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06)
205화 – 파티 타임 – 마지막 회의 (1)
– 이은솔
그 말과 함께 모두에게서 오랜만에 긴장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주의 방은 꽤 오랜만에 들어간다. 보통은 저주의 방 해결 후 2, 3일 내로 다음 저주의 방에 들어가야 했는데, 이번엔 미로의 지옥에 3일 휴식권 사용까지 겹치면서 중간 텀이 제법 길었다.
“104호, 호텔고. 다들 기억해? 나, 할아버지 그리고 진철이는 ‘선생님’ 역할이고, 나머지는 학생이었어.”
“죄송합니다만 저는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릅니다.”
김상현은 104호를 경험한 적이 없다. 모두가 기억나는 대로 104호에서 있었던 일을 요약해서 김상현에게 알려줬다.
학교의 교사와 학생 역할로 시작했던 우리. 매일 매일 쪽지 시험, 체력 테스트로 학생을 한계까지 몰아넣고, 탈락하는 사람은 구교사로 보내는 기묘한 시스템. 한 사람씩 구교사로 다녀올 때마다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 당했던 두려움까지.
까먹기라도 했는지 집중해서 한참 듣고 있던 승엽이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공포의 저택 때처럼 시나리오가 바뀌는 것 아닐까요? 등장인물이 추가되었으니까요.”
아리는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지 않아? 그때는 저주의 방 내부의 NPC였던 나와 할아버지가 동료로 합류한 상황이니까 시나리오의 대폭 수정이 필연적이었다고 봐. 요번엔 호텔의 의사와 호텔고는 시나리오적인 연관성이 전혀 없어.”
“그런가요?”
“단순하게 호텔고 내에 김상현의 역할만 생길 것 같은데. 예컨대 수학 선생님?”
김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습니다. 저도 선생님 역할로 참여할 것 같군요.”
할아버지가 까먹지 말자는 듯 화이트보드에 크게 적었다.
“이거 다들 잊지 마라.”
‘ㅁ은 아버지를 ㅁㅁ하는 법’
106호에서 얻었던 힌트. 아직도 그 의미는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지.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하자 엘레나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가인 씨 없이 회의해도 괜찮을까요? 결론을 내일 전해주는 것과 별개로 그간 역할이 적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엘레나는 내가 왜 가인이를 쉬라고 보냈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혹시나 하고 고개를 돌려보자 역시 어색하게 웃고 있는 아리와 할아버지가 보였다. 역시 이런 부분의 눈치는 두 사람이 빠른 편이다.
“크흠. 큼.”
“할아버님이 말씀해주셔요.”
“엘레나, 이번 회의에서 가인이 녀석은 오히려 꼭 빠져야지. 마침 몸도 아프다니 쉬어야 할 타이밍이기도 했지만 설사 몸이 멀쩡하더라도 쉬어야 할 타이밍이다.”
거기까지 듣자 엘레나도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아! 잊었네요. 104호의 가장 큰 위협이 무엇인지!”
“예? 예?”
여전히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승엽이를 위해 아리가 설명해줬다.
“우리가 그간 104호를 꺼림칙하다고 느낀 건 주가 내린 강림의 기묘한 특성들 때문이잖아? 유산과도 너무 달라. 강림을 썼을 때의 가인이의 특성을 되새겨보면, 마치 오만한 천사가 사람의 몸을 빌려 현신한 듯했어. 말하자면.”
“주가 가인이 그 녀석을 조종하는 듯했다는 말이지. 그리고 우리는 그 현상이 104호에서도 또 일어날 것을 염려하고 있다. 다시 말해 104호의 가장 큰 위험 중 하나가 한가인이고, 당연히 그 녀석이 우리 계획을 알고 가선 안 된다.”
“아! 그랬네요…. 그런 방을 꼭 가야 할까요?”
상황을 이해하자마자 승엽이의 표정이 불안해지고 104호에 가기 싫어하는 티를 냈다. 우리 사이의 분쟁을 유도하려 불철주야 노력하는 호텔, 104호는 그 끝판왕일지도 모른다.
아리는 간단히 정리해줬다.
“그래서 우리가 그동안 104호를 피한거야. 하지만, 요번엔 지혜 후원자의 조언 남용으로 페널티가 생긴 상황이니까. 그 페널티를 104호에 몰아넣기 위해서라도 한번은 갈 필요가 있어.”
아리의 입장은 초지일관 명확하다. 104호를 해결하기 위해 들어가려는 게 아니고 페널티를 104호에 몰아넣어서 104호를 버리는 패로 쓰려는 의도다.
이쯤에서 나도 다시 의견을 냈다.
“자! 104호를 해결하든 버리는 패로 쓰든 어쨌든 104호를 가서 뭔가 해야 해. 우리는 세 가지를 고민해봐야 하지. 첫째, 힌트의 의미는 뭘까? 둘째, 어떻게 해야 탈출할 수 있을까? 셋째, 한가인에 대한 대책은?”
송이가 바로 대답했다.
“아까부터 생각 중이었는데요, 첫 번째 글자는 무조건 ‘딸’ 아닐까요?”
“나도 다른 단어가 떠오르지 않네. 여기서 ‘아버지’는 정황상 ‘주’야. 주를 아버지라고 부를만한 존재가 104호에 마침 하나 있지.”
“아우렐리아, 인도자죠. 아버지를 주로 해석하면 첫 글자는 무조건 딸, 아우렐리아를 지칭해요.”
아리가 반박하듯 말했다.
“104호에 관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정보만으로 섣불리 결론 내리지 마. 들어가서 더 진행해보면 정체 모를 존재들이 더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그것도 일리 있네. 첫 ㅁ는 딸, 대상은 아우렐리아일 가능성이 유력해 보인다는 정도로만 정리하고 다음 글자를 살펴보자. ㅁㅁ하는 법. 이 두 글자는 뭘까?”
여기서는 모두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후보가 많다. 너무나 많다. 딸과 아버지의 관계에서 나올만한 두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가 어디 한두 개겠는가?
“솔직히 후보가 좀 많지?”
조용히 있던 김상현의 입이 열렸다.
“지금 상태로는 그냥 아무 단어나 넣어도 다 말이 되는군요. ‘신뢰’를 넣어서 그 신뢰를 깨트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고, ‘사랑’을 넣어서 그 사랑을 이용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고. 제 의견을 내도 되겠습니까?”
“이제부턴 그런 말 쓰지 말고 그냥 말해. 당신은 동료잖아.”
“감사합니다. 두 번째 단어는 지금 단정 짓지 말고 그냥 넘어갑시다. 두 번째 단어를 확정하기엔 모은 정보가 너무 부족합니다.”
차진철이 동의했다.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불확실한 상태에서 애매하게 이 단어다! 하고 우리끼리 정했다가 틀렸을 경우, 그 후로 계속 잘못된 단어를 떠올리면서 판단을 곡해할 수 있습니다.”
“좋아. 두 번째 단어에 대한 논의는 그만두자.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 탈출 시나리오. 우선 첫 시도에서 탈출했던 아리가 당시 경험을 한번 정리해줘.”
아리가 잠시 기억을 떠올리더니 예전의 일을 설명해줬다. 다시 들어도 꽤 재밌는 이야기다.
가인이는 구교사로 잠입해서 아우렐리아와 대면한 후, 칼로 찔러서 아우렐리아가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그사이 아리는 최면술을 써서 학교 내에서 날뛰면서 대형 화재를 일으킨 후 본인이 직접 신고까지 했다. 결국 외부에서 소방차와 경찰이 몰려오며 사태가 커지자 호텔고에서 아리를 포기했고, 아리가 수감되며 학교로 돌아갈 가능성이 사라지는 순간 탈출 판정이 떴다.
대략적인 요약을 전한 후, 아리가 다시금 의견을 냈다.
“탈출은 이번에도 비슷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구교사의 사교도들은 철저한 비밀주의 조직이니까, 온 세상이 놀랄 정도로 큰 사건을 일으키면 쉽게 대응하지 못하는 면이 있지.”
집중해서 듣고 있던 김상현이 예리한 지적을 했다.
“탁월하고 창의적인 계책입니다! 다만, 더 빨리 1인의 탈출을 확보할 방법은 없을까요? 아시겠지만 시작하자마자 1인을 탈출시킨다면 남은 사람들은 생존이 확보된 채 안전하게 저주의 방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김상현의 의견은 타당하다. 실제로 우리가 ‘상식개변 미디어’에서 썼던 전술이니까. 시작하자마자 승엽이가 탈출한 후, 나머지가 방송국, 병원을 탐색하는 식으로 진행했었다.
같은 방식을 104호에서도 써먹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시작하자마자 쓸 수 있는 탈출 방법은 뭐가 있을까?
승엽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조금 막 나가는 이야기인데요.”
“그거 좋네. 원래 미친 장소에선 미친 이야기일수록 잘 통해.”
“제가 시작하자마자 주변 아이들을 마구 때릴까요?”
김상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구교사로 잡혀갈 뿐 아닙니까?”
“학교 내 징계로 처리할 수준을 넘는 거죠. 아예 의자로 두들겨 패서 반 죽을 정도로.”
“아하! 첫날부터 학교에 경찰이 올 정도의 사고를 치겠다?”
“네.”
“여기가 지구였다면 지금 이 대화만으로 승엽 군에게 진솔한 상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장소가 호텔이라 승엽 군이 무척 똑똑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감사합니다….”
듣던 차진철도 의견을 냈다.
“아하, ‘그런 쪽’의 이야깁니까? 마음먹으면 저도 자신 있긴 한데, 제가 하면 곤란하겠군요.”
“너 말고도 유산 소유자들은 탈출 담당하면 곤란해. 남아서 구교사의 비밀을 파헤쳐야지.”
“탈출 방법은 여러 가지 준비해둡시다. 승엽이는 시작하자마자 옆에 놈 골통을 터트려보기로 하고, 할아범?”
“나도 교사 한 놈 두들겨 팰까?”
“할아버지는 그 팔로 교사 한 명 들어다가 창밖으로 던지면 바로 경찰특공대에 잡혀갈 겁니다.”
“딱 좋네.”
송이가 조금 다른 의견을 냈다.
“듣다가 느꼈는데요, 외부 세력을 끌어오는 것 자체가 탈출과 별개로 괜찮아 보이지 않아요? 호텔고의 사교 집단은 그 세계의 공권력을 신경 쓰니까요.”
“어떻게 하려고?”
“예컨대 제가 창밖으로 나가는 길이 있는 것 같은 환상을 보여줘서 아이들을 단체로 창문에서 뛰어내리게 한다던가.”
슬슬 김상현도 자연스럽게 우리 사이에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제가 나름대로 수를 써볼까요? 예컨대 지나갈 때마다 몰래 근육을 건드려서 5~6명 정도의 사람들에게 영구적인 신체장애를 입혀서 119 구조대가 오게 만드는 것 어떻습니까?”
…
잘 모르는 사람이 우리 회의를 엿듣기라도 하면 대체 무슨 생각이 들까? 아무래도 좋지. 호텔이 원래 이런 장소야.
“나 방금 좋은 아이디어 떠올랐어!”
“누님? 뭡니까?”
“교감이 커피를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그걸 자꾸 나한테 시켰거든. 그 커피에 아리의 피를 살짝 타자.”
아리가 감탄했다.
“그러면 내가 교감을 조종해서 미친 짓을 하게 만들고?”
“그거지.”
이런 느낌의 회의가 늦은 시간까지 진행되었다. 탈출을 위한 전술과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서 호텔고의 사교 집단을 위축시키는 방법을 다수 정리한 후,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마지막! 이제 가장 중요한 파트. ‘하늘의 아들’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이제는 완전히 우리 사이에 녹아든 김상현이 바로 질문했다.
“질문부터 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으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하늘의 아들’이라는 존재의 강함이 대충 어느 정도입니까? 그 존재를 제압할 수 있냐 없냐에 따라 대응 방식을 다르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늘의 아들의 강함이라…. 모두의 기억이 과거를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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