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90)
189화 – 미로를 위한 기도 (8)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4일 차
현재 위치 : 미로의 지옥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몇 시간 전, 산타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계획을 짜며 가장 열심히 분석했던 부분은 ‘산타의 행동 패턴’이었다. 산타는 대체 어떤 원리로 행동하는가? 적어도 눈앞에 보이는 모든 인간을 무작정 참살하는 단순한 괴물과는 달랐다.
몇 가지 패턴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예컨대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에는 본격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마법적인 현상을 일으킬 때는 해당하는 캐럴을 불러야 한다. 다만 그런 것보다 중요한 일종의 ‘근본 원리’는 무엇일까? 악마 산타가 여러 차례 반복했던 반복적인 언행, 우리가 의식의 잔해에서 발견했던 철판에 적힌 글귀에 그 답이 있었다.
‘A reward for a good boy and a punishment for a bad boy’
산타는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나쁜 아이에게 벌을 주기 위해 나타난다. 여기까지 깨달았을 때, 계획의 첫 번째 단추가 완성되었다. 바로, 산타가 해야 할 일을 우리가 미리 끝내놓는 것!
과연, 산타는 여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분노를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가당치도 않은 놈들이로다! 산타가 해야 할 일이 무작정 아이들에게 선물을 뿌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나? 착각이다!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착한 아이들’뿐! 이 장소의 모든 아이가 선물을 받았군. 이 행동 자체가 네놈이 산타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산타의 첫 번째 주장은 ‘선물을 받을 자격은 착한 아이에게만 있다’였다.
이미 우리가 예측했던 논리이기도 하지! 즉시 일어서서 산타의 앞으로 나갔다.
“산타 할아버지, 아까 뵈었는데 기억하시죠?”
“물론 기억하다마다. 가인이라고 했지? 잘 나왔구나. 내가 네 선물을 준비 -”
“할아버지, 조금 전에 해주신 말씀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완전히 착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누구나 실수하고 더러워지기 마련. 중요한 것은 반성하고 뉘우치는 것’. 맞지요?”
“… 그렇단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반성, 반성 아니겠어요? 할아버지가 직접 하신 말씀이니까요! 틀림없죠?”
“…”
“얘들아! ‘반성문 낭독’ 시간이야!”
…
잠시 침묵의 시간이 지나갔다. 아이들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너 뭐하냐? 하는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산타의 눈이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호오. 가인이 너와 달리 다른 아이들은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은 모양이구나?”
이 계획이 이렇게 터진다고? 애새끼들이 반성문을 읽지 않아서? 아니 이게 무슨 –
눈토끼 같은 소녀가 번개처럼 일어섰다.
“반성! 저 미로는!”
“… 미로는?”
“… 어제 점심 식사 시간에 브로콜리를 전부 버렸어요. 또, 저녁 식사 때는 아리 햄을 제가 먹었어요.”
김아리 : 그래서 내 햄이 없었어?
한가인 : 얘 아까 쓴 반성문 내용 까먹었잖아! 머리가 나쁜가?
김아리 : 미로 욕하지 마!
“또, 또…. 아까 수학 시간에 공부하지 않고 눈싸움했어요. 아, 근데 이건 그렇게 큰 잘못 아니에요! 선생님도 같이하셨으니까. 그리고 눈싸움 할 때 얼음을 넣어서 가인이에게 던졌어요. 이건 가인이도 웃었으니까 괜찮아요. 에…. 이제 됐죠?”
산타가 잠시 말문을 잃은 사이, 미로는 재빨리 옆의 아이를 걷어찼다.
“야! 토마스!”
“어, 어?”
“반성해! 빨리 반성해!”
산타가 어딘가 지친 듯 중얼거렸다.
“얘야…. 친구를 발로 차면 안 된단다.”
“그러면 그것도 반성할게요. 자! 빨리빨리 반성 안 해?”
따지고 보면 최근에 전학해 온 학생에 불과한 나와 달리 학교의 독재자, 여왕처럼 군림하던 미로의 말발은 차원이 달랐다. 즉시 토마스가 일어섰다.
“바, 반성! 저 토마스는 저번 달에 본 역사 시험 성적을 아버지께 숨겼습니다.”
“…”
“그리고…. 그리고…. 아! 과학 시험 성적도 숨겼어요. 하하하! 사실 제가 최근에 쓰는 방식인데요, 숫자 ‘3’은 ‘8’로 바꾸기 쉽다는 것 아시나요? 그래서 35점을 85점으로 바꿔서 -”
…
“줄리아 선생님 자동차에 저번 주에 새똥 발랐어요.”
…
“스티브랑 싸웠어요. 근데 그건 스티브가 먼저 시비 걸었는데.”
“뭐 이 새끼야?”
“네가 내 책에 낙서했잖아!”
“네가 먼저 내 볼펜 망가트렸잖아!”
“둘 다 닥치지 못해? 조슈아! 머리 뽑아버리기 전에 반성해!”
“얘야…. 친구에게 욕을 해도 안된단다.”
“그것도 반성할게요.”
이런 느낌.
어딘가 황망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꼴을 지켜보던 산타가 분노로 인해 얼굴이 시뻘게지며 묵성 할아버지를 노려보았다.
“네 이놈! 네놈이 크리스마스를 다 망치려 드는구나! 어딜 근본도 없는 버러지가 감히 산타를 사칭한다는 말이냐!”
산타의 두 번째 주장은 ‘너에게 산타를 자칭할 자격은 있냐?’ 였다.
“사칭? 그거 말하는 뽄새 보소? 넌 산타 자격증이라도 있냐? 산타 시험이라도 통과했어?”
“시험? 무슨 미친 소리냐! 산타클로스가 되기 위해 필요한 건 자격증이나 시험 따위가 아니다! 오로지 아이들에 대한 충만한 사랑만이 산타클로스의 자격이다!”
“사랑? 고 주둥이에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진짜 놀랍다! 야 인마, 나도 여기 애들 사랑해! 내가 원래 이 학교 교사였는데 너보다야 학생들을 아끼는 사람 아니겠냐? 게다가 너, 산타클로스의 유래는 아냐?”
“유, 유래?”
“하! 이놈 무식하네. 본래 산타클로스의 유래는 기독교의 성 니콜라오 주교라는 말씀이지. 성경은 읽어봤냐?”
산타가 말문이 막힌 사이, 할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난 참고로 전직 추기경이야.”
여기서 ‘공포의 저택’에서 했던 교황청 추기경 경력이 나온다고?
어처구니없게도 통했다! 휘청거리던 산타는 무언가 반박할 말을 고민하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산타는 네놈이 옷만 흉내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넌 작년엔 뭘 하고 있었지? 재작년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있나?”
악마 산타의 세 번째 주장은 ‘산타 일을 해 본 적은 있고?’였다.
“오~! 이젠 경력을 들이대시겠다? 거 잘됐네. 난 올해부터 신입 산타 할 테니, 이미 여러 번 해본 네 놈이 물러서는 게 산타들의 세계에 공헌하는 것 아니겠냐?”
“대체 무슨 소리지? 왜 내가 물러서야 한다는 게냐?”
“야 이놈아, 경력직이 다 해 처먹으면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으란 말이냐? 해 먹을 만큼 해 먹었으면 자리를 비워 줘야 신입 산타가 업계에 뛰어들 것 아니야!”
… 정신이 나갈 것 같다.
두 산타의 ‘내가 진짜 산타’ 배틀이 시작되자 1층의 아이들은 단체로 입만 딱 벌린 채 끼어들지도 못했다. 듣고 있던 나까지 정신이 다 나갈 지경이다.
혼란스럽긴 하지만, 뭔가 할아버지가 기세에서 이긴 느낌이 든다. 산타도 비슷하게 느꼈을까? 한참 동안 부들거리던 산타는 갑자기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다!
Jingle bells, jingle bells
Jingle all the way.
Oh! what fun it is to ride
In a one-horse open sleigh.
아직 ‘착한 아이, 나쁜 아이’를 가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곧바로 사람이 죽어 나가진 않았다. 하지만 저 캐럴엔 분명 마법의 힘이 실려있었다. 캐럴이 시작됨과 동시에 1층에서 눈보라가 몰아치고, 난데없이 순록이 튀어나왔다!
이번엔 또 캐럴 배틀이야?
악마 산타의 네 번째 주장은 ‘캐럴은 제대로 부를 줄 아냐?’였다.
할아버지는 당황하다가 본인도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
한가인 : 캐럴 되게 잘 부르시네
김아리 : 잘 부르시네~ 할 때가 아니야! 기세가 밀리잖아 기세가!
분위기를 살피자 확실히 느껴졌다. 그냥 잘 부르는 노래 실력 정도로 눈보라와 사슴을 소환하는 마법의 캐럴과 맞상대하자 무언가 밀리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기세가 등등해진 산타의 입이 열렸다.
“고작 그 정도군! 캐럴 하나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놈이 감히 산타를 사칭했다는 말이지?”
이거 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아까부터 너무 정신 나간 흐름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미로가 다시 일어서서 외쳤다.
“얘들아! 다 같이 따라불러!”
“어? 어?”
“미, 미로야?”
“따라 부르라고! 흰 눈 사이로!”
이건 또 뭔 –
김아리 : 너도 빨리 불러!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혼란 속에서 나도 아이들도 그냥 흐름에 이끌려서 캐럴을 따라불렀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세가 다시 넘어왔다.
이번엔 할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하, 이봐. ‘선배님’. 산타 경력을 자랑한 주제에 캐럴의 의의를 여태 모르나?”
“무슨 이야기지!”
“눈을 부르고 사슴을 부르는 마법이 캐럴의 본질인가? 아까 전에 산타클로스의 자격으로 아이들에 대한 충만한 사랑을 말한 사람은 누구였지?”
“…”
“보라! 모든 아이가 나와 함께 캐럴을 따라부르는 이 광경을! 이것이야말로 진짜 캐럴이다!”
종이 울려서 장단 맞추니 흥겨워서 소리 높여 노래 부르자!
“종이 울려서 장단 맞추니! 흥겨워서 소리 높여 노래 부르자!”
악마 산타는 무어라 말도 못 하고 그저 덜덜 떨기 시작했다. 이걸로 끝인가? 이쯤 하면 된 것 아니야?
이겼다 싶은 분위기가 장내에 감도는 그 순간, 산타 비장의 카드가 나타났다.
— 후우욱. 후우욱!
아까부터 우리만큼이나 당황했는지 어찌할 바 모르던 식인 순록이 악마 산타에게 다가서서 마치 위로하듯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분위기만 보면 사업에 실패한 노인을 우아한 순록이 위로해주는 듯한 평화로운 광경 속에서 악마 산타의 입이 다시금 세로로 찢어졌다.
“좋다 좋아. 선생에, 추기경에 뭐 거창한 경력이 있다고 하니 최소한의 자격은 인정하마. 캐럴도 부를 줄은 안다고 쳐주마. 그런데….”
무슨 말이 나올지 예측한 할아버지의 안색이 굳었다.
“너, ‘루돌프’는 어디 있느냐? 설마하니 산타를 자처하면서 순록 썰매도 없다고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겠지?”
학교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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