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05)
204화 – 파티 타임 – 화신의 힘 (2)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96일 차
현재 위치 : 1층,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X]
– 한가인
침대 위에서 깨어났다. 화신의 힘을 어렴풋이 깨달은 후 의식을 잃기 직전에 동료들이 다가왔었지?
아마도 내가 기절하자 105호로 옮긴 것 같다. 이미 날짜도 넘어갔고, 시간은 저녁. 하루를 꼬박 날렸구나. 시력은 멀쩡히 회복되었다. 동료들을 만나봐야겠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엘레나를 발견했다.
“앗! 가인 씨? 괜찮으세요? 눈에서 피가 흐른다고 다들 걱정했어요.”
“괜찮습니다. 호텔의 의사가 잘 치료해준 것 같네요. 이제는 김상현 씨가 아니라 다른 분이겠지만요.”
“여기 있지 말고 다과 테이블 쪽으로 가요.”
엘레나를 따라서 다과 테이블 쪽으로 이동하자 동료들이 커피를 마시며 잡담 중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날 발견하자마자 진철 형이 반응했다.
“어 가인아~! 괜찮냐?”
“괜찮습니다.”
“어제저녁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 나오지 않길래 걱정했네. 그래, 뭐 대단한 깨달음이라도 얻었어?”
깨달음이라. 그 말을 듣자 다시금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는 대체 무슨 깨달음을 얻었지? 시험 삼아 마도서를 소환하자 다들 움찔하면서 물러섰다.
몸 안에 갇혀있던 의식이 어딘가로 붕 떠오른다. 동시에, 붕 떠오른 의식이 마치 여러 조각으로 쪼개지는 기묘한 감각이 느껴진다. 쪼개진 의식을 다른 몸에 넣으면 되는 걸까?
…
잠깐의 운용만으로 상당한 두통이 느껴져서 급히 원래 몸으로 돌아왔다.
“어렴풋이 무언가 할 수 있게 된 것 같긴 합니다.”
나는 내가 얻은 새로운 힘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이 힘을 뭐라고 표현해야 적절할까?
집중해서 듣던 엘레나가 말했다.
“마치 인형술 같은 능력이네요.”
“적절한 표현이네요. 능력을 쓰면 마치 인형술사로 변한 것처럼 두 개 이상의 몸을 인형 조종하듯이 통제할 수 있게 되니까요.”
아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청 강력한 느낌이다 싶으면서도 어딘가 이상한데?”
“어떤 점이?”
“첫째, 사람의 머리로 쓸 수 있는 능력 맞아? 사람은 본래 오른팔로 네모를 그리면서 왼팔로 세모를 그리는 것도 어려워해. 멀티태스킹 능력이 상당히 떨어진다고나 할까? 그런데 몸 두 개를 통제하는 게 가능한 거야? 지능이 3배는 높아져야 가능할 텐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의식이 쪼개지는 느낌이라 가능하긴 해. 네가 쓴 비유에 빗대면 오른팔과 왼팔에 각각 의식이 쪼개지듯이 생긴다고 해야 하나? 다만.”
“다만?”
“오래 쓸 수 없는 능력 같아. 일단 지금은 10분도 쓰기 힘들다고 느꼈어.”
“10분? 짧아도 너무 짧은데?”
“쓰다 보면 늘어나지 않을까?”
송이가 동의했다.
“틀림없이 그럴 거예요. 제 팔찌 관련 능력도 처음 얻었을 당시보다 힘을 쓸 수 있는 지속시간이 꽤 늘어서. 처음엔 단순히 숙련도가 늘어서인 줄 알았지만, 얼마 전에 들은 말을 떠올려보면 아마 저도 영혼의 힘이 강해진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이상한 점 또 있어?”
“아, 두 번째는 별거 아니야. 그냥 이름에서 예측한 형태와 좀 다른 능력이다 싶어서.”
그 말에 할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화신의 힘’ 아니었나? 난 뭐 분신술처럼 분신을 찍어내는 능력 같은 게 아닐까 했는데?”
“어쩌면 그런 능력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말이야?”
잠시 대답을 멈춘 채 마도서를 읽었던 기억을 되새겼다. 머리와 눈이 녹아내리던 고통의 순간, 그 고통 속에서 한없이 스며들었던 기이한 문자들. 외계의 신의 아들이 만들어낸 사악한 지식의 총화.
“세 문장.”
“응?”
“세 문장이 있었어. 첫 번째 문장은 ‘변하지 않는 자아가 실존하지 않음을 받아들여라’. 물론 한글로 저렇게 적혀있던 건 아니고, 내가 저 의미로 해석했어.”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모르겠어. 어렴풋하게라도 이해한 문장은 첫 번째뿐이야. 두 번째는….”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기묘한 지식 사이에서 알 수 없는 힘을 끌어냈다.
— 파지직!
손끝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나타났다. 동료들이 다들 흥미롭게 바라보았지만, 불빛은 마치 성냥불이 사그라들듯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엘레나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건 뭐예요?”
“모릅니다. 이건 진짜 모르겠네요. 여하튼, 세 문장이 있었는데 그중 제가 이해한 게 첫 번째 문장뿐이라 아직 애매하게 발현된 것 같네요. 화신의 힘이라기보다는 엘레나 말대로 인형술 같은 상태고, 그나마도 지속시간이 상당히 짧고.”
그동안 조용히 있던 누나가 중얼거렸다.
“불변하는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네?”
“제법무아(諸法無我)일까? 그렇다면 두 번째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세 번째는 뭐지?”
“무슨 말인가요?”
이해하지 못한 나와 달리 아리는 무언가 알겠다는 듯 대답했다.
“세 번째는 일체개고(一切皆苦)나 열반적정(涅槃寂靜)이야?”
“제가 불교를 몰라서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다음 문장이 뭔지 짐작이 가세요?”
누나가 날 바라보며 간단히 대답했다.
“그냥 의미 없는 생각의 나열일 뿐이야. 애초에 불교의 지식과 미묘하게 닮았을 뿐이지, 같은 개념이 아니니까. 마도서의 창시자는 부처님이 아니라 ‘태어나지 못한 자’잖아. 굳이 불교의 깨달음을 이해하려 할 필요 없어.”
“어설프게 닮은 다른 사상을 이해하려 들면 마도서의 이해에는 오히려 방해될 수 있다?”
“딱 그거야. 그냥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아. 때가 되면 올빼미가 또 마도서를 읽어보라고 알려주든지 하겠지.”
새롭게 얻은 힘에 관한 이야기가 끝날 무렵, 슬슬 눈가가 피로해지고 머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동료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기 전에 먼저 눈치챈 사람이 있었다.
“한가인 군.”
“아, 선생님. 편하게 말씀하시죠.”
“저는 지금이 편합니다. 가인 군은 지금 쉬는 게 좋을 듯합니다. 눈가가 무겁지 않습니까?”
“그게 느껴지세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 진단할 수 있다니…. 이 세상 모든 의사가 선생님을 부러워하겠네요.”
“저도 때로는 제가 신기합니다.”
은솔 누나가 다소 놀란 투로 말했다.
“아직 후유증이 남았어? 넌 오늘은 그냥 쉬는 게 좋겠다.”
“저녁에 104호와 관련한 회의 하지 않아요? 그것까진 참여할게요.”
“그런 머리 아픈 일에는 더더욱 빠져야지. 내일 저주의 방에 가야 하니까 최대한 몸 상태를 정상으로 만들어야 해. 회의는 우리끼리하고 결론만 내일 아침에 들어.”
엘레나도 같은 의견을 냈다.
“어차피 오늘 회의는 별로 할 말 없어요. 어느 방에 가야 할지도 정했고, 힌트의 의미 정도만 고민할 것 같으니까요.”
거기까지 들었을 때, 머리를 끈으로 조이는 듯한 뻐근한 두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국 105호로 돌아가서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
– 이은솔
가인이가 다시 쉬겠다며 105호로 돌아갔다. 한 사람이 떠나자 남은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 앞에서는 꺼내기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좀 무서운 능력이야. 어떻게 생각해?”
송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섬뜩했어요. 원래도 가인 오빠는 여차하면 우리의 몸에도 들어올 수 있었지만, 이젠 우리 다수를 동시에 움직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진철이가 모두를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다.
“가인이가 그 힘을 악용하진 않을 겁니다. 게다가, 그 ‘인형술’은 10분도 쓰지 못하겠다던데요?”
“‘아직은’ 그렇지. 시간은 점점 늘어날 것 같네. 게다가 저게 끝이 아니라잖아? 본인 말에 따르면 세 가지 문장 중 첫 번째 문장만 이해했다고 했어. 뒤의 두 문장까지 이해하면 그땐 대체 어떤 존재가 될까?”
막연한 이야기지만, 그때의 가인이는 사람보다는 천사나 악마에 더 가까운 무언가가 될 것 같다. 어쩌면 지금도.
다소 불편한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일까? 모두가 잠시 조용해졌다.
“이 주제가 나와서 말인데, 유산의 잠재력 차이가 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아리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잠재력? 네 말은 유산의 성장 한계가 다른 것 같다는 말이지?”
“응. 뭔가 가인이의 마도서만 빙의로 끝이 아니라 그 후로도 화신의 힘, 그 힘 내부에서도 세 가지 문장. 이런 식으로 꾸준히 더 강해질 무언가가 남아있는 느낌이라.”
“그건 마도서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걸?”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아리에게 쏠렸다.
“이 반응 뭐야? 유산에 잠재력이 상당하다는 건 이미 다들 알고 있지 않았어? 나만 해도 ‘오래된 피’를 처음 다루기 시작했을 때 쓸 수 있던 능력은 기껏해야 최면술 정도였는데 지금은 온갖 재주를 부리게 됐잖아.”
아리가 빙글빙글 웃으면서 손끝으로 ‘차가운 바람’을 불러내었다.
신기해하며 지켜보던 송이도 무언가 알듯 말듯 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처음 얻었을 때 비하면 여러 가지가 달라지긴 했죠. 이젠 뛰어다니면서 능력을 쓸 수도 있고, 시간제한도 예전보다 흐릿해진 느낌이고.”
엘레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생각해보면 ‘불길한 상상’도 비슷하네요. 베아트릭스는 자기 자신을 초자연적인 존재로 변모하는 엄청난 활용을 보였잖아요? 저도 언젠가 가능할지도 몰라요.”
진철이는 아직은 모르겠다는 투로 말했다.
“나는 별 차이를 못 느끼겠는데.”
아리가 다른 의견을 냈다.
“진철이 넌 유산 쪽은 모르겠지만, 축복 쪽은 확연히 강해졌어.”
듣다 보니 대충 상황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나름대로 발전 중이구나. 아무래도 ‘평소에 자주 쓴 힘’이 강해진 느낌이네. 송이는 거의 유산에 의존하는 편이니 유산을 다루는 힘이 발전 중이고, 진철이는 별은 필살기처럼 쓰고 평소엔 힘에 의존하는 편이니 축복이 발전 중이고.”
“그런 느낌이지. 다만….”
아리의 어딘가 모호한 표현에 모두의 시선이 아리에게 몰렸다.
“이 모든 걸 고려해도 가인이의 ‘마도서’를 다루는 힘이 성장하는 속도가 기묘할 정도로 빠른 것 같긴 해. 어쩌면 본인도 몰랐던 천재 마법사의 소질이 있었을지도?”
천재 마법사라. 21세기에 이런 단어가 튀어나오니까 정말 이상하게 들린다. 정말 그런 이유일까?
이 정도를 끝으로 이 주제에 관한 이야기는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자, 이 주제는 이쯤 하자. 우리는 내일 104호에 들어가야 하니까.”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