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12)
211화 – 104호, 저주의 방 – ‘입시 명문 호텔고’ Re (5)
두렵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나 두렵다.
천지가 무너질 듯한 어마어마한 전투의 굉음을 들으며 호텔에서 ‘두 번째’로 정신을 차렸던 순간의 기억을 되새긴다. 부활의 순간, 내 앞의 새로운 동료들을 처음 보고 한 생각은 간단했다.
대체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2층까지 진행했을까?
차마 새로운 동료들 앞에선 말하지 않은 내용이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부활했다 해도 비슷하게 느꼈으리라고 생각한다.
호텔과 같은 위험천만한 장소에서, 기껏해야 10대 언저리로밖에 보이지 않는 여학생, 그보다도 어려 보이는 소년, 귀한 환경에서 살아온 듯한 30대 아가씨를 보면 누구나 ‘대체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나머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했다는 남학생이나 배우 지망생이라는 아가씨라 해서 딱히 나을 것 있겠는가?
그나마 관리국 출신이라는 노인과 떡 벌어진 체격의 거한, 미로의 딸이라는 불가사의한 아가씨. 이렇게 3명이 파티를 이끌어서 어찌어찌 온 게 아닐까 짐작했다.
작금에 이르러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았다.
아아! 초자연의 세계에서 내가 40년 넘게 쌓아왔던 상식이란 얼마나 무가치한가? 애초에 심해의 호텔에서 모두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녀’ 또한 외견은 고작해야 10대 중반의 소녀 아니었던가?
지하 도시의 중앙에서 펼쳐지는 반신들의 혈투를 겪은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이 장소에 인간은 없다. 나약한 이들은 이미 벌레처럼 으스러졌으며, 서 있는 자들은 사악한 신과 자신이 아직도 사람이라 착각하는 반신들 뿐이다.
…
신성한 목소리를 들었다.
‘너 김상현아, 무엇이 너를 그토록 두렵게 만들었느냐?’
“… 신이시여.”
‘두려워 말라. 내 너를 위한 자리를 준비하였거늘, 어찌하여 그릇된 자리에 앉아있느냐? 내 곁으로 오라. 내가 바깥으로 나가는 그 날, 너는 가장 위대한 자리의 바로 아래 자리에 앉게 되리라.’
*
– 이은솔
호텔고가 초토화된 후, 페로와 엘레나를 업고서 할아버지가 있는 장소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상황이 대단한 위기는 아니다. 이 방의 난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탈출 수단은 두 개나 준비했다는 말씀!
애초에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가인이, 그것도 강림한 가인이와 싸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우리 파티가 진작부터 생각했던 위험 요소다. 그렇다면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104호에 들어오기 전날 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회의에서 내려진 결론은 간단했다.
못 이겨. 강림 가인이는 절대 이길 수 없어.
그렇다고 아무 대책이 없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대책이 없다면 애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대책은 간단하다.
첫째, 승엽이를 미리 탈출시킨다.
둘째, 묵성 할아버님께 탈출 버튼을 맡기고 따로 멀리 보낸다.
첫 번째 대책은 진행 중이다. 첫 번째 시도 당시, 탈출에 성공한 아리의 경험에 따르면 104호의 경우 경찰에 잡혀간다고 해서 즉시 탈출이 뜨진 않았다. 재판을 거쳐서 최종 선고까지 나와서 호텔고에 돌아갈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져야 탈출이다.
당연히 1심 재판 선고가 나올 때까지 최소 한 달은 걸리는 만큼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탈출법이고, 중간에 변수도 많다. 그러니까 지금은 두 번째 대책을 시행해야 할 듯하다. 할아버님이 탈출 버튼을 눌러야 하지 않을까? 회의 정도는 해보자.
“누나.”
… 페로에게 빙의한 가인이, 이제부터 편의상 ‘페로 가인’이라고 하자.
“응?”
“오면서 곰곰이 생각했는데, 할아버지가 탈출 버튼을 가지고 있나요?”
“맞아.”
“혹시 대화창으로 버튼 누르라고 하셨어요?”
“무슨 말이야? 대화창을 썼으면 너도 알잖아.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만나서 말해보려고.”
“… 누나, 저 이제 대화창 쓸 수 없어요.”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 막혔다. 가인이가 페로에 빙의한 지 벌써 몇 시간이 흐른 상태. 페로 가인은 호텔 기준으로 더 이상 참가자가 아니다.
“누나. 지금 탈출하면 절대 안 돼요. 할아버지에게도 절대 탈출 버튼 누르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듯하다. 할아버님께 가인이 말대로 탈출하지 말라고 전달했다.
“전달했어. 15분쯤 후에 할아버님이 있는 곳에 도착할 거야. 도착하면, 네가 우리에게 설명해줘야 할 내용이 매우 많은 것 같아.”
“네.”
할아버님이 숨어있던 은신처에 도착하자마자 회의가 시작되었다.
*
“지금 탈출하면 큰일 난다고? 무슨 소리냐? 우린 탈출 하나 믿고 여기 들어온 건데?”
예상대로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가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페로 가인이가 긴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현재 상황이 어떤지부터 말해드릴게요. 부정적인 요소부터 말하자면, 한참 전에 제 화신의 힘이 풀렸습니다. 애초에 화신의 힘은 10분 정도밖에 쓸 수 없었거든요. 따라서 주는 이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신체를 회복하느라 바쁘겠지만요.”
주는 이미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그 사실만으로 나와 할아버지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할아버지가 바로 되물었다.
“그런데 대체 왜 우리가 여태 살아있는 거냐? 그놈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면 우릴 진즉 쳐 죽이고도 남았을 텐데? 아직도 그 부상 때문이냐?”
“부상 문제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강림이 끝났기 때문이에요. 강림의 힘과 지속시간은 절대 무한하지 않거든요. 우린 가진 전력을 깡그리 쏟아부어서 강림의 지속시간을 끝내는 데 성공한 셈이죠. 이건 좋은 요소네요.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강림이 1회 더 남았다는 점이지만요.”
두 번째 강림은 이미 끝났다. 그래서 주가 즉시 추격해서 우리를 죽이진 않은 것! 하지만, 세 번째 강림이 남았다는 말에 우리의 표정이 다시 창백해졌다. 페로 가인이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연결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강림이 끝날 당시에도 주의 부상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진철 형과 송이, 아리의 희생은 유효타였던 셈이죠. 엘레나가 지반을 무너트린 것도 매우 효과적이었어요. 또, 강림은 주 본인에게도 엄청난 출혈을 강요하는 힘이라 세 번째 강림을 쓰기까진 아직 시간이 조금 있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다. 그 말에 나와 할아버지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까 왜 탈출하면 안 되냐고 물어보셨죠? 그건 호텔의 시스템 때문입니다. 이후에도 여러 번 강조하겠지만, 주는 정말로 다른 죄수와 너무나 다릅니다. 그는 죄수라기보다는….”
“죄수라기보다는?”
“마치 게임 플레이어처럼 호텔의 시스템의 빈틈을 찌르고 있어요. 아시겠지만, ‘상태창’은 육체에 귀속되어있어서 저의 정신이 다른 육체로 이동한다 해도 따라서 이동하지 않아요. 지금 제게 상태창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말은 제가 더 이상 참가자가 아니라는 말이죠. 축복은 참가자의 증거니까요.”
짐작했던 내용이다. 지금 ‘페로 가인’은 더 이상 참가자가 아니다.
… 그렇다면, 가인이가 가졌던 참가자의 자격은 현재 누구에게 넘어갔는가?
“주! 그놈에게 지금 참가자 자격이 넘어갔구나!”
“맞아요. 제 몸을 차지한 주에게 상태창과 참가자 자격이 넘어갔습니다. 애초에 그는 처음 제 몸을 차지한 순간 ‘강림’을 사용했죠. 그때 이미 참가자 자격을 저와 공유하기 시작했고, 빙의의 제한인 1시간을 넘기며 제가 참가자 자격을 잃은 지금, 주에게만 참가자 자격이 남았습니다.”
“상태창과 참가자 자격이 넘어갔다고 하니 궁금한데, 마도서는 어떻게 됐어?”
“그건 좀 신기한 부분이네요. 저도 이런 일은 처음 겪어봐서 궁금했는데, 마도서는 여전히 제게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긴 하네요. 그동안 여러 차례 타인의 몸에 빙의했고 그때마다 상태창은 따라오지 않았지만 마도서는 따라왔으니까요.”
지금, 상태창과 참가자의 자격은 이 자리에 있는 ‘페로 가인’이 아니라 지하 도시에 파묻힌 주에게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마도서의 소유권은 페로 가인에게 있다.
페로 가인이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아시다시피 탈출은 해결과 다릅니다. 저주의 방이 해결되면 방 전체가 소멸하지만, 탈출은 아니죠. 방은 여전히 남아있어요. 우리 중 누군가 탈출해도 남은 사람은 계속 진행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우리도 이 원리를 여러 차례 이용하지 않았습니까?”
“상식개변 미디어 이후로 여러 차례 사용한 전법이지. 제일 먼저 1~2인만 탈출시키고 나머지는 해결 시도하기.”
“그 원리가 참가자 자격을 얻은 주에게도 적용됩니다. 지금 할아버지나 승엽이, 누나가 탈출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 방에 주 혼자 남아서 계속 진행하겠구나.”
“그리고 그는 언젠가 이 방을 해결할 겁니다.”
여기서 할아버님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주가 아우렐리아를 죽여서 방을 해결하려 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나와 달리 현장에 없었던 할아버님은 페로 가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나 혼자만 대화 못 따라가는 중이냐? 죄수가 대체 왜 방을 해결해? 자살 지망생이냐? 해결하면 주는 소멸하고 가인이 네가 유산 얻어서 밖으로 나오는 것 아니냐? 혹시 주가 네 머리에 계속 남아있을까 봐 걱정하는 거냐?”
“그건 아닙니다. 저주의 방이 해결되는 순간, 우리가 입은 모든 피해가 사라지죠.”
“내 말이 그 말이다. 지금 네 몸이 주에게 점령당하긴 했지만 주 그놈이 잘나봐야 호텔 앞에선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이다. 방이 해결되는 즉시 호텔이 널 치료하면서 네 머리 속의 그 놈을 지우겠지.”
“할아버지, 저주의 방이 해결되면 방 내부의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죄수도, 대적자도, NPC도. 하지만 단 한 가지는 저주의 방 바깥으로 나갈 수 있죠.”
“우리?”
“우리 말고요. ‘유산’ 말입니다.”
나와 할아버지는 순간 말문을 잃었다.
“할아버지, 누나. 유산, ‘신성한 태양’은 주가 빚어낸 또 다른 자기 자신입니다. 그의 목적은 지금 제 몸을 빼앗는 게 아니에요. 제 몸을 빼앗은 건 단순히 참가자의 자격을 강탈해서 우리의 탈출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수단이며, 일종의 단기적인 목표일 뿐입니다. 그의 목적은 어떻게든 우리가 이 방을 해결하게 만들어서 ‘신성한 태양’을 바깥 세계로 내보내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해한 내용을 대충 요약하면….
1. 주의 목적은 방을 해결해서 ‘신성한 태양’이라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을 바깥 세계로 내보내는 것이다.
2. 주는 가인이의 몸을 강탈해서 참가자 자격을 얻었다. 이로써 그는 우리가 탈출 버튼 등의 수단으로 탈출하더라도 혼자서 방을 진행할 권리를 얻었다.
현기증이 느껴진다.
방에 들어온 이상, 결과물은 해결, 탈출, 몰살 셋 뿐이다. 몰살이야 있어선 안 되는 일이고, 해결은 그 자체가 주의 목적을 이뤄주는 것. 탈출은 해봐야 주 혼자서 진행하게 해줄 뿐이다!
대체 주가 설계한 이 판을 어떻게 깨트려야 하지? 페로 가인의 설명은 그 후로도 장기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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