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04)
203화 – 파티 타임 – 화신의 힘 (1)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5일 차
현재 위치 : 1층,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X]
– 한가인
아홉 번째 동료, 김상현의 의술이 대단함을 넘어서 초자연적인 경지라는 누나의 말을 이해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허리를 펼 때마다 옆구리가 당긴다고 하셨습니까?”
“펴자마자 옆구리가 아픈 건 아니고, 쭉 펴고 좌우로 몸을 비틀다 보면 -”
— 찌이익!
“으허억!”
“옆구리의 근육이 다소 꼬인 듯해 배열을 바로잡았습니다. 이젠 어떻습니까?”
“훨씬 낫군! 정말이지 훨씬 나아!”
환자의 불확실한 말 몇 마디와 김상현 본인이 두어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어디가 아프고 무엇이 원인인지 즉시 알아낸다. 그 정도로도 매우 대단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김상현이 무언가 ‘치료’를 할 때마다 그의 손이 환자의 몸에 스며들듯이 들어갔다 나오는 광경에선 보던 사람들이 죄다 입을 딱 벌렸다!
내가 의대는 나온 적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다. 세계 최고의 의대를 나와도 저런 의술은 가르쳐줄 수 없겠지. 오직 호텔에서만 얻을 수 있는 초능력임이 틀림없다. 의사를 넘어서 신의(神醫) 소리를 듣기에 모자람이 없는 치유의 혜택은 허리가 아프다는 할아버지, 벌써 거북목 증세가 보이는 승엽이, 언젠가부터 두통에 시달린다는 송이에게 순차적으로 돌아갔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리가 신기해하며 질문했다.
“대체 어떻게 손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거야?”
“아가씨, 저도 모릅니다. 그냥 어느 순간 할 수 있더군요.”
“공격적으로도 유용하겠는데? 손을 살짝 넣어서 심장만 뽑아낸다던가?”
“가능은 합니다.”
“오오! 가능해?”
“다만, 살상 용도로는 다가가서 손을 집어넣을 시간에 멀리서 방아쇠 한 번 더 당기는 것이 훨씬 실용적이더군요.”
“대부분은 그렇겠지만 가끔 써먹을 순간도 있겠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다음 환자는 은솔 누나였다.
“눈꺼풀을 닫는 게 조금 어렵다는 말씀이시죠?”
“맞아. 사실 이 눈을 내게 붙여준 건 상현 씨 아니야? 굳이 이렇게 험하게 붙여야 했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요전에 말씀드렸듯이 NPC이던 시절의 기억은 대부분 사라진 상태라 저도 과거의 제가 왜 눈을 이렇게 흉하게 붙여드렸는지 모르겠군요. 외견적으로 평범한 눈처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평소 신경 쓰지 않는 느낌이었고 나도 보다 보니 익숙해져서 몰랐는데, 은솔 누나는 눈의 흉함이 꽤 신경 쓰였던 것 같다. 김상현이 누나의 눈을 살펴보기 시작하자 누나는 금방 ‘상현 씨’라고 표현까지 바꿔가면서 호의를 드러냈다.
“으음…. 눈의 구조를 살펴보니 조금 더 고민해볼 문제인 듯합니다. 단안 거조의 눈이라고 했지요? 이 특이한 눈은 내부에 마치 특수 카메라처럼 세 개의 작은 눈동자 혹은 렌즈처럼 보이는 물체가 있습니다.”
“아리에게 비슷한 설명을 들었어.”
“그 렌즈가 셋 다 외부에 노출되어야만 제 성능이 나오는 듯합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보다 눈을 훨씬 더 크게 뜰 필요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과거의 제가 눈꺼풀을 이렇게 과하게 벌어지게 시술했나 봅니다.”
“고치기 힘들어?”
“고치기야 쉽지만 고친 후에 안구의 성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건 바보 같은 이야기네. 당연히 눈의 성능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해.”
“그렇다면 이 부분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봅시다. 제가 틈틈이 개선방안을 고민해보겠습니다.”
“말만으로도 고마워!”
…
멀리서 지켜보니 느껴졌다. 부활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았는데, 김상현은 벌써 우리 사이에 잘 녹아들었다. 의사, 아니 신의의 탁월한 능력은 동료들 모두를 감동하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승엽이나 송이는 벌써 선생님 선생님 하기 시작했고, 은솔 누나 입에서도 상현 씨가 절로 나오는 것을 보니 당장은 큰 문제 없을 것 같다.
이 정도면 다시 설원으로 돌아가도 괜찮겠는데?
설원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곧 수많은 고민이 내 머리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의사가 감추지 못한 탈출에 관한 간절함과 이에 대한 누나의 불안감은 어떻게 극복할까?
신비의 장인이 만들어낸다는 윙 부츠는 대체 어떤 물건이지?
104호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아직도 우리가 해석하지 못한 마지막 힌트의 의미는?
‘주’는 대체 무슨 계략을 꾸몄을까?
모두가 이득 볼 수 있는 판의 의미는?
…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이 모든 고민을 잊으려 노력했다.
털어버리자. 털어버려야 한다. 지금은 내가 동료들과 함께 고민할 시간도 아니고 다음 방에 관해 고민할 시간도 아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고민은 다른 사람들이 하겠지. 때로는 개인의 성장이 곧 최고의 팀플레이인 순간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마음속의 모든 소소한 고민을 치워버리고 단 하나의 단어만 새겼다.
‘화신’
*
거창한 각오를 품고 나온 것이 무색하게도 꽤 오랜 시간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마도서를 펼쳐서 이리저리 뒤적였지만, 여전히 내부의 문자들은 죄다 알아볼 수 없는 특수문자나 외계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분명 올빼미의 조언은 마도서를 겨냥했다고 봤는데, 여전히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어렴풋이 원인을 알 것 같다.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5일 차
현재 위치 : 2층, 스노 글로브 설원
현자의 조언 : X]
언제나 날 보호해주고 있는 불투명한 창을 바라본다. 처음에 ‘필터’의 사용법을 깨우쳤을 때만 해도 꽤 정신을 집중해야 형태를 바꿀 수 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본능의 영역에서 다루기 시작한 지 오래다. 무언가 수상쩍은 상황이다 싶으면 별달리 의식하지 않아도 필터가 자연스럽게 내 전면을 가리곤 했다.
물론, 마도서를 펼친 순간부터 필터는 내 시야를 자연스럽게 덮고 있었다.
“이게 문제려나?”
상태창 필터의 힘은 사악한 정보들이 내 정신을 침범할 때 방어해주는 힘이다. 하지만, 지금은 바로 그 사악한 정보들 속에 담긴 위대한 진리를 이해해야 하는 순간이지.
상태창을 시야의 한편으로 치워버린 후 다시금 시선을 마도서를 향해 옮겼다. 필터의 보호를 거두자 급격히 머리가 무거워지는 감각과 함께 뻐근한 두통이 찾아왔다. 억지로 문자 하나하나를 마치 해독하듯이 살피며 온 정신을 집중했다.
…
순간적으로정신이소용돌이속에침잠함을느낀다바삭거리는문자열이눈알을뚫고두뇌를찢어발기는기괴한감각속에서나는그만나자신을내려놓고 –
“으악!”
눈가에서 피가 흘렀다. 안구가 상했을까? 시력이 아예 사라지진 않았다. 우습지만 이 호텔에서 이 정도면 큰일은 아니다. 그보다도 – 방금, 무언가를 보았다.
떨어트린 마도서를 다시 집어 들자 한 구절의 문구가 선명히 드러났다.
변하지 않는 자아가 실존하지 않음을 받아들여라.
오래전, 관문의 방에서 아리마와 했던 대화를 되새긴다.
‘사람의 정신이란 마치 흐르는 강과 같은 것. 강물이 흐르듯이 정신은 끝없이 흐르고, 변합니다.’
‘평범한 이들이 생각하는 불변하는 자아라는 것은 흐르는 강물을 특정 시점, 특정 장소에서 손으로 퍼 올린 것에 불과합니다. 하루 지난 후에 같은 위치, 같은 시간에서 물을 퍼도 강은 완전히 달라져 있겠죠.’
…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때의 그녀는 정말로 마도서에 담긴 위대한 진리의 일부를 이해했다. 하지만 나는? 나는 불가해한 진리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을까?
뇌리에 새겨진 마도서의 문구가 마치 망치처럼 내 머리를 후려치고, 오랜 시간 금고에 갇혀있던 다양한 지식의 총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我)는 곧 흐르는 물과도 같으니 단 한 순간도 멈춤이 없도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빙의가 정신의 이동이라면, 화신은 정신의 확장이오, 분열이라.
제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해라!
마치 나 자신이 둘로 쪼개진 듯한 기묘한 감각. 한쪽에는 지혜를 받아들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내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하염없이 비상하며 사람의 꺼풀을 벗어던지기 시작한 내가 있다.
나는 무엇이 진실한 나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러한 구분 자체가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혼란 속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눈밭에 뒹굴던 그 순간, 한 마리의 새가 다가왔다.
페로! 아아 페로! 황금알에서 태어난 호텔의 아이. 네게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많은 비밀이 남아있겠지. 내게 해줄 말이라도 있어?
“내게 들어와.”
페로의 입에서 사람의 말을 들었다. 황금알에서 태어난 신비한 새가 마침내 인간의 말을 깨우쳤는가? 아니면 마도서의 지혜를 어렴풋이 이해하며 돌아버리기 시작한 내 정신이 만들어낸 미욱한 환청인가?
“요리사가 스테이크를 잘 구우려면 소가 되어봐야 해. 그러니까 너도 앵무새가 되면 좀 더 똑똑해질 거야.”
“앵무새가 미친 소리를 하는 것 보니 역시 내가 미친 게 맞네.”
시야가 흐릿해진다. 필터의 보호 없이 반복적으로 마도서를 본 대가가 이제 실명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이야 105호에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회복될 테니 별일은 아니다. 마도서의 지혜를 받아들이는 일을 여기서 멈출 수는 없겠지.
“좋아. 네 몸을 빌릴게.”
— 삐이익!
조금 전, 자신에게 들어오라고 했던 페로는 내 말을 듣자마자 뒤돌아서 도망가려 했다. 역시 페로가 사람의 말을 한 건 내 환청일까? 환청이라면 애초에 왜 내게 왔을까? 모르겠다. 그리고 아무래도 좋다.
— 풀썩!
페로의 몸을 빌림과 동시에 비행이 끝나고 눈밭을 뒹굴었다. 이미 수십 번은 빌려봤지만, 여전히 새가 대체 어떻게 하늘을 나는지는 모르겠다. 날개를 휘저으면 몸이 위로 떠야 하는 것 아니야? 왜 몸이 뒤로 넘어갈까?
생각의 흐름대로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상념을 되새기며 바닥에 널브러진 내 진짜 몸과 마도서를 향해 다가갔다.
— 꿈틀!
…
내 몸이 꿈틀거린다. 겨울에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노숙자처럼 무너져있던 내 몸이 꿈틀거리며 요동친다. 숨이 멎었다. 살면서 경험한 모든 공포를 능가하는 압도적인 공포를 느꼈다.
‘나’는 분명 페로의 몸에 들어왔는데! 그렇다면 ‘저것’에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어. 나는 분명히 하나다! 인간은 분명 하나일 수밖에 없다!
천천히 일어선 ‘사람인 나’와 ‘앵무새인 나’가 멍하니 시선을 마주쳤다. 동시에, ‘우리’ 혹은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둘이며, 또한 하나이리라. 그제야 나는 내 정신이 더 이상 사람의 몸과 앵무새의 몸, 그 어디에도 속박된 상태가 아님을 깨달았다.
내 정신이 ‘위’에 있음을 느낀다. 마치 인형사가 양손으로 두 개의 인형을 조종하듯이, 내 마음이 두 몸을 동시에 통제함을 느꼈다.
사람이 앵무새를 보았다. 앵무새가 사람을 보았다. 사람이 호텔 쪽을 보았다. 앵무새는 하늘을 보았다. 호텔 쪽에서 동료들이 내 쪽으로 달려옴을 보았다.
중첩된 시야, 뒤섞인 감각, 그 모든 정보의 폭풍 속에서 – 의식이 흐려짐을 느꼈다.
나는 내가 더 이상 ‘한 명’이 아닐 수 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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