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85)
184화 – 미로를 위한 기도 (3)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2일 차
현재 위치 : 미로의 지옥
현자의 조언 : 2]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끝없이 귓가를 간지럽히는 캐럴을 들으며 대화창이 안내한 장소로 움직였다. 방을 나와서 걷기 시작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장소는 기숙학교다. 그것도 제법 오래전의 영국 또는 미국의 기숙학교.
— 탈칵!
요즘으로 치면 ‘교무실’로 여겨지는 장소로 들어가자 할아버지와 아리가 이미 도착해있었다.
“어! 왔네. 혹시 길이라도 잃었나 했다.”
“오면서 여기저기 살펴보느라 좀 늦었습니다. 걷다 보니 슬슬 호텔에서 주입해준 정보도 떠올랐네요.”
“그래. 여기, 네 누나하고 인사나 해라.”
“…”
“…”
나도 아리도 웃지 않았다. 나와 아리는 어처구니없게도 쌍둥이 남매 설정이다.
“… 솔직히 우린 너무 닮지 않았는데.”
“바보야? 쌍둥이 형제, 자매가 아니라 남매잖아. 이란성이니까 과학적으로 따져도 평범한 남매간 유사성 이상으로 닮지 않아야 정상이야.”
그 정도가 아니라 솔직히 인종이 다른 느낌인데. 아리의 외모는 상당히 초현실적인 면이 있어서 딱 어떻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서양인과 동양인의 혈통이 모두 섞인 느낌이다. 난 당연히 아니고.
그러려니 했다. 장소가 호텔이면 어지간한 일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된다.
“이 학교는 대체 어디지? 정황상 미국이나 영국의 -”
“시대는 아마도 1980년대 초반, 학교 이름은 Eastwood Highschool. 미국이야. 참고로 지금쯤 너도 떠올렸겠지만 우린 얼마 전 1학년으로 전학해 온 설정 같으니까 참조해.”
대략적인 설정은 나도 실시간으로 떠오르고 있고, 학교 이름이나 국가도 듣자마자 알았다. 하지만 시대라…. 이 정보는 주입해준 지식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아는 학교야?”
아리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로가 나온 고등학교지만, 이쪽 학제는 한국처럼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6 3 3 학제가 아니라 5 3 4 학제니까, 우리는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1학년이라기보다는 중학교 3학년이라고 봐야지.”
“뭔가 아는 게 많이 있나 보네.”
아리의 표정이 갑자기 어딘가 아련해졌다.
“예전에 미로는 지구에서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게 궁금해서 제법 오랜 시간 알아봤거든. 미로는 이 학교에서 굉장히 비극적이고 두려운 일을 겪었어. 시점도 딱 지금쯤이야. 그 시기에 관리국에 구출되면서 어린 나이에 관리국 일원이 되었지.”
지금 시기는 미로의 학창 시절 굉장히 비극적이고 두려운 일이 발생했던 시기다. 그 말을 듣자 이 ‘지옥’의 실체가 어렴풋이 다가왔다.
“하필 미로 인생에서 가장 두려웠던 시점이 재생되고 있는 게 우연은 아니겠지?”
“…”
아마도 이 시기 있었던 일은 미로의 긴 일생 속에서 ‘최초로’ 겪은 혼돈재해. 이후에 관리국에서 일하면서 온갖 지옥 같은 참상을 봤겠지만, 어린 시절 최초로 겪은 충격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리라.
이 지옥의 실체는 다름 아닌 갇힌 자의 일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반복하는 것.
… 대체 누구일까? 누가 이런 고통스러운 장소를 만들어내어 많은 이들을 가혹하게 다루는가? 한숨 한번 쉬고 현실로 돌아왔다.
“네가 미로의 과거를 추적해봤다고 해서 하는 말인데, 혹시 ‘무슨 사고’를 겪었는지 기억해?”
아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원래는 당연히 알았지. 원래는.”
역시 호텔이 아리의 기억 속에서 ‘미로가 무슨 일을 겪었는가’에 해당하는 부분만 일시적으로 지운 모양이다. 너무나 예상이 가서 놀랍지 않았다. 정답을 미리 알고 들어오는걸 허용했을 리 없지.
“어찌 됐든 미로의 어린 시절이 배경이면 장점은 있네. 최소한 미로가 호텔에서 얻은 유산을 가지고 날뛸 일은 없겠다.”
“날뛰다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로를 구하는 일이잖아. 미로를 토벌하는 게 아니고.”
“구하는 일이긴 한데 그간 들은 바에 따르면, 우리가 구해줘야 할 당사자가 가장 위험하게 느껴져서.”
“그리고 넌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인데, 미로만 유산이 없는 게 아니야.”
그 말을 듣자마자 마도서를 불러내려다가 깨달았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애초부터 마도서와 나를 연결하는 실이 끊어진 것 같다. 유산을 봉인했던 몇몇 방처럼 이 장소 또한 마도서를 쓸 수 없다. 축복만 가지고 해보라는 의미인가?
다행스럽게도 날개 문신이나 펜은 멀쩡했다. 할아버지가 책상을 탁하고 쳤다.
“일단 움직여라. 너희는 당장 오후부터 수업도 들어야 하는 판인데. 미로도 한번 찾아보고, 가능하면 학교도 뒤져보고. 다만, 학생 몸으로는 한계가 있을 테니 괜히 무리수는 두지 마라. 경비원에게 붙들리기라도 하면 피곤한 일이니까. 적극적인 탐색은 내가 할 생각이다.”
학생보다야 교사의 운신이 더 자유롭겠지. 서로 대략적인 역할을 나눈 후, 교무실을 나왔다.
아리와 함께 복도를 걷던 중, 참기 힘들어서 물었다.
“그동안에도 가끔 이상했던 부분이 하나 있어.”
“뭔데?”
“이 학교. 배경이 80년대라고 했지?”
“응. 구체적으로 몇 년인지 까진 기억이 나질 않아. 아마 그 부분 기억도 호텔에서 지운 것 같아.”
“너보다 나이가 많을 네 엄마의 어린 시절인데, 어떻게 1980년대일 수가 있지? 단순히 이 학교만 이상한 게 아니라, 네가 겪었다는 첫 번째 파티라던가, 퍼펙트 라이프에서 말했던 내용이라던가…. 뭔가 항상 ‘시간대’가 이상한 느낌인데.”
아리는 대답 대신 씩 웃었다.
“…예전에, 아마 관문의 방에 들어가기 전이던가? 약속하지 않았어? 서로 숨기고 감추기보다는 -”
“이 부분은 확실히 말해줄 수 있어. 첫째로, 이 부분은 내 개인적인 비밀이 아니야. 둘째로, 적어도 이 호텔에서는 전혀 문제 될 일 없어. 셋째로, 네가 밖에 나가면 자연스레 정답을 알게 될 거야.”
아리는 더 이상 말할 생각 없다는 듯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날 오후, 호텔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미로를 만났다.
*
“독립전쟁 당시 이로쿼이 연맹은 결속 이래 최대의 분열 위기에 몰렸으며….”
“6 부족 연합은 하나하나로 나뉘어서 독자적인 행보를….”
… 멍한 기분이 든다.
차라리 수학이나 과학이면 그럭저럭 들을 만 했을 것 같은데, 생전 처음 듣는 미국 역사 속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의 행보 같은 내용을 듣고 있자니 정신이 저절로 흐릿해졌다.
— 탁!
이 와중에 그나마 내 집중력을 일깨워주는 존재가 소리를 냈다.
“선생님! 조금 쉬었다 해요.”
지금은 쉬는 시간이 아니며, 수업 시간 도중이다. 그런 사소한 문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대놓고 쉬자고 말한 소녀는 선생님의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곧 학생들이 가방에서 무언가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엇, 어어! 수업이 좀 지루했니? 내가 좀 재미있게 말할 걸 그랬나보다. 미로는 무슨 이야기가 재밌어?”
“우리 샌드위치나 먹어요.”
“그래!”
대체 뭘 ‘그래’는 그래야? 여기 교실 아니야? 교권이 붕괴하는 순간이다!
학생이 제멋대로 수업을 중단시키고 간식을 먹기 시작했는데, 선생님은 오히려 이에 호응하는 미친 광경. 이 꼴을 보고 있노라니 내 안의 유교룡(儒敎龍)이 분노의 불길을 뿜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로는 거의 꿀벌무리 사이의 여왕벌처럼 손짓 한번 한 번으로 아이들을 휘젓기 시작했다.
“흠. 토마스, 너도 샌드위치 먹고 싶어?”
“응! 먹고 싶어!”
“물구나무서서 30초! 버티면 한 입 줄게.”
곧, 미로가 먹다 남긴 샌드위치 한입을 먹기 위해 백인 소년 한 명이 물구나무서서 버티기 시작했다. 이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광경을 보다 보니 참기가 힘들었다.
한가인 : 네 어머니 참 대단하시네.
김아리 : 원래 미국 아이들은 이래.
한가인 : 미국 아이들을 네 맘대로 미치광이로 만들지 마.
김묵성 : 활자 절약!
나와 아리는 이 혼돈의 분위기를 멈출 엄두도 내지 못했고, 그렇다고 끼어들 틈도 찾지 못했다. 무엇보다 어설프게 끼어들다가 우리까지 휘말릴 수 있음을 생각하면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기도 했다! 관점에 따라선 일종의 정신 오염이 번져나가는 상황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시간이 되자 더욱더 ‘자유분방한’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 퍽!
“아하하! 에잇, 너클볼이다!”
“헤드샷~! 나이스!”
“미로! 이쪽, 이쪽!”
“공 굴러간다아아아~!”
창밖에서 들려오는 정신없는 눈싸움 소리는 매우 즐거웠다. 20명이 넘는 아이들이 온통 눈 범벅이 된 채 바닥을 구르고 있고, 미로는 혼자 메이저리그 투수라도 빙의했는지 혼을 담은 한방 한방으로 아이들을 쓰러트리고 있었다.
참 행복한 장면이다. 지금이 수학 수업 시간이라는 점만 빼면.
물론, 큰 문제는 없는 듯하다. 선생님도 같이 나가서 눈을 던지고 있었으니까. 교실에 남아있는 사람은 몸이 아프거나 졸려서 잠을 자겠다는 아이들, 그리고 나와 아리뿐이었다.
“… 미로는 참 행복한 학창 시절을 보냈네.”
“미로 엄청 귀엽지 않아?”
벌써 콩깍지라도 씌었는지 본인 엄마의 과거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는 아리를 보고 있자 어이가 없어졌다.
“버르장머리 없는 학생은 아니고?”
“중학생이잖아. 원래 철없는 시기야. 그리고 딱히 나쁜 짓을 한 건 아니야. 그냥 노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 휙! 퍽! 쿵!
창밖에서 날아온 눈덩이가 내 머리를 강타했다.
“…”
“에…. 재밌지?”
김묵성 : 아리, 잠깐 나올 수 있냐?
갑자기 할아버지가 아리만 불러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흔적이라도 찾았을까? 눈덩이를 맞은 날 보고 당황하던 아리는 기다렸다는 듯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 휙! 퍽!
두 번째? 이건 우연 아닌데?
“아니? 대체 누구야! 난 나갈 생각 없다고 -”
“진짜 나오지 않을 거야?”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흡사 눈의 요정과도 같은 소녀가 창 건너편에서 생글거리며 날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
“왜 안 나와? 같이 놀자! 혼자 거기 있으면 내가 계속 던질 거야!”
“난 그냥 여기 있겠다고 했잖아….”
“다 같이 놀아야 재밌잖아. 빨리 나와 ~ 나와~!”
슬슬 피로감이 느껴져서 그냥 교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새삼스럽게 중학교 수준의 공부를 다시 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바깥에 나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 넌 내 말을 잘 안 듣는구나.”
?
“Look into my eyes.”
머리가 멍해짐을 느낀다. 의식이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 둥둥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서 붉게 타오르는 섬광에 눈을 맞췄다. 저 눈. 이미 여러 차례 봐왔던 아리의 그것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한없이 깊고 또 깊은 소용돌이. 날 때부터 위에서 태어난 자의 축복.
“You are my friend. Friend should follow me.”
왜 나는 자꾸 내 마음대로 행동했을까? 합리적인 경계심인가? 아니면 나약한 정신이 포식자 앞에서 품은 본능적인 두려움인가? 친구는 본디 하나다. 나는 미로의 친구이므로 미로를 따라야 함이 당연하다. 이것이 곧 법도다.
“You’ll have a good time with me.”
아하! 이제야 마음이 맑아졌다. 미로를 따라가면 얼마나 즐거울까? 밖으로 나가자. 나가서 눈싸움하자. 아까까지 마음을 채웠던 불편함이 한순간에 밀려나고, 그 빈 자리를 지극한 평온함이 채웠다.
기쁜 마음으로 일어서서 바깥으로 –
— 직!
“으아아아악!”
“지랄 하지마! 내가 아직도 이 정도 얕은 수작에 걸리겠냐?”
바로 펜으로 미로의 눈을 그어버리고 복도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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