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96)
195화 – 파티 타임 – 2층의 비밀 (4)
– 한가인
고양이, 아마도 ‘코코’의 몸으로 잠시 몸을 웅크리고 있자 문이 열리며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소년이 들어왔다.
“코코~! 내 방 물건들 너무 건드리면 안 된다고 했잖아!”
여기가 이 애 방인가? 방 상태를 보아하니 굉장히 잘 사는 집 아이 같다. 무슨 재벌이 나올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대답도 안 해? 에잇!”
갑자기 쥐어박혔다. 아니 얘는 고양이 보고 뭘 하라는 거야? 소리라도 내줘야 하나?
— 끼에엥~!
조금 이상한 소리가 나왔지만 어쩔 수 없어. 고양이에 빙의해본 적은 처음이라 야옹 소리를 어떻게 내는지 모르겠다. 소년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는가 싶더니 이상한 짓 하지 말라고 재차 경고한 후 방을 나갔다.
너 바보냐? 경고하면 고양이가 들어? 그런 무방비한 태도를 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고양이의 매운맛을 보여줘야 정신 차리려나? 내가 아주 그냥 양 발톱으로 벽지를 다 뜯어줘?
… 정신 차리자. 갑자기 진짜 고양이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보다 저 꼬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마음 깊은 곳이 검게 물드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저 꼬마의 몸을 빼앗는다면? 그게 바로 또 하나의 탈출 방법 아닐까?
심장이 격하게 뛴다. 바로 지금, ‘탈출’이 내 손 안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본래 빙의하는 순간 시야 한 편에 자리 잡아서 [57 : 39] 이런 느낌으로 1시간의 제한이 걸렸음을 알리던 표기가 사라졌다.
과거에 아리는 마도서를 써서 빙의할 때 발생하는 시간제한은 마도서 자체의 성능 한계가 아니라 몸 갈아타기를 통한 손쉬운 탈출을 제약하는 ‘호텔에서 붙인 제한’이리라 추측했다. 그 추측에는 나름의 근거 또한 있었다. 아예 편집되었던 ‘제물’ 권능과 달리 ‘빙의’ 권능에는 호텔에서 편집한 흔적이 없다는 점이 그 근거였다.
또, 마도서를 쓰면서 내가 깨달은 또 다른 근거도 있다. 알림의 형식이나 숫자를 표기하는 글씨체 같은 것들이 호텔에서 상태창이나 디스플레이, 알림 등에 쓰는 그 스타일이다. 어둠 속에서 혼자 억겁의 세월 동안 방치되었던 태어나지 않은 자가 마도서를 만들어내면서 떠올렸을 만한 형태가 아니다.
그래서 정황상 시간제한은 호텔에서 덧붙인 것이리라 추측했고, 그 예상은 맞아떨어진 듯하다. 스노 글로브를 벗어나 호텔 바깥으로 나오자 시간제한 자체가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정말 나갈 수 있을까?
애초에 올빼미는 대체 왜 무리하면서까지 조언을 내려서 나를 이 장소로 유도했을까? 새로운 탈출 루트를 알려주려고?
아닐 것 같다. 후원자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과거 은솔 누나의 후원자가 했던 발언이나 올빼미가 했던 말로 미루어볼 때 추측은 해볼 수 있다. 그들이 바라는 건 우리가 호텔에서 최대한 성과를 내는 것이지 탈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탈출하기를 바라지 않을 텐데도 바깥으로 나가는 방법을 알려준 이유?
올빼미는 내가 ‘이런 식으로’ 나가지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타올랐던 탈출의 욕구가 성냥불이 꺼지듯이 사그라든다. 나갈 수 없다. 나는 결코 이런 방식으로는 나갈 수 없다. 무고한 어린 소년의 몸을 빼앗는 것은 사악한 행위이기 때문인가?
그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점보다 10배 이상 크게 와닿는 요소는 따로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마도서가 없는 동료들은 나처럼 나갈 방법이 없고, 무작정 나가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벌레보다도 작은 인간이 된 채 밖으로 나가서 뭘 어떻게 살아간다는 말인가? 세상 사람들은 돋보기 없이는 우리를 볼 방법도 없을 텐데!
몇 달 전, 관문의 방을 들어가기 직전에 나와 아리, 그리고 동료들이 서로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던 시기에 아리가 했던 말이 있지.
지금 파티는 개인단위로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지만, 집단단위로 굉장히 강한 면이 있다. 단순히 선량하다, 이타적이다 같은 느낌이 아니라 ‘집단 사고’에 강한 면이 있다.
나는 그 말을 이 순간이 되어서야 다시금 체감했다. 저 말은 동료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임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대체 어떻게 나가란 말인가?
나 혼자서 이렇게 도망치듯이 탈출해버리면, 내 동료들은? 마도서도 상태창도 시나리오 이해도 잃게 될 동료들이 2층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201호, ‘더 큐브’ 초반에 내가 봉인되자 일행들이 겪었던 좌충우돌의 시간이 떠올랐다. 답이 없다. 나 혼자 탈출하는 것은 사실상 남은 사람들보고 다 죽으라는 이야기와 다름이 없다.
과거,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사람의 양심을 삼각형에 비유했다. 사람이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를 할 때마다 삼각형은 한 바퀴 회전하며, 그 날카로운 각으로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하염없이 회전한 삼각형은 어느 순간 모서리가 무뎌지게 된다….
조금 전, 내 마음속에서 삼각형이 한 바퀴 돌았다. 나는 삼각형의 날카로움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
내 원래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내 몸이 스노 글로브 안으로 돌아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도 고양이에 이어서 사람까지 나타나자 위협을 느낀 동료들이 도로 스노 글로브로 돌아온 듯했다.
방호복을 입은 내 무게는 200kg이 넘는데 이 무거운 몸까지 들고 안으로 다시 들어온 걸 보니 진철 형이 고생 좀 했겠네.
… 그러고 보면 ‘바깥 세계’에서 우리의 무게는 어떻게 처리될까? 모를 일이다.
내가 깨어나서 움직임을 보이자 즉시 아리가 다가왔다.
“돌아왔네.”
“응. 아직 알아낸 정보는 많지 않지만, 알아낸 만큼이라도 알려주려고.”
“잘했어. 그리고 고마워.”
“…”
순간적으로 말문을 잃었다. 이 ‘잘했어, 고마워’의 의미는 대체 뭘까? 주변을 살펴서 잘했고 고맙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그만 생각하자. 그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 타이밍이다.
“고양이에 빙의했을 때 방에 있던 시계를 확인했어. 외부 세계의 시간과 호텔의 시간이 같다면 지금은 10시 40분이야. 정황상 같은 것 같아.”
“그래?”
“조언이 나왔던 상황을 돌이켜봐. 올빼미는 꽤 다급한 느낌이었어. 2층 수리가 끝나기 전에 우리가 뭔가 해야 한다는 의미겠지? 오늘 내로 해야 해. 즉 남은 시간이 고작해야 1시간 20분이라는 이야기지.”
호텔에선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도 시간이 많지 않다. 내일이면 이 장소엔 더 이상 오지 못할 테니 오늘 무언가 찾아내야 한다.
내일 모래는 티켓을 써야 할지, 쓴다면 어떤 용도로 쓸지, 예컨대 부활 용도로 쓰겠다면 누굴 부활시킬지 까지도 정해야 한다. 사흘 후면 벌써 저주의 방에 다시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뭔가 해야 한다는 말에 근처에 있던 형이 불안한 듯 답했다.
“저 위험천만한 장소에서?”
“네. 계속 생각해봤는데, 후원자가 우릴 이 장소로 유도한 이유가 뭘까요? 호텔이 이렇게 신비한 장소라고 자랑하려는 의도는 아닐 겁니다.”
할아버지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그놈이 새삼스레 잘난척하려고 우릴 내보냈을 리는 없지. 다시 나가봐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설마 했는데 그 괴물은 정말 고양이였냐? 꼬맹이 목소리 듣고 설마 하긴 했는데 바깥은 그냥 가정집이고?”
“그런 것 같습니다. 바깥은 그냥 지구 어딘가의 가정집 같아요.”
아리는 재미있다는 듯 중얼거렸다.
“예전엔 심해에 만들더니 요번엔 1층은 하늘에 만들고, 2층은 스노 글로브 내에 만든 건가? 호텔의 위치적 한계가 어디일지 궁금해지네. 1층과 2층의 위치가 다른 것 보면 3층도 다르겠지? 3층은 대체 어디일까?”
“궁금하긴 하네.”
“혹시 알겠어? 어쩌면 가인이 손톱 위에 형성되었을지도 몰라.”
“…”
“그냥 해본 소리야. 다시 바깥으로 가자. 모두 다 같이 갈까?”
“아니. 이번엔 나 혼자 나갈게. 어차피 외부 세계에 비해 우린 너무 작아. 무조건 고양이나 아이의 몸을 빌려서 뒤져봐야 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있으면 내가 신경 쓰여서 뒤지기 힘들 거야.”
덩치로 미뤄볼 때, 고양이나 아이가 동료들 앞에서 숨만 크게 쉬어도 다들 어디론가 날아갈 정도로 체급 차이가 난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스노 글로브 내부에 있는 쪽이 나로서도 더 편하다.
모두에게 상황을 전달한 후, 다시금 바깥 세계로 나갔다.
*
스노 글로브 바깥으로 나가서 고양이의 몸을 다시 빼앗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쌍한 코코는 아무 잘못도 없이 아이에게 머리를 쥐어박히더니 겁에 질려서 책장 구석에 숨어있었지만, 특유의 밝은 안광 때문에 찾기는 쉬웠으니까.
다음으론 아이의 몸을 ‘빌릴’ 차례다.
— 찌이이익! 찌이이익!
“민영아! 네 방 좀 가봐라!”
“아 짜증 나! 코코 또 뭐 찢고 있어!”
… 코코 또 혼나겠네. 미안.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벌컥 열리며 소년이 돌아왔다. 고양이에 빙의해있던 나는 재빨리 스노 글로브 뒤로 움직인 후, 소년이 고양이를 끄집어내려고 다가오는 순간 내 원래 몸으로 돌아갔다.
다가온 소년이 이제 막 정신이 돌아와서 어리둥절해하는 코코의 목덜미를 집어 드는 순간, 나는 그 아이의 몸을 빌렸다.
잠시 머리가 띵해졌다. 지능이 모자란 고양이의 몸에 들어갔을 때와 달리, ‘김민영’은 인간이다. 빙의와 동시에 김민영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가 머릿속에 쏟아졌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나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고 지금은 방학이다. 정도? 잠시 거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흠. 혼잣말하는 느낌이라 기분 이상하긴 한데, 일단 미안해. 안전하게 쓰고 돌려줄게. 물론 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코코는 잘못 없으니까 너무 혼내지 마.”
확실히 고양이보다 사람의 시각이 훨씬 뛰어나다. 어두운 방에 불부터 켜고, 이상한 짓 못 하도록 코코를 방 밖으로 내보냈다. 이제 뭘 해야 할까? 우선 스노 글로브 쪽으로 다가갔다.
“이게 눈보라의 원인이었냐?”
스노 글로브는 꽤 비싼 물건인지 크기가 사람 머리통만 한데다가 전기선도 연결된 제품이었다. 스노 글로브가 흔들리지 않게끔 최대한 조심스럽게 후면의 버튼 부분을 살피자 3가지 모드를 고를 수 있게 되어있었다.
“하나는 전원 off고, 또 하나는 램프 모드, 마지막이 크리스마스 모드인가?”
호텔 2층의 눈보라가 쉼 없이 몰아쳤던 이유는 무척 단순했다. 단순하게 스노 글로브가 ‘크리스마스 모드’로 설정되어있어서 전기의 힘으로 눈이 계속 휘날렸을 뿐이다. 전원을 아예 끌지도 고민했지만, 이러면 너무 어두워진다 싶어서 램프 모드로 바꾸자 눈보라가 멈추고 불만 켜진 환경이 완성되었다.
“이걸로 눈보라 문제는 진짜 해결! 더 할 것 없나?”
첫 번째 과제, ‘눈보라 멈추기’는 이걸로 확실히 끝낸 것 같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으론 매우 아쉽다. 눈보라는 사실 굳이 내가 안 멈췄어도 내일 호텔 천장이 막히면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는 문제였으니까.
침착하게 방을 돌아봤다. 남은 시간은 50분 정도이니, 시간을 고려할 때 방 밖으로 나가서 뭘 해야 할 것 같지는 않다. 방 여기저기엔 민영이가 좋아하는 듯한 레고 장난감이나 미니카, 게임기 등이 놓여있었다. 책장엔 꽤 여러 장의 학습지가 꽂혀 있었다.
“… 민영아, 8 x 8은 88이 아니야. 아직 곱셈을 헷갈리는구나. 그래. 건강하면 됐다.”
차근차근 레고 장난감을 살펴보던 중, 마침내 또 한 가지 특이한 요소를 발견했다.
‘A Mysterious Craftsman(신비의 장인)’
설마 우연히 이름이 똑같은 건 아니겠지?
2층의 첫 번째 숨겨진 NPC를 찾아냈다. 그 NPC가 레고였다는 사실은 예상 밖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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