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89)
188화 – 미로를 위한 기도 (7)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3일 차
현재 위치 : 미로의 지옥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대체 왜 막았는지 의아해하는 할아버지에게 내가 깨달은 사실을 설명했다.
“조금 전에 나타났던 산타는 실체가 없었습니다. 그냥 환영이었죠.”
발자국 없이 깨끗한 눈밭을 가리키면서 말하자 할아버지는 바로 이해했다.
“발자국이 한 개도 없군. 산타 놈은 답설무흔의 고수라도 되는 거냐?”
“예?”
“… 그냥 해본 소리다. 굉장히 실감 나게 느꼈는데 환영이었다니 믿기 어려울 정도구나.”
“단순히 발자국만 가지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존재감’이 없었다? 사람이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옷이 비벼지면서 나는 소리, 팔다리가 꺾이면서 나는 소리 뭐 이런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어느새 미로를 보내고 돌아온 아리가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옷이 비벼지면서 나는 소리라니…. 너 귀가 그렇게 좋았어? 아까도 신기했는데. 주변이 조용하긴커녕 크리스마스 캐럴이 사방에서 들려오는데 10M 밖의 사슴 숨소리는 대체 어떻게 들은 거야? 토끼야?”
딱히 할 말이 없다. 나도 캐럴 소리 속에서 사슴 숨소리를 느낀 내 감각이 쉬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리는 단순히 ‘귀가 좋았어?’라고 표현했지만, 당시의 감각은 단순히 청각이 뛰어나다 정도가 아니었다.
위화감이 느껴지는 미세한 소리를 포착하자마자 마치 고요한 방에서 내 심장 소리를 느낄 때처럼 미세한 소리에 온 신경이 쏠렸던 기묘한 기억.
이와 비슷한 경험을 몇 차례 겪어본 것 같은데….
생각이 길어질 무렵, 함께 학교로 돌아온 일행이 나를 의식을 발견했던 학교 뒤편으로 데려갔다.
“아까, 아니 어제인가요? 여하튼 어제 봤을 때랑 똑같네요. 제 눈엔 그냥 쓰레기더미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지금은 쓰레기가 맞아. 대체 언제 이루어졌는지 모를 의식이니까.”
“왜 다시 온 거야? 부수게?”
“그것도 한 가지 목적이고, 그 전에 무언가 알아낼 게 있나 해서.”
“조언 써볼까? 너도 알겠지만 -”
“알아낸 정보가 부족할 때는 엉뚱한 대답이 나온다는 말이지? 나도 알긴 하는데 그래도 써봐.”
잠시 고민한 후 적절한 질문을 선택했다.
[조언 : 3 -> 2]‘이 의식에서 알아낼 정보가 있을까?’
[이미 끝난 일. 앞으로 6보 전진해라.]“…”
“그 표정 뭐야? 이상한 대답?”
“이미 끝난 일이라네. 이제 와서 부수거나 말거나 큰 의미 없는 것 같아. 그리고 앞으로 6보 걸어가라는데?”
“그러면 걸어.”
“…걸어가면 이 잔해를 내가 다 부수게 될 텐데?”
“올빼미 말로는 이미 끝난 의식이라며? 부숴도 상관없겠지.”
시키는 대로 걸어봤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여섯 걸-
— 툭!
“이건 또 뭐야?”
신발이 닿자마자 마치 모래가 무너지듯 허물어지던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무언가 형체가 뚜렷한 물건이 발에 챘다. 기묘한 문장이 새겨진 작은 철판이었다.
‘A reward for a good boy and a punishment for a bad boy’
“영어로 쓰인 걸 보니 이것도 무슨 마법적인 문장인 모양이지?”
아리는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착한 아이에겐 상을, 나쁜 아이에겐 벌을 줘라. 미묘하게 미친 산타가 좋아할 만한 글귀긴 하네. 그래서 어쩌라고?”
“조언 한 번 더 써봐야겠는데.”
뒤에 있던 할아버지가 충고했다.
“의식에 관해 묻지 말고 산타 자체에 관해 물어봐라. 보아하니 의식 자체는 이미 오래전에 끝나서 이젠 별 의미 없는 모양인데, 의미 없는 의식에 대해 더 묻기는 아깝지.”
“싸움을 앞두고 조언을 쓰는 게 불안하긴 한데, 자정 전에 싸울 일은 없겠죠?”
“그렇겠지. 보나 마나 산타 놈은 또 자정에 나올 테고, 그때는 네 조언도 다시 찰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써도 될 것 같다.”
아리는 다른 의견을 냈다.
“혹시 모르니까 한 개는 남겨둬. 나중에 다른 의문이 생길 수도 있고, 첫 번째 시도에서 모든 위험이 다 드러났다고 확신할 수 없으니까. 돌아가다가 갑자기 식인 순록이 캬웅 하면 어떡해?”
“캬웅?”
“캬웅!”
만약을 대비해 한 개는 남겨두자. 다음에 필요한 순간이 또 올지 모른다.
[조언 : 2 -> 1]‘산타에 관한 적절한 대응에 대해 힌트 좀 줘.’
[이곳은 저주의 방이 아니다. 지옥에 떨어진 자는 자신을 스스로 구해야 한다.]…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내용을 전달하자 아리와 할아버지도 입을 반쯤 벌렸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놓치고 있었다. 이 장소는 저주의 방이 아니다! 해결의 방식 또한 저주의 방과는 다를 가능성이 크다.
아리가 당황한 듯 중얼거렸다.
“아니,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저주의 방이 아니니까 다른 접근이 필요하겠지.”
“그 ‘다른 접근’에 대한 이야기가 다음 문장 같아. ‘지옥에 떨어진 자는 자신을 스스로 구해야 한다 .’ 이건 올빼미치고는 굉장히 상세하게 알려준 느낌이야.”
“그 말도 알겠어. 가인이 네 말대로 올빼미답지 않게 명확한 문장을 줬으니까. 지옥에 떨어진 사람은 미로고, 미로가 자신을 스스로 구해야 한다는 이야기겠지. 물론 미로 혼자서 할 수는 없고, 우리가 도와줘야겠지만….”
모두의 고민을 할아버지가 한 번에 정리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냐? 미로 보고 산타 때려잡으라고?”
“미로가 숨겨둔 초능력이 10개쯤 더 있는 게 아닌 이상 그런 방식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거 점점 골치 아프다. 처음엔 크리스마스 전에 산타를 잡아야 하나? 했더니 크리스마스 전엔 그냥 환영이나 다름없으니 실패. 다음에는 의식을 무너트려야 하나? 했더니 의식은 이미 끝나고 잔해만 남은 상황이니 실패. 결국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나타나서 날뛰는 것까지는 확정이라는 말 아니냐?”
현재까지의 정보만 모아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나타나는 것까지는 막을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결국 산타가 나타난 후에 막아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시계를 살펴보자 슬슬 7시가 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산타가 나타나기까지 5시간도 남지 않았네요.”
“…”
“생각과 고민보다는 일단 알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움직입시다.”
“무슨 소리야? 알아낸 게 쥐뿔도 없는데 뭘 하자고?”
“왜 없습니까?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는데. 미로를 참여시키라는 말이잖아요.”
“아?”
“이거.”
“응?”
“이것도 가져가. 미로가 알아볼지도 모르니까.”
의식의 중앙에서 발견한 기묘한 쇳조각과 무언가 산타가 좋아할 법한 글귀.
‘A reward for a good boy and a punishment for a bad boy(착한 아이에겐 상을, 나쁜 아이에겐 벌을)’
자정까지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슬슬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미로에게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산타클로스가 학교에 오는 이유가 뭘까?
선물을 주기 위해서다.
*
곧 산타가 나타날 시간이다. 1층의 분위기는 어제와 사뭇 달랐다. 어제만 해도 선물을 가지고 찾아올 산타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던 아이들이 오늘은 ‘재미난 장난’을 친다는 생각에 다들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획대로 잘 될까?
분명 ‘이런 방향’이 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타가 나타나는 것까지는 막을 방법이 없다. 산타는 힘으로 상대하기 극히 어려운 까다로운 존재다. 마지막으로, 이 지옥에서 미로는 자신을 스스로 구해야 한다.
이 모든 요소를 조합한 후, 나는 ‘크리스마스의 악마 산타 등장’이라는 기묘한 상황을 산타와 싸우지 않는 방향으로 어떻게든 기발하게 깨트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인아, 가인아, 가인아, 가인아!”
“미로? 왜 그래?”
“… 잘 될까? 나 조금 무서워.”
1층의 소년 소녀들 대부분은 지금 상황을 단순히 재미난 장난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아이들이 산타를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계획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거짓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미로를 설득했기에 이 정도로 통제할 수 있었다.
그리고, 1층의 아이들 중 현 상황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고 있는 유일한 소녀, 미로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잘 될 거야.”
잘 안되면 다시 한번 해봐야지.
“너무…. 너무 이상해! 산타가 갑자기 우릴 다 죽일 거라니?”
미로를 설득하기 위해 오늘의 마지막 조언을 썼을 때, 올빼미는 알려줬다.
[백문이 불여일견]초자연적인 현상의 실존에 대한 설득은 1,000마디 문장보다 직접 초능력을 한번 보여주는 게 가장 확실한 법. 내가 30분을 떠들어도 ‘너 미쳤어?’ 정도의 반응을 보였던 미로는 ‘순간이동’ 한 번에 바로 설득당했다.
다시 한번 펜을 살짝 흔들어 미로의 시야에 ‘걱정하지 마’라고 적어주자 미로가 얌전해졌다.
[날짜 : 93일 차] -> [날짜 : 94일 차]…
Jingle bells, jingle bells
Jingle all the way.
Oh! what fun it is to ride
In a one-horse open sleigh.
캐럴이 들려온다.
조금 전, 미로 보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 무색하게 나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견디기 힘들 정도의 두려움이 밀려왔다.
— 쿵!
산타가 들어왔다. 동시에, 아이들이 외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 함박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다들 정말이지 고맙단다! 아무래도 여기엔 착한 아이들이 많은 것 같구나. 정말 기쁘단다. 하지만.”
산타의 입이 ‘세로로’ 찢어졌다. 뒤쪽의 아이들은 뭔가 잘못 본 것이려니 하고 별 반응 없었지만, 맨 앞줄의 아이들의 놀란 기색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은 착한 아이만 받을 수 있단다. 너희가 모두 착할지는 알 수 없는 법 아니겠니? 그러니까 -”
그 순간, 미로가 일어섰다.
“산타 할아버지! 저희는 이미 선물 다 받았어요! 얘들아~!”
그 말과 동시에 아이들이 등 뒤에 숨겼던 상자들을 꺼냈다. 상자 속에서 지난 몇 시간 동안 학교의 교사들이 발에 불이 나도록 돌아다니면서 구해온 각종 선물이 잔뜩 튀어나왔다!
미로의 지옥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산타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이제 결정타가 들어갈 타이밍이다.
“어이~! 거기 뉘신고? 우리 애들은 이미 내가 선물을 다 줬는데, 너무 늦게 오신 것 아닌가?”
푸근한 붉은 옷차림, 한 손으로 들고 있는 거대한 선물 주머니, 입이 세로로 찢어진 산타 괴물 따위보다야 훨씬 푸근한 인상을 자랑하는 노인.
묵성 산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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