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87)
186화 – 미로를 위한 기도 (5)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2일 차
현재 위치 : 미로의 지옥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미로, 미로. 이쪽으로 와! 빨리!”
“에? 갑자기 왜 그래? 무슨 -”
— 바스락! 끼이잉!!
수풀이 바스락거리며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순간, 극도의 긴장이 순식간에 탁 풀렸다. 수풀 어딘가에서 튀어나온 것은 괴물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었다.
그냥 제법 멋들어진 순록 한 마리였을 뿐이다.
“아.”
“에헤헤! 가인이는 사슴도 무서워해? 이런 애들 학교 근처에 얼마나 많은데!”
미로가 겁 없이 순록 쪽으로 확 다가가자 당황했다. 처음 예상처럼 무슨 괴물이 튀어나온 건 아니지만, 순록도 여중생에겐 충분히 위험한 생물이다.
“미로 조심해! 그 녀석은 조그마한 사슴이 아니라 순록이라고! 위험하잖아.”
“허허, 얘야. 걱정할 것 없단다.”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부드러운 말소리에 놀라서 뒤로 돌았다. 등 뒤에는 푸근한 덩치에 굉장히 익숙한 복장의 할아버지가 보였다.
“누구세요?”
“어이쿠! 설마 산타클로스도 못 들어봤니?”
“그건 아닌데, 갑자기 나타나셔서요.”
“갑자기? 얘야! 저 음악이 들리지 않니?”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경쾌한 캐럴은 이 장소에 도착한 이래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들려왔다.
“들리네요.”
“그러니 ‘갑자기’라는 단어는 맞지 않지. 내일이 크리스마스인 건 알지?”
“그랬나요? 날짜까지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네요.”
“허허 참. 실망스럽구나! 하지만, 저 아이를 걱정하는 것으로 보아 제법 착한 아이인 듯하니까 용서해주마.”
“… 네.”
내가 자칭 ‘산타클로스’라는 뚱뚱한 노인과 대화하는 사이, 미로는 저쪽에서 순록과 즐겁게 놀고 있었다.
“히야! 아름다운 풍경이구나. 아름다운 모습이야. 흡사 눈 요정 같은 아이로다. 꼬마야, 혹시 저 아이를 좋아하니?”
“진심으로 아닙니다.”
“솔직하지 못하긴! 방금은 좀 혼내주고 싶구나. 하지만 오늘은 크리스마스 전날이니 봐주마.”
뭔 소리야? 진짜 좋아하는 것 아닌데? 완전히 제멋대로 생각하고 용서까지 해준다는 웃기는 말을 듣고 있으니 어이가 없어졌다.
“네 눈이 저 아이에게 떨어지질 못하는구나. 아직도 순록이 무섭니? 걱정 말거라. 저 아이는 코멧이라고 하는데, 듬직한 돈더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상냥한 아이란다.”
“… 다행이네요. 시간이 늦어서 그런데, 저녁 먹으러 가도 될까요?”
“오호라! 방금 그 말은 마음에 들었다. 그래그래. 어린아이는 제때제때 식사해야지. 네 여자친구도 데려가려무나.”
노인의 제멋대로인 상상에 새삼 반박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노인을 무시한 채 미로를 데리고 학교 식당 쪽으로 움직였다.
한가인 : ‘산타’ 등장. 수상함. 학교에서 부름?
김묵성 : 기달.
…
김묵성 : 불렀다는데?
불렀다고? 그러면 저 노인은 그냥 학교에서 부른 사람인가? 혹시나 해서 창밖을 내다봤지만, 아까 나를 긴장시킨 산타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다. 시나리오도 확인해봤지만 역시 아무 변화도 없다. ‘밤을 기다려라.’라는 말 그대로다. 산타는 역시 그냥 학교에서 부른 사람일 뿐인가?
식사 도중 아리가 나타나서 바로 물었다.
“아까 할아버지랑 무슨 의식의 흔적을 찾아냈다고 했지?”
“알아낸 건 많이 없지만 알려줄게. 의식 자체는 아주 오랜 시간 전에 이루어졌어. 기독교적인 흔적이 남아있고, 최소한 50년 이상 된 일종의 주술이야.”
“50년 이상 됐다는 주술이 지금 문제를 일으켰다고?”
“잘 모르는 사람이 듣기엔 이상하겠지만, 이런 일은 널렸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세상에 무슨 사악한 마술사들을 위한 위키피디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지?”
“무슨 말인지 알겠다. 지식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집단은 없고 관리국 같은 조직이 오히려 그 지식의 전수를 방해한다 그 말이지?”
“맞아. 사악한 지식일수록 오히려 온전한 형태로 전승되기가 어려워. 우연히 그런 지식을 얻어도 불완전한 경우가 대부분이야. 그래서 이 세상에 기이한 의식은 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일어나지만, 그중 의도대로 성공하는 건 극소수고, 나머진 실패해서 흔적만 남아있어.”
“그 흔적 중 일부가 당장은 실패했지만 수십 년 후에 이런저런 조건이 맞아서 ‘우연히’ 갑자기 실현되곤 한다. 뭐 그런 거야?”
“그래. 대충 그런 느낌이야. 시나리오는 변화 없어?”
“없어. 아직도 오늘 밤을 기다리라는 말뿐이야.”
아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같이 순찰이나 해보자.”
저녁까지 건물 밖을 돌아다녀 보기도 하고, 할아버지와 아리가 발견했다는 의식을 나도 한번 살펴봤다. 알아낸 정보는 없다. 의식이라는 건 내 눈엔 그냥 정체불명의 쓰레기장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건물밖엔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이 기숙학교는 미국의 인디애나주 내에서도 상당한 시골, 외부인이 쉽게 들어올 만한 장소가 아니다.
“답답하네. 그리고 웬 산타야? 여기 고등학교 아니냐? 산타 이벤트 따위는 초등학교에서나 하는 것 아니야?”
“네가 살던 21세기처럼 생각하면 곤란해. 이 시기는 스마트폰 따위는 없다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이런 미국 시골 학교에 애들 몰아넣으면 다들 지루해서 난리라는 이야기지. 그러니까 학교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이벤트를 열어주는 것뿐이야. 애들도 산타는 학교에서 돈 주고 부르는 사람인 것 다 알아. 며칠 전에 선물 신청도 받았대. 물론, 나랑 너는 어떻게 처리됐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별다른 성과 없이 자정이 다가왔다.
*
– 미로
하아아암~! 늘어지게 하품 한번 하고 주변을 살피자 다들 피곤해하면서도 깨어있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언제 오시는 거야? 옆에 있는 가인이는 졸리기보다 어딘가 불안한 기색이다.
“가인이는 무슨 선물 달라고 썼어?”
“나도 모르겠어.”
바보 같은 대답이네.
“애초에 왜 다들 산타가 오길 기다리는 거야?”
“가인이는 그것도 몰라? 예전엔 기숙사 내로 들어와서 침대 옆 양말에 선물을 넣어줬대. 하지만 여자애들 부모님들이 산타가 기숙사로 들어오는 건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았어. 그래서 다 같이 1층에서 받는 거야.”
“… 그것 참 대단히 현실적인 이유네.”
“산타는 언제 올까?”
가인이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대화창, 아니 아까 여쭤보기로는 새벽 2시쯤 도착한다고 하네. 졸리면 그냥 미리 자.”
얘는 또 무슨 소리야?
“새벽 2시? 지금은 자정인데?”
“응?”
“지금 왔잖아. 저 밖에 있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가인이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얘는 또 왜 이래? 아까 사슴 봤을 때도 혼자 놀라더니 보기보다 겁이 많아.
Jingle bells, jingle bells
Jingle all the way.
Oh! what fun it is to ride
In a one-horse open sleigh.
경쾌한 캐럴이 울려 퍼진다. 지루한 겨울밤, 1년 중 그래도 가장 재밌는 시간이 아닐까?
— 쿵!
산타가 들어왔다. 아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와아아! 산타 할아버지!”
“제 선물 가져오셨나요?”
“할아버지~! 스케이트보드 가져오셨어요~?”
“오! 귀여운 아가들. 물론, 선물은 가져왔단다. 하지만….”
“네?”
“Are you a good kid?”
맨 앞에 있던 토마스가 지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당연히 엄청 착해요. 그러니까 제 스케이트나 빨리 주세요. 저는 -”
“You lied to me…”
“에?”
“You bad boy!”
— 파직!
토마스의 머리가 마치 무른 토마토를 바닥에 떨어트렸을 때처럼 터졌다. 크리스마스가 시작됐다.
*
“아아아악!”
“꺄아아아악!”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모든 아이가 정신없이 울부짖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Dashing through the snow~! (눈 속을 뚫고 달리자~!)
경쾌한 캐럴 한 소절이 울려퍼지자 갑자기 허공에서 눈이 내리며 사방이 미끄러워졌다. 여긴 실내인데도! 아이들이 갑작스러운 눈 때문에 미끄러지고, 미끄러질 때마다 뒤에서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뛰고, 뛰고, 뛰고, 또 뛰었다. 뒤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아.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대체 무슨 일이야? 대체 무슨 일이야?
선생님들이 나타났다. 맨 앞에는 며칠 전 오셨던 체육 선생님, 묵성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장갑을 벗어 던지자 마치 괴물의 팔과도 같은 기묘한 팔이 나타났다. 할아버지의 펀치 한 방에 산타클로스가 뒤로 날아갔다. 그걸 보고 선생님들이 환호하며 총을 쏘시기 시작했다.
이제 끝난 거지? 이런 이상한 일은 이제 너무 싫어.
산타는 별일 없다는 듯 일어섰다.
A sleighing song tonight! (오늘 밤 썰매 노래를 부르세!)
갑자기 선생님들이 돌처럼 굳더니, 총을 바닥에 떨어트린 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Jingle bells, jingle bells, Jingle all the way! (종소리 울려라 종소리 내내 울려라!)
노래 부르던 선생님들의 머리가 좌우로 흔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수많은 토마토가 생겨났다.
바닥 전체에 걸쭉한 토마토수프가 한가득 쌓였다. 여기에 버섯을 섞어 넣고 후추를 뿌리면 아침에 먹기 딱 좋은 수프 완성! 달걀이 없는 게 아쉽네.
이제 알겠다.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다가 내가 잠들었나 봐. 토마토가 사방에 많은 건 배가 고파서가 아닐까? 이대로 아침이 되면 –
“미로,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달리자.”
“에?”
가인이가 내 손을 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가인아? 학교에서 이렇게 뛰면 안 돼! 선생님이 항상 -”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마.”
In a one-horse open sleigh! (마차 썰매를 타고 달리자!)
또 한 소절의 캐럴이 들려온다. 아까 봤던 순록 마차가 1층 벽을 부수면서 들어왔다. 상냥했던 순록, 코멧이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사방의 토마토를 뜯어 먹었다. 바닥의 토마토들을 주워먹던 코멧은 서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도 이제 토마토가 되는 걸까?
— 타앗! 쿵!
갑자기 옆에 있던 가인이가 ‘사라지더니’ 코멧이 있던 장소에 나타남과 동시에 식인 순록이 날아갔다!
“가, 가, 가, 가인아 이거 뭐야???”
가인이가 피식 웃더니 중얼거렸다.
“진짜 산타 저놈도 어지간한 새끼구나. 이젠 무슨 괴물 마차 소환? 못하는 게 없네!”
그 말과 함께 가인이는 다시 나를 잡아끌었다. 끌려가면서 생각했다.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 애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정신없이 달려서 1층 뒷문 쪽으로 도착할 때쯤, ‘뒷문을 작살내면서’ 차 한 대가 학교로 들어왔다!
너무 놀라서 입만 벌리고 있는 사이, 자동차 창문 너머의 소녀가 가인이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박아서라도 잠깐 멈출 테니까 이거 받아! 열쇠에 번호 적혀있어.”
“어? 어? 야 나 아직 면허 없 -”
— 부우웅!
쟤는 또 뭐야?
뒤쪽에서 무서운 소리가 들려온다.
“Are you a good kid?”
“닥쳐 병신새끼야!”
— 부우우웅! 쾅!
정신이 나갈 것 같아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그냥 날 잡아당기는 힘에 이끌려 한참을 뛰고 또 뛰었다. 날 끌고 붉은색 캐딜락 운전석에 들어간 가인이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 진짜 나중에 수동 모는 법도 배워야겠다.”
“…”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긴 한데 괜찮아?”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 나 갑자기 007 영화로 들어온 것 같아.”
“미안해.”
“무슨 이야기야?”
“이번엔 무리일 것 같아. 저 녀석이 나타나기 전에 손을 써야 하는 모양인데….”
“아까부터 무슨 말인지 -”
In a one-horse open sleigh! (마차 썰매를 타고 달리자!)
“벌써 왔네. 참 빠르기도 하다.”
“…”
나가려던 가인이가 갑자기 뒤로 돌아섰다.
“넌 네가 착한 아이라고 생각해?”
“… 난 나쁜 짓 한 적 없어.”
“그래? 내 생각엔 아주 착한 아이는 아닌 것 같던데?”
“이 와중에 시비 걸어?”
“하지만, 저런 괴물에게 하염없이 죽을 만큼의 악인도 아니지. 한 번 더 해보자. 향초가 유지되는 동안엔 더 할 수 있을 테니까.”
“진짜 아까부터 무슨 말인데!”
나가기 직전, 소년은 내 앞에서 싱긋 웃었다.
“See you later! Everything will be fine. 이 말에도 마법의 힘이 깃들기를!”
…
의식이 흐릿해진다. 악몽이 다시금 처음으로 돌아감을 깨달았을 때, 나는 다시금 모든 일을 잊었다.
Jingle bells, jingle bells, Jingle all the way!
Oh! what fun it is to ride in a one-horse open sle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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