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81)
180화 – 파티 타임 – 자연 선택 (7)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0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파티 타임 2일 차가 거의 끝나갈 때까지 엘레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점심때는 오겠지, 저녁때는 오겠지 하던 동료들도 슬슬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송이야, 지하 가봤어?”
“네. 기다리다 보니까 나와서 잠깐씩 쉬고 있었어요. 밥 먹자고도 했는데…. 거의 다 된 것 같다면서 오지 않아요.”
“이것 참, 애매하네. 거의 다 됐다고 하니 억지로 데려오기도 좀 그렇고.”
지금이 엘레나의 능력개발을 위해 중요한 순간이라면 건드리지 않는 쪽이 좋을 것 같다.
“조금 더 기다려보죠. 아마 좋은 소식을 들고 올 것 같습니다.”
“가인이 네 말대로 되면 다행이겠지. 참, 조언은 다 썼어?”
두 번째 조언은 ‘더 준비할 것을 알려달라.’였고 ‘식량을 준비하라.’라는 답을 얻었다. 이것으로 우리는 파티타임 종료 후엔 한동안 밥도 제대로 주지 않으리라는 슬픈 사실을 알고 말았다.
덕분에 오늘의 저녁 식사는 다들 먹기보다 포장하느라 더 바빴다. 옆에서 진철 형이 그릇에 삼겹살을 담는 광경이 보였다.
“세 번째 조언은 아직 생각 중입니다. 확실히 정한 후에 사용할 것 같네요.”
“그래. 물어본 후에 답이나 알려줘.”
송이가 나와 누나 쪽으로 다가왔다.
“저기…. 아까 엘레나를 데려오려고 기다리다가 봤는데요, 엘레나는 계속 사파리를 들락거리고 있었어요.”
“그래?”
“… 나올 때마다 엄청나게 휘청거리고 표정이 안 좋았어요.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고.”
나와 누나는 별 반응 없이 있었지만, 근처에 있던 진철 형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거 정말 좋지 않다.”
“뭔가 이상해?”
“누님, 능력 연습하고 싶으면 사파리 내부에 계속 있으면 그만입니다. 왜 계속 들락날락하겠습니까?”
“에…. 피곤해서?”
과연, 우리 중 사파리 최다 이용자답게 진철 형은 바로 정확한 해답을 알아냈다.
“계속 죽고 있는 겁니다. 사파리는 죽는 순간 밖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나올 때마다 그 스트레스로 휘청거리고 있는 거죠.”
그 말을 듣자마자 모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무리 저주의 방을 거치며 죽음에 둔감해지는 우리라지만, 고통에는 결코 익숙해질 수 없다.
아리가 바로 내 등을 밀었다.
“안 되겠다. 네가 가서 데려와.”
“아니, 내가 간다고 오겠어? 차라리 너나 은솔 누나가 -”
“그냥 빨리 가서 데려오기나 해.”
*
결국 아리의 강권으로 엘레나를 데려오기 위해 지하로 내려왔다. 여차하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다행히 엘레나가 나와 있었다.
“엘레나!”
“…”
대답이 없다. 엘레나의 표정이 무언가 이상하다. 다가가자 엘레나가 갑자기 나를 향해 손을 저었다. 무슨 의미일까? 무시하고 조금 더 다가가자 엘레나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오지 마! 네가 와봐야 도움 될 것 없으니까! 네가 이런 능력을 얻으라고 추천하지만 않았어도 – 어머! 죄송합니다. 앗! 아앗! 죄송해요. 하필 ‘명경지수’가 작동하기 직전에 오셔서! 어떡해….”
너무 갑작스럽게 나에게 거칠게 화를 내더니, 거기에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이번엔 사과하면서 거의 울려고 했다.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긴 힘들었지만 일단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이런 상황에선 무슨 행동을 해야 하는 걸까?
무언가 어린애 같은 행동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엘레나의 손을 잠시 꼭 붙들었다. 점차 엘레나의 훌쩍이던 소리가 멈췄고, 폭풍처럼 몰아치던 감정의 격류가 잦아드는 듯했다.
“괜찮으십니까? 식사도 종일 하지 않으시고, 사파리만 들락거려서 모두가 걱정이 많아요. 게다가 방금 반응은 상태가 좋지 않으신 것 같은데.”
“이제 괜찮아요. 그리고 지금 이건 뭐예요? 초등학생?”
“…”
— 툭.
괜찮아지긴 한 것 같다. 엘레나가 곧 피식피식 웃으며 내 손을 털어냈다.
“온종일 연습하면서 느꼈는데, ‘불길한 상상’은 쓰다 보면 정신이 이상해지는 면이 있어요. 능력 자체가 끝없이 사람의 트라우마를 자극한다고 해야 하나? 능력에 시동을 걸기 위해 일단 불길한 생각을 해야 하고, 발동 후엔 능력 자체가 사람의 정신을 혼탁하게 만들죠.”
“… 생각보다도 부작용이 심하군요. 아까 전 말씀을 들어서 말인데, 혹시 제가 -”
“아니, 그 말은 진짜 신경 쓰지 마세요. 제발요.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명경지수로 회복하기 전에 아무 소리나 지껄였을 뿐이니까!”
엘레나가 다시 내 손을 잡더니 거의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하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아까 전의 말은 정말 본심은 아닌 듯하다.
그나저나, ‘명경지수’. 엘레나가 새롭게 얻었다는 스킬 아닌가? 내 표정에서 호기심을 읽어낸 엘레나가 대화 주제도 바꿀 겸 설명하기 시작했다.
“명경지수는 제 마음이 일정 이상 혼탁해졌을 때, 마치 얼음물을 끼얹듯이 정신을 확 바로잡아줬어요. 능력을 쓰고 또 쓰다가 반은 광인이 된 채 온갖 피해망상에 시달린다 싶었는데 한 3초 만에 제정신으로 돌려주더군요.”
“대단한 능력인데요? 그런데 명경지수를 미리 써서 정신을 보호하면서 불길한 상상을 쓰면 안 됩니까?”
엘레나는 내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 생각은 다 비슷하네요. 저도 그 생각부터 했는데. 안타깝지만, 명경지수는 의식적으로 쓸 수가 없어요. 제 상태가 맛이 가고 나면 이후에 작동해서 제 마음을 안정시켜주더라고요.”
“아하, 사전에 공격을 방어하는 종류의 힘이 아니라 공격에 당한 후에 고쳐주는 힘이군요. 그러면 송이의 팔찌 도움을 받아보는 건 어떠세요?”
엘레나가 그 말을 듣자마자 픽 웃었다.
“아까 송이랑 만나봤는데, 송이도 똑같은 말을 했어요. 그것도 불가능해요. 불길한 상상은 능력을 쓰면서 정신이 이상해지는 게 아니라 ‘쓰기 위해서 정신이 이상해져야 하는’ 종류의 힘이니까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한 마디로 애초에 능력을 쓰려면 광기에 휘말리는 게 필수라는 것. 따라서 광기 자체를 이런저런 수단으로 방어하면, 능력 자체를 쓸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후원자가 내린 ‘보완하기 위한 축복 강화’도 광기를 막아주는 능력이 아니라 광기에 휩쓸린 후 회복시켜주는 형태로 주어졌다. 여러모로 피곤한 능력이다. 이런 강력한 페널티가 있는 만큼 상응하는 위력이 있어야 할 텐데.
오늘 엘레나는 하루 내내 굶은 상태였지? 아무래도 걱정스러워서 1층 다과 테이블 쪽으로 데려갔다. 마침, 나와 엘레나를 기다렸던 것 같은 아리가 다가와서 바로 물었다.
“엘레나! 고생 많았어. 뭐 대단한 괴물이라도 만들어냈어?”
역시 얘는 노빠꾸네! 바로 물어보다니! 나는 이 고생하면서 훈련했는데도 별 성과가 없었을까 봐 불안해서 물어보지 못했는데.
“나름대로 얌전한 아이를 만들긴 했는데….”
“오! 하루 만에? 벌써? 엘레나 혹시 세기의 천재?”
“… 장난치지 마.”
“어떤 괴물인데?”
“이해하기 힘든 느낌으로 완성됐어.”
“무슨 말이야?”
“으음. 쉽게 설명하기 어려워. 뭔가 알듯 말 듯 한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말하니까 어째 점점 더 궁금해지네. 지금 한번 보여줄 수 있어?”
엘레나는 고민하는 듯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본인도 내심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았고, 약간은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듯했다.
“사파리에서 거의 써서 힘이 거의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번 살짝 보여줄게. 크기는 작아도 느낌은 비슷할 거야!”
그 말과 함께 엘레나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뭔가 찾으세요?”
“네. 이미지? 기억? 이런 걸 또렷하게 떠올리기 위해 거울이나 창문이 필요한데….”
거울? 창문? 마침 비슷한 게 저편에 보이긴 했다.
“거울이나 창문은 아니지만 ‘정문’이라면 있긴 해. 어차피 투명한 유리문이니까.”
투명한 유리기만 하면 상관없는 걸까?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향해 다가갔다.
잠시 후, 호텔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딘가에서 재잘거리던 승엽이가 내던 소음이 사라졌다.
테이블 위, 내가 마시던 콜라의 탄산이 조용해졌다.
아리가 기댄 의자에서 나던 삐걱거리는 소리도 멈췄다.
모든 소리가 정지한 불가해한 세계의 한 가운데, 괴물을 데려온 엘레나가 기뻐하며 말한다.
“어머, 좀 작긴 해도 나오긴 했네요. 나름대로 귀엽지 않나요?”
…
나는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어느새 테이블로 돌아온 엘레나의 오른편, 의자 위에는 사람 머리를 한 애벌레가 튀어나와서 이상한 소음을 내고 있다. 애벌레의 머리가 360도로 돌아간다. 회전하는 머리에선 눈알이 여기저기서 생겼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
“으악! 진짜 미치겠네!”
정신이 완전히 나가기 직전에 간신히 상태창 필터로 나 자신을 덮는 데 성공했다. 시야가 흐릿해지며 혼탁해지던 머리가 조금은 청명한 상태로 돌아왔다.
“아…. 아아….”
힘없이 들려오는 신음. 옆을 돌아보자 아리가 주저앉아서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갑작스레 벌어진 사고!
엘레나 본인이 통제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고, ‘힘이 거의 남지 않았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이 정도로 끔찍한 존재가 나오리라는 예상은 나도 아리도 전혀 하지 못했다. 당황하기는 엘레나도 마찬가지였다.
“어? 어? 뭐, 뭐죠? 대체 왜 -”
“엘레나. 없앨 수 있나요?”
“갑, 갑자기는! 애초에 그리 많은 힘을 쓴 게 아니라서 20분 정도면 저절로 사라져요.”
“그러면 일단 데리고 가세요. 내일 봅시다.”
“…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내일 다시 봬요.”
엘레나가 시선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사람의 머리를 한 애벌레는 바닥을 기며 엘레나와 함께 떠났다.
— 촥!
엘레나가 괴물을 데리고 떠나자마자 즉시 컵을 들어 물 한잔을 나와 아리에게 끼얹었다.
“아.”
“이제 좀 괜찮아?”
“… 고마워. 정신이 번쩍 드네.”
“저건 대체 뭐지? 저게 귀엽다고? 엘레나가 혹시 아직도 정신이 이상한가? 분명히 명경지수가 작동했다고 했는데?”
아리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난 알 것 같아.”
“뭔가 알겠어?”
“자연 선택이야.”
뜬금없이 진화론의 개념이 튀어나왔다. 무슨 말인지 설명을 요구하며 바라보았지만, 아리는 멍한 표정으로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설명 좀 해줘.”
“… 엘레나는 오늘 내내 사파리에 있었어. 대체 저런 괴물을 몇 번을 만들었을까?”
“못해도 수십 번은 만들었겠지?”
“수십 번, 어쩌면 그보다 많이 태어난 실패작들. 엘레나는 매번 이건 아니다 하면서 마음에 안 드는 괴물을 버리고 또 다른 느낌으로 만들기를 반복했겠지. 일종의 괴물에 대한 자연 선택이 일어난 셈이야. 선택하는 존재가 자연이 아니라 엘레나라는 점이 다를 뿐.”
“… 그 과정을 거쳐서 ‘엘레나에게만’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보이는 괴물이 나온 건가?”
“아마도. 엘레나는 미친 게 아니야. 저 괴물은 실제로 엘레나 눈엔 나름대로 귀여운 무언가로 보일 테니까. 엘레나의 행동으로 미뤄볼 때 작은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모양인데? 조금 전, 우리 셋은 저 괴물에게서 모두 다른 모습을 봤어.”
복잡미묘한 생각이 든다. 방심했다지만, 나와 아리가 동시에 끔찍한 괴물의 기괴한 마력에 압도당한 불길한 경험.
이 경험은 분명 불쾌하고 두렵기 짝이 없지만, 동시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찌 됐든 엘레나 말은 잘 듣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대단히 유용해 보였다.
흉한 괴물을 만들어내는 힘이라 해서 불안해할 시기는 진작 지났다. 애초에 내가 얻은 능력부터가 타인의 몸을 강탈하는 힘이다. 게임에 나온다면 영웅의 힘이라기보다 사악한 흑마법사의 힘 아니던가?
이렇게 생각하자 오히려 마음이 점차 편해졌다. 어차피 ‘우리의’ 무기다. 흉하고 끔찍한 것은 오히려 장점일 수 있다. 저 정도의 괴물을 다뤄낼 수 있다면 호텔의 시련을 이겨내는 데 매우 큰 힘이 되겠지!
시원한 콜라를 마저 마시고, 씁쓸한 기억을 떨쳐내며 105호로 돌아가기 위해 일어서며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조금 전, 나는 괴물에게서 102호에서 치열하게 맞붙었던 ‘태어나지 못한 자’의 망령을 보았다. 아마도 내 마음속에 가장 큰 임팩트로 남은 괴물이기에 생긴 현상이리라.
… 관리국 경력만 수십 년에 달하는 아리는 대체 무엇을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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