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01)
200화 – 파티 타임 – 아홉 번째 동료 (2)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5일 차
현재 위치 : 2층, 스노 글로브 설원
현자의 조언 : X]
– 한가인
의사, 김상현에 관한 후원자의 ‘변호’는 그는 성실한 사람이며 최소한 악인이 아니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에 대한 진철 형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저 말을 믿을 수 있겠냐? 모르긴 몰라도 후원자들은 언제나 자신의 참가자가 호텔을 오르길 바라잖아? 객관적인 의견이라 들리지 않는데.”
“그건 맞아요. 문제는 우리가 부활시켜야 할 대상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는 점이네요.”
“그렇지.”
“김상현에 대한 안식의 기도도 올릴까요?”
그놈의 ‘기도’ 이후로 며칠째 여러 사람이 드러누운 상태다. 기도 한 번에 체중만 10kg는 줄어든 진철 형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아리가 가볍게 한숨 쉬었다.
“이제야 ‘안식의 기도’라는 절차를 호텔에서 만든 또 다른 이유를 알겠네. 전 참가자를 부활시키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기 위한 절차 같은데.”
“무지막지하게 힘든 방식으로 말이지. 하더라도 지금은 못 한다.”
기도 한 번에 체중이 10kg은 빠진 듯 수척해진 진철 형을 돌아보았다. 기도를 설령 하더라도 오늘 하는 건 무리다.
사실, 이 가혹한 호텔에서 앞으로 우리가 기도를 또 할 만큼의 여유가 생길지 모르겠다. 처음에야 안식의 기도의 리스크가 이렇게 큰 줄 모르기도 했고, 어차피 호텔을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했기에 무작정 했을 뿐.
“힘든 것도 힘든 건데 막상 기도 한다고 전 참가자에 관해 그리 잘 알게 되는 것도 아니야.”
아리의 지적도 맞는 말이다. 전 참가자가 호텔에 들어온 시점이 40대라 해도 트라우마가 생긴 시점이 10대면 기도 속의 전 참가자는 10대다. 10대 시절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안다 해서 40대 시점에서 어떤 사람일지 확언할 수 있을까. 답이 없는 문제다.
마지막으로 아리가 후원자가 빠져나가며 원래대로 돌아온 안내자에게 질문했다.
“김상현의 치유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물어도 될까? 예컨대, 지금 105호에서 구현하는 수준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
“김상현 개인의 능력은 같습니다.”
“개인의 능력?”
“의사 역할의 NPC에게 호텔이 지급하는 도구는 사라집니다.”
안내자는 더는 알려줄 정보가 없다는 듯,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5일 차
현재 위치 : 1층,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X]
“이상이 우리가 알아낸 정보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점심시간, 나는 한빙지옥에서 들은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했다. 듣자마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축복, ‘성실’의 메커니즘을 미뤄볼 때 의사의 치유 능력은 의사로서 오래 활동하면서 쌓인 기술과 지식이 축복의 힘으로 적절히 강화된 정도로 봐야겠지?”
“그렇죠.”
“애매한 면이 없진 않구나. ‘호텔에서 지급한 도구’가 사라진다면, 지금의 반신적인 치유 능력도 상당 부분 감퇴할 테니…. 하지만, 우리가 발견한 후보 중에선 가장 나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축복의 특성을 고려할 때 어쩌면 다른 능력도 뛰어날지도 모릅니다. 축복이 딱히 의술에 특화한 힘은 아니니까요.”
“그럴듯하다. 신체 능력이나 사격술이 생각보다 뛰어날 수도 있겠지.”
은솔 누나가 동의하며 정리했다.
“어차피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거야. 완벽한 후보는 없고 다들 어딘가 불안한 면이 있으니까. 하염없이 따지기보단 이쯤 해서 고르자. 적어도 오늘 점심쯤엔 데려와야 오늘내일 사이에 서로 통성명도 하고 자기소개도 하고 할 것 아니겠어?”
모래면 저주의 방에 들어가야 한다. 새로운 동료를 깨우자마자 서로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저주의 방에 진입하는 건 불안한 점이 적지 않다. 적어도 하루 정도는 서로에 대해 알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최종적인 선택은 무기명 투표로 정하기로 했다. 부활 후보 넷과 티켓을 아껴두는 선택까지 합쳐서 총 5개의 선택지가 적혀있는 투표용지 8장이 빠르게 완성되었다. 투표 결과는 즉시 나왔다.
김상현 : 5표
미로 : 1표
에스타비오 : 0표
차승진 : 0표
아끼기 : 2표
…
의외로 진철 형 말고도 아끼자는 쪽에 투표한 사람이 있었다. 미로 1표는 아리가 적은 걸까? 아리는 도리어 당황한 듯 말했다.
“난 의사에 투표했어!”
누나가 바로 끊었다.
“누구에게 투표했든 상관없어. 그걸 따질 거면 기명 투표로 정했겠지. 중요한 건 다 모으니까 김상현이 5표라는 사실이야.”
부활을 위한 마지막 회의가 끝났다.
*
한빙지옥을 향해 움직이는 모두의 발걸음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호텔에 들어온 지 몇 달 만에 영입하게 될 9번째 동료, 의사 김상현.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지옥에 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만 두 번째 보는 드론이 다시 내려왔다.
“결정하셨습니까?”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지고, 우리는 ‘김상현’을 부활시키겠다는 뜻을 전했다. 잠시 후, 땅에서 솟아나듯이 얼음 동상이 나타났다. 동시에 누나의 품에 있던 티켓이 허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선택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전 참가자, ‘김상현’의 부활을 선택하시겠습니까?”
“… 그래.”
티켓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티켓에서 발생한 불꽃이 처음엔 도깨비불처럼 허공에 떠 있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쪽의 얼음 동상에 내려앉았다. 서서히 동상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제야 내부의 남자에 시선을 집중했다.
나이는 대략 40대 초반 정도일까? 그렇게까지 많은 나이는 아닌 듯하다. 체격은 제법 건장해서 몸을 움직이는 일이 서툴러 보이진 않았다. 체격과는 별개로 길 가다가 누가 봐도 학자다 싶은 인상이다. 관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짓은 극히 미신적이긴 하나, 학자 같은 인상을 보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좀 놓였다.
옆에서 은솔 누나가 아리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얼굴 보이네. 혹시 아는 사람은 아니지?”
“모른다니까. 이름부터가 처음 듣는 이름이야.”
“표정이 일그러져있네.”
“지금은 악몽을 꾸고 있겠지. 곧 끝나겠지만.”
마침내 얼음이 전부 녹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던 남자의 몸이 처음으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상현이 눈을 떴다.
*
오랜 시간 본인만의 지옥 속에서 인생의 가장 끔찍한 순간에 갇혀있다가 지금 막 풀려난 남자의 첫 반응은 울음이었다.
그는 울었다. 울고, 울고 또 울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눈물이 끝없이 흘러나와서 보는 우리가 말문을 잃게 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의사의 부활을 가장 반대했던 진철 형은 눈앞의 광경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라도 했는지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거의 10분 동안 말 한마디 없이 울던 남자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감사,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지금 제가 느끼는 이 감사함은 세상의 그 누구도 표현할 수 없을 겁니다. 정말로 제가….”
그는 그쯤에서 말을 중단하더니 갑자기 바로 앞에 있던 내 손을 강하게 붙들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내 착각일까? 이 남자의 발음이나 어휘선정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치 재외 교포라도 되는 듯한 발음. 너무 울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 아닙니다. 저 혼자 정한 것도 아니고 -”
“오랜 시간. 저는 정말이지 오랜 시간 지옥에 갇혀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이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제게는 그 어떤 구원도 없었지요.”
“우리가 도착한 시점에서 ‘의사 NPC’가 되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다만…. 105호의 의사이던 시기의 기억은 머리에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 부분은 짐작했다. NPC는 필연적으로 호텔의 비밀을 알게 되는 존재들. 부활하는 순간 그 비밀과 관련된 기억들이 소거되는 것은 호텔의 특성을 고려하면 도리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몇 가지는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예컨대, 당신에게 구원을 구걸하던 기억만큼은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당신이 제 소원을 기억해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도 없었겠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중년 아저씨가 내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면서 감사하다, 감사하다 하는데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은솔 누나가 끼어들었다.
“자~! 김상현 씨? 일단 우리 1층에 가서 뭘 먹으면서 이야기해요. 분위기 너무 어색하다. 그죠?”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김상현은 서서히 감정을 추스르는 듯했다. 어린아이처럼 울던 표정이 천천히 풀리고, 특유의 당당한 태도가 자리 잡자 아까보단 확실히 나아졌다. 이윽고 그는 우리를 한명 한명 살피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이상으로 그 역시 우리에게 궁금한 점이 많겠지.
그리고, 남자의 시선이 아리를 향했다.
그 순간 김상현의 표정에 담긴 감정은 도저히 한두 마디의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기쁨과 절망, 신앙에 가까운 믿음, 마음이 무너지는 듯한 공포, 회한과 애착. 사람이 품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혼란스럽게 뒤섞인 감정의 소용돌이.
마치 벼락에 맞은 것처럼 파들거리던 남자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당신이…. 대체 어떻게 이곳에 ‘또’ 있는 거지?”
그는 아리를, 아니 ‘미로’를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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