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00)
199화 – 파티 타임 – 아홉 번째 동료 (1)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5일 차
현재 위치 : 2층, 스노 글로브 설원
현자의 조언 : X]
– 한가인
미로의 지옥에서의 경험을 되새기던 중, 상태창을 확인하자 위치가 ‘스노 글로브 설원’으로 표기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설원지대는 별도의 명칭이 없었는데, 이젠 명칭이 나온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상념을 떨쳐내고 다시 미로에 대한 고민으로 돌아갔다.
“누나.”
“응. 이제 고민 끝났어?”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확인한 ‘미로’라는 사람은 사실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죠. 1번 유아 퇴행 미로. 2번 중학생 미로. 3번 성인 미로.”
“표현이 좀 희한하지만 나눠보면 그게 맞네. 1번은 아리를 태어나게 한 후 정신이 이상해진 미로, 2번은 미로의 지옥에 있던 어린 시절의 미로, 3번은 관리국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후 호텔에 들어온 시점의 미로. 이런 느낌?”
“1번은 모두가 부활에 반대하니까 고민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심지어 아리도 미로의 정신을 회복할 방법을 찾기 전엔 부활시킬 생각이 없다고 하니까요. 지능이 어린아이 수준으로 낮다는 건 어떤 관점에선 악인보다도 위험합니다. 아예 예측할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라는 이야기니까요.”
“그렇지. 차라리 악인이라도 좀 계산적인 사람이면 호텔 탈출이라는 공통 목표를 위한 협력은 가능하겠지만, 어린아이는 답이 없어.”
“2번은 앞으로 또 만날 가능성이 없는 미로가 아닐까 싶고. 결국 우리는 3번에 관해 판단해야 하는데, 정작 3번을 만나본 사람이 아무도 없네요.”
“그러게.”
“제가 만나본 2번에 대해서 말하자면, 솔직히 그리 사악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설마 해서 말인데 예뻐서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사람을 평가할 때 외모의 영향을 아예 받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아마도 절대 아닙니다.”
“‘아마도’랑 ‘절대’가 같이 있을 수 있는 단어야?”
“농담이 아니고 정말 악독하다거나 극단적인 이기심 같은 건 느끼지 못했어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기묘한 초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면 그냥 평범하게 장난기 많은 그 나이대 여자아이로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성인이 된 후로도 극단적인 악인은 아니려나?”
“그건 모를 일이죠. 다만….”
“다만?”
“정황을 생각해봅시다. 미로 본인은 일시적으로 정신을 차렸을 때, 본인이 ‘정의’의 축복을 얻었던 이유가 뭐겠냐고 되묻기도 했거든요.”
“축복은 우리 자신의 성향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
“사이코패스가 ‘정의’를 얻을 수는 없을 겁니다. 또, 관리국에 있던 미로는 꽤 고위층이었던 것 같더군요.”
“미치거나 선 넘을 정도로 악독한 사람이 세상을 지킨다는 거대 조직 고위층이 되긴 어렵겠지. 좋아. 네 의견은 대충 이해했어. 하지만, 이 정도라면 우리가 원래 정한 순서를 바꿀 필요는 없어 보이네.”
“첫 번째 부활은 의사다?”
“응. 물론 의사, 김상현에 대해서도 의문은 많지. 이 사람이 선한 사람인지, 협력적인 사람인지 모르니까. 어찌 보면 미로보다도 더 모르잖아?”
“하지만 미로와 달리 큰 장점이 있긴 하네요.”
“통제하기 어려운 사람은 아닐 거야. ‘관리국’ 사람이 아니니까 우리 파티를 분열시킬 위험도 없고. 아리나 묵성 할아버님이 미로에겐 관대해질지 모르겠지만 의사에겐 그럴 리 없지. 최악의 경우엔 그냥 티켓 버렸다고 생각하고 죽이면 그만이야. 다만, 의외로 숨겨둔 강함이 있으면 어쩌지?”
여차하면 죽이자는 이야기가 대화 중에 자연스럽게 나오다니…. 새삼스럽지만, 우리도 정말 보통 사람은 아니게 되었다.
“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그 이야기?”
“의외로 의사의 능력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 아닌가요? 치유 능력이 있으리라 짐작은 하는데 어떤 식인지도 모르고, 유산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렇지.”
“그냥 안내자에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
“아까부터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은 사실인데, 우리가 성인 미로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 예컨대 유산은 3개고 전대 정의 소유자다. 이런 정보는 전부 안내자가 알려줬잖아요?”
“내가 물어봤었지. 그래 놓고 깜빡했네. 이놈의 호텔이 자꾸 뭘 숨기다 보니까 그냥 물어보면 될 문제까지 우리끼리 고민하는 안 좋은 습관이 생겼어. 너랑 진철이 둘이 가서 물어보고 와.”
*
다행히 아직 파티타임이 끝나지 않아서 한빙지옥으로 향하는 문도 여전히 진입할 수 있었다. 나와 형, 그리고 자연스럽게 끼어든 아리는 크리스마스 홀 한편에 어설프게 가려진 문을 열고 한빙지옥으로 다시 들어갔다.
“너랑 누님이 아까 설원에서 대화하는 것 같던데, 누굴 부활시킬지 정했냐?”
“최종적으로는 회의로 정하겠죠.”
“너랑 누님이 정하면 다른 사람이 반대할 일은 없지 싶은데. 애초에 후보가 의사 아니면 미로인데 나는 둘 다 만나보지도 못했다. 둘 다 만나본 사람은 너뿐이야.”
“저도 의사는 딱히 만났다고 볼 수 없어요. 그냥 목소리만 머릿속에서 울리는 느낌이었는데.”
말하다 보니 떠오른 사실이 있다.
“그러고 보니까 아리 너도 의사 치료받은 적 있지 않아?”
“예전에 팔다리를 대가로 상인에게 총을 받았을 때였지.”
“넌 의사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받은 건 없어?”
“없어.”
“으음…. 난 네가 의사와 아는 사이가 아닐까 의심했었는데.”
“굳이 ‘의심’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뭐야? 그리고 나야 모르지. 애초에 얼굴도 본 적 없는데.”
“의사 쪽에서 널 알아봤다면 뭔가 말 몇 마디라도 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보다 네 첫 번째 파티원 중 의사는 없었어?”
잠시 고민하던 아리가 대답했다.
“특이한 사람이 ‘있었다’라는 말은 어렴풋이 들었어. 지나가듯이 나온 말이고 더 물어보진 않았어.”
“특이한 사람?”
“특수 부대 출신이면서 의대도 나왔대.”
“대단하네.”
“거기에 우주 비행사 후보에 들어갔지.”
“사람이야? 만화 캐릭터 아니고?”
“놀랍게도 사람.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인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만나본 적도 없다. 그 말을 들으니 예전에 아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리의 첫 번째 파티는 2층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분으로 두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아리는 2층에서 태어났으니 2층에 도착하기도 전에 죽은 사람들은 만나본 적도 없겠지.
“네 첫 번째 파티 사람들이 스펙 좋은 사람들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 엄청난데?”
“이번에 살리러 가는 의사와 다른 사람일 거야. 내가 기억하는 사람은 이름이 조니라던가? 동양인은 아닌 것 같았거든. 최소한 김상현은 아니었어.”
“다른 사람이긴 하겠지. 애초에 특수 부대 경력에 우주 비행사 후보이기까지 했으면 나에게 부활을 부탁할 때 그 경력도 말하지 않았을까?”
그 말에 아리는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철 형이 잠시 헛기침하면서 분위기를 바로잡았다.
“예전에 회의할 때 내가 했던 말은 기억하냐?”
“형은 티켓을 그냥 아끼자고 했었죠.”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냐? 난 지금도 그냥 우리 자신을 위해 아끼는 게 어떨까 생각하는데.”
“그 가능성도 생각은 했는데, 호텔 특성상 저주의 방은 전멸 아니면 전원 생존 아닙니까. 애초에 우리 중 1명만 죽어서 부활시킨다는 상황이 생기기 어렵죠.”
“위험이 저주의 방에만 있는 건 아니지.”
“하지만, 저주의 방이 위험의 9할 이상입니다.”
“…”
“게다가 기회비용도 생각해야죠. 티켓을 아끼는 건 리스크가 없는 게 아니잖아요? 새로운 동료로 인한 전력 상승을 포기한 셈이니까, 그 기회비용이 일종의 리스크죠. 더 약한 전력으로 인해 저주의 방에서 전멸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이 더 큰 위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철 형은 고개를 끄덕인 후, 더 이상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한빙지옥, 어렴풋이 들려오는 비명을 환영 인사처럼 들으며 기다리다 보니 하늘에서 드론이 내려왔다.
“참가자 여러분! 티켓을 어디에 쓰실지 정하셨습니까?”
“그 전에 질문 좀 하려고.”
“질문하십시오.”
“김상현에 관해 물어볼 수 있을까? 호텔에서 다쳤을 때 나타나는 ‘의사’를 말하는 거야.”
“전 참가자 김상현에 관해 어떤 점이 궁금하십니까?”
“일단 첫 번째 질문. 김상현은 전 참가자면서 동시에 호텔의 숨겨진 NPC잖아? 혹시 부활시키고 나면 숨겨진 NPC는 어떻게 되는 거야? 치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합류한다 해도 호텔의 의료지원을 받을 일은 계속 있을 것 같아서. 김상현 씨 본인이 다칠 수도 있고.”
“그 부분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김상현의 부활 후에는 호텔 직속 의사 역할에 다른 사람이 배정됩니다.”
“김상현의 어, 치유 능력이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있을까?”
“그의 축복에 관해 궁금하십니까?”
“치유 능력이 축복 쪽이야? 그러면 유산은?”
“그는 유산을 얻지 못한 참가자입니다.”
진철 형이 어딘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유산이 없는 사람이라니. 좀 아쉽지 않냐?”
“조금 더 들어봅시다. 애초부터 전투력이 강한 사람이 아니리라는 건 예상했잖아요.”
아리는 피식 웃었다.
“미로는 강해서 문제라며? 너무 강해도 문제니까 유산이 없는 건 어떤 면에선 장점이지.”
“축복에 관해 설명해줘.”
“전 참가자 김상현. 생존 당시 축복은 ‘성실’. 현재 ‘성실’의 소유자가 없으므로 부활 후 성실을 다시 회복합니다.”
“성실? 어떤 축복이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매일 매일 자신을 갈고닦아 더 가치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 곧 사람의 소명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높은 성취는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 또한 현실.”
???
나와 형이 모두 당황했다. 갑자기 이 말투는 뭐지? 안내자의 말투가 아닌데?
“아무리 성실한 존재라 해도 자질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훌륭한 성취를 얻기란 쉽지 않다. 축복, ‘성실’은 바로 그 한계를 넘을 수 있게 해주는 힘! 자신을 갈고닦기 위해 꾸준히 연마한 자는 그에 상응하는 자질 또한 얻게 된다.”
멍하니 듣다가 재빨리 답했다.
“그러니까 사람을 천재로 만들어주는 그런 축복입니까?”
“아이야. 내 축복의 의미를 절반만 이해했구나. 소유자를 무작정 천재로 만들어주는 힘이 아니다. 매일매일 분골쇄신(粉骨碎身)의 자세로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질 기세로 성실한 수련을 거듭한다면, 반드시 드높은 성취를 얻게 함이 내 축복의 본질이다. 노력하는 이에게 보상을. 이해했느냐?”
어처구니없게도 안내자의 스피커를 빌려서 말하고 있는 존재는 ‘성실’의 후원자였다!
“후원자님이셨군요. 이해했습니다. 한 가지 더 여쭈어도 될까요?”
“묻거라.”
“김상현은 어떤 사람입니까?”
갑자기 안내자가 잠시 조용해진 후, 말이 흘러나왔다.
“… 축복에 관해 물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참가자에 관해 묻다니. 네 요령이냐? 올빼미 놈을 기묘하게 닮았구나.”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는 내가 아는 필멸자 중 손꼽힐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또, 최소한 악인은 아니었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후원자가 안내자의 스피커를 빌리는 일은 없었다.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