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11)
210화 – 104호, 저주의 방 – ‘입시 명문 호텔고’ Re (4)
– 차진철
— 쿵! 쿵! 쿵!
가인이에게 ‘강림을 쓴 나를 죽여라.’라는 지시를 듣고 뒤로 돌아서서 발을 떼는 순간, 심장이 거세게 울리기 시작했다. 한 걸음 나아가자 머리가 아파져 왔고, 두 걸음을 나아가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리고 세 번째 걸음은 차마 뗄 수 없었다.
‘물 러 서 라!’
단순한 심리적 두려움의 문제가 아니다. 머릿속에서 기이한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고,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사죄하길 강요하는 알 수 없는 힘이 내 머리를 쉴새 없이 짓눌렀다. 다행히 고통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마치 청량한 물이 찐득한 식도를 단박에 씻어내리는 기묘한 감각과 함께 날 괴롭히던 불가해한 압박감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송이가 내게 팔찌를 썼구나!
망부석처럼 굳어 있는 가인이 녀석을 향해 달려들며 한 손에 다시금 별 조각을 쥐었다.
“으윽!”
손바닥이 터지는 감각과 함께 손가락 세 개가 후드득 떨어졌다. 이미 아우렐리아와 싸우며 별을 반복적으로 쓴 반동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물러설 수야 없다. 다른 손으로 고쳐잡고 아우렐리아를 상대했을 때처럼 별 조각을 가인이에게 내려쳤다.
— 퉁! 퉁!
흡사 콘크리트를 내리치는 듯한 묵직한 느낌! 강림의 힘으로 가인이 몸의 내구성이 비상식적으로 높아진 상태다. 그러나 별의 힘에 완전한 면역이 생겼을 정도는 아니다! 내리칠 때마다 가인이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황금빛이 조금씩 흐릿해졌다.
— 파지직!
마치 전기가 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상반신의 빛이 사그라들었다. 동시에, 내가 휘두른 별 조각이 그대로 가인이 녀석의 몸에 틀어박혔다!
“됐다! 이거라면 아무리 괴물이라 해도 -”
빛의 파도가 내리쳤다.
도무지 눈을 뜰 수 없는 황금의 파도가 시야를 가득 메우고 알 수 없는 힘이 날 틀어쥐고 어디론가 내던졌다. 바닥에 거칠게 부딪히며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내 앞에 선 ‘살아있는 태양’을 보았다!
‘어리석은 자, 차진철아. 내 일찍이 네게 물러서라 경고하지 않았느냐?’
“이건 대체 무슨 개짓거리를 -”
‘내 너에게 자비를 발휘하여 스스로 물러설 기회를 주었노라. 그런데도 너는 오만함을 숨기지 못하고 감히 위대한 이의 몸을 해치려 하였으니, 그 죄가 크고도 깊다.’
“말은 바로 하자. 저 몸이 왜 네놈의 몸이냐? 가인이 몸이잖아!”
‘심판의 빛이 내리리라….’
하늘에서 빛이 내려온다. 뭘 저항하고 말고 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길가에 멍하니 서 있는데 하늘에서 핵미사일이 떨어지는 광경을 보면 이런 기분일까?
의식을 잃기 직전, 단 한 가지의 걱정이 머리에 남았다. 이 괴물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생각만으로도 불가사의한 권능을 사용해 나를 죽였다. 이런 존재를 대체 무슨 수로 쓰러트릴 수 있을까?
*
– 김아리
“30초 만에 두 명이 죽다니…. 가인이 너 진짜 너무하네.”
전투의 흐름은 쾌속했다. 차진철이 먼저 달려가서 별을 소환해서 가만히 있는 강림 가인을 파괴하려 시도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별 근처에선 싸울 수 없었기에 대기했다. 송이는 중간에 한번 팔찌의 힘으로 차진철을 도왔다.
다행히 강림 가인은 그 어떤 대응도 하지 않고 흡사 샌드백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 사이, 태어나지 못한 자의 고치조차 왜곡했던 별의 강력한 파괴력은 강림 가인에게도 결국 통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가인이의 상반신에 사람 머리통이 들어갈 만한 엄청난 바람구멍이 생긴 데다가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온갖 기기묘묘한 신체의 비틀림이 나타났다.
뭔가 통했나?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이해할 수 없는 힘이 차진철을 일격에 핏물로 만들더니 다음에는 송이까지 쓰러트렸다.
대체 무슨 힘일까? 강림 가인은 지금도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무슨 힘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내가 움직일 차례임은 확실하다.
…
경악스럽게도 강림 가인은 저 상태로도 죽지 않았다. 상반신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으로도 모자라서 몸 여기저기 기묘한 살이 마구잡이로 돋아날 만큼 비틀린 상태인데도 죽지 않았다. 서서히 비틀린 살덩이들이 떨어져 나가고 거대한 구멍이 메워진다. 저 수복이 끝나는 순간 돌이킬 수 없겠지.
으아아~! 진짜 저걸 어떻게 죽여야 해?
정신 보호 없이는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힘들고, 신의 고치조차 파괴할 수 있는 유산으로도 한참을 공격해야 간신히 유효타를 먹일 수 있다. 심지어 유효타를 먹이는 데 성공하면 알 수 없는 힘으로 반격해서 죽이는 데다가, 타격은 도마뱀조차 울고 갈 재생력으로 전부 회복하기 시작한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강림 가인은 아까부터 코털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실상 가만히 서 있는 샌드백을 치다가 몰살 위기에 처했다.
모르겠다. 정말 답 없어. 그나마 만약을 대비해 묵성이를 대피시켜둔 것은 다행이다.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자. 적어도 회복을 늦추는 정도는 가능하겠지. 아무래도 오늘은 험한 꼴을 보겠구나.
— 털컥!
방호복을 벗었다.
“은솔아!”
“어?”
“이건 이제 네가 입어.”
손끝에서 얼어붙은 바람이 나타났다.
— 서걱!
*
– 이은솔
“으아아악! 아리야 대체 무슨 짓이야!”
충격 그 자체! 나도 모르게 미친 듯이 비명 질렀다. 물론 내 질문에 대답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조금 전에 날 불러서 방호복을 입게 한 아리는 본인의 목을 스스로 잘랐다!
뜬금없이 자살? 혹시 잠깐 사이에 강림한 가인이가 알 수 없는 힘으로 아리를 세뇌한 걸까?
아니었다.
목이 바닥을 구르는가 싶더니, 아리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허공으로 뿜어지며 가인이를 덮쳤다! 흡사 피 자체에 의지라도 실려있는 듯한 기괴한 광경. 붉은 피로 만들어진 안개가 가인이 몸 주변으로 이동하더니 거품 끓는 소리와 함께 그 몸으로 스며들었다.
다음 순간, 가인이의 몸에서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며 몸 전체에서 피가 튀기 시작했다.
저게 아리의 필살기인 건가? 예전, 201호에서 한번 저 비슷한 기술을 썼다는 말을 승엽이에게 듣긴 했었는데….
고개를 저으며 혼란한 상념을 치워버렸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물론 나는 저 괴물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것조차 무리다. 하지만, 나비라면 다르지 않을까?
— 탈칵!
언제 봐도 아름다운 악몽 나비가 나풀거리며 나아가서 가인이의 몸에 스며들었다. 이제 된 걸까?
제발 좀 죽어라! 가인아, 누나 소원이니까 이제 제발 좀 죽어어어어!
대체 몇 명이 희생했지? 가인이의 몸에 구멍 하나 뚫자고 진철이와 송이가 죽었다. 그 구멍이 막히는 걸 막아보려고 아리가 죽었다. 그런데도 저 괴물은 아직도 죽지 않았다!
— 꿈틀!
여태껏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던 괴물의 몸이 처음으로 꿈틀거렸다. 심장이 멎을 듯한 공포를 느끼며 정신없이 뒷걸음질 치다가 엘레나를 발견했다.
“엘레나!”
“… 언니.”
“괜찮아? 뭔가 힘쓸 수 있겠어?”
말하면서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차라리 몰랐다면 모르되, 지금은 가인이의 몸에 깃든 존재가 ‘주’임을 모두가 알고 있는 상태다. 주를 어떤 존재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인간은 아니지.
“…”
“정의는 못 쓰지? 불길한 상상은? 여력이 남았어?”
“…”
이상하게도 엘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지친 건가? 아니면 근거리에서 강림의 영향을 받아 정신이 이상해졌나? 사실 미쳤어도 이상할 건 없지. 나부터가 돌아버리기 직전이니까!
일단은 이 장소를 피해야 한다. 진철이와 송이는 이미 죽었고, 아리는 어떤 상태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더 이상 우리와 함께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더 이상 우리가 쓸만한 수가 남지 않았다.
“엘레나, 일단 도망가자. 할아버지와 합류해야 해!”
“… 가인 씨는 어디 있나요?”
“페로 몸에 들어간 가인이라면 뒤쪽에 상현 씨랑 있어.”
“그렇군요.”
“빨리 움직여야 해! 지금은 -”
“좀 닥쳐봐 이년아! 내가 정신 집중 중인 것 안보이니?”
“어, 어, 어, 어….”
순간적으로 너무나 놀라서 입만 딱 벌렸다! 엘레나가 갑자기 왜 –
“귀머거리같이 굴지 말고 들어봐. 들리지 않아?”
“무, 무슨….”
“땅이 이렇게 울리는데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네 쓸모없는 귀는 그냥 가위로 자르든지 해! 아하하하! 들린다 들려!”
땅이 울리는 소리? 대체 무슨 말이지? 애초에 땅이 울린다면 소리 이전에 진동이 느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더러운 지하에 들어왔을 때부터 생각했지. 이런 어두침침한 장소에 이렇게 요란한 시설을 세웠는데 지반이 멀쩡할까? 역시나 내 생각대로야! 이 빌어먹을 지하 도시는 곧 무너진다! 땅이 울린다. 땅이 울린다!”
… 구교사 지하, 사교도들이 세운 도시는 지하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밝다. 심지어 지금은 가인이가 온몸으로 내뿜는 빛으로 인해 눈을 뜨기 힘들 정도다. 지금 엘레나는 미쳤다.
그러므로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이게 엘레나의 능력이니까.
— 우르릉!
들린다. 이제는 나에게도 들린다! 땅이 울리고 지면이 흔들리는 소리가! 동시에 엘레나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방호복이 주는 괴력 덕분에 엘레나를 한 손으로 들고 뛸 수 있었다.
뛰고, 뛰고 또 뛰었다. 뒤에서 그야말로 세상 전체가 무너지는듯한 어마어마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정신없이 지하 도시로 들어왔던 문을 통해 달려가던 중, 바닥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앵무새까진 집어들 수 있었다.
페로, 아니 가인이는 여기 있는데 상현 씨는 어디 있지?
모르겠다. 지금은 고민할 틈조차 없다! 계단을 오르고 문을 향해 달려서 다시 구교사로 돌아온 후에도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 쿠구궁!
무너진다. 구교사가 자리하던 지반 전체가 땅속으로 가라앉는다! 구교사 주변을 지나다니던 호텔고 학생들이나 직원들이 죄다 비명 지르며 사방으로 달리는 장면이 보였다.
한없이 달리고 또 달려서 마침내 안전한 장소까지 도착했을 때 –
내 눈앞에 하나의 간판이 나타났다.
[입시 명문 호텔고]…
“미안하지만 이 학교 이제 간판 뗄게요.”
다행히 현판을 뗀다고 항의할 교직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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