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79)
178화 – 파티 타임 – 2층 탐사 (5)
– 차진철
— 휘이잉! 턱!
“으윽, 이건 또 뭐야?”
폭풍우처럼 휘날리는 눈보라 속에서 손가락만 한 얼음조각이 날아와서 안면을 강타했다. 이곳이 정말 지구가 맞긴 할까? 인간의 몸으로는 한 걸음조차 제대로 떼기 힘들다.
이은솔 : 뭐?
차진철 : 혼잣말.
김묵성 : 빨리 좀 끝내 나 죽는다.
… 평소 같았으면 영감이 또 엄살이다! 해주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다. 할아범은 누님처럼 방호복을 입은 것도 아니고, 나처럼 신체를 강인하게 해주는 축복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공간에 오래 있으면 정말 얼어 죽을 수 있다. 그나마 그로테스크는 불만 가득한 태도긴 했지만, 그럭저럭 잘 걸어 다녔다.
2층의 상태는 더 심각해졌다. 201호로 매일 가던 시기의 상태가 북반구의 한겨울 날씨였다면, 지금은 남극이나 북극의 수준이 아닌가 싶다. 용기의 도움을 얻고 있는 내가 이 정도 추위를 느끼는 걸 보면 실제로는 아예 지구의 겨울 수준을 벗어난 게 아닐까?
순수하게 풍압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 떼기가 힘들었다. 오히려 방호복까지 합친 무게는 나보다 무거운 누님이 훨씬 수월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눈 뜬 장님이 된 기분이다. 눈보라가 너무 심해서 5M만 넘어가도 그냥 새하얗다 말고는 지형지물을 분간할 방도가 없었다. 이 백색의 지옥 속에서 뭔가를 제대로 보면서 나아가는 사람은 누님뿐이다.
이은솔 : 이쪽으로.
신호를 따라서 누님 앞으로 움직이자 거대한 얼음덩이가 길을 가로막은 게 보였다.
“흐아압! 어차!”
그로테스크가 부리로 얼음덩이를 쪼개고, 쪼개진 얼음덩이를 내가 치웠다. 나름대로 빠르게 작업하다 보니 길이 열리는가 싶었지만, 바로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보나 마나 다음에 올 땐 또다시 치워야 할 것 같다.
차진철 : 뭔가 보임?
이은솔 : 별것 아님.
또 허탕인 모양이다. 여하튼 한 사람이라도 뭔가 보면서 탐색 중이라는 점은 다행이었다.
김묵성 : 죽을 것 같다.
차진철 :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이은솔 : 할아버님, 딱 한 장소만 더 가볼게요.
딱 한 장소? 누님은 이 와중에 무언가 봐둔 장소가 있는 건가?
과연, 누님은 나에게 손짓하더니 방향 한번 틀지도 않고 일직선으로 쭉 빠르게 이동했다.
이은솔 : 여기.
눈발을 헤치며 몇 걸음 나아가자 분명 ‘방’이라고 불러야 할만한 공간이 보였다. 안타깝게도 공사가 덜 끝난 듯한 2층 상황 때문에 제대로 된 문짝이나 벽 대신 얼음덩이만 있긴 했지만, 분명 방과 같은 구조다.
차진철 : 완공되면 저주의 방?
이은솔 : 모름.
한참 힘 써봤지만, 통째로 옮기는 건 무리였다. 쪼갠 다음에 조각조각 옮겨야 한다.
“페로 이놈아, 좀 와서 부리로 찍어봐라.”
…
“좀 와라! 내 말 들리는 것 아니까!”
누님과 달리 비상한 청각을 지녔음이 분명한 저 새는 송이만 사라지면 어떻게든 농땡이를 부리려고 난리다. 그러면서도 우릴 꾸역꾸역 따라오긴 하는 점은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불평 가득한 표정 – 이제 저 새의 표정을 알겠다. – 을 숨기지도 않으며 그로테스크가 다가왔다.
— 쾅! 쾅!
다시 그로테스크가 날카로운 부리로 얼음을 쪼개고, 내가 조각난 얼음을 옮기는 공사를 반복했다. 길을 열자 방 안쪽 바닥에 무언가 불투명한 것이 보였다.
“이거 뭡니까?”
이은솔 : 안 들려.
차진철 : 바닥에 저것 뭡니까?
누님은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방 내부로 들어선 후 불투명한 바닥으로 다가가서 –
“으허어억! 아니 저딴 게 여기 왜 있어?”
놀라서 정신없이 달려가서 누님을 방호복째로 붙잡고 뒤로 당겼다!
“으악! 이거 얼음 웅덩이?”
“맞습니다. 조심하쇼. 누님 방호복이랑 합치면 겁나 무거워서 빠지면 꺼내기 힘듭니다.”
“갑자기 웅덩이가 왜 있어? 함정이야?”
“바닥도 잘 보고 다니라는 – 음? 지금 누님 말이 잘 들리는군요?”
여태 육성이라고는 서로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는데, 이게 무슨 조화인가?
“눈보라 소리가 멎었어.”
“… 이건 또 신기한 공간인가 보군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분명히 방 밖에서는 지금도 세상이 무너질 듯이 눈보라가 휘몰아치는데, 방 안쪽에선 눈보라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2층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고요한 공간’을 찾아내었다.
“대체 뭘까요?”
“글쎄….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음번엔 할아버님은 이 장소에 옮겨두고 탐색하자. 여기는 추위가 훨씬 덜한 모양이니까.”
“그럽시다. 그나저나 저건 뭡니까?”
처음엔 또 다른 얼음덩어리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이 방 내부 온도는 이렇게 큰 얼음이 생길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고, 주의 깊게 보자 다른 물건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건 거대한 문이었다.
“…”
“… 들어오라는 것 같지?”
“불안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문이면 일단 열어보긴 해야….”
다가가서 문고리를 잡는 순간, 알림이 떴다.
/한빙지옥의 문을 여시겠습니까? 문이 열림과 동시에 파티타임은 종료됩니다./
즉시 문고리를 놨다. 고개를 돌리자 누님도 다소 흥분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알림은 둘 모두에게 뜬 모양이다. 얼어붙은 2층을 탐색한 지 한나절, 마침내 무언가를 찾아냈다.
*
– 차진철
1층으로 돌아오자마자 동료들이 반겼다.
“수고하셨어요!”
“형, 고생 많으셨어요!”
“그래그래, 잠깐 다들 비켜봐라.”
바로 할아범을 데리고 다과 테이블로 갔다. 다행히 이번엔 장난질 치지 않은 따뜻한 음료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동안 할아범이 뜨거운 차를 마시며 파랗게 물든 입술을 녹이는 사이, 나와 누님이 무엇을 알아냈는지를 대화하기 시작했다.
“오빠, 뭔가 알아내셨어요?”
“그래. 뭔가 찾긴 찾았다. 입구 기준으로 대충 오른쪽으로 한참 가다가 직진인가?”
“직진 보다는 대각선에 가까워. 위치는 내가 알아.”
“하여튼 그쪽으로 쭉 가다 보면 이상한 ‘한빙지옥의 문’이라는 게 나와. 그 문고리를 잡으니까 여는 즉시 파티타임이 끝난다더라. 당연히 일단 놓고 내려왔다.”
“‘한빙지옥’ 이름이 굉장히 무섭네요.”
“문 너머엔 대체 뭐가 있을 것 같냐?”
다들 침묵에 잠겼다. 문 이름부터가 대놓고 ‘지옥의 문’ 아닌가? 너머에 대체 얼마나 끔찍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몸이 좀 녹았는지 할아범이 입을 열었다.
“정황이 명백하다. 결국 그 문 너머에서 우리가 뭔가 해야 할 일이 있는 모양이지. 다만 파티타임을 굳이 미리 끝낼 필요는 없을 게다. 나름대로 대비해야지. 내일부터는 가인이 조언도 쓰고. 그보다 ‘지옥’이라….”
“뭐 떠오르는 단어라도 있습니까?”
“피차 다 아는 이야기지. 이미 가인이 녀석은 ‘성운의 용’이라는 존재에게 들었을 테고, 관리국에서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빨리 본론부터 말해보십쇼.”
“아따 고놈 또 싹수없는 거 보소. 야 인마, ‘부처님’. 다들 들어봤잖아?”
… 오랫동안 잊고 있던 단어가 모두의 뇌리를 강타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부처님’. 102호의 죄수였던 ‘성운의 용’조차도 극도로 공경하며 조심스럽게 대했던 불가해한 초월자.
“부처님 하면 불교고, 불교 하면 또 지옥으로 유명한 종교 아니냐.”
“지옥으로 유명한 종교라니…. 그 표현은 좀 그렇네요.”
“은솔아, 좀 대충 알아먹거라. 하여튼 부처님이 있다는 이 호텔에서 지옥 하니 평범하게 들리지 않는다. 단순히 위험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지옥이라는 단어를 썼을 것 같지 않아.”
“그러면 왜 썼을 것 같습니까?”
“그야 나도 모르지. 뭐, 죄인이라도 심판하는 장소인가?”
다시금 주변에 침묵이 감돌았다.
“쿨럭! 쿨럭!”
“앗, 할아버님은 일단 방에서 쉬시는 게 어때요
“괜찮다. 별것 아니 -”
“아따! 영감님 쓸데없이 자존심 세우지 말고 그냥 누워있으십쇼. 우리도 이만 쉽시다.”
파티 타임 1일 차는 이렇게 끝났다. 다음 날 아침, 엘레나가 깨어났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0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파티 타임 2일 차 아침, 식사하기 위해 105호에 도착하자마자 엘레나를 발견했다. 혼자 테이블 한편에 앉아있던 엘레나는 바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 타다닥!
물결처럼 흩날리는 황금의 파도, 푸른 초원의 생명력이 담긴 듯한 눈동자가 날 또렷하게 주시하자 마치 돌이 된 것처럼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 엘레나?”
“…”
“하실 말씀 있으세요?”
엘레나가 날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중얼거렸다.
“맞나? 아닌가? 평소엔 잘 모르겠는데….”
“예?”
“죄송해요. 후원자님께 들은 말을 확인 좀 하느라.”
“무슨 말을 들으셨는데요?”
엘레나는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아, 제가 이번에 얻은 능력, ‘불길한 상상’의 활용에 관해 가인 씨랑 상담해보라고 했거든요.”
“아하! 그렇지 않아도 한번 대화가 필요하다고 봤는데, 과연 후원자분이 모르는 게 없으시네요.”
나는 어제 새벽, 엘레나가 없을 때 일행들과 이야기했던 ‘불길한 상상’의 활용에 대한 지식을 전했다.
“… 대충 이해하셨나요? 요약하자면 첫째, 본인 힘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감을 가지세요. 혹시 만들어낸 괴물 쪽으로 의식을 옮길 수 있다면 아주 좋습니다. 본인이 강해지는 건 자신감을 얻는 좋은 수단이니까요. 둘째, 힘을 무작정 아끼기보단 오히려 전부 하나에 집중해서 아주 강력한 괴물을 만들어낸 후 설득해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흠…. 왜 후원자께서 가인 씨와 이야기해보라고 하셨는지 알겠네요. 불길한 상상을 평소에 통제하기 어려운 이유를 명쾌하게 깨달은 느낌이라.”
“그래요?”
“항아리 비유. 딱 맞네요. 실제로 평소엔 제 안에 넘쳐나는 힘을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별수 없이 몇 방울이 튀면서 괴물이 만들어지는 묘한 감각이 있었거든요.”
“아마 수석이 연구 과정에서 알아낸 지식일 겁니다.”
“괴물 쪽으로 의식을 옮긴다. 이쪽은 솔직히 전혀 모르겠어요. 별로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런가요….”
“그런데, 두 번째 방법은 듣자마자 확 와닿는 부분이 있네요.”
“오! 하나라도 통하면 되는 거죠.”
“불길한 상상의 모든 힘을 들이부어서 만들만한 존재. 그 사악함과 불길함이 끝이 없지만, 동시에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 사실 너무 명확한 존재가 여럿 떠오르네요. 내친김에 바로 가볼게요.”
그 말과 함께 엘레나는 사파리에 가서 능력을 시험해보겠다며 즉시 이동했다.
뭔가 떠오른 걸까? 결국 능력을 쓰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엘레나다. 나로서는 충고만 해줄 수 있을 뿐, 실제 해결은 본인이 해야 한다.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즉시 이동하는 광경을 보니 살짝 마음이 놓였다.
파티 타임이 끝나면 우리는 ‘한빙지옥’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장소로 향해야 한다. 그 전에, 엘레나가 자신의 힘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큰 시련을 앞두고 우리의 걱정거리 중 하나를 없애는 셈이니 다행이다.
그런데…. 대체 뭐지?
‘사악함과 불길함이 끝이 없지만, 동시에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
엘레나는 대체 어떤 존재를 떠올렸길래 저렇게 자신 있는 표정으로 사파리로 떠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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