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88)
187화 – 미로를 위한 기도 (6)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3일 차
현재 위치 : 한빙지옥 – 부활의 방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아찔한 감각 속에서 정신이 들었을 때, 우리는 문밖으로 나와 있었다. 상태창을 확인하자 그사이 날짜도 지나갔음을 깨달았다.
“으~ 설마하니 산타가 범인일 줄은 몰랐네요. 괜찮으세요?”
두통이라도 생겼는지 잠시 머리를 부여잡던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산타 그놈 더럽게 세더라. 노래 부르면서 온갖 마법을 다 부려대니 도무지 답이 있어야 말이지. 아리 넌 괜찮냐?”
“괜찮아. 으….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릴 때 뭔가 이상하다 느꼈어야 했는데!”
그때쯤, 건너편에서 은솔 누나가 다가왔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성공하진 못했나 봐?”
“한 번 더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숨 좀 돌리고 -”
“미안한데, 그냥 지금 바로 다시 들어가.”
“예?”
“미안. 그런데 버티는 우리 쪽 상황도 생각보다 좋지 않아. 최대한 시간을 아껴야 해.”
???
이게 무슨 말이지? 버티는 우리 쪽? 기도팀은 그냥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었어? 당황해서 뭔가 물으려던 나와 달리 아리는 신속하게 행동했다.
“이쪽은 이쪽 나름의 고충이 있나 보네. 바로 다시 가자. 회의도 들어가서 하자. 어차피 산타가 날뛰기까지 시간 여유는 꽤 있으니까.”
“… 다들 조심하세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보겠습니다.”
우리는 바로 미로의 지옥으로 돌아갔다.
*
‘지옥 팀’이 이은솔의 지시를 따라서 바로 미로의 지옥으로 돌아간 직후, 1층의 상황을 확인한 차진철이 멀리서 달려왔다.
“누님! 어떻게 됐답니까?”
“첫 시도는 실패했나 봐. 한 번 더 해야 할 모양이네.”
“그렇군요.”
“승엽이랑 송이는?”
“숨만 어설프게 붙인 채 헐떡이고 있습니다. 침낭과 이불로 둘둘 말아놓긴 했습니다.”
“날씨가 너무 가혹해. 설마하니 ‘안식의 향초’가 사람의 기운을 연료로 타오르는 물건일 줄이야. 1층 상태는?”
“개판입니다. 그냥 2층하고 별 차이가 없는 지옥이 됐습니다. 105호는 문이 아예 잠겼습니다. 엘레나는 어떻습니까?”
“들어간 지 3시간 정도 지났어. 슬슬 괴롭겠네. 다음엔 내가 들어갈게.”
“…”
“이거 받아.”
“이건….”
“어쩌면 우리를 한번 구해 줄 물건이지.”
차진철의 손에 하얀 종이가 한 장 들렸다.
‘3일 휴식권’.
*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영어로’ 울려 퍼지는 캐럴을 듣자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 장소는 미국 학교이므로 실제 역사에선 학생들부터 교사까지 모두 영어로 말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친절하게도 호텔은 그 모든 대화를 한국어로 바꿔줬다.
바꿔주지 않은 말은 미로의 ‘힘을 담은 말’처럼 초자연적인 힘이 담긴 경우다. 왜 하필 캐럴만 계속 영어로 들리고 있겠는가? 캐럴 자체가 초자연적인 무언가라는 사전 경고나 다름없었던 것!
미로의 지옥에서 깨어나자마자 바로 아리와 할아버지가 있을 교무실로 달려갔다.
“생각해보셨어요?”
“산타의 처리법 말이지? 이놈 정말이지 쉬운 놈이 아닌 것 같다.”
“원래 역사에선 관리국에서 처리했겠죠? 미로는 운 좋게 살았을 테고?”
“그랬겠지. 관리국이야 뭐 헬기를 썼든 미사일을 썼든 화력으로 죽일 방도가 있었을 거다. 하지만 우린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관리국과 연락 자체가 전혀 안 되거든.”
아리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호텔에서 ‘미로의 지옥’ 내부에 관리국까지는 구현하지 않은 건지, 연락 방법이 우리에게 없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결론은 같아. 우리끼리 하라는 것 같아.”
“각자 떠올린 약점 말해봅시다. 제가 확인한 점은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엔 얌전하다는 겁니다. 아시겠지만, 크리스마스 전에도 이미 산타는 발생해있어요. 어쩌면 지금 이미!”
첫 번째 시도, 나는 미로와 눈싸움을 하던 도중 산타를 만났다.
“그건 분명 중요한 포인트다. 어쩌면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인 지금 죽이는 게 답일 수도 있겠지.”
아리도 입을 열었다.
“내가 느낀 약점은 힘을 쓰기 전에 캐럴을 불러야 한다는 점이야. 모든 기술에 일종의 ‘준비시간’이 필요하다고나 할까?”
“눈보라, 식인 순록 소환, 머리 터트리기 등 온갖 기술을 쓸 때 해당하는 캐럴을 반드시 불러야 했던 것 같긴 하지?”
잠시 고민하던 할아버지도 대답했다.
“본체 자체는 물리적으로 엄청나게 강한 느낌은 아니었다. 기억날지 모르겠는데, 내가 상인 놈에게 얻은 팔로 한 주먹을 갈겨주니까 그냥 허술하게 날아갔지.”
“날아간 것과 별개로 금세 다시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총을 맞고도 멀쩡하던데?”
할아버지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답했다.
“더 가까이서 본 내 판단이 정확할 것 같다. 내 펀치도 그렇고 총도 그렇고 통하지 않는 느낌은 아니었다. 단지 그 정도로는 부족했던 게지. 아예 몸 전체에 불을 지른다면?”
몇 가지 의견들을 아리가 빠르게 합쳤다.
“본체의 힘이 그리 강하진 않고, 마법은 ‘캐럴’을 주문처럼 사용해서 발동하는 식이지? 묵성이 힘으로 억누르는 사이에 입을 막아버리고 몸을 태워보는 건 어때?”
잠깐 사이에 나온 아이디어치고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체의 물리력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고, 입으로 뭔가 중얼거리며 마법을 쓰는 괴물. 말하자면 일종의 마법사가 아닌가? 주문을 쓰기 전에 미리 입을 막아버리고 몸을 태운다. 산타의 능력을 고려한 적절한 작전이다.
30분가량 세부적인 계획을 더 짠 후, 산타가 나타나길 기다리기 시작했다.
*
첫 번째 시도 당시, 산타는 대략 6시에서 7시 사이쯤 운동장에 순록과 함께 나타났다. 산타가 나타나는 정확한 조건은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따라서, 당시와 최대한 비슷한 상황을 만들기로 했다.
쉽게 말해서 난 지금 아이들과 눈싸움 중이다.
— 퍽!
“회전 회오리 슛!”
“…”
“이야앗!”
아리랑 만난 이래로 항상 느낀 점이지만, 얘는 정말 못 하는 게 없다. 공부는 말할 것도 없고, 신체 능력도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다. 지금은 ‘오래된 피’가 사라져서 특유의 괴력과 같은 초인적인 면모는 사라졌지만 타고난 센스는 사라지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던지는 대로 다 머리로 날아가는 거야?”
“머리에 겨누고 던져.”
“… 그거참 좋은 방법이네.”
— 퍽!
잠깐 사이에 옆에서 날아온 눈덩이가 내 뺨을 후려쳤다. 그걸 보고 아리는 낄낄거리고, 멀리서 미로와 다른 아이들도 낄낄거렸다.
눈을 맞은 나만 빼고 다들 즐겁게 웃고 있으니 해피엔딩인가?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멍하니 서서 캐럴을 듣다 보니 슬슬 시간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아리에게 살짝 눈치를 줬다.
한가인 : 슬슬 시간 됨.
김아리 : 애들 들여보낼까?
산타가 나오는 조건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이상, 첫 번째 시도와 유사한 상황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한가인 : 미로 빼고.
곧, 아리와 근처에서 우릴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들여보냈다. 미로만 남길 방법이 있을까? 다행히 이 고민은 쉽게 해결됐다.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보내기 시작하자 미로는 아리 팔을 잡아끌더니 자동차 뒤에 숨었고, 할아버지는 자연스럽게 둘을 못 본 체하며 산타를 처리할 준비를 하러 움직였다.
한가인 : 미로 데리고 있어.
이제 기다릴 시간이다.
…
…
— 후욱!
귓가를 간지럽히는 듯한 소름 돋는 숨소리! 눈을 부릅뜨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깨달았다.
이 소리를 들은 사람은 나 뿐이다.
아리나 할아버지는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가 내 긴장된 표정을 보고서야 뒤늦게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 숲 쪽에서 순록이 나타났다.
— 후욱. 후욱. 풀썩.
분명 몇 시간 전 사람의 머리를 뜯어먹던 순록은 지금은 세상 선량한 동물처럼 부드럽고 우아하게 눈밭을 거닐었다.
“… 지금은 참 우아하네.”
“허허~! 얘야, 보는 눈이 있구나. 저 아이는 보기보다 참 섬세하고 우아한 아이란다.”
산타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저번과 등장 방식이 똑같다. 사슴에 이목이 쏠린 사이,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등 뒤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어? 산타 할아버지세요?”
“그럼! 얘야, 네 이름은 뭐라고 하니?”
“한가인이라고 합니다. 참, 저쪽에서 오는 아이들은 미로와 아리라고 해요.”
… 무언가 이상하다. 처음 만났을 때 느끼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그래. 참 좋을 때다. 그런데 가인아?”
“예?”
“Are you a good kid?”
갑자기 이 문장만 영어로 들려왔다. 무슨 의미일까? 이 문장에만 마법적인 힘이 실렸나?
고민하던 사이 대화창이 시끄러워졌다.
김묵성 : 내가 저놈의 입을 –
한가인 : 그만
김아리 : ?
김묵성 : ?
한가인 : 소용없음. 지금은 소용없음.
대화창에 집중하느라 산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노인이 슬슬 짜증이 난 듯한 반응을 보였다.
“얘야. 어른이 물으면 대답해야 하는 법이다. 슬슬 네가 나쁜 아이가 아닌지 의심스럽구나.”
“죄송합니다. 제가 착한 아이가 맞는지 한참 생각하느라 대답드리지 못했네요.”
“… 그 대답은 괜찮구나. 착한 아이가 맞는지에 관한 고민이 많은 모양이지? 고민하는 것만으로 넌 충분히 괜찮은 아이란다.”
“감사합니다.”
“세상에 완전히 착한 사람이 어떻게 있겠니? 누구나 세상을 살면서 끊임없이 실수하고 더러워지기 마련이란다. 그러니 고민하고 또 고민하려무나.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고민하고, 뉘우치기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이 아름답고 새하얀 눈처럼 깨끗한 사람이 될 수 있단다.”
헛웃음이 나오는 걸 참느라 힘들었다. 말하는 것만 듣고 있으면 아동 교육 전문가가 따로 없다. 아까 아이들을 대량 학살한 존재는 대체 누구였는가 싶다.
“항상 고민하겠습니다.”
“그래~! 참, 가인이 넌 무슨 선물을 받고 싶니? 너랑 아리라는 아이만 원하는 선물을 적지 않아서 내가 고민이란다.”
“에….”
“이 산타할아버지는 가인이가 참 마음에 들었어요. 그러니 좀 그럴듯한 선물을 말해도 괜찮단다. 착한 아이에겐 보상이 필요한 법이니까.”
산타가 줄 만한 선물. 그럴듯한 선물. 갑작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니 말문이 탁 막혔다. 간신히 머릿속에서 떠올린 단어 하나를 꺼냈다.
“인형 하나 주시겠어요? 친구를 늘리고 싶어서요!”
역시 이 나이대에 산타에게 바랄 선물은 이 정도가 답이겠지? 산타는 내 말을 듣고 싱긋 웃은 후 ‘사라졌다.’
잠시 후, 건너편에서 미로와 아리 그리고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특이한 대화네. ‘착한 아이’ 이 단어에 되게 집착하는 것 같지 않아?”
“글쎄…. 그보다 ‘선물’을 물어보는 게 더 신기하네. 진짜 뭔가를 주기도 하는 건가?”
“대체 왜 나서지 말라고 한 거냐? 저놈 주둥이를!”
“선생님. 미로가 놀라겠어요.”
김묵성 : 저놈 주둥이를 다물게 하고 태워죽이기로 했잖아!
“다들 무슨 이야기 중이야? 재밌는 이야기?”
“으응, 미로야! 우리 밥 먹으러 가자.”
나는 말없이 산타가 사라진 공간을 바라보았다. 순록의 등장과 함께 내 등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서 한참 동안 대화한 산타. 당연히 대화 내내 망부석처럼 가만히 서 있지는 않았다. 산타는 한참 동안 눈밭 위를 전후좌우로 자연스럽게 걸어 다녔다.
산타가 사라진 지금, 눈밭 어디에도 산타의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