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03)
202화 – 파티 타임 – 아홉 번째 동료 (4)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5일 차
현재 위치 : 1층,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X]
– 한가인
심해의 호텔에서 있었던 과거의 이야기는 생각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모두가 김상현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집중하며 과거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뇌리에 새기기 시작했다.
“…”
“미로 님을 제외한 파벌은 셋으로 나뉘었습니다. 애초에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배신감도 느끼지 않은 관리국 사람들 둘, 진실을 알고 충격에 빠져 적대하기 시작한 사람 셋, 충격에 빠진 것과 별개로 이런 위험천만한 장소에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느낀 사람 둘. 이렇게 일곱이죠.”
“당신은?”
“전 마지막 둘입니다. 혹시 전쟁에 참여해본 경험 있으신 분 계십니까? 물론 전쟁 이상의 지옥을 경험해보셨을 관리국 분들은 빼고 하는 이야깁니다.”
할아버지와 아리를 빼면 전쟁에 참여해본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당연히 모두가 조용해졌다.
“전쟁터와 같은 극단적인 환경에선 강력한 리더십이 꼭 필요합니다. 공포와 흥분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조차 냉철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머지 사람을 이끌어줘야 하죠. 군대와 같은 조직이 철저한 계급사회인 건 우연이 아닙니다.”
군대도 가본 적 없고 전쟁도 참여해본 적 없긴 하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 것 같다.
“그래서 저는 미로님이 모두를 강력하게 통제하려 했던 시도 자체는 필요악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만….”
“다만?”
그는 조심스러운 눈동자로 아리를 살피더니 중얼거렸다.
“방향성은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상한 초능력보단 적절한 토론과 관리국 요원으로서 쌓아온 전문성을 바탕으로 우리를 이끌기를 바랐습니다.”
나 역시 ‘일반인 출신’이기 때문일까? 솔직히 이 남자의 말이 이해가 갔다.
김상현이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미로님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분은 다소 ‘강압적인 방법’을 선호하셨죠.”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미로가 당시의 동료들을 억압했을까? 인원수만 생각하면 미로 본인을 포함한 관리국 사람은 3인. 합쳐서 3-5의 구도이니 셋이 다섯을 억누르기란 어려워 보이지만, 유산과 초능력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할아버지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 질문은 다소 답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대답해줬으면 하네.”
“질문하시지요.”
“자네는 어쩌다가 1층에서 죽었는가? 아리에게 듣기로 내부 분열로 인한 사망이었다고 듣긴 했네만….”
김상현의 표정에 순간적으로 복잡한 감정이 깃들었다. 이를 악무는 듯한 모습은 화가 난 것 같기도 했고, 찰나의 순간 튀어나온 한숨에는 후회가 깃든 것 같기도 했다.
“단순한 이야깁니다. 저는 갈등을 빚는 양측을 중재하는 입장이라 생각했지만, 갈등이 격해질 때 애매하게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양측 모두에게 공격받죠.”
“… 안타까운 일이군.”
“저는 아직도 절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어느 날, 아주 격한 토론 혹은 충돌이 있었고 정신 차렸을 때는 이미 지옥에 떨어져 있더군요.”
아리가 뭐라 할 말이 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유감이야.”
한참 동안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깊게 고민하는 듯하던 그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제게 발언권이 있다면 질문과 별개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하게. 아까 은솔이도 말했지만 우리는 자네를 동료로 삼기 위해 살렸으니 당연히 할 말은 해야지.”
“미로님과 있었던 일에 대해 더 물어보신다면 얼마든지 답해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예전 이야기일 뿐입니다.”
“다 지나간 일이다?”
“물론입니다. 이제 와서 첫 번째 파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지는 게 의미가 있습니까? 전 ‘지금’ 여러분의 동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제가 과거의 파티와 있었던 불화를 지금 파티에 끌고 올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그 말을 명확히 요약했다.
“미로에게 생긴 불만을 아리에게 풀 생각은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나?”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아리가 중요한 이야기를 부담스러워서 말하지 못하는 듯해서 내가 끼어들었다.
“김상현 씨, 조금 껄끄러운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말씀하시죠. 한가인 군에겐 아직도 감사의 마음이 가득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미로를 부활시킬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굉장히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미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고, 미로의 딸까지 있는 시점에서 이미 짐작했기 때문일까? 그의 표정은 그다지 흔들리지 않았다.
“만약에.”
“만약에?”
“절 죽인 사람이 미로님이라 해도 그 분노를 호텔에서 풀진 않겠습니다. 저는 이 장소에서 나가고 싶습니다. 이 마음만큼은 정말로 진심입니다. 그걸 위해서라면 모든 원한도 잊을 수 있고,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호텔에서 풀지 않겠다?”
“뒤에 아름다운 분이 지켜보고 계시는 만큼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군요. 호텔을 나간 후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갚아주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절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나간 후의 일까지는 내가 끼어들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단지 과거에 김상현을 죽인 사람이 다른 사람이길 바랄 뿐.
긴 대화로 서로 지치기도 했고, 머릿속에 많아진 정보를 각자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이미 부활한 동료다. 대화할 기회는 앞으로도 차고 넘치겠지. 이후엔 우리도 우리 자신이 어떤 유산과 축복을 얻었는지 간략하게 설명한 후, 각자 쉬기 시작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5일 차
현재 위치 : 2층, 스노 글로브 설원
현자의 조언 : X]
김상현과의 대화가 끝난 후, 나는 다시 2층 설원으로 돌아와서 아까 하려던 마도서 훈련을 재시작하려 마음먹었다.
— 퍽!
“야! 왜 이렇게 못 피하냐?”
“… 뒤에서 날아오는 눈을 어떻게 피해요.”
“아리랑 할아버님 말로는 네 청력이 토끼를 능가한다던데?”
“설령 그런 감각이 있어도 누나가 던지는 눈덩이에 작동하진 않겠죠. 뭐 할 말이라도 있으세요?”
“아, 별건 아니고 아까 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해서. 너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어봤어. 넌 2층에 있어서 찾느라 힘들었다.”
“딱히 이상한 부분이라도 있었어요? 능력적으로 보면 생각보다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축복을 고려할 때 그 다재다능함은 일반인의 영역을 넘어섰을 것 같다 정도 떠오르네요.”
“그 부분은 이미 몇 가지 확인했어. 총 되게 잘 쏘더라. 의사로서의 실력은 초자연적인 수준이던데?”
“초자연적이다?”
“마침 진단 중이니까 같이 가자. 참, 다른 부분은 어떤 생각이 들었어?”
“다른 부분이요? 인간 관계적으로 보면 예전에 미로와 사이는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일을 지금 파티로 끌고 올 생각은 전혀 없다 정도였네요.”
“요약하면 그렇지.”
“딱히 거짓말은 아닌 것 같던데요? 엘레나도 다 진실이라고 했어요.”
“나도 그의 말은 다 진실이라고 봐. 유능한 사람이고, 말하는 걸 보면 굉장히 똑똑하기도 하고, 공과 사도 구분할 사람 같아. 내가 말하려는 건 다른 부분이지.”
“다른 부분요?”
누나는 잠시 눈치라도 보듯이 주변을 살핀 후,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태도. 태도에서 뭘 느꼈지?”
아까 전, 그가 내게 했던 말을 되새겼다. 아무리 억누르려 해도 숨길 수 없던 단 하나의 감정.
‘저는 이 장소에서 나가고 싶습니다. 이 마음만큼은 정말로 진심입니다. 그걸 위해서라면 모든 원한도 잊을 수 있고,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 간절함.”
“나도 똑같이 느꼈어. 그 사람은 정말로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어. 조금이라도 우리 비위에 거슬릴만한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우리가 경계심이라도 느낄까 봐 거의 비굴하게 느껴질 정도로 철저히 숙이지. 말투도 봐. 자신을 죽였을지도 모르는 사람의 딸에게 ‘아가씨’라고 하는 게 쉬운 일일까?”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건 발음 정도에나 해당하는 이야기지. 여하튼, 난 그 사람이 한 말은 다 진실이라고 봐. 능력이나 지능이야 믿기 힘들 정도의 경력을 보면 뛰어나다고 믿을만해. 과거의 갈등을 지금 끌고 올 생각이 없다는 말도 사실이겠지.”
“그렇지만 불안한 점이 있으신가 보네요.”
“그의 간절한 마음 자체가 불안해. 그가 과거의 원한 ‘따위’에 흔들려서 사고를 칠 사람으로 보이진 않아. 지금 김상현의 머리에 ‘과거의 갈등’ 따위는 충분히 잊을 수 있는 문제일 테니까. 그의 머리에 가득 차 있는 단어는 하나뿐이야.”
“탈출.”
“그 사람은 우리와 달라. 이미 한번 실패했고, 실패의 대가로 지옥에 끌려가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린 사람이지. 호텔에서 실패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여기까지 듣다 보니 누나가 무슨 말을 하려는 중인지 이해했다.
“탈출 도구에 관한 이야기를 숨길 생각이세요?”
“숨기는 게 의미는 있어? 그 사람은 오늘 호텔에 처음 온 사람이 아니라 이미 두 번째인데. 탈출 도구의 존재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고, 방호복은 딱 봐도 범상치 않은 도구야. 게다가 우린 머지않아 신비의 장인을 통해 두 번째 도구도 얻을 가능성이 크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할아버지랑 이야기해 봤는데, 엘리베이터를 통한 탈출은 방호복과 암호가 필요하잖아? 암호 기억하지? 입 밖으로 꺼내진 마.”
87439124.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다.
“암호는 공유하지 않기로 했어. 방호복이야 이미 평소엔 아리가 관리하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 신비의 장인을 통한 ‘윙 부츠’는 나중에 얻고 나서 생각하자.”
“…”
“혹시 다른 생각 있어?”
“당장은 떠오르지 않네요. 하지만, 이런 방식은 결국 임시방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언제까지고 그 사람과 무슨 심리전을 하면서 호텔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으니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 말을 끝으로 나와 누나는 더 이상의 대화는 하지 않은 채 김상현의 ‘진단’을 구경해보기 위해 호텔로 돌아갔다.
누가 부활했어도 나름의 고충은 생겼겠지만, 어찌 됐든 김상현의 부활로 인해 파티의 결속이 다소 흐려진 느낌이 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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