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83)
182화 – 미로를 위한 기도 (1)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한빙지옥 – 부활의 방
현자의 조언 : 3]
갑작스레 우리 앞에 얼음 속에 갇힌 미로가 나타났다. 아리는 아예 혼이 나간 표정으로 주저앉았고, 나머지 사람들도 어찌할 바 모른 채 멈춰서 입만 벌렸다.
그 순간, 하늘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참가자 여러분, 한빙지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 분위기에서 무슨 환영이야? 씨알도 안 먹힐 소리에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들었다. 관문의 방에서 한번 봤던 정체불명의 드론이 있었다.
“넌 뭐야?”
“참가자 한가인, 저는 여러분께 한빙지옥을 안내하는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안내자라고 불러주십시오.”
‘안내자’의 등장에 그제야 동료들도 정신을 차린 채 하나둘 모여들었다. 아리도 송이가 부축해서 데려왔다.
“여기서…. 여기서, 우리가 대체 뭘 해야 하지? 대체 왜 이런 끔찍한 장소에 우리를 -”
진철 형의 황망한 말을 기계음이 단박에 끊었다.
“참가자 여러분, 티켓을 꺼내주십시오.”
누나가 멍한 표정으로 티켓을 꺼내 들었다.
“여러분은 티켓을 사용해서 지옥에 떨어진 사람 중 1인을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모두가 말문을 잃었다. 이미 모두가 아리의 모친, 미로의 상황에 대해 대략 인지하고 있다. 제정신이 아니면서도 무지하게 강한 존재 아니던가?
당장 미로를 부활시키면 통제할 수 있는지 확실치 않다. 심지어 딸인 아리조차도 이 점을 인정하고 미로의 정신을 회복할 방법을 찾기 전엔 섣불리 부활시키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합의한 상태다.
하지만, 지금 얼음에 갇혀서 끝없이 고통받는 미로 앞에서도 아리는 똑같이 대답할 수 있을까? 우린 아리에게 고통받는 어머니를 내버려 두고 다른 사람을 살리자고 다시금 설득할 수 있을까?
입은 8개나 있으나 할 말이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기에 얼어붙은 침묵이 장내를 감돌았다.
…
처음으로 침묵을 깨트린 사람은 누나였다.
“부활 관련 질문 좀 해도 될까? 항상 궁금했던 부분인데.”
“질문하십시오.”
“내가 알기로 미로 양은 생전에 유산을 다수 보유하셨다고 하더라고.”
“전 참가자 미로는 사망 직전 3개의 유산을 보유했습니다.”
“그래? 부활하면 그 3개의 유산도 전부 가진 채로 돌아오는 거야?”
“전 참가자가 부활할 경우, 생전에 획득했던 유산 중 본인이 원하는 유산 한 가지만 선택해서 회복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같은 유산을 두 명이 얻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전 참가자 미로가 부활하는 경우, 그녀는 생전에 획득했던 3개의 유산 중 ‘오래된 피’를 제외한 다른 2개의 유산 중 하나를 선택해서 회복할 수 있습니다.”
복수의 유산을 획득했던 전 참가자가 부활하는 경우, 그 유산 중 한 가지만 회복할 수 있다. 또, 같은 유산이 두 명에게 주어질 수 없으므로 미로는 ‘오래된 피’는 회복할 수 없다.
바로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축복은 어떻게 돼? 확실한 건 아니지만 미로 양의 축복은….”
누나는 말을 얼버무리며 엘레나 쪽을 흘깃 봤다.
“이미 정의의 축복을 받은 참가자, 엘레나 이바노바가 존재하므로 전 참가자 미로는 정의의 축복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가자에겐 반드시 축복이 주어져야 함이 호텔의 원칙이므로 새로운 축복이 배정됩니다.”
요약하면 간단한 이야기다. 미로가 부활할 경우, 그녀 소유의 유산은 1개이며 축복도 새로 배정된다. 새로 배정되는 만큼 축복의 성장도 전혀 되지 않은 상태겠지? 여기까지 생각하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미로의 힘이 그 정도라면 충분히 우리 파티가 감당할만한 정도 아닐까? 비슷한 생각을 떠올린 진철 형이 바로 입을 열었다.
“크흠. 갑자기 상황이 다급하게 돌아가는 느낌이긴 한데, 우리가 예전에 회의했을 때와 상황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가 미로 양의 부활을 뒷순위로 미룬 건 지나치게 강하다는 점 때문 아니었습니까? 그 강함의 핵심은 ‘복수의 유산’이었고.”
아리를 부축하던 송이도 호응하듯이 답했다.
“맞아요! 그런데, 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유산은 어차피 하나잖아요? 축복도 리셋이고. 이러면 미로 양이 우리를 혼자서 압도할 정도는 아니니까 -”
누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장내를 갈랐다.
“잠깐. 잠깐. 그렇게 즉흥적으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미로의 전력은 유산뿐이 아니잖아. 호텔에 오기 전부터 초능력을 가진 초인이었다는 사실, 다들 잊었어? 할아버님?”
누나의 추궁하는듯한 물음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
“… 맞다. 미로는 호텔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초인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이 여럿 있었지.”
“봐. 유산 숫자가 줄었다고 위험성을 쉽사리 과소평가해선 안 돼. 그리고, 사실 능력의 강약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지. 안내자!”
“참가자 이은솔, 질문하십시오.”
“미로는 생전에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들었어. 부활 후에 정신은 회복되나?”
“전 참가자의 정신은 사망 직전 상태 그대로 유지된 채 부활합니다.”
“정신 회복은 없다는 이야기지?”
“그렇습니다.”
누나가 고개를 휙 돌리자 모두가 다시 침묵했다.
미로의 위험성은 여전히 극심하다는 누나의 의견은 설득력이 있다. 차라리 성격이 좀 독하더라도 지성이 있는 존재라면 최소한 호텔 탈출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한 협력은 가능하겠으나, 애초에 정신이 이상한 사람과 협력이 가능할까?
저주의 방 진행 도중에 뜬금없이 유아적인 정신으로 날뛰면서 아군을 공격하기라도 하면 그걸 대체 누가 감당하겠는가. 아리? 저주의 방 진행 도중에 아리가 죽은 후라면? 답이 없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답이 없다. 오죽하면 딸인 아리조차도 정신을 회복할 방법을 찾기 전에 부활시킬 생각은 없다고 했을까 싶다.
…
내 머리가 복잡해지는 사이 주변에선 슬슬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누나의 말이 지나치게 날카롭다고 지적하고, 누나는 반대로 너희가 너무 즉흥적인 말을 꺼내서 실망스럽다고 말하다가 할아버지가 제지하는 장면까지 보고 뒤로 돌아섰다.
혼란스럽다. 그리고 고통스럽다.
만약 저 얼음에 갇혀서 끝없이 고통받는 존재가 내 부모님이었다면 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즉시 강림해서 모두를 때려눕혀서라도 엄마를 고통에서 해방하지 않았을까? 그걸 생각하면 이 와중에도 그냥 멍하니 서 있는 아리의 정신력도 범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고 보면, 나에겐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도움을 주는 능력이 있지.
[조언 : 3 -> 2]‘이 상황을 지혜롭게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
[커피 한 잔 마시고 긴장 풀어라. 머릿속에 답이 있다.]“아 이 새 새끼 이런 걸 답이라고 또! 진짜 장난하냐?”
“조언 썼어?”
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아리가 처음으로 내게 물었다.
“… 응. 커피 한잔 마시고 긴장 풀라네. 머릿속에 답이 있다면서.”
“그래?”
아리는 말 없이 배낭에서 커피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
“한잔해.”
“고마워.”
극지방을 연상시키는 지옥과 같은 혹한, 세상 전체에 울려 퍼지는 고통의 노래.
그 한가운데서 내 동료들은 호텔에 들어온 이래 가장 답이 없는 주제로 말싸움을 시작했고, 난 이 혼돈 속에서 커피 한잔하면서 긴장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
‘머릿속에 답이 있다.’
과거의 기억을 되새긴다. 최초로 우리에게 ‘부활의 방’의 존재를 알렸던 의사, 김상현은 뭐라고 했었지?
‘언젠가…. 부활의 방에서 기회를 얻으신다면, 혹은 부처님을 뵙게 된다면.’
의사는 자신을 구원할 방법으로 부활의 방 외에도 ‘부처님’을 언급했다.
‘후원자분이 말씀하셨는데, 추위에 관한 문제는 제가 나설 일이 아니래요.’
‘네가 무리할 필요는 없다. 라는 말을 들었어요.’
엘레나와 승엽이는 후원자로부터 추위와 관련한 문제는 너희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충고를 들었다. 머릿속에 흩어져있던 정보들이 서서히 하나로 모여들었다. 이 모든 정보는 무슨 내용을 뜻하는가?
호텔에서 실패한 NPC를 구원할 방법은 부활 말고도 다른 길이 있다!
또한, 우리는 이 공간에서 ‘무언가’ 할 일이 있다. 엘레나와 승엽이가 하기엔 마땅치 않고, 내가 경험 많은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서 해야 하는 어떤 일. 티켓 꺼내서 누군가를 부활시키고 끝나는 일 가지고 후원자들이 네가 나설 일이 아니라거나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충고를 했을 리가 없다.
“잠깐! 다들 진정하시고 조용히 해보세요. 안내자!”
내 목소리가 크게 터져 나오자 동료들의 말다툼도 멈췄다. 허공에 떠 있던 드론이 내 쪽을 향했다.
“참가자 한가인, 질문하십시오.”
“이곳에서 우리가 티켓을 통한 부활 말고 뭘 할 수 있지?”
안내자는 그 어떤 답변도 하지 않았다.
“왜 답변하지 않아? 우리가 뭘 할 수 있지? 저 사람들의 고통을 멈출 수 있는 다른 방법 없어?”
내 말에 처음 반응한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그러고 보니까 이거 상황이 이상한데? 분명히 오기 전엔 뭔가 거창한 일 시킬 분위기 아니었나? 누구는 나서지 말라는 둥, 누구는 경험 많은 사람과 손을 맞추라는 둥. 그래 놓고는 왜 갑자기 오니까 티켓 이야기만 하는 거지?”
누나도 다가왔다.
“얘 왜 계속 아무 말도 안 해? 야! 안내자? 뭔가 숨기는 거야?”
그리고 마침내 아리가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컨셉인가 보네.”
“무슨 컨셉?”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 진실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뭐 이런 컨셉의 드론 아닐까? 우리 스스로 뭔가 ‘키워드’를 찾아내서 말을 해야 하는 모양인데….”
‘키워드’ 하니까 바로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키워드라면 역시 ‘부처님’? 안내자. 우리가 뭐 부처님께 소원이라도 빌어야 해?”
“아닌가 본데? 안내자. 얼음을 부수면 되는 거냐?”
“자꾸 뭘 부숴서 해결하려고 좀 하지 마. 안내자. 혹시 미로를 살 수 있어?”
“… 은솔아. 방금 말은 얼음 부수기보다 더 심했어…. 대체 뭘 산다는 거야?”
“다른 놈을 대신 지옥에 쑤셔 넣으면 안 되냐? 상인이라던가?”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상인을 싫어하세요?”
혼란스러운 아무 말 대잔치가 이어지던 중, 승엽이가 한마디 했다.
“안내자님, 다 같이 기도라도 해야 하나요?”
— 윙!
“참가자 여러분. 부처님께 전 참가자 미로를 위한 ‘안식의 기도’를 올리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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