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94)
193화 – 파티 타임 – 2층의 비밀 (2)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4일 차
현재 위치 : 한빙지옥 – 부활의 방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감동적인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 무색하게도, 우리가 다시 1층으로 돌아오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천장이 뚫려서 엄청난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호텔 2층, 관점을 바꿔보면 천장은 뚫려있어도 최소한 벽은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벽조차 사라진 호텔 외부의 눈보라는 2층과도 또 한층 달랐다.
추위의 정도야 비슷했지만, 문제는 혹독한 바람. 도저히 단 한 걸음을 떼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방호복을 입고 있어서 솔직히 잘 느끼지 못했으니까.
페로를 끌고 나가자는 아이디어도 나왔지만 페로는 평소엔 언제나 송이의 방에 있고, 송이는 아무리 대화창으로 호출해도 반응이 없었다. 아마도 진철 형을 제외한 사람들은 안식의 향초에 의해 지나치게 기가 빨려서 혼절한 듯했다.
그렇다고 탐색을 내일로 미루기엔, 호텔 수리가 끝난 후에도 외부로 나올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수리 후엔 우리가 벽을 부수고 나갈 수 없도록 외벽 보강공사라도 할지 누가 알겠는가? 올빼미가 무리하면서까지 ‘오늘’ 조언을 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결국 예전처럼 호텔의 커튼을 뜯어내서 단단한 줄을 만들고 4명 모두를 묶었다.
이렇게 완성된 탐색 대형은 다음과 같았다.
최전방에는 방호복을 입어 200kg 혹은 그 이상의 무게를 자랑하는 나, 뒤에는 단단히 방한복을 챙겨입은 아리와 할아버지, 최후방에는 우리 중 유일하게 맨몸으로 혹한을 버틸 수 있는 진철 형.
다시금 탐색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
— 휘이잉!
몰아치는 바람에 몸 전체가 살짝 들렸다가 내려앉았다. 지금 내 무게가 200kg이 넘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정상적인 바람이 아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쌓인 눈 덕분에 발이 수시로 무릎까지 빠져대니 정말이지 걷기가 쉽지 않다.
한가인 : 괜찮?
김아리 : 대답할 힘 x
차진철 : 천천히.
지금도 어린아이 걸음보다 느린데 더 느리게 가라는 주문에 이젠 어린아이가 기어가는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워하다 보니 별수 없었다.
주변을 살피면 살필수록 이 장소의 풍경이 매우 기이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산’을 제외한 다른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눈보라 때문에 시야가 막힌 것은 당연하지만, 아무리 시야가 막혀도 최소한의 형체 정도는 어렴풋하게라도 보여야 한다.
당장 우리가 걷고 있는 산의 형상은 호텔 2층 외부로 나오자 뚜렷하게 보였다. 그런데 산을 제외한 다른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산을 제외한 지형이 아예 없는 것처럼.
이 가능성도 염두에 두기로 했다. 2층 외부가 1층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점에서 고정관념을 가져선 안 된다. 지구가 아닐 수도 있고, 호텔 지하처럼 특수한 공간일 수도 있다. 예컨대 호텔 지하엔 ‘등산 방’이라는 기묘한 장소가 있는데, 그 장소는 말 그대로 등산을 위한 산 말고 다른 지형은 아예 없다.
…
30분 정도 흐른 후, 우리는 비로소 난관에 봉착했음을 깨달았다. 호텔 2층 외부로 나와서 원을 그리며 사방을 돌았는데, 모든 방향에 절벽이 있었다. 매우 가파른 지형 사이에 호텔이 있는 듯했다.
현실이라면 이런 장소에 호텔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길이 없는데 고객이 호텔을 어떻게 찾아간다는 말인가? 고객을 마음대로 납치하는 호텔이나 있을 수 있는 위치다.
한가인 : 모든 방향이 절벽. 마치 허공에 뜬 섬과 같은 지형.
차진철 : 산 바깥으로 나갈 길이 아예 없음.
볼수록 이상한 지형이다. 이런 지형이 자연적으로 형성될 수 있을까?
결국 의견을 모은 끝에 방법을 찾아냈다. 가파른 지형 위쪽에서 내가 200kg 이상의 무게를 바탕으로 무게추처럼 버티고, 나머지 사람들은 천을 붙잡고 내려가는 방식.
중간중간에 힘이 빠질만한 구간은 진철 형이 벽면의 얼음을 부숴서 자그마한 홈을 만든 후 다들 잠깐씩 쉬면서 힘겹게 내려갔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냥 지형에 부딪혀가면서 내려갔다. 이걸 내려갔다고 해야 할지 추락했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방호복을 입고 있는데도 몸 전체에 상당한 충격이 가해져서 한동안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극한의 환경에서 탐색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를 찾아내서 모두가 그 아래에 모여들었다.
“여긴 그래도 말이 좀 들리네요.”
“그러게. 나뭇가지가 엄청나게 울창하고 튼튼해서 바람을 좀 막아주는 느낌이야.”
“다들 그동안 무슨 생각 하셨습니까? 일단 풍경이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저쪽을 보세요.”
내가 가리키는 방향엔 새하얀 세계가 보였다. 말 그대로 새하얗다. 아무리 눈보라가 친다 해도 거뭇한 형상이라도 보이기 마련인데….
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공간엔 산 말고 다른 건 하나도 없나 봐. 더 이상한 점도 있어. 여태 걸으면서 우리를 제외한 생물을 발견한 사람 있어?”
할아버지가 즉시 반응했다.
“나도 그걸 느꼈다. 아무리 눈산이라도 하다못해 토끼 한 마리, 여우 한 마리는 있어야 정상 아니냐? 어찌 된 게 이 거대한 산에 쥐새끼 한 마리도 없단 말이냐? 심지어 바닥에 풀도 없다. 살아있는 생물이라곤 우리뿐이지.”
“엄밀히 말하면 여기 나무 하나 있네요.”
바로 진철 형의 당황한 듯한 말이 들려왔다.
“이 나무 대체 뭐냐? 다들 와봐!”
무슨 말인가 해서 나무 기둥 쪽으로 붙은 우리는 형의 말을 이해했다.
“이거 진짜 나무가 아니잖아?”
하도 뭐가 잘 보이지 않는 환경이라 눈치채기까지 오래 걸렸다. 놀랍게도 우리가 바람을 피하고자 의지하던 나무는 진짜 나무가 아니었다. 무슨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 같기도 했고, 금속이 섞인 느낌도 들었지만 확실한 것은 진짜가 아닌 모형이라는 것.
점점 더 알 수 없다. 이 나무조차 생물이 아니며, 이 공간의 생물은 정말로 우리 뿐이다.
… 조금은 섬뜩해졌다. 생명력이 가득 차 있어야 마땅할 대자연에 그 어떠한 생물도 없다는 사실은 우리의 마음에도 한기가 깃들게 했다.
“숨 돌리셨으면 출발합시다. 그나저나 지금 시간이면 저녁 시간은 훌쩍 넘었겠네요.”
“걱정하지 마라. 테이블에 탐색하러 간다고 대충 적어뒀으니 밥 먹으러 나오는 사람들도 이해할 거다. 그보다 걱정인 건 따로 있다.”
“우리 대체 어떻게 돌아갈까요?”
“내 말이 그 말이지. 탐색에 시간제한까지 붙은 상황이라 무리해서 호텔 근처 가파른 지형 아래로 내려오긴 했는데, 나중에 올라갈 때는 어떻게 올라가냐?”
아리는 무슨 걱정을 하냐는 듯 답했다.
“정 방법 없으면 가인이가 강림해서 우릴 옮겨주면 그만이지!”
진철 형이 피식 웃었다.
“나도 솔직히 그 생각하면서 내려왔다. 네가 잘 옮겨줄 거지?”
“… 방법이 없으면 그렇게라도 해야죠.”
새삼스럽지만, ‘강림’은 우리 일행에게 언제나 최후의 보루다. 아무리 힘들고 답이 없는 문제에 봉착한다 해도 강림만 하면 다 해결해주겠지. 그리고 실제로도 강림한 나는 우리가 호텔에서 겪을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
이런 터무니없는 능력을 외상으로 내려준 ‘주’는 대체 뭐 하는 존재일까?
진철 형이 안심시키듯이 한마디 덧붙였다.
“정말 강림 하나 믿고 내려온 건 아니고, 나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다. 이른바 별로 길 만들기 작전이라고나 할까?”
“설마 별을 써가면서 절벽에 위로 향하는 두더지 굴을 파서 올라간다. 그런 건가요?”
“될 것 같지 않냐?”
의외로 될 것 같아서 나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출발하자!”
잠시 또 104호로 향했던 상념을 거둬들인 후, 새하얀 지옥을 향해 다시 발을 내디뎠다.
*
새하얀 벌판을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정말이지 하염없이 걸었다. 체감상 4, 5시간이 지난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의외로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 장담하기 어려웠다. 일단 상태창은 아직 날짜가 지나지 않았다고 알려왔으니까.
호텔 근처 가파른 지형 밑으로 내려온 후로는 무슨 지형의 변화조차도 없고, 그냥 끝없이 펼쳐진 평야만 있었기에 우리는 서로 말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채 걸어갔다.
그리고 무언가가 나타났다.
— 퉁!
“이건 대체 뭐냐? 아, 이제 내 말 들리지?”
“네. 여긴 바람이 덜하네요. 이건…. 무슨 벽인가요?”
할아버지가 갸우뚱하면서 주먹으로 두어대 치는 광경이 보였다.
“벽? 벽이라기보다는 무슨 크리스탈 같기도 한데? 한번 부숴볼 테냐?”
“조금 더 생각해보죠.”
마침내 우리는 호텔 2층이 있던 설원지대의 끝에 도달했다. 그 끝에는 높이가 대체 어느 정도인지 보이지 않는 하염없이 높은 불투명한 방벽이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동안 느꼈던 위화감 중 일부의 정답을 깨달았다.
어디를 돌아봐도 산을 제외하면 거뭇한 형체조차도 보이지 않고 새하얀 풍광만 보인 이유?
진짜로 산 말고 다른 지형은 없고, 공간 전체를 불투명한 방벽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자 이 탐색의 끝에서 무슨 보상이 기다릴까 하는 문제 이전에 순수한 호기심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이 장소는 대체 어디인가? 어떻게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공간이 있을 수 있지?
대체 이게 뭔가 싶어서 황당해하던 차, 꽤 오랜 시간 조용하던 아리가 중얼거렸다.
“이 장소…. 어딘지 알 것 같아.”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형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어디인데?”
“…”
“말해봐. 어디인데?”
“어떻게. 어떻게 ‘이런 장소’에 호텔이 있을 수 있지? 대체 어떻게! 아니, 내가 착각했나? 다들 뒤돌아서 풍경을 한번 돌아보고 이 방벽을 다시 봐. 굉장히 익숙한 풍경 아니야? 살면서 한두 번은 다들 봤을 모습이라고!”
이상하다. 아리의 반응은 마치 이 기이한 풍광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장소라는 듯했다.
돌아서 주변을 살피며 지금까지 발견한 특징들을 머릿속에 하나둘 떠올렸다.
첫째, 온 사방에 눈과 바람이 가득하다.
둘째, 유의미한 지형이나 건물이라곤 중앙의 산, 산 중턱의 호텔뿐이다.
셋째, 생물은 쥐새끼 한 마리, 풀 한 포기도 없다. 거대한 나무 모형 하나만 있다.
넷째, 산에서 내려와서 평지를 걷다 보면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은 불투명한 방벽이 나타난다.
… 이 장소의 정체를 깨닫고 말았다.
우리는 거대한 스노 글로브 내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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