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02)
201화 – 파티 타임 – 아홉 번째 동료 (3)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5일 차
현재 위치 : 2층, 한빙지옥 – 부활의 방
현자의 조언 : X]
– 한가인
김상현이 ‘미로’를 알아본 순간, 모두가 당황했다. 그가 ‘미로’를 알아보리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아리 쪽을 바라보자 아리 본인도 무척 당황한 기색이었다. 순간적으로 모두가 멈칫하는 분위기에서 아리가 대답했다.
“김상현 씨,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난 ‘미로’가 아니에요.”
그 말에 김상현은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짓더니 다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 그렇습니까? 제가 무언가 오해했다면 알려주실 수 있는지요?”
아리는 자신이 미로의 딸이고 아마도 출생의 비밀이 있는 듯하다는 사실을 간략히 알렸다.
“상황을 이해했습니다. 앞으로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하겠습니다.”
“조심스럽게?”
“자연스럽게 행동하겠습니다.”
대답이 좀 이상한데?
다들 뭔가 이 대화의 핀트가 어긋났다고 생각하며 3분 정도 걸어가던 차, 아리가 갑자기 모두를 멈췄다.
“아 진짜! 스톱 다들 스톱!”
아리는 곧바로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김상현을 향해 돌아섰다.
“김상현! 이리 와봐!”
대놓고 반말이네. 물론 김상현이 불만을 표하는 일은 없었다.
“예?”
“너 지금 내가 정체를 숨긴 미로라고 생각 중이지?”
“… 지금 그 말투조차도 제가 기억하는 그대로군요.”
“에? 그래?”
… 아까 전 대화가 이상하다 싶더니 이거였구나. 이 남자는 아리와 미로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해한 것이 아니다. 그냥 미로가 모종의 이유로 정체를 숨기고 있다고 상황을 이해한 듯하다.
다만, 나도 김상현을 이해했다. 두 사람을 모두 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장담컨대 아리와 미로는 머리 색을 제외하면 거의 일란성 쌍둥이 수준의 외모 싱크로를 자랑한다. ‘미로의 지옥’에서 미로가 깨어나자마자 ‘내가 널 알아보지 못한 건 호텔의 장난질’이라고 말한 이유가 있다. 정상적인 지능이 있다면 보자마자 동일 인물이라고 착각할 만하다.
아리도 그 사실을 이해했는지 다시 친절한 분위기로 말했다.
“김상현 씨, 말로는 설득이 어려울 테니 잠깐만 날 따라오세요. 여긴 더럽게 춥지만, 꼭 보고 와야 할 게 있으니까.”
그게 뭔지는 짐작이 갔다. 모두가 잠시 멈춰서 아리가 김상현을 데리고 ‘미로의 얼음 동상’을 보여주고 돌아오기까지 기다렸다. 잠시 후, 돌아온 김상현은 여전히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말했다.
“아까는 실례했습니다. 이제부터 아가씨라고 부르겠습니다.”
“에? 아가씨? 그건 좀 – ”
“어머님께서 자녀를 둘 만한 분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세상일은 참 알 수가 없군요.”
무슨 의미일까. 다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조용히 있었지만, 머리가 고속으로 돌아가느라 바빴다. 아무래도 우리가 나눠야 할 이야기가 대단히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일단 따뜻한 장소에 도착할 필요가 있겠지.
105호에 도착하자마자 김상현에 대한 추궁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그를 불안하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김상현은 거의 공손하게 느껴질 정도의 태도로 추궁에 응했다. 대화에 앞장선 건 이런 종류의 일에 익숙해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내 질문을 너무 부담스럽게 여기진 않았으면 좋겠네. 우린 자네에 대한 궁금증이 아주 많거든.”
그 사이 엘레나가 자연스럽게 김상현의 근처로 움직였다.
“물론입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 분은 혹시 진실을 가려내는 힘이 있으신지요?”
순간적으로 다들 침묵했다. 엘레나의 능력에 대해 아무도 이렇다 저렇다 말한 적이 없는데! 질문이 시작되자마자 엘레나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배후를 점하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나? 아니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엘레나에게 손짓이라도 했나?
할아버지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도 과연 보통 사람은 아니군. 호텔 경험이 이미 있기 때문인가? 맞네. 지금의 대화에 거짓이 없기를 바라네.”
“네.”
“첫 번째 질문일세. 대체 미로를 어떻게 알지? 바깥에서 관리국 일이라도 했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예전에 그분과 함께 호텔에 참여했습니다. 지금과 달리 심해의 호텔이었지요.”
심해의 호텔. 익숙한 단어다. 아리가 한숨이 나오는지 머리를 가볍게 부여잡다가 심문에 끼었다.
“미안한데, 나도 그때 파티 사람이거든? 당신 같은 사람을 본 기억이 없어. 아니, 뭐 짐작은 가. 난 2층에서 태어났으니까. 당신은 1층에서 죽은 거야? 1층에서 두 명 죽었다고 듣긴 했는데.”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해가 안 가. 내가 1층에서 죽은 사람들도 이름은 알거든. 조니와 무함마드 말이지. 하지만 ‘김상현’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
“그건 간단히 대답드릴 수 있습니다. 제 본래 이름은 조니이기 때문이죠.”
잠깐의 대화로 드러난 사실관계는 단순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이고, 이름은 조니 킴. 딱히 이름에 대해 거짓말을 한 건 아니며 한국 이름은 김상현이 맞았다. 나에게 부활을 부탁할 당시엔 내가 한국인이니만큼 한국 이름을 말하는 게 더 잘 통할 것 같았다는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조니 킴’이라는 이름에 아리가 다시 반응했다.
“이름은 좋아. 딱히 거짓을 말한 게 아니라는 말은 알겠어. 하지만, 내가 알기로 당신은 꽤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고 들었는데?”
“그리 대단하진 않습니다.”
“아니, 지나친 겸손함은 그만두자. 당신 전직 의사면서 전직 특수부대고 현직 우주비행사 아니야?”
… 이미 한번 들은 이야기지만 새삼 놀랐다. 이게 진짜 사람의 경력 맞아? 전직 의사면서 전직 특수부대에 현직 우주비행사? 무슨 회귀자야?
무시무시한 경력을 듣고 동료들이 다들 질린 표정을 지었다. 진철 형은 아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던 김상현이 입을 열었다.
“한가인 님께 부활을 부탁드릴 때 제 경력을 왜 말하지 않았는가 의문 가지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 부분은 우선 사과드리겠습니다. 과거 호텔을 오르며 지나치게 자신감 있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도리어 타인의 경계심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 그 교훈 때문에 가인이에게 의사 경력 말고는 숨기기로 했나?”
“아무래도 경계심을 사지 않으면서도 ‘이 사람은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느낄만한 능력은 역시 의술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은 적중했다. 우리는 그가 단순히 의사라고 생각했기에 별다른 위협은 되지 않으면서도 유용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우리가 술렁거린다고 느꼈을까? 그는 재빨리 변명하기 시작했다.
“제 경력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닙니다. 이 장소는 호텔이니까요. 의사? 특수부대? 우주비행사? 여러분은 한 명도 죽지 않은 채 2층 진행 중이라 하시던데,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선 지금쯤 맨몸으로 하늘을 날아서 우주로 나갈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 같군요. 그에 비하면 의미 없는 경력입니다.”
“어…. 의외로 아직 날아서 우주까지 갈 사람은 없어. 아, 가인이는 강림하면 가능하려나?”
“빙의해서 페로의 몸을 빌린다면 언젠가 가능할지도.”
— 삐이익!
페로가 귀신같이 내 말을 알아듣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송이는 어처구니없어했다.
“오빠가 페로 몸으로 우주요? 제 생각엔 10M도 날기 힘들 것 같은데.”
“…”
분위기가 풀렸다고 느꼈는지 김상현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지금의 여러분에 비하면 별 의미 없는 경력이지요.”
김상현이 불안해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혹여나 자신이 우리의 경계심을 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손짓 하나하나에서 느껴졌다. 그 간절한 마음 때문에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는 그의 태도는 구차하거나 비굴하다기보다 안쓰럽게 느껴졌다.
나와 같은 판단을 내린 누나가 대화에 참여했다.
“자, 김상현 씨?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요. 지금 우리는 동료를 고르는 단계가 아니라 이미 고른 상태니까. 당신을 위해 티켓을 이미 썼거든요.”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
“감사하다는 말 들으려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이미 당신에게 상당한 비용을 쓴 상태라서 당신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이야기죠. 그러니까 긴장 풉시다.”
잠시 대화도 멈춘 채 다들 차와 커피를 마시고 과자도 먹기 시작했다.
“맛있군요.”
“호텔이 음식은 맛있죠. 예전에도 그랬나요?”
“예전에도 그랬습니다. 하나같이 초일류의 솜씨가 들어가 있었죠.”
“경력이 믿음직하시니 잘하는 것도 많으시겠네. 의사 출신이시니 응급처치도 잘하실 것 같고, 총도 잘 쏘시죠? 우주비행사 경험은 호텔에서 도움이 되는 부분 있어요?”
긴장이 좀 풀렸는지 김상현이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평생 목표 중 하나가 우주비행사였는데, 막상 호텔에 오니까 가장 의미 없는 경험이 우주비행사 경험이긴 하더군요. 그래도 혹시 압니까? 2층 어딘가에선 우주공간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때가 되면 도움 많이 받을게요. 그리고….”
마치 기습하듯이, 누나가 폐부를 찌르는 질문을 했다.
“예전에 미로와 어떤 관계셨나요? 솔직히 말해주세요.”
엘레나의 눈빛에 다시금 황금빛이 깃들었다. 남자의 표정이 다시 긴장으로 가득 찼다.
“어떤…. 어떤 부분이 궁금하십니까?”
아리가 끼어들었다.
“간단히 말하면 적대관계였나? 동료였나? 같은 부분. 내 첫 번째 파티는 둘로 분열되어서 정신없이 싸웠다고 들었어. 당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어서 딱히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돌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
한참 말을 고르던 김상현이 대답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만, 아가씨께서 알고 계신 정보는 앞뒤 내용이 다 잘린 듯합니다. 제가 2층 이후에 미로 님과 아가씨가 무슨 일을 겪으셨는지 모르는 것처럼, 아가씨도 제가 1층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실 겁니다.”
“… 그렇겠지. 나에게 예전 이야기를 해준 사람들 처지에선 이미 다 끝난 일이니, 단순하게 요약해서 전해줬을 테니까. 그리고 그 ‘아가씨’라는 표현은 좀 거북하네.”
“아리님이라고 불러드릴까요?”
“그냥 아가씨로 해줘.”
“과거 파티의 갈등은 그렇게 단순히 진행되진 않았습니다. 우선, 처음부터 싸웠던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처음엔 미로 님을 중심으로 모두가 뭉쳐서 진행했죠.”
“엄마를 중심으로?”
“그분은 태생적인 카리스마가 있으시니까요. 조금 과장하면, 당시 우리는 그분을 믿고 따르는 정도를 넘어서 숭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로의 초능력. 이미 경험해봐서 알고 있다. 10대 시절에도 보통 사람은 저항하기 쉽지 않았지. 하물며 긴 세월 능력을 숙련한 후의 미로는 얼마나 강력했을까? 평범한 인간은 말 한마디로 통제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 생각하면 미로를 호텔에 집어넣은 관리국의 판단은 옳고, 애초에 왜 갈등이 생겼는지가 더 신기하다.
“대략 104호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방에서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안타깝게도 미로 님은 꽤 이른 시점에 탈락하셨습니다. 남은 사람들끼리 몇 달에 걸쳐 버티면서 탈출했죠.”
아리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미로가 죽고 몇 달이 흐르면서 남은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어?”
“맞습니다. 미로 님이 사라지고 한 달, 두 달이 흐르자 어느 순간 모두가 깨달았습니다. 그분이 알 수 없는 힘으로 우리를 휘둘렀다는 사실을 말이죠.”
차 한잔을 더 마신 후, 남자는 신중한 태도로 말을 이어갔다.
“신앙이 붕괴하고 남은 장소엔 분노와 배신감이 깃들었습니다. 모두를 탁월한 지도력으로 이끌었던 리더, 세상을 수호하는 관리국의 요원으로 여겨졌던 사람이 수상쩍은 마녀처럼 여겨지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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