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92)
191화 – 미로를 위한 기도 (10) Fin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4일 차
현재 위치 : 한빙지옥 – 부활의 방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여러 차례 경험했음에도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는 혹한의 설원 가운데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전 참가자의 지옥은 저주의 방과는 다르다고는 하나, 해결 후 공간이 붕괴하며 바깥으로 내보내지는 점은 저주의 방과 다르지 않았다.
나오자마자 우리가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벌판에 무릎 꿇고 있는 진철 형이었다.
“형! 기다리셨 – 아니, 몸 상태가 대체 왜 이러세요?”
호텔에 들어온 이후로 이렇게 ‘홀쭉한’ 진철 형은 정말 처음 보았다!
바깥에서 기도하던 사람들도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형의 모습은 좀 과장하면 체중이 평소의 10kg 이상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이쯤 되니 대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상상이 어려울 정도였다.
“드디어! 드디어 나왔구나! 정말이지 너희가 조금만 더 늦어졌다면 나도 기절할 지경이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다른 분들은 다 어디로 가셨어요?”
“전부 105호로 가서 쉬고 있다.”
“네? 105호요? 우리가 한빙지옥으로 출발할 때 1층도 맛이 가지 않았었나요?”
진철 형이 쓴웃음을 지었고,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106호 보상, 휴식권 썼구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들 체력이 극도로 떨어진 상태로 혹독한 추위에 너무 오래 노출돼서 이러다간 다들 얼어 죽지 않을까 두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잘 썼다. 어차피 소모품 아니냐. 때 되면 쓰라고 만든 물건을 위기가 왔으니 썼을 뿐이다.”
이후 진철 형의 설명을 들으며 모두가 상황을 이해했다.
“안식의 향초라는 게 그렇게 위험한 물건일 줄은 몰랐네요.”
“이놈의 호텔은 어떻게 된 게 향초 하나도 사람 잡아먹는 물건인지 모르겠다.”
“휴식권을 쓰고 다른 분들은 형이 전부 옮기신 건가요?”
진철 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승엽이, 송이, 엘레나는 내가 옮겼다. 누님은 아마 스스로 가셨겠지. 그리고…. 사실 나도 이제 견디기 괴롭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네 몸뚱이를 보고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있었다. 너도 이만 105호로 가는 게 어떻냐? 대충 이곳에서의 볼일은 다 끝난 듯한데. 안내자! 아직 우리가 할 일이 더 남았나?”
아까부터 허공에 둥둥 떠 있던 안내자가 즉시 답했다.
“아닙니다. 안내 사항만 들으시면 됩니다.”
“바로 가서 좀 쉬어라. 안내 사항이야 우리가 듣고 전해주면 그만이지.”
“그러면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인아?”
“예?”
“너 허리에 그건 뭐냐? 들어갈 땐 없던 것 같은데. 혹시 모르나 싶어서 말해준 거다.”
그 말을 끝으로 진철 형은 터벅터벅 떠나갔다.
“허리? 아니, 이건 또 뭐야?”
아리가 피식거렸다.
“메리 크리스마스~! 연쇄살인 산타가 가인이 진짜 좋아했나 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인이 선물은 챙겨줬네!”
할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그냥 버리든지 해라. 미친 괴물 같으니라고.”
허리춤에 붙어있던 물건은 ‘나’를 무척 닮은 봉제 인형이었다. 솔직히 보자마자 섬뜩한 생각이 들었는데, 인형 자체가 섬뜩해서인지 인형을 준 존재가 섬뜩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진철 형까지 사라진 후, 여전히 혹독한 추위와 칼날 같은 바람이 몰아치는 한빙지옥에는 미로의 지옥을 진행하던 사람들만 남았다.
“분명히 여기 들어올 때 시나리오에선 ‘지옥에서 고통받는 망자들의 한이 추위의 원인이다.’ 이런 소리를 했던 것 같은데.”
“맞습니다.”
“왜 아직도 이렇게 추워? 추위가 사라져야 하는 것 아니야?”
“좋은 질문입니다. 바로 그 부분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참가자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지옥에서 고통받던 망자 중 한 명의 고통을 멈추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놈의 확인까지 받자 비로소 미로가 갇혀있던 동상으로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여전히 미로는 얼음 속에서 잠들어있었지만, 더 이상 다른 동상의 망자들처럼 고통받는 신음을 내뱉지 않았다. 그저…. 좋은 꿈을 꾸는 듯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리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표정만 보아도 크게 안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새삼스레 나름대로 괜찮은 성과를 얻어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망자들이 여러분의 선한 행동 덕에 희망을 얻었고, 지옥의 냉기는 더 이상 호텔을 위협할 수 없습니다. 1층은 이미 혹한에서 벗어났습니다. 2층은 내일 수리됩니다.”
“1층과 2층 이야기만 하는 것 보니 한빙지옥, 아니 부활의 방인가? 하여튼 이 장소는 계속 추운가 봐?”
“1층과 2층이 추워진 건 지옥의 냉기가 호텔을 무너트렸기 때문이지, 원래 추운 장소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반면 한빙지옥은 다릅니다. 호텔의 수리와 무관하게 추운 것이 정상인 장소이죠.”
부활의 방은 앞으로도 계속 춥다는 의미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어차피 일상적으로 들어올 장소는 아닐 테니까. 드디어 장기간 골치 썩였던 호텔의 빙하기가 끝났다! 뿌듯한 기분이 들어 서로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기도와 부활에 대해선 며칠 전 설명드렸지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기도와 부활은 별개. 기도는 전 참가자의 고통을 끝내고 호텔에 온기를 돌려놓기 위한 절차일 뿐입니다. 부활을 원하신다면, 티켓을 쓰셔야 합니다. 쓰시겠습니까?”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나와 할아버지가 어색하게 아리를 바라보자 아리가 피식 웃었다.
“뭘 봐? 티켓을 통한 부활은 서로 합의하고 해야지. 예전에 한번 의사를 살리자고 했었지?”
“부활의 방을 찾은 후엔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고도 했지. 이렇게 빨리 찾을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지금 쓸 생각은 없어. 미로를 제정신으로 돌려놓을 방법도 찾지 못했잖아? 방법이 있을 만한 장소는 이제 짐작은 가지만.”
다행이다. 셋이서만 회의해서 쓰기에 티켓은 너무나 귀중한데다가, ‘새로운 동료’라는 큰 이벤트를 우리끼리 정할 수는 없다. 당연히 105호에서 휴식 중인 사람들과도 대화한 후 결정할 문제다.
그나저나, 미로의 정신을 회복할 방법이라…. 아까 전의 의미심장한 대화 내용을 미뤄볼 때, 미로와 관련한 문제의 해답은 아마도 ‘거울의 방’에 있지 않을까? 물론 가 봐야 확실해질 문제다.
안내자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참고로 부활의 방 역시 호텔 내의 ‘비밀의 방’들 중 하나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 때나 들어올 수 있는 방이 아니며 파티타임이 되어야 다시 출입하실 수 있습니다.”
아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뭐, 우린 이미 3일 휴식권을 썼으니까. 아마도 오늘까지 포함일 테니 내일, 모래 이렇게 2일은 파티 타임이야.”
“티켓을 쓸 생각이면 다른 사람들하고 한번 상의하고 내일이나 모래 다시 들어오자.”
결과적으로 3일 휴식권은 적절하게 잘 쓴 것 같다. 누굴 부활시켜야 할지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위한 휴식과 회의의 시간도 주어진 셈이니까.
이것으로 한빙지옥의 일은 마무리되었다.
*
다 끝났다는 생각에 마음도 편안하게 먹었고, 어차피 휴식권도 썼으니 늘어지게 쉬자고 말하며 한빙지옥에서 나가기 시작했을 때.
이변이 발생했다.
[조언 : 3 -> 0] [1층과 2층의 수리 시기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어? 자, 잠깐 다들 멈춰!”
“뭐야? 가인아, 뭔가 이상한 일이라도 생겼어?”
“조, 조언이 지금 작동했어.”
“뭘 물어봤는데?”
“물어보지 않았어! 예전에 관문의 방에서처럼 갑자기 남은 횟수가 전부 사라지면서 답변만 나왔어!”
할아버지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또 뭔가 일이 생긴 모양이군. 그래, 내용은 뭐냐?”
“‘1층과 2층의 수리 시기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하는데?”
“그게 뭔 -”
— 우우웅!
내가 조언의 내용을 동료들에게 설명한 순간, 건너편에서 우리를 주시하던 드론에서 기이한 소리가 발생했다. 드론을 허공에 띄우고 있던 프로펠러들이 연신 진동하고 몸체가 떨리는가 싶더니 그동안 들었던 것과 다른 말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지혜’. 이건 좀 아니지. 참가자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직접 알려주다니 좀 선 넘는 것 아닌가?”
이 상황이 됐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면 우리가 여태 호텔에서 보낸 시간이 헛수고라는 의미이리라. 슬슬 ‘척하면 척’ 할 때가 됐다.
방금 드론에게 전달받은 내용 중 어딘가에 ‘힌트’가 있었고, 우리가 그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나가려고 하자 올빼미는 다소 무리해서 조언을 내렸다!
즉시 셋 모두 멈춰서 조언의 내용, ‘1층과 2층의 수리 시기’라는 주제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리가 무언가 느꼈다는 듯 중얼거렸다.
“듣고 보니까 특이하긴 하네. 굳이 두 층의 수리 시점이 다를 필요가 있을까?”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애초에 추위의 원인은 한빙지옥이고, 한빙지옥이 2층에 있지 않으냐? 추위의 근원과 더 가까운 장소니 수리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 같았는데….”
나는 오히려 그 말을 듣고 나자 위화감을 깨달았다.
“이곳은 현실의 건물처럼 ‘상식’이 적용되는 장소가 아니지 않습니까? 인부들이 와서 망치질하면서 고치는 장소가 아니에요. 보이지 않는 요정 같은 존재가 손가락 한번 까딱하면 1초 만에 수리 끝! 해도 이상하지 않은 장소죠.”
“굳이 수리 시기가 다를 필요가 없다?”
“그렇죠. 생각해보니, 그간 우리가 여러 번 호텔을 작살냈지만 한 번도 어디는 고쳐졌는데 어디는 여전히 고장 난 상태로 남아있던 적은 없었습니다.”
호텔 파이오니어. 이 기이한 장소에서 소위 ‘특수 이벤트’가 끝났다면, 망가진 시설은 그 즉시 수리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굳이 1층만 즉시 수리하고 2층은 남겨둔 이유가 뭘까? 이 부분에 관해 쉽게 답을 얻을 수 없어 다들 가만 서 있던 차 –
드론이 개입했다.
“보아하니 그대들이 직접 깨달으려면 제법 시간이 걸리겠군.”
“… 조금 전부터 느꼈는데, 아까와 말투가 다르시군요.”
아까 전까지의 안내자가 단순히 인공지능 드론 같았다면, 지금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그대로 중계하는 듯했다.
“이 장소의 관리자라고 해두지. 사실 조금 전까지 너희에게 올빼미의 조언과 관련된 기억을 지울지 고민 중이었다.”
“…”
“하지만…. 그래. 그대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올빼미가 나서서 알려주는 행위는 분명 선을 살짝 넘은 행위이긴 하나, 올빼미가 자네에게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후원자에게 가능성을 입증하여 호의를 사는 것도 자네 능력 아니겠나.”
올빼미가 날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고? 정말이지 믿기 힘든 이야기다!
… 왠지 모르게 그동안 올빼미를 원망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갑자기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고민하지 말고 2층으로 가라. 주변을 둘러보며 2층만 늦게 수리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떠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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