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80)
179화 – 파티 타임 – 가장 불길한 자 (6)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0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엘레나가 사파리로 황급히 사라지고 잠시 후, 아리가 나타났다.
“무슨 생각 중이야?”
“아, 방금 엘레나가 나에게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하고 갔어.”
“음. 나한테도 이상한 이야길 했었는데.”
“이미 만났나 봐?”
“아까 잠깐. 후원자가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고.”
“무슨 이야기?”
“추위와 관련된 문제는 엘레나가 나설 일은 아니다. 뭐 이런 말도 들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너에 관한 다른 이야기도 들었대. 그걸 심지어 나에게 묻기까지 했어.”
그 말을 끝으로 아리는 피식거리면서 날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말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분명히 무슨 이야기 할 것 있잖아.”
“진짜 아니야.”
뭔가 점점 놀림당하는 느낌! 왠지 모르게 몸통 박치기를 다시 한번 하고 싶어져서 자세를 잡았더니 아리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행동으로 옮기기 전, 동료들이 속속 식탁 테이블 쪽으로 왔다.
“좋은 아침!”
“안녕히 주무셨어요?”
가벼운 인사와 함께 아침 식사가 시작됐다.
*
첫 번째 대화 주제는 단연 엘레나였다. 누나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니까, 엘레나가 아침부터 가인이 네게 의미심장한 말을 하더니 사파리로 떠났다고?”
“네. ‘사악하면서도 소통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낼 모양이던데요? 어떤 괴물을 만들지 모르겠습니다.”
아리는 별일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알아서 잘 만들겠지. 어차피 장소가 사파리잖아? 페로도 사파리로 못 들어가던데, 엘레나가 만든 괴물도 마찬가지 아닐까? 별로 걱정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
“무슨 이야기야?”
“엘레나가 사파리에서 설령 이상한 괴물, 실패작을 만들어도 그 실패작은 사파리 밖으로 나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야. 사파리 외부와 내부는 다른 세계 수준으로 구분되어있고, 우리 호텔 참가자만 들락날락할 수 있는 느낌이니까.”
그 말에 송이가 의아해했다.
“그러면 성공작을 만들어도 데리고 나올 수 없는 것 아니에요?”
“흐음…. 그 정도 생각은 엘레나도 했겠지. 나름대로 수가 있지 않을까?”
약간 짐작이 가는 부분은 있다.
“한번 성공작을 만들어내면 그 느낌 그대로 살려서 밖에서도 만들 수 있다던가?”
말해놓고 보니 궁금하긴 하다. 능력에 숙련된 베아트릭스도 성공작만 연달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능력 자체도 호텔이 건드리며 미묘하게 달라진 것 같고, 사용자도 다르니 베아트릭스에 적용된 논리가 엘레나에게도 적용된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
엘레나의 능력개발 관련 이야기가 얼추 마무리되었다. 대화의 주제는 모두의 초유의 관심사, 추워지는 호텔 대비로 옮겨갔다. 누나가 어제 알아낸 정보를 간략히 정리했다.
“결국 파티타임이 끝나는 대로 ‘한빙지옥’이라는 심상치 않은 장소로 가서 뭔가 해야 사태가 수습될 모양인데?”
“그렇습니다. 지옥에 관해 조언 써볼까요?”
“우리끼리 좀 더 이야기해보자. 밤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어제 본 알림 내용이 심상치 않았어.”
누나가 잠시 일어서서 화이트보드에 알림을 적었다.
/한빙지옥의 문을 여시겠습니까? 문이 열림과 동시에 파티타임은 종료됩니다./
“어제 우리는 앞의 단어, ‘한빙지옥’에만 주목했지?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뒷부분, ‘파티타임은 종료됩니다.’라는 말도 심상치 않더라고. 이게 무슨 의미라고 생각해?”
“아직은 파티타임이라는 이야기네요.”
“그래. 우리는 이미 얼어 죽겠다고 난리고, 2층은 이미 극지방을 능가하는 지옥이 된 상태인데도 호텔은 ‘아직은 파티타임’이라고 하고 있어. 다시 말해서….”
여기까지 들은 할아버지가 한탄하듯이 말했다.
“파티타임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조지겠다는 이야기구나. 아직은 호텔 기준으론 준비운동 정도고!”
“다들 침착하게 생각해요. 아직 파티타임이 끝나진 않았잖아요? 지금은 적어도 1층에선 조금 불쾌한 정도니까요. 예컨대 이것처럼.”
‘이것처럼’이라는 말과 함께 누나는 내부의 고기만 얼어있는 신비한 돈가스를 집어 들었다.
아리가 어딘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좀 끔찍한 시나리오가 떠올랐어. 예전의 경험 때문이야.”
“경험?”
“지금은 2층만 답이 없는 지옥이 된 상태고, 1층은 대부분 멀쩡하지? 결국 호텔이 우릴 정말 괴롭힐 생각이라면 1층을 냉동실로 만들지 않을까?”
승엽이가 우울한 분위기로 답했다.
“애초에 왜 괴롭힐 생각인가요!”
“좋은 지적이네. 그 부분은 형이 나중에 올빼미 멱살 잡고 꼭 물어볼게. 다른 질문?”
“당연히 그놈의 ‘한빙지옥’도 물어봐야지.”
잠깐 사이에 질문이 쌓였다. 바로 물어보기로 했다.
첫 번째 질문, ‘파티 타임이 끝나면 1층도 이상해집니까?’
[조언 : 3 -> 2] [혹한이 1층을 강타하면 호텔의 시스템이 대부분 정지한다. 이익과 손해가 있다.]이미 답을 짐작한 상태에서 확인 차원에서 묻자 올빼미답지 않게 명쾌한 답변이 나왔다. 다만, 내용은 듣자마자 욕이 나왔다.
“아 시발, 진짜네!”
“뭐가 진짜야?”
“호텔 시스템이 대부분 정지한다네. 당연히 105호도 맛이 가는 모양인데?”
“이거 진짜 -”
잠시 여러 사람의 욕설이 지나갔다. 내심 짐작했음에도 확실히 알고 나자 화가 나는 건 피할 수 없다.
화나는 것과 별개로 뒤 문장, ‘이익도 있다’라는 부분을 듣자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자자, 잠깐 제 말 들어보세요. 호텔 시스템이 멈추는 것에 우리의 이익도 있다고 합니다. 전 이것도 굉장히 명백한 의미로 들립니다.”
누나가 즉시 반응했다.
“저주의 방도 정지한다?”
“그거죠. 호텔 시스템 중 멈췄을 때 우리에게도 이익이 되는 건 당연히 저주의 방이죠.”
“대체 저주의 방도 멈추고 뭘 시키려는 걸까?”
“두 번째 질문하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 ‘한빙지옥에 대해 알려줘.’
답변 대신 알림이 떴다.
[해당 질문은 조언 3개를 전부 소모해야 합니다. 이미 1개를 소모했으므로 물을 수 없습니다.]“… 104호 관련 질문 말고도 조언 3개를 다 쓰는 경우가 또 있었네요.”
“에? 3개 다 써야 한대? 그러면 지금은 대답 못 해주겠네?”
“그렇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선 넘는 질문’ 판정인가 봅니다. 점심때까지 다른 질문 각자 더 생각해봅시다. 오늘 지나기 전에 남은 두 개도 쓰긴 해야 하니까.”
다들 다소 허탈해하며 아침 회의를 끝냈다. 오전 회의로 알아낸 점이라고는 파티 타임이 끝나면 1층도 맛이 간다는 불길한 예고뿐이었다.
*
– 엘레나
— 우오오오오!
땅의 진동이 몸 전체로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울음소리가 멀찍이서 들려온다. 대체 이 소리를 내는 생물의 정체는 뭘까? 이런 생물이 지구에 존재했던 적이 있는 걸까?
사파리에 진입하자마자 나온 알림에 따르면 지금은 무려 3억 3천만 년 전, 아마도 페름기나 석탄기.
— 버즈즈! 쉬리리릭!
멍한 기분으로 고개를 돌리자 내 머리통만 한 거대한 잠자리 같은 곤충이 근처에서 날아갔다. 호텔을 경험하기 전의 나라면 저 정도 크기의 곤충을 보는 것만으로 비명 지르면서 자지러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호텔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든 지 오래다. 온갖 시체와 괴물을 매일매일 밥 먹듯이 보기 시작한 지 벌써 몇 달이 흘렀다. 이젠 솔직히 웬만한 괴물 옆에선 밥도 무리 없이 넘어가는데 ‘고작’ 덩치 큰 잠자리에 소리 지를 때는 지났-
“꺄아악!!!”
아이 씨! 강아지만 한 크기의 바퀴벌레는 선 넘었잖아! 엄밀히는 바퀴벌레의 어마어마한 선조겠지만! 너무 놀라서 30M는 달린 후에야 진정했다.
한참 나무인지 뭔지에 기대서 숨을 몰아쉬던 중, ‘무언가’가 등을 간지럽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나무에 비벼서 떨어트렸다. 굳이 뭐였는지는 확인하지 않기로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멀찍이서 들려오는 거대한 소리를 내는 무언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생물은 그냥 덩치 큰 곤충이다. 그것만으로 매우 징그럽긴 하지만 결국 곤충이고, 커봐야 애완견 크기다. 날 잡아먹을 정도의 괴물은 보이지 않았다.
10분 정도 걷다 보니 마침내 호수가 나타났다. 내가 찾아다니던 장소다.
“잘 될까요? 가인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물론 이 장소에 나에게 대답해줄 만한 존재는 없다.
호수는 그리 깨끗하지 않았다. 기이한 생물들이 여기저기 떠다닌다. 예전 같으면 쳐다보기도 싫어하지 않았을까?
걸치고 있던 코트를 벗고, 신발도 벗고, 스커트도 내려두고…. 가볍게 네글리제만 걸친 채로 호수에 반신을 담갔다.
“이제 시작이네.”
항아리가 기울어진다. 내 영혼을 가득 채운 불길한 기세가 온 사방으로 들불처럼 뻗어나갔다. 삽시간에 세상에 침묵이 내려왔다. 호수의 물벌레도, 허공의 잠자리도, 땅 위를 기던 지네도 모두 허겁지겁 내게서 멀어졌다.
— 찰랑!
*
‘불길한 상상’이란 어떤 힘인가.
가인 씨는 수석 연구원의 기억을 토대로 우리가 일상을 겪으며 느끼는 순간순간의 불안감을 현실로 만드는 힘이라고 설명한 적 있다. 또, 후원자는 이 힘을 제대로 쓰다 보면 정신이 이상해지기 좋다는 경고도 전해왔다.
이런 피상적인 정보를 떠나서 ‘불길한 상상’이란 대체 무엇인가. 내면에서 활화산처럼 들끓는 힘을 느끼며 생각한다.
이 힘은 곧 트라우마를 현실로 불러내는 힘!
베아트릭스의 능력이 주변의 기물들을 기이하게 변질시키거나, 현실의 동물을 기괴하게 강화한 괴물을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은 그녀가 어린아이이던 시절 힘을 각성했기 때문이다.
매일 밤 두려움에 떨던 유년기를 기억하는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있다 보면 이상하게 인형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고, 바람 소리로 창문이 덜컹거릴 때마다 누군가 창밖에서 덮칠 것 같다.
이 모든 불온한 상상력이 베아트릭스의 힘의 근원이 되었다.
하지만 난 어린 시절의 그녀와 다르지. 나의 트라우마는 현실의 온갖 사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만들어졌던 어린 베아트릭스의 트라우마와 달리….
‘실제 했던 경험’을 토대로 이루어져 있다.
아하!
이제야 후원자가 했던 경고를 깨달았다. 어째서 불길한 상상은 태생적으로 정신병과 같은 힘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등 뒤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나를 끝없이 쫓아오는 기척을 느꼈다.
아침에 순무를 팔았던 할머니가 나와 가족을 밀고하는 소리를 들었다.
침대에서 일어서서 거실로 나오는 순간, 아버지가 입가에서 피를 흘리는 환영을 보았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이 내 정신을 가득 메우며 정신이 나가버리려던 순간, 모든 불길함의 권화(權化)가 수면으로부터 일어섰다.
그 존재는 어린 시절 가족을 쫓아오던 양복 입은 남자와 닮아 있었다.
그 존재는 푸근하게 웃으며 우리를 밀고했던 시장의 할머니와 닮아 있었다.
그 존재는 아버지의 찻잔에 독을 넣었던 친근한 가정부 아주머니를 닮아 있었다.
이 모든 악몽을 넘어서서 – 그 존재는 내가 죽을 힘을 다해 덤벼들며 몸을 으스러트리고 머리를 쪼개도 그 터져나간 머리조차 장난처럼 여기며 웃던 한 소녀와 닮아 있었다.
“안녕?”
— 푸욱!
수면에서 솟아오른 손이 단 한 순간에 내 배를 꿰뚫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격렬한 통증 덕에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했다.
내 몸이 식어감에 따라 괴물의 몸도 붕괴하기 시작했다. 괴물은 자신이 왜 붕괴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기괴한 소리를 냈다.
다짜고짜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눈앞의 사람을 죽이다니?
…
너는 실패작이구나. 나쁜 아이구나.
괜찮아…. 괜찮아…. 별일 아니야. 내가 다시 만들어줄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만들고 또 만들어줄게.
내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나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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