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84)
183화 – 미로를 위한 기도 (2)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2, 한빙지옥 – 부활의 방
현자의 조언 : 2]
‘안식의 기도’.
드디어 티켓을 사용한 부활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안내자, ‘안식의 기도’라는 게 뭔지 알려줘.”
“안식의 기도란 여러분이 전 참가자에게 평온한 휴식이 주어지기를 부처님께 기도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합니다. 물론, 세상일은 기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법. 결국 지옥에서 전 참가자를 구제하는 일은 여러분 스스로 하셔야 합니다.”
“지옥에서 구제한다? 여기가 지옥 아니야?”
“직접 해보시지요.”
이 부분에 관해선 더 알려주지 않겠다는 느낌이다. 한참 동안 미로가 갇힌 얼음을 관찰했던 아리가 말했다.
“몸은 여기 있지만 정신은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듯해. 정신을 구제하라는 말 같은데….”
그 말을 듣고 다시 살펴보며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얼음 동상에 갇힌 이들의 몸은 분명 우리 눈앞에 있었지만, 이들은 끔찍한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눈 감은 채 신음만 내고 있었다.
이들의 정신이 갇힌 곳에 가야 하는 걸까?
“끔찍한 악몽이라도 꾸는 것 같은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 눈에도 그렇게 보여.”
내 질문에 대답한 누나가 이번엔 안내자를 향해 질문했다.
“모두 같이 하는 일이 아닌 모양이지? 이건 좀 자세히 알려줘! 후원자들이 이미 관련 이야기 조금씩 했다고!”
“지옥이란 본디 생자가 갈 수 없는 장소. 그러나, 부처님의 자비는 끝이 없으시니, 구원을 위한 향초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향초의 불꽃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생자 또한 지옥에 들어갈 수 있으나 향초의 불꽃은 남은 이들이 기도하는 동안에만 유지됩니다.”
쉽게 말해 파티를 나눠서 몇 명은 기도하며 향초의 불꽃을 유지하고, 불꽃이 유지되는 동안 몇 명은 지옥에 들어가서 미로를 구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평소보다 조용하던 아리가 다시 질문했다.
“안식의 기도라는 의식에 성공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전 참가자는 호텔에서 풀려나? 의식 성공 후로도 부활시킬 수 있어?”
“안식과 탈출은 별개. 전 참가자는 고통의 굴레에선 벗어나겠지만 호텔 바깥으로 탈출하는 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안식과 부활 또한 별개. 기도와 무관하게 부활시킬 수 있듯이 기도 후에도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기도의 결과와 무관하게 티켓을 통한 부활은 가능하다는 말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통의 굴레에선 벗어나지만, 호텔을 나가는 건 아니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앞 문장은 쉬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여하튼 ‘고통’은 끝난다는 의미만큼은 명확했기 때문에 아리의 표정에 활기가 깃들었다. 우리 쪽으로 어설프게 돌아선 아리가 평소보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예전에 다 함께 합의했죠. 미로의 정신을 회복할 방법을 찾기 전에 부활은 무리다. 그 부분은 지금도 동의해요. 이 험난한 장소에서 제정신이 아닌 존재와 함께한다는 건 모두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니까. 다만….”
안식의 기도는 부활과 달리 소모품인 티켓을 쓰는 것도 아니고, 정신이 불안정한 미로가 파티에 합류했을 경우의 위험도 생기지 않으니 아리 입장에선 완벽한 선택지다.
뒤의 말을 잇기도 전에 누나가 대답했다.
“안식의 기도, 하자.”
“…”
“해야지. 부활 여부는 네 말대로 정신을 회복할 방법을 찾은 후에 결정해야겠지만, 고통은 끝내드려야지. 애초에 우린 2층을 정상화하려고 왔잖아? 부활이든 기도든 뭐 하나는 해야 2층이 정상화될 것 같네.”
그 부분은 동의했기 때문에 재빨리 끼어들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나리오 이해에 따르면 호텔이 얼어붙은 이유는 ‘호텔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한과 고통’ 때문이라고 하거든요? 기도든 부활이든 그 한과 고통을 달래줘야 호텔이 정상화되겠죠?”
“맞아. 그리고….”
“그리고?”
누나는 대답 대신 끝없이 신음을 토해내는 미로의 동상을 지긋이 바라본 후, 다시 아리를 바라보았다. 그 행동의 의미를 이해했다. 미로가 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리가 과연 제정신으로 호텔을 진행할 수 있을까?
어느 날 갑자기 티켓을 훔쳐서 한빙지옥에 몰래 들어와서 미로를 부활시킬지도 모른다. 아리가 그렇게 막 나가기 시작하면 할아버지는 또 어떻게 행동할까? 우리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긴 시간 동안 호흡을 맞춰온 동료의 고통에 눈감을 수 있을까?
안식의 기도, 아리 입장에선 어머니인 미로의 고통을 끝내주기 위한 의식이겠지만, 나머지 사람들에겐 사실상 ‘아리와 묵성의 이탈’을 막기 위한 의식이나 다름없다.
잠시 후, 미로를 위한 의식의 준비가 시작되었다.
*
“가인아!”
“누나?”
“파티를 나눠보자. 내 생각엔 그동안 후원자들이 해준 말이나 네 조언의 내용이 바로 파티 분류와 관련된 이야기 같거든.”
“그렇죠. 몇 명은 지옥에 가고, 몇 명은 남아서 기도해야 하는 모양이니까요.”
“아무래도 지옥에 가는 쪽이….”
거기까지 말하며 누나는 살짝 말끝을 흐렸다. 아무래도 지옥에 가는 쪽이 더 힘든 일인 듯한데, 여태 나온 정보를 요약하면 아리와 할아버지, 그리고 내가 가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겠지.
“제가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엘레나나 승엽이는 대놓고 너희가 갈 일은 아니라는 충고를 들었는데, 저는 가라는 말을 들었으니까요. 정보가 부족할 땐 후원자들의 충고를 따르는 게 좋겠죠.”
“좋아! 잘 생각했어. 그리고 꼭 해줄 말이 있어.”
누나가 살짝 아리 쪽을 살폈다. 아리와 할아버지는 제법 먼 장소에서 향초를 살피며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하실 말씀 있으세요?”
“미로 이야기야. 너희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정황상 미로가 있는 곳으로 가겠지?”
“그렇겠죠.”
“가능하면 미로가 어떤 사람인지 네가 잘 파악해봐. 보아하니 미로의 문제는 오늘의 기도로 끝나는 게 아니야. 기도는 단지 고통을 끝내줄 뿐이잖아? 호텔에서 나가는 것도 아니고 부활하는 것도 아니지? 아리는 결국 미로의 완전한 해방을 바랄 게 분명해.”
“… 노력해보겠습니다.”
“노력 정도가 아니라 네가 확실히 판단해줘야 해. 나는 네 말 말고는 믿을 수 없어.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딸이나 전 동료가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겠어?”
“…”
“네 눈으로 보고 와. 미로는 어떤 사람이고, 부활시켜도 될 사람인지. 가능하면 정신상태 중심으로.”
“알겠습니다.”
곧 한빙지옥 한복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향초가 하나 솟아났고, 향초 주변에 돗자리와 작은 암실이 형성되었다.
“저 암실 내부로 들어가서 기도하는 건가?”
형의 질문에 안내자는 그렇다고 알려줬다. 누나가 걱정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바로 기도 시작해야 해?”
“누님, 일단 다 같이 밥부터 먹읍시다. 위험한 일을 하기 전엔 배를 든든히 채울 필요가 있습니다.”
“음식이 전부 차가워지긴 했던데. 그래도 먹자. 이거라도 먹어야지.”
잘 씹히지도 않는 밥 덩이를 씹어 삼키며 나와 아리, 할아버지 셋은 따로 모여서 별도의 회의를 시작했다.
“아리야, ‘지옥에서 미로를 구한다’라는 게 대체 무슨 종류의 일일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네 엄마를 만날 것 같거든?”
“아마 그렇겠지. 미로의 정신이 갇힌 곳에 가는 모양이니까.”
“미로에 대해 아는 것 다 말해봐. 초능력은 어떤 초능력인데?”
“으음…. 설명하기 쉽지 않은데.”
“설명이 어렵다?”
아리는 잠시 고민한 후 대답했다.
“일단 내 설명 너무 믿지 마. 멀쩡하던 시절의 미로를 만난 적이 없으니까. 단순한 힘부터 말하자면 신체 능력이겠지? 보통 사람보단 확실히 강했어. 대략, 이 정도일까?”
그 말과 함께 아리는 손을 뻗어서 내 팔을 꽉 잡았다.
… 꽉 잡았다. 나는 아예 꼼짝도 하기 힘들었다. 그동안에도 짐작은 했지만, 아리 얘는 이 체구에 힘이 나보다 더 강하다.
“네가 전력을 다할 때랑 비교하면 어때?”
“애초에 같은 유산에서 비롯된 힘이니까 비슷하지. 다만 진철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약하고, 묵성의 팔보다도 약해. 뭐, 이런 물리적인 힘보다 중요한 건 초능력 쪽이겠지. 그 힘은 무슨 염력이나 네 순간이동 같은 알기 쉬운 능력이 아니야. 굳이 따지면 대단한 카리스마?”
“카리스마?”
이번엔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사람을 쉽게 설득하고, 항상 주인공처럼 모두를 휘젓고 다니는 종류의 사람이지.”
“그거 초능력 맞습니까? 그런 사람은 정치인이나 연예인 중에서 많지 않아요? 아니면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는 겁니까?”
“정신을 조종한다? 어느 정도는 그런 느낌이긴 한데, 그쪽도 아니다. 그냥 카리스마나 리더쉽을 초자연적인 수준으로 증폭시켰다고 보면 된다. 딱 부러지게 말하기 어려워. 거칠게 요약하면 처음 보는 사람들 틈에 섞여도 순식간에 그 무리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정도? 그래서 호텔에 잠입시킨 것이기도 하지.”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순식간에 리더가 될 수 있는 힘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호텔 최적화된 인재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것 치곤 대차게 말아 드신 모양이지만.
잠시 조용히 있던 아리가 입을 열었다.
“난 엄마에게 그런 초능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호텔에서 탈출한 후에야 알았어. 유산이나 축복은 알고 있었지만.”
“리더쉽이나 카리스마 같은 유형의 초능력이면 유아 퇴행 후로는 제대로 쓰기 힘들었겠네. 무언가 지성을 요구하는 능력인 듯하니까.”
“지금 기억났는데, 엄마에 대한 일종의 별명 같은 표현도 있어.”
“뭔데?”
“‘동화 속 공주님’”
“그 표현은 뭔가 귀여운데….”
할아버지가 쓴웃음을 지었다.
“절반 정도는 예뻐서 붙은 별명이고, 나머지 절반은 왕조시대 사람처럼 독선적이고 제멋대로라고 붙은 별명이다.”
“그 말을 들으니 다시 불안해지네요. 다른 초능력도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더 있긴 했다. 문제는 그 힘들이 별도의 힘 같으면서도 관점에 따라선 같은 방향의 힘이라, 사실은 모두 하나의 힘에서 파생된 게 아니냐는 평이 나왔지.”
“관리국 요원이었다면서 능력에 대한 정보가 상당히 불명확하네요?”
“능력을 더 명확히 밝히려면 일종의 실험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미로는 능력 특성상 관리국 내부에도 ‘추종자’가 매우 많았다. 그들 때문에 미로에 관한 연구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지. 사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미로는 관리국엔 충성했기 때문에 수뇌부도 미로를 가혹하게 다루고 싶어 하지 않았고.”
‘관리국에는 충성했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아리가 반응했다.
“부정적인 이야기만 한 것 같은데, 어찌 됐든 미로의 관리국에 대한 충성심은 의심한 사람이 없었어. 대부분의 부정적인 이야기들도 성격에 관한 이야기고, 행동이라는 면에서 보면 평생 수많은 사람을 사악한 존재들로부터 구해왔으니까.”
이 부분은 또 괜찮은 이야기다. 어찌 됐든 정신이 멀쩡하던 시절엔 조직 생활에 무난히 적응했고, 기본적인 도덕성은 충분히 갖췄다는 의미로 들렸다.
한참 동안 두 사람에게 미로에 관한 정보를 들었지만, 알게 된 사실이라고는 성격이 별로고 능력은 애매모호하다는 점뿐이다.
퉁! 하는 소리와 함께 향초와 암실이 나타났을 때처럼 문 하나가 나타났다. 묻지 않아도 저 문의 의미는 알 수 있었다. 나와 아리, 할아버지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문 쪽을 향해 나아갔다.
이제 미로의 지옥에 들어갈 시간이다.
*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흥겨운 캐럴을 들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변의 풍경은 어딘가 익숙했다. 깔끔한 침대, 여러 책이 꽂힌 책장과 고급스러운 원목의 책상. 15평 정도의 작은 듯하면서도 혼자 살기엔 또 제법 넉넉한 공간.
캐럴이 들려온 순간 직감했듯이 창밖엔 눈발이 휘날렸다. 호텔 2층처럼 눈보라 수준은 아니다. ‘지옥’이라는 말에 걸맞지 않게 제법 많은 아이가 바깥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 상황을 살핀 후, 다음으로 나 자신을 살폈다.
…
거울에 비친 나는 적어도 두 살이나 세 살은 어려진 듯했다. 잘 쳐줘야 15세 내외의 앳된 얼굴. 걸치고 있는 옷은 아무리 봐도 교복. 풍경이나 내 모습을 볼 때 호텔고 때처럼 일종의 기숙학교 학생이 된 듯한데….
슬슬 의문이 들었다.
이 장소가 왜 ‘지옥’이지? 아리와 할아버지는 어디에 있을까? 미로는 또 어디에?
물음표가 커질 무렵, 대화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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