층은 눈보라 때문에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하다. 대화창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
할아버지가 뒷목을 잡았다.
“어이쿠! 나는 이제 늙어서 힘든 일은 좀 빠지나 했더니 젊은 놈이 기어이 사지로 보내는구먼.”
“…”
“간다 가! 쇠뿔도 단김에 빼라지 않더냐? 바로 가자.”
“예? 셰프도요?”
“…”
“…”
“승엽아, 피곤할 텐데 좀 더 쉬고 있어.”
아리의 자상한 말에 승엽이는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페로도 데려가셔요! 그동안 201호 왔다 갔다 하면서 보니까 페로도 추위를 잘 견디는 것 같아요.”
— 삐이익! 삐이익!
“아아앗! 물지 마!~ 아파~!”
잠시 매우 화가 난 앵무새가 송이의 머리카락을 물어뜯는 정겨운 시간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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